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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2394&local_id=10013633
고려시대 銅의 사용현황과 銅所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고려시대 銅의 사용현황과 銅所 | 2005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이정신(한남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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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26
Year(selected) 2005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7년 01월 09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우리 나라에서의 동광업의 기원은 금·은과 더불어 긴 역사를 지니고 있으니, 이미 기원전 1천년경부터 청동기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어 삼국시대로 들어서면서 장신구· 馬具 중에 금동 제품이 많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거대한 불상·범종 및 기타 佛具類들이 동이나 청동으로 제작되었음을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서 동이 외국과의 무역, 동전제조, 생활식기, 불상, 동종 등 다양하게 이용됨에 따라 국가는 동소를 중심으로 동을 활발하게 생산하였다. 그러나 동에서 한단계 발전한 견고하고 아름다운 유기의 사용은 고려후기에 와서야 백성들의 식기까지 일상화된 것 같다. 유기가 일상화되기까지는 소 주민과 장인들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고려시대 동소가 있었음은 확인되나 동광이나 제련유적이나 유구는 확인된 바가 없다. 그런데 최근 경주시 황남동 376 유적에서 동제련용으로 추정되는 도가니가, 경주시 동천동에서 8세기 경의 청동관련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 동제련 과정을 추정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동이 토산품으로 나오는 곳은 13곳이며 동소로 추정되는 곳은 9곳 정도이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더 많은 지역에서 동채굴과 제련이 이루어지고 있어 어느 정도 믿어야 할지 의구심이 든다.
    동의 채굴은 이전까지는 노지채굴이었다가 점차 본격적으로 갱도를 파서 채굴하는 광산을 개발했다고 생각된다. 광산을 개발하는 일은 소민들을 이용했으므로, 특히 은 철 동 등의 광업에 종사하는 소민들의 고통이 다른 소보다 가장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같은 고통이 이미 예종대에 유망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소의 붕괴는 고려 무신정권기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고려와 몽고와의 30년 전쟁은 소가 해체되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국가는 전쟁에 공을 세우거나 원 간섭기 원황제에 공을 세웠다고 하여 소를 군현으로 승격시켜주어 국가가 앞서서 소의 해체에 가담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이제 국가는 동을 생산하기 위해 일반 민호나 군사를 동원하였다. 그 과정에서 고려시대 소민의 상당수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천역 대신 군역에 충당되였지만 특수한 군역에 몰아넣음으로서 일반 양인과 구분함과 동시에 입학자격이 불허되는 身良役賤者가 되었다.
    요컨데 고려는 소를 통해 국가에서 광산물을 관장하고 민간에서의 동 채취를 금지하여 동의 생산이 활발하지 않았다. 고려 후기에 들어서서 소가 해체되어 가자 국가에서는 필요로 하는 동의 생산을 주로 농한기의 백성이나 군인을 차출하여 채광 · 제련하게 하였다. 고려를 이은 조선왕조 또한 국가에서 전담하고 동의 사적인 개발을 막아 동의 채굴과 제련이 더욱 부진하게 되어 주로 일본에서 수입하게 되었다.
  • English
  • The Making place of Copper(Dongso) and the Using of Copper in Koryo dynasty

    The origin of copper mine had been long times ago with the gold and silver mine in Korean history. For example, the bronze wares were appeared upon before ten hundred years ago. Subsequently, the gilt bronze wares were broadly used both personal ornaments and horse equipments during the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The large scale of an images of Buddha and the bells of a Buddhist temple also were made out of coper and bronze in the period of the Unified Silla.
    During the Koryo dynasty, Dongso (a state-run organization) was worked a key role for producing copper because of the foreign trade, making coins, table wares and bronze bells. The brass wares were also used a large scale after the late period of the Koryo dynasty. Even though we find the historical materials on the Dongso, the relics of copper mine and refining place were not discovered. However we deduce the working process of bronze refining through the relics of the 8th century.

    The operation of the copper mine was a outdoor digging at the early Koryo dynasty. After that time, the technical know-how were developed through the drift working. The people of the Dongso mainly commandeered for the digging of the bronze, steel and silver. Because of the hard working, the Dongso inhabitants were drifted after the period of King Yejong. The collapse of the Dongso were appeared at the Military Seize Power and the period of Mongols' invade was a good chance for the Dongso inhabitants. The state also took a great role for the collapsing of the Dongso.
    Between the period of late Koryo and early Choson dynasty, the state mobilized labor force for digging bronze not by the Dongso inhabitants but by civil house member and Yunhokun(煙戶軍). They worked at a mine in place of military service but their social positions were not similar to the position of the ordinary people. They did not applied to the state examination. Therefore, as time goes on, the industry of the digging and refining bronze were withered. During the Koryo state prohibited the exploitation of the civil mine and the Dongso also were scattered. So the privates people and solders were transfer temporarily for the digging bronze. The Choson dynasty's mining policy was similar to that of Koryo. Because they also prohibited the exploitation of the civil industry of bronze mine, the bronze wares were mainly imported by way of Japan.
    key word ; Copper, Dongso, bronze, outdoor digging, Unified Silla, drift working, collapsing of the Dongso, Yunhokun(煙戶軍), Koryo, early Choson.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고려시대 銅의 사용현황과 銅所

    우리 나라에서의 동광업의 기원은 금·은과 더불어 긴 역사를 지니고 있으니, 이미 기원전 1천년경부터 청동기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어 삼국시대로 들어서면서 장신구· 馬具 중에 금동 제품이 많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거대한 불상·범종 및 기타 佛具類들이 구리나 청동으로 제작되었음을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서 동이 외국과의 무역, 동전제조, 생활식기, 불상, 동종 등 다양하게 이용됨에 따라 국가는 동소를 중심으로 동을 활발하게 생산하였다. 그러나 구리에서 한단계 발전한 유기는 고려 후기에 와서야 일상화되었다. 고려시대 동소가 있었음은 확인되나 동광이나 제련유적이나 유구는 확인된 바가 없다. 그런데 최근 경주시 황남동 376 유적에서 동제련용으로 추정되는 도가니가, 경주시 동천동에서 8세기 경의 청동관련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 동제련 과정을 추정할 수 있다.
    동의 채굴은 고려 초까지는 노지채굴이었다가 중기부터 본격적으로 갱도를 파서 채굴하는 광산을 개발했다고 생각된다. 광산을 개발하는 일은 소민들을 이용했으므로, 특히 은 철 구리 등의 광업에 종사하는 소민들의 고통이 다른 소보다 가장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같은 고통이 이미 예종대에 유망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소의 붕괴는 고려 무신정권기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고려와 몽고와의 30년 전쟁은 소가 해체되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전쟁에 공을 세운 소를 군현으로 승격시켜주어 국가가 앞서서 소의 해체에 가담하기도 했다.
    고려말 조선초가 되면서 이제 국가는 동을 생산하기 위해 일반 민호나 煙戶軍을 동원하였다. 그 과정에서 고려시대 소민의 상당수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천역 대신 군역에 충당되였지만 특수한 군역에 몰아넣음으로서 일반 양인과 구분함과 동시에 입학자격이 불허되는 身良役賤者가 되었다.
    요컨대 고려는 소를 통해 국가에서 광산물을 관장하고 민간에서 구리 채취를 금지하여 동의 생산이 활발하지 않았다. 이것이 원 간섭기에 소가 해체되자 더욱 위축되어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구리를 주로 농한기의 백성이나 군인을 차출하여 채광 · 제련하게 하였다. 고려를 이은 조선왕조 또한 국가만 관장하고 동의 사적인 개발을 막아 동의 채굴과 제련이 더욱 부진하게 되어 주로 일본에서 수입하게 되었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연구결과
    한국사학보 25호에 실었음.
    고려시대 소에 관한 연구는 연구성과가 많이 있으나 각각의 소는 아직 연구된 바가 없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이 논문은 고려시대 금, 음, 철과 더불어 구리의 생산현황과 제조기술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다.

    활용방안
    고려시대 구리나 구리로 만들어진 주물공업에 관한 연구는 우리나라 광업사에서 잠깐 언급될뿐 치밀하게 연구된 바가 없다. 그러므로 고려시대 구리에 관한 선도적인 연구작업이라는 점에서도 일정한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연구를 통해 고려시대 연구가 더욱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는데 일조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Index terms
  • 구리, 동소, 청동, 연호군, 고려, 조선, 노지채굴
  • List of digital content of this re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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