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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2906&local_id=10014401
친화력과 반발력: 발터 벤야민의 괴테 읽기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친화력과 반발력: 발터 벤야민의 괴테 읽기 | 2006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유동(강원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164
Year(selected) 2006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8년 02월 20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8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벤야민은 괴테의 사상과 작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당대의 괴테 숭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인 괴테관을 지니고 있었던 당시 거의 유일한 비평가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괴테가 벤야민의 사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벤야민은 전승된 것에 대한 무비판적인 신뢰를 비판하고 현실에 근거한 사상의 "치명적인 충격"이 과거에 가해져야 함을 역설한다. 괴테에 대한 벤야민의 예술철학적 연구는 '괴테의 친화력'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친화력"은 벤야민에게 신화적인 비밀로 가득차 있는 작품이다. 벤야민은 신화적인 힘들의 중심에 놓여있는 미적 사상들을 무효화 시켜 작품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독일 비극의 원천" 제2부에서 그는 알레고리에 대한 괴테의 부정적 견해에 거리를 취하고 알레고리를 예술의 중요한 표현형식으로서 복원시키고 있다.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는 그가 국가를 역사의 중요한 요소로 파악하기 시작했으며 모스크바를 기술과 산업의 발달에 의해 새로운 집단의식이 형성되어가는 실험실로 이해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관점은 벤야민의 괴테비판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벤야민은 소비에트 대백과사전을 위해 쓴 '괴테'-항목에서 당시로서는 유일하게 괴테를 사적유물론의 관점에서 서술했다. 그는 한 편으로는 괴테를 유럽의 계몽주의자로 보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부르주아지 계급과 그들의 사유방식에 거리를 취하는 괴테의 보수주의적이고도 허무주의적인 정치관을 지적한다. 벤야민은 "파사주 작업"에서 사물의 분석은 '진정한 종합'으로 이끌어져야 한다는 괴테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이 때 그는 이러한 종합이 "역사의 근원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벤야민이 항상 괴테의 자연관을 항상 역사철학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의 제10테제에 나오는 '역사의 천사' 장면은 괴테의 "파우스트"의 마지막 장면과 대조되는 이미지로 읽을 수 있다. 벤야민은 자신의 초기 논문 및 에세이에서 주로 괴테의 예술관과 논쟁하고 있다. 맑시즘적인 전환을 거친 후 벤야민에게 문제되는 것은 더 이상 괴테의 예술관이 아니라 그의 허무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정치관, 반역사적인 세계관이다. 하지만 벤야민은 이를 위해 괴테와 명시적으로 논쟁을 하고 있지는 않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벤야민의 논쟁은 간접적이고 암시적이다. 그리고 그가 괴테를 단지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만 본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는 전체성을 지향하는 괴테의 종합적인 사유를 역사철학적으로 변형시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벤야민의 사유는 괴테와의 대면을 통해 진정 풍요로워 졌다고 할 수 있다.
  • English
  • Im Unterschied zu zeitgenoessischen Literaturhistorikern nahm Walter Benjamin Goethes Gedanken und Werke mit kritischem Blick auf den Goethe-Kult ernst. Goethe uebte einen staendigen und wichtigen Einfluss auf Benjamins Schreiben aus. In der Reichsgruendungszeit wurde Goethe als eine Verkoerperung der politisch und oekonomisch stark gewordenen Nation verehrt und nach dem Untergang des Reichs bot das Goethe-Bild eine geistige Grundlage fuer die Entstehung des neuen deutschen Staates. Benjamin kritisierte die bedingungslose Verherrlichung des klassischen Kulturerbes in seiner Zeit und behauptete, dass eine auf der Gegenwart basierende Idee der Vergangenheit einen toedlichen Stoss versetze.
    Benjamins Essay Goethes Wahlverwandtschaft ist grundlegend fuer seine kunstphilosophische Goethestudie. Fuer ihn ist "Wahlverwandtschaften" ein Roman mit mythischen Geheimnissen. Benjamin versteht den schoenen Schein als das Zentrum der mythischen Kraefte und versucht, dem Roman ein neues Leben zu geben. In diesem Versuch wird der schoene Schein zerstoert, von seiner aeusserlichen Heiligkeit befreit und endlich gerettet.
    Im zweiten Teil der Habilitationsschrift "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buchs", in dem es sich um die Rehabilitation und die Rettung der kuenstlerischen Ausdrucksform Allegorie handelt, kritisiert Benjamin das Symbol- sowie Allegorieverstaendnis des Klassizismus sowie der Romantik. Zudem haelt er Distanz zu Goethes negativem Urteil ueber die Allegorie.
    Das "Moskauer Tagebuch" zeigt, dass Benjamin begann, den Staat als ein wichtiges Element der Geschichte aufzufassen. Fuer ihn war Moskau ein Laboratorium, in dem die Entwicklung der Technik und Industrie das neue Kollektivbewusstsein entstehen liess. Solch ein politischer Gesichtspunkt bildet den Hintergrund der Benjaminschen Goethe-Kritik. Gemaess Benjamin fasst Goethe das politische Geschehen in ewigen Naturzusammenhaengen auf und beschraenkt die Wissenschaft nur auf Ziele, die mit der Natur zu tun haben.
    Als Einziger in seiner Zeit betrachtete Benjamin im Goethe-Artikel, den er fuer die "Grosse Sowjet-Enzyklopaedie" geschrieben hat, Goethe aus der Perspektive des historischen Materialismus. Er stellte dabei Goethes Bild vortrefflich in einer verdichteten Form dar. Einerseits sieht er ihn als einen Fortsetzer der europaeischen Aufklaerung, andererseits weist er auf Goethes pessimistisches und konservatives Politikverstaendnis hin.
    Benjamin stimmt in seinem "Passagen-Werk" "Goethes Anforderung an den Gegenstand einer Analyse" zu, "eine echte Synthesis aufzuweisen". Er behauptet, dass "das dialektische Bild" des historischen Gegenstandes dieser Anforderung genuege und es "das Urphaenomen der Geschichte" sei. Hier kann man Benjamins Interesse entdecken, Goethes Naturbetrachtung im geschichtsphilosophischen Zusammenhang umzudeuten. Fuer ihn wird der Begriff Apokatastasis, die einen theologischen Hintergrund der Rettung von Fausts Seele bildet, zur theoretischen Stuetze fuer die Rettung der unterdrueckten Vergangenheit.
    Es ist moeglich, die 10. These von "Ue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 in der "der Engel der Geschichte" auftritt, als ein geschichtsphilosophisches Gegenstueck zur letzten Szene von Goethes "Faust" zu lesen. Unter einer solchen Lektuere wird die ernste und zugleich scherzhafte Inszenierung in "Faust", in der das sich irrende, aber immer strebende Individuums gerettet wird, der bildlichen Darstellung in der 10. These entgegengesetzt, in der der Engel durch den aus dem Paradies her wehenden Sturm einen Anlass zum Erwachen bekommen koennte.
    Benjamin setzte sich in seinen fruehen Schriften mit Goethes Kunstauffassung auseinander. Nachdem er vom Marxismus beeinflusst wurde, aenderte sich der Schwerpunkt der Auseinandersetzung. Er erhob Einwand gegen Goethes konservative, politische Ansichten und dessen geschichtsfremde Weltanschauung. Allerdings war seine Auseinandersetzung in dieser Phase vorwiegend indirekt und andeutend.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벤야민은 괴테의 사상과 작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당대의 괴테 숭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인 괴테관을 지니고 있었던 당시 몇 안 되는 비평가들 중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괴테가 벤야민의 사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벤야민의 괴테 이해의 양상은 모순적이고 다층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야민의 괴테 이해의 커다란 윤곽은 다음과 같이 파악될 수 있다. 벤야민은 자신의 초기 논문 및 에세이에서 괴테의 예술관과 논쟁하고 있다. 그는 완전한 예술을 자연의 산물로 파악하고 알레고리를 인위적이며 비예술적인 표현형식으로 폄하하는 괴테의 예술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의 배후에는 조화롭고 유기체적인 세계관의 붕괴에 대한 통찰과 신학적으로 근거 지워진 구원의 철학이 자리를 잡고 있다. 괴테와는 달리 벤야민은 진정한 것이 구체적인 것 속에서 직관될 수 있다고 보지 않고 신학적으로 구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맑시즘적인 전환을 거친 후 벤야민은 괴테의 예술관이 아니라 그의 허무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정치관, 반역사적인 세계관과 논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벤야민은 이를 위해 괴테와 명시적으로 논쟁을 하고 있지는 않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벤야민의 논쟁은 간접적이고 암시적이다. 그리고 그가 괴테를 단지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만 본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는 괴테를 현재성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가이자 사상가로서 보았으며 괴테가 지니고 있던 정치이상의 한계를 그가 살던 시기의 상황 속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전체성을 지향하는 괴테의 종합적인 사유를 역사철학적으로 변형시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벤야민의 사유는 괴테와의 대면을 통해 진정 풍요로워 졌다고 할 수 있다.
    문학 연구자가 문학 정전의 권위에 입각하여 작품에 내재한 영원한 가치라는 가상을 절대화할 때 결국 작품은 신화적인 연관 속에 빠져 들고 만다. 벤야민은 괴테의 고전성을 인정하면서도 괴테를 당대의 지배적인 수용의 흐름에 거슬러 읽어내고 있다. 또 그는 독일 대학에서 "제국주의적인 괴테상(象)"이 관철되고 있는 것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낸다. 벤야민은 우리가 괴테를, 더 나아가 고전을 현재적 관점에서 항상 새롭게 다시 읽어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벤야민의 괴테 독법은 작품의 아우라나 작품에 들어붙은 고정관념에 냉정한 거리를 취하면서 비규범적인 해석가능성을 모색하는 문학 비평을 자극한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첫째, 본 연구는 문학 또는 문화와 관련된 수업시간에 기초 교재로 활용될 수 있다. 학생들은 본 연구를 통해 전통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은 채 전통을 비판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중요한 작업임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한 작업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자극을 받을 수 있다. 문학 수업시간에 정전화된 문학 작품을 가르치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작품 속에 내재해 있다고 상정된 규범화된 가치 척도와 해석만을 배우게 된다면 이는 작품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될 가능성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자발성도 사장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작품은 새로운 의미를 받아 항상 새롭게 피어나야 하며 수용자는 자발적인 해석행위를 통해 창조성을 배양해야 한다.
    둘째, 본 연구는 우리 시대에 적절한 문학 전통의 복원 방식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오늘날 동서양의 문학적 전통은 우리가 그것을 고정 불변의 실체로 파악하려면 할수록 점점 피상적으로 되고 기억 속에서 사라질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시대에 과거의 문학적 전통은 새롭게 변화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재해석 되어야 할 것이다. 벤야민은 과거의 역사적인 복원이라는 역사철학적 전제를 상정하고 당대와 치열하게 논쟁함으로써 자신의 사유세계를 형성해 나갔다. 벤야민의 수용 이론의 강점은 과거의 역사적인 복원을 항상 새롭게 반복되어야할 것으로 파악한 점에 있다. 물론 벤야민의 괴테관을 연구함으로써 우리 시대에 문학 전통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복원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 해답이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전통의 재해석은 우리들에게 매번 새롭게 부과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전화된 작품의 도덕적인 권위와 미적인 아우라에 냉정함을 유지하는 그의 수용 자세는 이러한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의미 있는 인식론적, 방법론적 틀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본 연구는 20세기 초 독일 작가들과 비평가들의 괴테 수용을 비교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작업에 한 가지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벤야민의 괴테 이해를 토마스 만, 하인리히 만, 호프만스탈, 군돌프 등 20세기 초 대표적인 독일 작가들과 비평가들의 괴테 수용과 자세히 비교하는 일은 당시의 문화와 문학의 지형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학문적으로 매우 의미 깊은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본 논문은 이러한 작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한 가지 발판으로 활용될 수 있다.
  • Index terms
  • 괴테숭배(Goethe-Kult), 비판적 수용(kritische Rezeption), 상징(Symbol), 알레고리(Allegorie), 자연(Natur), 역사(Geschichte) 교양(Bildung), 미적인 것(das Schöne), 미적인 것의 가상(der Schein des Schönen), 파괴(Destruktion), 구제(Rettung), 개인(Individuum), 집단(Kollekt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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