Search
Search

연구성과물 검색 타이틀 이미지

HOME ICON HOME > Search by Achievements Type > Reports View

Reports Detailed Information

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2332&local_id=10012907
조선후기 신분제 개혁론의 새로운 지평 : 명분주의에서 직분주의로의 패러다임의 전환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조선후기 신분제 개혁론의 새로운 지평 : 명분주의에서 직분주의로의 패러다임의 전환 | 2005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인규(영산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사업별 신청요강보기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155
Year(selected) 2005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7년 05월 29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이 글은 조선후기의 신분제 개혁론에 대한 연구 성과이다. 그동안 유형원을 비롯하여, 이익, 안정복, 유수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최한기 등 개개인의 신분제 개혁론에 대한 연구 성과는 많았으나, 실학파의 신분제 개혁론을 특징 지울만한 연구 성과는 미흡하였다. 지금까지 고찰한 바에 의하면 조선후기 신분제 개혁론에서 가장 큰 핵심은 바로 名分主義에서 職分主義에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하겠다. 즉 실학파들은 기존의 신분제에서 중시되던 兩班⋅中人⋅良人⋅賤人의 명분주의에 입각한 사회신분론에 벗어나 士⋅農⋅工⋅商의 직분주의에 입각한 四民制度로서 조선사회의 근간을 이루고자 하였다. 사⋅농⋅공⋅상의 직분주의에 입각하여 사민제도의 확립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四民分業의 확립과 함께 모든 백성들에게 동등한 초등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의 학업능력에 맞게 사⋅농⋅공⋅상의 직업을 선택하게 하는 능력본위제를 주장하였던 것이다.
    특히 조선사회는 出身門閥 외에도 출신지역에 의한 차별도 심하였다. 사람들은 출신신분이나 지역에 따라 權利, 義務에 커다란 차별을 받았다. 土地所有와 官職登用의 기회, 軍役과 納稅, 刑罰 등의 모든 생활영역에 걸쳐 철저한 차별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신분사회의 확립은 집권적 관료국가의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의 안정을 확보하는데 일정부분 기여한 점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해짐에 따라 치자와 피치자 사이의 간격이 심화되고 그로인한 사회적 갈등과 사회경제적 발전을 저해하는 독소로 작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실학파들은 양반⋅중인⋅양인⋅천인의 차별제도인 신분제도와 사⋅농⋅공⋅상의 분업제도인 사민제도로 구분하여, 신분제도는 ‘名分’으로 보고 사민제도는 ‘職分’으로 보았다. 그리고 사⋅농⋅공⋅상도 ‘身分’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학식과 재능에 의해 결정되는 ‘직분’이므로 직분에 의한 신분의 차이를 현실적인 면에서 일정부분 긍정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위와 아래가 힘을 다하여 그 직분을 닦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말한 ‘상하(上下)’란 사민의 위계적 질서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사회 어느 계층이든 간에 상하관계는 있기 마련이므로, 그 자체가 직분의 평등을 해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학파들은 사⋅농⋅공⋅상의 분배 기준을 ‘재능과 학식’으로 설정하고, 농부나 장사치의 자식일지라도 재능과 학식이 있다면 의정부에 들어가 벼슬하는데 장애가 없으며, 반면에 公卿의 자제라 할지라도 재능과 학식이 없으면 하인이 되는 것도 문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직분은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능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학파의 신분제 개혁론은 四民平等思想의 출발점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화파에게도 여향을 주어 근대사상에로의 전환을 이루는데 기폭제가 되었다고 하겠다.
  • English
  • This article is based on the study result of the reformative theory of social class system late in Joseon. There have been many studies on the reformative theory of social class system conducted individually by many Joseon-pragmatism scholars including Yoo Hyung Won, Lee Ik, Ahn Jung Bok, Yoo Soo Won, Hong Dae Yong, Park Ji Won, Park Je Ga, Jung Yak Yong, Choi Han Gi and etc. However, most of such studies have not shown remarkable study results on the reformative theory of social class system. Based on what I have studied so far, it is the biggest core of the reformative theory of social class system late in Joseon that the paradigm changed from the idea of justice to the idea of social duties. That is, the Joseon-pragmatism scholar group tried to leap off the theory of social class based on the idea of justice that divided the social class into noble class, middle class, low class and humble class, which were very important in the social class system of that period so that Joseon society could stand on the four-class system based on the idea of social duties for scholar class, farmer class, worker class and merchant class. Those who claimed that the four-class system should be established based on the idea of social duties for scholar class, farmer class, worker class and merchant class argued the capability based system in which four-class based job division should be established; elementary education chance should be provided equally to every person; and the jobs of scholar/farmer/worker/merchant should be selected for their study capability.
    Especially in Joseon society, there was another big discrimination which was based on hometown in addition to social class. People in that time were largely discriminated in accordance with their social classes and hometown also in terms of their rights and duties. People of that time were strictly discriminated widely through all their lives including land ownership, chances of application for government jobs, national defense, taxation, punishment and etc. Such social class system partially contributed to keeping the public order of a bureaucrat-based nation and securing the stability of the society. As such discrimination was getting deeper, however, the gap between the governor class and controlled class was getting bigger and then the social class system played as a toxin that caused social disputes and obstructed the social and economical growth.
    Whereas, the Joseon-pragmatism scholars divided the social discrimination system into social class system of noble/middle/low/humble-class based on 'Justice' and four-class system that was a job-separation system for scholar/farmer/worker/merchant based on 'Duties'. They partially agreed to the social class discrimination based on 'duties' because scholar/farmer/worker/merchant also were 'duties' that were defined based on not 'social class' but knowledge and talents. Therefore, they claimed, 'such duties should be fulfilled by upper and lower classes in combination'. However, the 'Upper and Lower' did not mean the hierarchy of scholar and normal people. As there should be upper/lower relation in any society and class, the upper/lower relation itself would not break the equality of duties. The Joseon-pragmatism scholars set the division standard of scholar/farmer/worker/merchant as 'talents and knowledge' and claimed that there should not be any obstruction for even farmers' and merchants' children to become ministries if they had talents and knowledge and there should not be any problem for even officials' children to become home servants. For, they believed that the social duties should not be succeeded and it should be decided by each one's own capability.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이 논문은 조선후기의 신분제개혁론에 대한 글이다. 그동안 유형원을 비롯하여 실학파 개개인의 신분제 개혁론에 대한 연구 성과는 많았으나, 실학파의 신분제 개혁론을 특징 지울만한 연구 성과는 미흡한 실정이다. 논자의 견해로는 조선후기 신분제 개혁론에서 가장 큰 핵심은 바로 名分主義에서 職分主義에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하겠다. 즉 실학파의 학인들은 기존의 신분제에서 중시되던 양반⋅중인⋅양인⋅천인의 명분주의에 입각한 사회신분론을 벗어나 사⋅농⋅공⋅상의 직분주의에 입각한 四民制度로서 조선사회의 근간을 이루고자 하였다. 사⋅농⋅공⋅상의 직분주의에 입각하여 사민제도의 확립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四民分業의 확립과 함께 모든 백성들에게 동등한 초등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의 학업능력에 맞게 사⋅농⋅공⋅상의 직업을 선택하게 하는 능력본위제를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먼저 신분제의 기원과 그 의미에 대해 󰡔서경󰡕 󰡔주역󰡕 󰡔논어󰡕 󰡔맹자󰡕 등 經書를 통해 살펴보고, 이어 조선조 실학파 이전의 신분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논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실학파의 신분제를 유수원을 비롯하여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최한기 등 이들에게서 공통으로 보이는 신분제의 특징을 실펴하고, 실학파의 신분제 개혁론이 갖는 사상사적 의의와 개화파에 미친 영향에 대해 면밀히 고찰하였다.
    특히 본 연구는 시기적으로는 先秦시대로부터 朝鮮後期까지며, 내용적으로는 선진유학, 성리학, 실학, 개화사상, 서구 근대사상까지 포괄하였다. 연구방법은 동서양의 해당 문헌들을 분석하는 문헌연구와 각각의 내용을 비교 논의하는 비교연구 방법을 동시에 취하였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본 연구는 일차적으로는 신분제의 이론적 배경과 근대적 성격을 해명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특히 유학사상이 신분 차별을 옹호한 나머지 집권층을 이익을 대변하는 사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유학을 이데올로기로 한 조선사회는 근대(近代)에로의 자발적으로 사상적 전환이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학파의 신분제 개혁론은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사회평등을 지향하였으며, 개인의 능력을 존중하는 근대적 성격을 지닌 사회사상이었다.
    따라서 이 연구는 실학사상이 갖는 근대성을 밝히는 데 있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며, 조선후기에 사회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단초가 될 것이다. 나아가 본 연구는 한국 근대사상의 독자성과 보편성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기초로 한국실학사상의 사유체계와 근대성을 밝히는데 기여할 것이며, 실학사상이 개화사상에 끼친 영향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 Index terms
  • 신분, 신분제, 명분, 명분론, 名分主義, 職分主義, 재능, 학식, 兩班, 中人, 良人, 賤人, 士, 農, 工, 商, 기원, 사민평등, 실학, 실학파, 선진, 송명, 리학, 유형원, 이익, 유수워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최한기, 개혁, 개혁론, 개화, 개화파, 능력본위
  • List of digital content of this reports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 This document, it is necessary to display the original author and you do not have permission
    to use copyrighted material for-profit
  • In addition , it does not allow the change or secondary writings of work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
트위터 페이스북
NRF Daejeon
(34113) 201, Gajeong-ro, Yuseong-gu, Daejeon, Korea
Tel: 82-42-869-6114 / Fax: 82-42-869-6777
NRF Seoul
(06792) 25, Heonreung-ro, Seocho-gu, Seoul, Korea
Tel: 82-2-3460-5500 / Fax: 82-2-3460-5759
KRM Help Center
Tel : 042-710-4360
E-mail : krmcenter@nrf.re.kr / Fax : 042-861-4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