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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치료, 종교:한국 고대의 불교의학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질병, 치료, 종교:한국 고대의 불교의학 | 2006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이현숙(연세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10
선정년도 2006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8년 02월 26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8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불교는 스스로를, 그 자체로 '병'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번뇌에서 비롯된 苦를 떨쳐 버릴 수 있게 해주는 '의학'에 비유하고 있다. 불교의 이런 측면은 필연적으로 정신요법으로 연결되어, 심신 질환이나 고뇌를 제거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고 한다. 불교 승단은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위생학 체계를 발달시켜 나가며, 보살행이나 자비를 베푸는 행위로 대중에게 의료행위를 베푸는 이른바 僧醫 집단으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한국고대사회에서 불교의학의 모습을 살펴본 본고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살펴볼 수 있었다. 첫째, 삼국의 입장에서 외래 종교였던 불교가 수용되고 종교 권력으로 등장하기까지, 불교 의학이 주요한 매개 역할을 하였다. 승려가 왕족을 비롯한 지배층의 질병을 치료하였던 점은 삼국이 불교를 수용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국왕의 질병을 치료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인왕경이나 금광경을 읽는 백고좌가 하나의 의례로 자리 잡고 있다. 한편 현전하는 <신라법사방> 중의 비밀요술방은 露蜂房이라는 말벌집을 가공하여 지배층의 성생활을 윤택하게 해 주는 비방이었다. 이는 중국 의서에 사용되었던 노봉방의 사용법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신라 고유의 처방으로 이해되고 있다. 고대 불교의학은 권력자의 쾌락까지 중요한 관심사로 다루었던 것이다. 한국고대사에서 또 다른 권력의 축을 형성하였던 종교-불교가 권력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정치 권력층에 끊임없이 봉사하는 기재로서 의학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불교 의학에 내재된 질병의 예방과 치료책을 구체적으로 구명해 보았다. 승려는 군대와 더불어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책이 준비되어야만 하는 존재이다. 삼국에서도 불교 교단이 성립하고 승려들이 대규모로 집단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대한 대책이 발달하였다. 이는 계율과 율학의 발달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즉 백제 성왕 9년(531) 백제승 謙益은 인도에서 아비담장, 五部律文을 가지고 귀국하여 이를 직접 번역하였다. 이 중 오부율은 당시 중국에도 없던 것이다. 불교 승려와 신자가 지켜야할 각종 계율에는 목욕과 양치, 손 닦는 법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현대에 와서도 질병을 예방하는 중요한 방법으로서 민간에도 전파되었을 것이다. 셋째, 불교 의학이 중국 의학과 차별되는 부분은 주술적 치료도 겸행한다는 것에 있다. 불교경전에는 치과, 안과, 전염병, 소아과 등등 세분화된 질병에 알맞은 각종 주문이 남아있다. 이는 불교 의학이 민중의학이 될 수 있었던 연유를 보여준다. 당시 약재는 소수 지배층에 의해 독점되었기에, 일반민의 입장에서 치료에 약을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해당 주문을 외우면서 기도하는 주술적인 방법은 큰 경제적인 부담이 없었기에 불교 의학이 서민 의료로 자리 잡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주술적인 치료는 고대 샤머니즘적 전통과 연계되므로 불교의학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실제 심리적인 치료에 효과를 보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즉 가장 경제적인 방법-입으로만 하는 주문을 통해 질병 치료를 함으로써, 민중과의 유대를 돈독하게 할 수 있었고, 이것이 고대 사회에서 불교의 권력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영향력을 미쳤다. 넷째, 현전하는 한국고대 불교의학의 처방을 고찰해 봄으로써 한국고대 불교의학이 한국전통 민간의학의 토대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사례로서 고려법사방과 고려변사방과 같은 고구려 의학이 모태가 되었으며, 이는 백제 신라 불교의학으로 발전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 영문
  • In Buddhism, anguish is regarded as illness. In this regard, Buddhism compares itself with medicine which can treat with the pain(苦) resulting from human anxiety. It is believed that this aspect of Buddhism necessarily led to a spiritual remedy which helped to remove mental suffering and physical pain or anguish. Buddhist priest groups had developed its own hygienic system growing into, what is called, the priest physician(僧醫) group which provided medical service to the public with an act of a Buddhist saint or an act of charity. While preparing this thesis, the author has found some features of Buddhist medicine. They are as follows; First, the Buddhist medicine was credited to the fact that Buddhism was adapted and emerged as a significant power in politics although it had once been a foreign religion. In fact, the Buddhist priests had treated with diseases of the ruling class, including the royal family. Consequently, the three Kingdoms of Korea (Koguryo, Packche and Silla) adopted Buddhism as a national religion. One of the methods to treat with kings' diseases was the grand Buddhist ceremony (Baekgoja), where 100 high priests gathered for a sermon. During the ceremony, the King chanted the Buddhist Sutras, (Inwanggyung and Gumganggyung) which said that a wise ruler can drive a nation to prosperity and that fundamental of wisdom is as hard as adamant. Meanwhile, in Silla, an ascetic wrote a medical book <Sillabyubsabang> which showed a great deal of medical prescriptions, different from the Chinese medicine. Among them was an interesting prescription, so called as a secret magical method (Bimilyosulbang). According to it, the priests fabricated a hive of hornets in order to enrich sex life of the governing class. Such a method was dissimilar to the Chinese method to use the hive. It is well known as an unique medical formula advanced by Silla. The book <Sillabyubsabang> still exists. In this regard, the ancient Buddhist medicine even addressed the enjoyment of those in power. It considered such pleasure as an important issue. As shown, the medicine was used as a means of serving consistently the ruling class in order for Buddhism to form and sustain its position as a predominant religion. Second, the Buddhist priests looked deeply into preventive measures and a curative means. Like the army, priests lived together as a group, so preventive methods and medical treatment should be prepared. In the three Kingdoms of Korea, as Buddhist groups had been created and priests had got to live together, the preventive measures and treatments of diseases was developed. Thirdly, given that the Buddhist medicine had been accompanied with incantatory treatment, the Buddhist medicine was somewhat different from the Chinese medicine. The Sutras showed all kinds of incantations which were divided into specialized treatments, such as dentistry, ophthalmology, pediatry and an infectious disease care, and the cause that Buddhist medicine could be demotic one as well. Since a small number of the governing class only consumed medical materials, it was too difficult for commoners to use medicine for treatment. Fourthly, the research on prescriptions of the existing Buddhist medicine indicates that the Buddhist medicine lied the foundation for the Korean traditional folk remedies. The Buddhist medicine of Koguryo had spawned the original Korean medicine, expanded into Silla and Packche, both of which advanced it further.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종교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불교의학은 기독교의 의학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인간이 심성적으로 가장 나약해진 시기 중의 하나가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일찍부터 종교에서는 인간의 질병과 치료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세계적인 종교로 자리매김한 불교와 기독교의 경우 역시, 그 발전 과정에서 종교가 가지고 있는 질병 치유력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한국고대사에서 불교가 한반도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불교의학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승려에게 관상이나 점, 또는 간단한 질병 치료 등의 부수적인 능력이 있을 겅우, 불교를 포교하거나 托鉢을 할 때 보다 용이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능력은 탁발승을 길 가는 낯선 나그네에서 친근한 인생 상담자 또는 스승으로까지 격상시켜준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이나 각종 설화를 통해 알 수 있다. <금광명최승왕경>의 제병품이나 각종 불교경전에 스며든 불교의학에 대한 설명에서 보듯이, 승려는 각종 경전을 읽고 암송하는 과정에서 불교경전 내에 소재한 의학 관련 문구로 인해 자연스럽게 불교의학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 이 가운데 의료에 관심을 가지고 활약하였던 이들은 승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승의는 의료를 專業으로 하지 않았지만,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반 민이 접근하기 용이한 부류였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러한 사회적 요구로 인해 이들이 의료 활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불교 전래 초기에는 승의는 상류층의 의료를 전담하였던 것처럼 묘사되었다. 의료를 전업으로 하는 醫師가 나타나자, 이들은 일반 민들이 질병에 걸렸을 때 치료를 해 줄 수 있는 의료인의 역할을 하였다.
    불교 포교를 위해 宣敎 醫療를 하였던 초기 僧醫들은 고대 불교 의학을 발전시키는 한 축이 되었으며, 역으로 불교의학은 한국고대사회에서 불교가 국교로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호국불교로 성장하였던 한국고대 불교는 사찰이라는 거대 공간을 보유하고 있으며, 승려는 당대 지식인의 상위층에 존재하였다. 그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 활약하였던 승려 집단은 인간의 질병과 치료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였던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사찰은 질병의 요양 공간으로서, 승려는 환자에 대한 간병과 치료를 주도하는 주체였던 것이다.
    본고에서는 8세기에 당나라의 왕도가 편찬한 『외대비요』에 수록된 『고려노사방』과 중국 隋대의 승려 천태 지의가 서술한 『摩訶止觀』에 인용된 고려辨師의 假想 치료법, 10세기에 편찬된 일본의학서 『醫心方』에 인용된 『新羅法師方』의 조문을 자세히 분석해 봄으로써, 승의가 행하였던 치료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비록 현전하는 『고려노사방』과 신라법사방 3首에서 사용된 약물은 민간 경험방 수준이라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료의 한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각기를 치료하기 위하여 오수유, 모과를 사용하였던 고려노사방이 중국에 전수되어 목향과 서각 등 중국의 약재가 더 첨가되어 발전되는 터전이 되었다. 속수자, 노봉방 등을 이용한 신라법사방은 모두 한두 가지 약재를 사용한 단방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역으로 한국고대 사회에서 활약한 고대 僧醫들이 향토에서 구하기 쉬운 약재 중심으로 민간의료를 발달시킨 주역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점은 8세기 초 당나라 상주에 있는 풍병으로 걷지 못하는 환자가 길거리에 나와서 다리 고쳐줄 사람을 기다리다 신라승의 도움으로 치유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공적 의료체제에서 소외되고 경제적인 이유로 사적 치료조차 받지 못하였을 일반 민에게 승의는 정신적인 위안뿐 아니라 실질적인 치료의 혜택을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이름이 전하지 않는 이 신라승려는 중국식 약재명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는 신라 불교 의학이 중국의학의 영향보다는 토착적인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삼국유사>의 설화 "金現感虎"에는 호랑이에게 물린 상처를 치료하는데 경주 흥륜사의 醬을 사용하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장을 외상 치료에 사용하였던 연원이 오래되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찰에서 치료약을 제공하였던 고대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한국고대사회에 있어서 불교의학은 왕과 귀족의 질병과 건강을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경제력이 없어 공적 치료에서 소외되었던 하층민까지 아우를 수 있었던 유일한 의료였다. 양치질이나 손 씻기 등 승려 계율에 따른 위생 생활은 민간에서 질병 예방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 결과 새롭게 밝혀본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삼국의 입장에서 외래 종교였던 불교가 수용되고 종교 권력으로 등장하기까지, 불교 의학이 주요한 매개 역할을 하였던 것을 밝혔다. 승려가 왕족을 비롯한 지배층의 질병을 치료하였던 점은 삼국이 불교를 수용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신라의 경우, 아도화상이 내물왕의 딸 성국공주의 병을 치료함으로써 불교가 왕실 내에 자리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음은 누차 지적된 바로서, 불교 포교에 의학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국왕의 질병을 치료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인왕경이나 금광경을 읽는 백고좌가 하나의 의례로 자리 잡고 있다. 백제승 法明尼가 內大臣 中臣鎌子의 병을 고치기 위해 유마경의 揭句를 암송한 뒤, 일본 왕실에서 질병과 재해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인왕회 대반야회 등이 자리 잡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백제도 유사한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현전하는 <신라법사방> 중의 비밀요술방은 露蜂房이라는 말벌집을 가공하여 지배층의 성생활을 윤택하게 해 주는 비방이었다. 이는 중국 의서에 사용되었던 노봉방의 사용법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신라 고유의 처방으로 이해되고 있다. 고대 불교의학은 권력자의 쾌락까지 중요한 관심사로 다루었던 것이다. 한국고대사에서 또 다른 권력의 축을 형성하였던 종교-불교가 권력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정치 권력층에 끊임없이 봉사하는 기재로서 의학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불교 의학에 내재된 질병의 예방과 치료책을 구체적으로 구명해 보았다. 승려는 군대와 더불어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책이 준비되어야만 하는 존재이다. 삼국에서도 불교 교단이 성립하고 승려들이 대규모로 집단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대한 대책이 발달하였다. 이는 계율과 율학의 발달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즉 백제 성왕 9년(531) 백제승 謙益은 인도에서 아비담장, 五部律文을 가지고 귀국하여 이를 직접 번역하였다. 이 중 오부율은 당시 중국에도 없던 것이다. 신라의 경우, 진평왕대 智明의 <四分律羯磨記>와 자장의 <十誦律木叉記> <四分律羯磨私記>, 그리고 圓勝의 <四分律羯磨記> <十誦律木叉記> 등이 저술되었다고 한다. 사분율과 십송율에 대한 주석서가 활발하게 저술되었다는 점은 계율서에 내재된 불교 의학의 정보 역시 중요하게 취급되었으며 의학적 상식을 풍부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즉 불교 승려와 신자가 지켜야할 각종 계율을 서술한 십송율, 사분율, 마하승지율에는 목욕과 양치, 손 닦는 법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현대에 와서도 질병을 예방하는 중요한 방법으로서 민간에도 전파되었을 것이다. 또한 <사분율>에는 종기를 앓는 비구에게 칼로 째고 약을 바르도록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면서 여러 치료법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셋째, 불교 의학이 중국 의학과 차별되는 부분은 주술적 치료도 겸행한다는 것에 있다. <佛說治呪經>, <佛說呪目經>, <佛說呪時期病經> <佛說呪小兒經> 등 치과, 안과, 전염병, 소아과 등등 세분화된 질병에 알맞은 각종 주문이 남아있다. 이는 불교 의학이 민중의학이 될 수 있었던 연유를 보여준다. 당시 약재는 소수 지배층에 의해 독점되었기에, 일반민의 입장에서 치료에 약을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해당 주문을 외우면서 기도하는 주술적인 방법은 큰 경제적인 부담이 없었기에 불교 의학이 서민 의료로 자리 잡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신라법사방>에 약을 먹을 때 외우는 주문인 복약송이 일본 <의심방>에 인용되었던 연유는 바로 신라 불교 의학에 주술적인 방법과 주문이 발달하였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주술적인 치료는 고대 샤머니즘적 전통과 연계되므로 불교의학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실제 심리적인 치료에 효과를 보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즉 가장 경제적인 방법-입으로만 하는 주문을 통해 질병 치료를 함으로써, 민중과의 유대를 돈독하게 할 수 있었고, 이것이 고대 사회에서 불교의 권력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영향력을 미쳤다. 본 연수 결과는 한국의학사 고대 분야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불교의학에 대해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더불어 고대 사회의 질병과 치료에 대해 종합적인 접근이 가능하고, 한국고대사 연구에 있어 새로운 연구 분야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불교의학, 질병, 치료, 승의, 선교의료, 고려법사방, 고려변사, 천태 지의, 신라법사방, 신라법사비밀방, 신라법사비밀요술방, 법장, 마하지관. 외대비요, 의심방, 왕도, 민간 경험방, 금강명최승왕경, 제병품, 法明尼, 中臣鎌子, 露蜂房, 백제승 謙益, 智明, <四分律&#32687;磨記>, <十誦律木叉記>, <四分律&#32687;磨私記>, 圓勝, <四分律&#32687;磨記> <十誦律木叉記>, 자장 buddhist medicine, disease, healing, imaginational treatment, medical cure at temple, mediacl priest, Gokuryo monk, Packche monk, Silla monk, Fazang, Jazang, Kyumick, Wei tai fei yao, Isimpo, wax of wasp, prescription of Shilla's priest,(Shillabyubsabang), life style dr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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