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고고학 조사단은 학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베트남 연구진과 함께 2006년 12월 베트남 북부 호아빈(Hoa Binh)성 렁선(Luong Son)구 까오람(Cao Ram)촌의 항쪼(Hang Cho) 유적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수도 하노이에서 서남쪽으로 직선거리로 약 40㎞ 떨어져 ...
서울대학교 고고학 조사단은 학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베트남 연구진과 함께 2006년 12월 베트남 북부 호아빈(Hoa Binh)성 렁선(Luong Son)구 까오람(Cao Ram)촌의 항쪼(Hang Cho) 유적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수도 하노이에서 서남쪽으로 직선거리로 약 40㎞ 떨어져 있는 항쪼 유적은 전형적인 카르스트지대에 발달한 석회암 용동으로서, 2002년에서 3년에 실시한 조사를 통해 적어도 1만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었음이 밝혀졌다. 2006년도 조사는 기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항쪼 동굴 유적에서 호아빈 문화의 전반적 전개과정을 파악하고자 함에 목적을 두었으며, 전체적인 퇴적 양상을 확인하고 과거 실시되었던 발굴 구역을 정리하였다. 조사 결과, 조사단이 기존에 확인한 13개 문화층에 앞서 퇴적된 14~16층 및 이보다 뒤에 쌓인 D1~6층이 확인되었으며, 16층 아래에는 석회마루가 놓여 있고 다시 또 그 아래에 문화층이 부존함을 확인하였다. 문화층에서는 대체로 19000 BP에서 8400 BP 사이에 이르는 연대측정치가 얻어졌으며, 석회마루 하층에서는 29100 BP 정도의 연대가 얻어졌다. 이러한 자료는 호아빈 문화가 흔히 3만 년 전 무렵에 이미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조사에서는 모두 578점의 석기 자료가 수습되었다. 석기는 대형석기, 소형석기와 박편 등 버리는 석재, 사용/가공석재로 나눌 수 있으나, 특별히 형식을 설정할 필요가 있는 석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동물 유존체는 모든 문화층에서 발견되었으나, 석회마루 하부층에서 수습된 자료는 심하게 파쇄되어 동정이 어려웠으며, 전체적인 수량은 그리 많지 않다. 2층에서는 불에 탄 포유류 유존체 1점이 발견되었는데, 종과 부위의 동정은 불가능하다. 3층에서는 포유류의 늑골과 치아, 중족골, 지골 등이 발견되었다. 7층에서는 소과 동물로 추정되는 개체의 대구치가 발견되었으며, 7층 하부의 집석층에서는 사슴, 비버, 곰의 유해가 수습되었다. 15층에서는 포유류와 자라의 등껍질과 같은 파충류가 다수 발견되었다. 16층에서는 포유류, 파충류, 조류, 어류 유존체가 출토되었다. 각 층에서 보이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라나 거북목에 속하는 파충류가 거의 모든 층에서 확인되었는데 이들은 퇴적층의 주요한 성분을 이루고 있는 권패류와 더불어 식용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함께 발견된 갑각류, 어류, 조류도 식용자원으로서 이용되었을 수 있다고 보인다. 유적 형성기간 동안의 환경과 식물자원 이용양식의 특징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에서는 식물 유체 분석을 실시하였다. 시료는 수동식 부유법으로 처리하였으며, 이로부터 387g의 자료를 얻어 실험실에서 식물고고학의 표준 분석법을 따라 정밀 분석하였다. 그 결과, 노지라 여겨진 유구에서는 상당수의 탄화 식물유체가 확인되었지만, 동정이 가능한 식물 종자의 종류는 비교적 단순하고 양도 그리 많지 않다. 발굴갱 C와 D에서는 완형 내지 완형에 가까워 그 개체를 셀 수 있는 종자 160립과 파손이 심해 그 수를 셀 수 없는 종자 48립을 확인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화본과, 국화과, 물풀레나무과 및 삭과(capsule)에 속한다, 종자 이외에도, 괴경(corm)편과 잔뿌리로 추정되는 구근류와 식물의 뿌리 또는 줄기 유체도 발견되었다. 유적에서 확인된 화본과, 국화과, 물풀레나무과에 속하는 종은 인간이 교란시킨 환경에 잘 서식하는 잡초류로서, 주변에 서식하던 개체가 유적형성과정 중에 우연하게 퇴적층에 남겨진 것이라고 추정된다, D4 및 D5층에서 동물뼈와 함께 발견된 식물 줄기와 뿌리는 연료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인다. 결론적으로, 2006년도 항쪼 유적 발굴조사는 호아빈 문화의 개시연대를 다시 1만년 가까이 소급해 볼 수 있는 단서를 확보했으며, 이 유적의 형성과정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1~2만년의 긴 세월 동안 이 동굴을 생활거점으로 삼던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플라이스토세 말의 환경 변화와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변화했는가를 밝히는 것이 장차 연구의 중요한 과제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