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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카스피 해 지역의 문화 형성과 동서 문화교류에서의 역할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이란 카스피 해 지역의 문화 형성과 동서 문화교류에서의 역할 | 2006 Year | 배기동(한양대학교(ERICA캠퍼스))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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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20
Year(selected) 2006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8년 12월 31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8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카스피해 연안은 이란 문화형성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란 중심부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3천 미터 이상의 엘부르즈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이란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발전단계와는 다른 변화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이다. 나아가 카스피해는 남북이 1200km, 동서가 500k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지역을 포괄하고 있어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문화권이라 할 수 있다. 인류의 아시아로의 이동이 통상 동부 아프리카에서 출발하여 동아시아로 퍼져나갔다는 학설이 일반화 된 오늘날에도 그 연결고리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지역이 바로 흑해와 카스피해를 잇는 카프카스 지역이다. 최근 이란 학계에서 새롭게 논의되고 있는 카스피해 연안지역에서의 구석기 유적의 전제가 본 연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장기적으로는 카스피해 지역의 동쪽 지방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가 필요하며, 국제협력을 통하여 광대한 지역을 분할 조사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역사시대 이후의 카스피해는 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해상 실크로드의 중요한 전략적 거점으로 문화교류와 인적왕래의 역동적 현장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외부세계로부터의 접근의 어려움과 무관심 속에 카스피해는 오랫동안 자신들의 문화적 특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흑해에 형성되었던 자국 식민지를 통해 카스피해 일대의 주요 산물과 주민들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으며, 이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저술에서도 확인된다. 다만 헤로도투스가 카스피해가 닫혀있는 바다라고 기술했음에도 대부분의 그리스 사람들은 끝없이 펼쳐지는 카스피해를 태평양과 이어져 있는 대양으로 생각해 왔다. 이란 지역을 침공했던 알렉산더조차도 카스피해가 닫힌 바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하로 흑해와 연결되어 있는 바다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휘하 장군을 보내 카스피해에 대한 조사를 지시한 사실이 확인된다. 고대 유럽인들의 카스피해에 대한 지리적 지식은 놀랍게도 8세기 중엽까지도 태평양과 이어진 바다라는 개념이 지배적이었다. 카스피해에 대한 정확한 위치와 지리적 개념이 정립된 것은 아무래도 13세기 이후 뤼브릭 윌리엄과 같은 기독교 선교사들의 몽골 방문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시대 카스피해의 문화적 특징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이란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정복된 이후에도 이 지역에는 이슬람의 유입이 차단된 사실이었다. 이 점이 이슬람화 된 이란 문화와는 다른 이슬람 이전 페르시아 문화의 특징을 유지하게 만든 역사적 배경이었다.
    역사시대 들어 카스피해 연안이 활기를 띄며 번성하게 되는 시기는 8-13세기경이었다. 남쪽 지역 대부분이 이슬람화 된 상황에서 카스피해 연안을 이용한 무역거래가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아베스쿤 항구는 실크무역의 집산지로 각광을 받았고, 데르벤트 지역에서는 섬유와 붉은 염료 생산으로 번성했다. 더욱이 카프카스 지역에서 데려온 노예가 매매되면서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았다.
    이리하여 카스피해 연안지역은 몽골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이 흑해를 경유해 중앙아시아와 인도, 중국으로 향하는 실크로드 국제교역의 중요한 거점으로 크게 번성하고 각광을 받았다. 이는 동시에 동서 문화의 접점에서 여러 다양한 문물과 정보의 집산을 의미하였다. 이것이 카스피해 문화의 독창적 배경이며 이슬람이전 이란 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카스피해가 갖는 중요성이 본 연구에 의해 확인되었다.
  • English
  • The Caspian Sea basin is in a unique position of the cultural formation in Iran, for it goes through processes different from those of cultural stages due to Elburz Mountains more than 3,000 meters high. Furthermore, the Caspian coast includes the vast region of from south to north 1,200 kilometers long, from east to west 500 kilometers wide; therefore it is an independent Kulturkreise. Though the theory is generalized recently that they may move from East Africa to East Asia, the mistery of the link is in the Caucasia which connects the Black Sea with the Caspian Sea.
    Paleolithic sites of the Caspian coast, which are discussed at the Iranian archaeological society lately, are found through this research. Under a long-range plan, archaeological investigations are necessary and the huge area need to be examined through international cooperation. It is considered that the outcome of the investigation on this region prevents the momentous evidence about the process of archeoanthropines' immigration.
    The Caspian Sea of the historic age is an esssential strategic locality of the silk road on land or at sea connecting East Asia with Europe. It is also a dynamic region of cultural exchanges and passing of people. In the difficulty of the approach from other areas and the uncorcern, the Caspian Sea can have a cultural particularity for a long time.
    The Greeks know primary products and people minutely by their colonies, which is found on books written by Herodotos, a Greek historian in BC 5. Though he writes the Caspian Sea as closed sea, most of Greeks regard it as the ocean connecting the Pacific. Although Alexander also knows that the Caspian Sea is closed, he considers that it is the sea connecting the Black Sea. He lets his subordinate to investigate the Caspian Sea. Usually, ancient Greeks think it as the sea connecting the Pacific even in the middle 8th century. It seems to be since Christian missionaries such as William visit Mongolia in the 13th century that the precise location and the geological concept are grasped. In the Islam age, prominent one among cultural characters of the Caspian Sea is the fact that the influx of the Islam is prevented in the area. This is the historical background that the Caspian Sea has the properties of the Persian culture before the Islam, which are different from the Islamic Iranian culture.
    In the historical age, it is around from the 8th to the 13th century that the Caspian coast is prosperous, for the trade utilizing the coast is reinvigorated. The Abeskun habor is in the limelight as a trading center for silk. Derbent is flourish through producing fibers and red dyes. In addition, the coast has the stage of new development, trading the slaves taken from Caucasia.
    As discussed above, the Caspian coast is quite prosperous as an essential locality of international trades via the Silk Road on which Europe goes for Central Asia, India, and China by way of the Black Sea. It also means the reception and the distribution of various cultures, institutions, and information in the interface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culture. This is the creative background of the Caspian culture. The importance of the Caspian Sea in the formation and the development of Iranian culture before the Islam, is confirmed by this study.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이 연구의 목적은 첫째, 동서 문화교류의 연결고리를 완성시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그동안 활발하게 진행되어 온 동서 문화교류의 연구에서 “문화적 블랙홀(Cultural Black Hole)”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란의 카스피해 연안 지역을 중점적으로 연구함으로써 그 역사적-문화적 고리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둘째, 이란 카스피해 지역을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나누어 고고학, 인류학, 민족학, 복식사, 역사학이라는 종합적 연구로 국내 해외지역연구의 한 유용한 모델을 창출하는 데에 있다.
    카스피해 연안은 이란 문화형성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란 중심부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3천 미터 이상의 엘부르즈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이란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발전단계와는 다른 변화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이다. 나아가 카스피해는 남북이 1200km, 동서가 500k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지역을 포괄하고 있어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문화권이라 할 수 있다. 인류의 아시아로의 이동이 통상 동부 아프리카에서 출발하여 동아시아로 퍼져나갔다는 학설이 일반화 된 오늘날에도 그 연결고리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지역이 바로 흑해와 카스피해를 잇는 카프카스 지역이다. 최근 이란 학계에서 새롭게 논의되고 있는 카스피해 연안지역에서의 구석기 유적의 전제가 본 연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장기적으로는 카스피해 지역의 동쪽 지방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가 필요하며, 국제협력을 통하여 광대한 지역을 분할 조사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 지역에 대한 조사 성과는 고인류의 확산과정에 대한 중요한 증거를 제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역사시대 이후의 카스피해는 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해상 실크로드의 중요한 전략적 거점으로 문화교류와 인적왕래의 역동적 현장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외부세계로부터의 접근의 어려움과 무관심 속에 카스피해는 오랫동안 자신들의 문화적 특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흑해에 형성되었던 자국 식민지를 통해 카스피해 일대의 주요 산물과 주민들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으며, 이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저술에서도 확인된다. 다만 헤로도투스가 카스피해가 닫혀있는 바다라고 기술했음에도 대부분의 그리스 사람들은 끝없이 펼쳐지는 카스피해를 태평양과 이어져 있는 대양으로 생각해 왔다. 이란 지역을 침공했던 알렉산더조차도 카스피해가 닫힌 바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하로 흑해와 연결되어 있는 바다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휘하 장군을 보내 카스피해에 대한 조사를 지시한 사실이 확인된다. 고대 유럽인들의 카스피해에 대한 지리적 지식은 놀랍게도 8세기 중엽까지도 태평양과 이어진 바다라는 개념이 지배적이었다. 카스피해에 대한 정확한 위치와 지리적 개념이 정립된 것은 아무래도 13세기 이후 뤼브릭 윌리엄과 같은 기독교 선교사들의 몽골 방문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시대 카스피해의 문화적 특징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이란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정복된 이후에도 이 지역에는 이슬람의 유입이 차단된 사실이었다. 이 점이 이슬람화 된 이란 문화와는 다른 이슬람 이전 페르시아 문화의 특징을 유지하게 만든 역사적 배경이었다.
    역사시대 들어 카스피해 연안이 활기를 띄며 번성하게 되는 시기는 8-13세기경이었다. 남쪽 지역 대부분이 이슬람화 된 상황에서 카스피해 연안을 이용한 무역거래가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아베스쿤 항구는 실크무역의 집산지로 각광을 받았고, 데르벤트 지역에서는 섬유와 붉은 염료 생산으로 번성했다. 더욱이 카프카스 지역에서 데려온 노예가 매매되면서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았다.
    이리하여 카스피해 연안지역은 몽골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이 흑해를 경유해 중앙아시아와 인도, 중국으로 향하는 실크로드 국제교역의 중요한 거점으로 크게 번성하고 각광을 받았다. 이는 동시에 동서 문화의 접점에서 여러 다양한 문물과 정보의 집산을 의미하였다. 이것이 카스피해 문화의 독창적 배경이며 이슬람이전 이란 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카스피해가 갖는 중요성이 본 연구에 의해 확인되었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고고학 분야의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관심사 중의 하나인 고인류의 확산 과정에 대한 지극히 중요한 정보가 본 연구를 통하여 수집되었다. 이란 지역의 고고학적인 조사가 대단히 미미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란 카스피해 지역의 동굴유적 발굴조사는 아마도 동서문화 교류를 입증하는 획기적인 자료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인다.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와 이란고고학연구소간의 MOU체결과 국제 교류는 한국과 이란 간의 문화교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앞으로 한국의 세계화 전략에 있어서 이란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실질적인 학문과 문화의 교류는 양국 간의 우호증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지역 조사의 성과는 크든 작든 간에 유라시아의 선사시대 문화연구의 중요한 자료로서 고고학 개설서에 수록될 것이며 문화변동과 인류 이동에 관한 자료로서 가르쳐질 것이다. 한국에서도 서남아시아의 지역학의 한 성과로서 그리고 고고학적인 자료로서 유라시아 문화 이해의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며 이란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접근하는 가장 우선적인 연구 성과일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이란 지역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한국적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 연구는 결국 새로운 지역연구인력을 유도하는데 중요한 자극제가 될 뿐 아니라 지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에 동원되었던 다수의 대학원생들은 이 연구를 토대로 각 분야별로 이 연구의 파생되는 연구를 연속할 수 있을 것이고 이 지역의 각 분야별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선사고고학 분야에서도 이 지역의 전문가들이 전무한 실정에서 이 연구는 서남아시아 지역의 전문가 양성에 중요한 촉발제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본 연구과제가 갖게 될 연구 성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서 문화교류를 통한 한국문화원류와 실체파악에서 그동안 한반도와 중앙아시아 간의 부분적인 접촉과 단편적인 수준에 머물던 논의를 종합적이고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논의의 틀을 제공하였다. 이는 그동안 최대의 걸림돌이었던 사산조 페르시아를 둘러싼 비잔틴-페르시아-중앙아시아 부분의 연결 부족을 메꿔 주는 학문적 교량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번 연구가 자리를 잡고 유의할만한 결과가 도출된다면 경주와 백제 지방에서 발굴된 미스터리 출토유물의 문화적 연원과 기존의미의 확대와 재평가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셋째, 고고학, 인류학, 미술사, 비교종교학학, 종교사 등 인접분야의 학문적 자극제가 되어 난해한 고전해독과 자료부족으로 침체되어 있던 학계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이 분야 전공 대학원생들의 학문 동기부여를 부여하였다.
    넷째. 철의 실크로드와 유랄-알타이 문화연대 블록 등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동서를 연결하는 최근의 지역 협력체 구상에서 매우 적절한 이론적 뒷받침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가. 학문적 기여
    - 이란의 고대문화중심지역의 하나인 이란카스피해의 고대문화에 대한 탐구를 통하여 문화현상의 일반적인 패턴의 가능성에 대한 검증과 지역적인 변이의 과정에 대한 이해의 증진.
    - 이란지역과 동아시아 지역의 선사문화현상의 종합화시도로 이 지역의 문화적인 연원과 현대사회문화이해의 바탕을 마련.

    나. 사회적 기여
    -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지역으로서의 이란 지역에 대한 문화의 이해를 증진.
    - 한국 고고학계의 국제화 및 국제적인 학문평가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
    - 이란 학자들과의 교류증진으로 이 지역의 사회문화정보의 한국유입의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

    다. 인력양성방안
    - 참여 소장학자들의 국제적인 경험누적의 기회와 이란 전문가양성의 기회를 제공.
    - 문화를 세계적인 범위에서 분석하게 됨으로서 문화인식의 차원을 넓히는 기회를 제공.
    - 연결된 국제기관과의 교류를 통하여 새로운 교육의 기회를 제공.

    라. 교육과의 연계활용방안
    - 이란학 교육 관련기관에게 자료를 제공.
    - 사이버 공간을 통한 이란이해의 기회를 제공.
    - 문화학 일반연구에 있어서 문화의 기저이해의 사례로 활용.

    마. 연구결과의 국제화 시도
    - 국내학계에 이 분야 연구의 초석을 다지는 데에 그치지 않고 국제학계 차원에서 독창적 자료를 보유하는 것을 목표.
    - 국내 학계에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이후 같은 결과를 국외 학계에 외국어로 발표.
    - 서구의 선행연구를 흡수하던 기존의 구도를 차차 국제학계의 후행연구를 지원하는 구도.
  • Index terms
  • 고고학, 카스피해, 고인류, 구석기, 이란, 길란, 아슐리안, 주먹도끼, 르발르와, 토기, 철기, 교역,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실크로드, 역사, 문화, 이슬람, 사산조, 페르시아, 하자르국, 무굴제국, 민속학, 인류학, 슬라브, 아케메네스, 복식, 페르세폴리스, 아파다나, 조공도, 왕관, 장신구, 중앙아시아,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소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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