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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지도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표현과 인식에 관한 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서양고지도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표현과 인식에 관한 연구 | 200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오일환(경희대학교& #40;국제캠퍼스& #41;)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16
선정년도 200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7년 05월 28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서양에서 제작된 고지도에 우리나라의 모습이 어떠한 형태로 그려졌으며 어떻게 표기되어 있는가를 국내에 분포하고 있는 서양 고지도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한 연구이다.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중국을 왕래하던 아라비아와 유럽의 상인들에 의하여 서양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특히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1299)과 선교사 드 루브룩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6세기 중반부터 서양의 여행가 및 상인을 비롯한 선교사들이 제작한 서양고지도에 등장하고 있다. 이 당시의 우리나라 형태는 대부분 중국 동북부에 편입되어 있거나 매우 불완전한 형태로 묘사된다. 하지만 1592년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과 함께 세계지도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특히 하멜의 『하멜표류기』(1668) 등의 출판으로 더욱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서양고지도에 그려진 우리나라 초창기 형태는 대체로 중국 동북부에 편입되었거나 혹은 매우 불완전한 모양으로 나타나지만 임진왜란 이후 중국, 일본과 함께 명확하게 그려지게 된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영향으로 16세기말부터 랑그렌이나 테이세이라 등의 지도에 남북으로 역삼각형태의 길쭉한 섬, 혹은 둥그런 형태의 섬, 또는 부정형 사다리꼴형태의 섬 등으로 다양하게 그려졌고, 심지어 18세기 초까지 섬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후 중국에 머물던 17세기 초 마테오 리치와 마르티니를 비롯한 서양 선교사들이 과학적인 측량으로 중국지도를 제작하면서 17세기 중엽이후 우리나라는 길쭉한 양말모양의 반도로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18세기 중엽 이후 당빌에 의하여 1737년 독립적이면서도 현재와 매우 비슷한 형태의 반도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대한 명칭표기는 16세기 말에 섬으로 표기되었으나 점차 17세기 중엽에는 반도를 의미하는 어휘로 변화하면서 ‘COREE’ , 'COREA' , 'KOREA' 등을 비롯한 표기로 정착되어 갔다.
    이러한 지리적 인식은 기존의 요동반도에 설치되었던 유조변장의 지리인식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을 우리나라의 지리적 경계로 인식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1708년 청나라 강희황제의 명으로 중국전역을 서양식 방법으로 측량하기 시작하고 1712년 백두산 정계비의 건립 등으로 중국에 머물던 서양의 선교사를 통하여 한중간의 경계에 대한 지리적 지식과 정보를 지도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이다.
  • 영문
  • A study of typology on the change of korea shapes and name in European ancient map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서양에서 제작된 고지도에 우리나라의 모습이 어떠한 형태로 그려졌으며 어떻게 표기되어 있는가를 국내에 분포하고 있는 서양 고지도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한 연구이다.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중국을 왕래하던 아라비아와 유럽의 상인들에 의하여 서양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특히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1299)과 선교사 드 루브룩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6세기 중반부터 서양의 여행가 및 상인을 비롯한 선교사들이 제작한 서양고지도에 등장하고 있다. 이 당시의 우리나라 형태는 대부분 중국 동북부에 편입되어 있거나 매우 불완전한 형태로 묘사된다. 하지만 1592년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과 함께 세계지도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특히 하멜의 『하멜표류기』(1668) 등의 출판으로 더욱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서양고지도에 그려진 우리나라 초창기 형태는 대체로 중국 동북부에 편입되었거나 혹은 매우 불완전한 모양으로 나타나지만 임진왜란 이후 중국, 일본과 함께 명확하게 그려지게 된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영향으로 16세기말부터 랑그렌이나 테이세이라 등의 지도에 남북으로 역삼각형태의 길쭉한 섬, 혹은 둥그런 형태의 섬, 또는 부정형 사다리꼴형태의 섬 등으로 다양하게 그려졌고, 심지어 18세기 초까지 섬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후 중국에 머물던 17세기 초 마테오 리치와 마르티니를 비롯한 서양 선교사들이 과학적인 측량으로 중국지도를 제작하면서 17세기 중엽이후 우리나라는 길쭉한 양말모양의 반도로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18세기 중엽 이후 당빌에 의하여 1737년 독립적이면서도 현재와 매우 비슷한 형태의 반도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대한 명칭표기는 16세기 말에 섬으로 표기되었으나 점차 17세기 중엽에는 반도를 의미하는 어휘로 변화하면서 ‘COREE’ , 'COREA' , 'KOREA' 등을 비롯한 표기로 정착되어 갔다.
    이러한 지리적 인식은 기존의 요동반도에 설치되었던 유조변장의 지리인식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을 우리 나라에 대한 지리적 경계로 인식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1708년 청나라 강희황제의 명으로 중국전역을 서양식 방법으로 측량하기 시작하고 1712년 백두산 정계비의 건립 등으로 중국에 머물던 서양의 선교사를 통하여 한중간의 경계에 대한 지리적 지식과 정보를 지도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본 연구결과는 경희대학교 혜정문화연구소/박물관의 전시실과 영상물 제작에 활용되었다.
    고지도 전시실에는 우리나라의 형태 변화 그리고 우리나라의 명칭 표기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관련 고지도와 함께 그래픽으로 정리되어 있으며 영상물에도 반영되어 있다.
    2. 연구결과는 중국과의 고구려사 문제 뿐 아니라 일본과의 동해 표기 문제 등 우리나라가 처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국토의 모습 뿐 아니라 세계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우리나라의 형태와 명칭이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연구 자료에 대한 전산화 및 정보를 제공하여 서양의 고지도를 활용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인의 연구를 바탕으로 더욱 더 많은 역사지리학적인 연구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교육현장에서도 서양에 알려지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형태와 표기 문제 등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서양고지도, 동양인식, 서양 선교사, 우리나라, 한반도 표현과 인식. 압록강, 두만강, 백두산정계비, 마테오 리치, 강희제, 황여전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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