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Search by Achievements Type > Reports View

Reports Detailed Information

철학적 담론과 그림이미지 -루이 알튀세와 추상의 화가 크레모니니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철학적 담론과 그림이미지 -루이 알튀세와 추상의 화가 크레모니니 | 2005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이성훈(경성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172
Year(selected) 2005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7년 05월 27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본 연구는 먼저, 알튀세의 예술이론을 위치시킬 더 넓은 미술사적 맥락을 검토한다. 이는 곧 현대미술의 정당성의 문제인데, 사실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운동들 이래, 현대미술의 역사는 수많은 스캔들과 사기로 점철된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우리가 미술 관련 잡지나 언론매체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것도 예술인가 ’하는 물음인데, 이 물음은 사실 현대미술에 대한 일반 대중의 난감함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미학자나 미술사학자들의 시대착오적인 분노, 그리고 문화권력을 쥐고 있는 기존 미술계의 이른바 인간주의 예술이데올로기 모두를 담고 있다. 본 연구는 현대미술이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을 정당성의 문제로 이해하며, 이의 근원이 일반 대중의 무지에 있는 게 아니라 예술의 이데올로기적 신비화 및 이의 역사적 응결체인 인간주의 이데올로기에 있다고 진단한다.
    본 연구는 다음으로,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을 이용하여 예술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일반적인 관계를 검토한다. 그에 따르면, 첫째, 예술은 지식이 아니다. 알튀세는 과학의 이론 영역과 예술의 생산 영역을 구분하는데, 지식이 전제들로부터 결론이 생산되는 메커니즘을 꿰뚫어보게 해준다면, 예술은 전제 없이 결론을 보게 해준다. 둘째, 예술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예술은 이데올로기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방식으로 제시된 이데올로기다. 예술은 그것의 일상적인 기능조건에서 벗어난 이데올로기이며, 이런 의미에서 가시화된 이데올로기다. 셋째, 알튀세가 보기에, 예술작품의 질료인(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은 일상적인 의미의 재료(시각예술의 경우에는 색과 형태, 문학의 경우에는 언어)가 아니라 바로 이데올로기다. 넷째, 예술의 작용인 역시 이데올로기다.
    예술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일반적 관계에 대한 이러한 고찰은 다음의 쟁점, 곧 예술, 특히 현대미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오히려 장애물로 기능하는 이데올로기적 독해들을 분석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준다. 주요한 이데올로기적 독해는 형식주의 독해와 인간주의 독해인데, 알튀세는 이 두 가지 독해를 비판한 후, 대안적 독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징후적 독해로서, 우리는 알튀세의 작업 전체가 사실 ‘독해의 노동’이라는 한 구절로 요약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마지막으로, 알튀세의 철학적 담론이 유일하게 언급하고 있는 미술가인 레오나르도 크레모니니의 작품을 들여다본다. 196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된 크레모니니의 그림을 우연히 보게 된 알튀세는 그의 작품을 표현주의 작품으로 경멸적으로 부르는 일반 관객들이나 전문 비평가들의 반응에 접하고는 그의 작품에 대한 유물론적-징후적 독해에 임하게 된다. 이때는 마침 알튀세가 리얼리즘(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사회적 리얼리즘 모두)에 대한 혐오를 키우고 있던 때로, 이를 기화로 작성된 "크레모니니, 추상의 화가"는 취미의 전문가(전문비평가)뿐만 아니라 이른바 정통 공산주의 비평가 둘 다를 겨냥한 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알튀세는 크레모니니를 비단 표현주의라고 하는 딱지로부터, 아울러 일반적인 의미의 추상화가라고 하는 지위로부터 구원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성을 그리는 추상의 화가로 살려내고 있다. 맑스가 역사유물론의 영역에서 인간들 간의 관계를 분석해내었듯이, 크레모니니 역시 예술의 영역에서 인간들 간의 추상적인 관계를 그려냈으며, 맑스가 유물론적 역사관에 대해 성취한 바로 그 인식론적 단절을 크레모니니의 그림이 화화에 대해 성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튀세의 이른바 예술이론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아니, 그의 이론 전체가 이제는 망각의 저주 하에 처해있으며, 인용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비판하기 위해 인용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본 연구는 알튀세의 이론이 "예술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단히 중요한 이론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며, 예술연구를 위한 만족스러운 유물론적 토대를 그려내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의 이론, 그가 제시한 개념들과 문제들을 거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English
  • This article is an attempt to tackle a series of questions that arise when one is looking at a contemporary visual art which is very often regarded as s sort of confidence trick by exploring the relation between philosophical discourse(in this article, Louis Althusser's writings) and pictorial image(paintings by Leonardo Cremonini). I'm sure that Althusser's thought opened up and contains a lot of promising theoretical paths to intervene in so many areas. The continuing challenge of Althusserianism requires sustaining his commitment to building theoretical production. I think that although a materialist theory of art was only obliquely sketched by Althusser, and in this sense, it could be said to be only in the practical state, his remarks upon art, literature and theatre hitherto overlooked have a great potential that can lift the discussion of art onto some higher philosophical plane from which we are able to build up a scientific art theory.
    How, then, does Althusser function in this area as well Given the prevailing bias in writing, criticising, and looking at artworks towards a humanist interpretation of the subject, antidote to this is the impact, though latent, of the writings of Althusser on art, literature and theatre. Even in this case, Althusser elaborates a well-substantiated challenge to the supposed distinction between art and work, and provides a systematic demystification of the creative process by offering the bridge of no return in the history of the investigation of ideology. It is now over forty years ago that the first materialist, anti-humanist writing on art began to appear, mapping out a different way of seeing and understanding cultural production and the social relationships expressed therein. I think that Althusser's emphasis on the work's structural causality, or "cause immanent in its effects" rather than the artist may well have helped open up a new way of thinking about art theory and of criticizing the humanist ideology of art which invades everywhere.
    However, Althusser's writings on theatre, literature, and especially art remain unexplored territory, in so far as no one paid attention, whether theroretical or not, until recently. Indeed, Althusser's whole work has suffered from a special doom, passing from widespread condemnation to what is more damning: disinterest. So, what is under discussion in this article is not the full-fledged art theory of Althusser but only a brief sketch of the overlooked potential impact upon the possible construction of contemporary art theory that Althusser left behind.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 연구는 철학적 담론과 그림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추적하는 일련의 작업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것으로, 루이 알튀세의 철학적 담론과 이탈리아 예술가 레오나르도 크레모니니의 그림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본 연구의 큰 전제는 이렇다.
    철학적 담론과 그림이미지 사이의 관계는 해당 철학자의 개인적이고도 우연한 예술애호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철학적 담론이 깔고 있는 구조적인 이론적 전제로부터 비롯되거나 요구된다. 따라서 철학적 담론과 그림이미지 사이의 복잡다단하고도 중층결정된 관계는 단순한 연대기적 서술이나 일대일 대응식 독서를 통해서는 해명될 수 없으며, 다시 일종의 철학적 독서를 요청한다. 사실 플라톤 이래 철학자들은 예술에 대해 나름의 철학적 테제를 제시하거나, 아니면 철학의 층위에서 나름의 예술지식을 부여함으로써 예술이론의 발전에 진보적이거나 퇴행적인 기능을 수행해왔다. 전체적으로 봐서, 철학은 자신을 심층심급으로 간주해 예술에게 철학적 진리가 출현하는 장소, 곧 표면심급의 지위를 부여하거나, 아니면 철학 스스로 나름의 예술지식으로 무장해 이를 예술에게 강요한다. 전자의 개입방식에 의해 철학이 자기 자신을 정당화함과 동시에 예술은 자율적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면, 후자의 개입방식으로부터는 예술과 관련된 여러 가지 범주들(이를테면 유기적 작품, 천재로서의 예술가, 경건하고 몰입적인 수용태도 등)이 출현한다.
    본 연구는 철학과 이미지 사이의 일반적 관계를 이렇게 두 가지 양상으로 구분한 후, 알튀세의 철학적 담론과 크레모니니의 그림이미지 사이의 관계는 과연 어떠한지를 따져본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먼저 여러 가지 방향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의 정당성 문제를 따져보고, 현대미술을 이러한 위기상황에 처하게 만든 이데올로기적 예술독법들을 분석하였으며, 일반적으로 예술과 이데올로기 간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이데올로기이론사에서 되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놓아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에 따라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좁게는 그의 철학체계 내에서 이를테면 하나의 간과된 이론적 중심으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넓게는 예술에 대한 철학적 담론의 층위에서도 대단히 중요하고도 새로운 이론적 돌파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미학계건 미술사학계건 철저하게 외면되어왔던 알튀세의 예술이론을 구성해보고, 이를 그가 직접 평하기도 했던 이탈리아 예술가 레오나르도 크레모니니의 그림에다 적용하였다.
    알튀세에 따르면, 철학이란 곧 현재의 정세에 테제의 제시를 통해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1960년대 내내 프랑스 공산당에 개입했듯이, 우연히 들러본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에서의 크레모니니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잘못된 반응을 기화로 현대미술세계에 개입한다. 그렇게 해서 쓰인 소략한 에세이 "크레모니니, 추상의 화가"는 "앙드레 다스프레에게 보낸 편지" 및 "피콜로: 베르톨라찌와 브레히트(한 유물론적 연극에 대한 노트)"와 함께 유물론적 예술이론의 성립을 위한 기초가 되고 있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본 연구결과는 곧 전문철학지에 기고되어, 철학자들의 독서와 비판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본 연구는 크게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작성되었다. 하나는 1960년대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난 철학적 담론과 그림이미지 사이의 우호적인 관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많은 이론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포스트모던 이론의 급증 이래 망각의 늪에 빠진 루이 알튀세의 이론과 예술이론을 한번 되살려보자는 것이다. 본 연구결과가 이러한 두 가지 목적을 조금이라도 달성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Index terms
  • 알튀세, 크레모니니, 철학적 담론, 그림이미지, 이데올로기, 현대미술, 징후적 독해, 이데올로기적 독해, 인간주의 이데올로기, 추상, 유물론적 예술이론
  • List of digital content of this reports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 This document, it is necessary to display the original author and you do not have permission
    to use copyrighted material for-profit
  • In addition , it does not allow the change or secondary writings of work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