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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禮 담론의 전개와 실천 -가문, 향촌, 여성의 관점에서-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18세기 禮 담론의 전개와 실천 -가문, 향촌, 여성의 관점에서- | 2006 Year | 이혜순(이화여자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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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110
Year(selected) 2006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7년 12월 28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예는 조선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어이다. 후대에 오면서 예, 또는 예학이 부정적인 함의를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예를 이해하는 것은 유교 문화와 사상을 이해할 뿐 아니라 예가 구현되던 시대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다. 예란 유교 사상과 유교 문화의 체계와 내용을 담아 실생활에서 구현되었던 규범 혹은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조선후기 사회를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18세기의 예 담론이 가문 ․ 향촌 ․ 여성의 차원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실천되었는가를 고찰한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가문 ․ 향촌 ․ 여성의 관점을 택한 것은 조선 사회가 가문을 중심으로 움직였고 따라서 예의 범주도 ‘家’禮로 구획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연구에서도 가문을 중심에 놓고 그 안과 밖으로 구분하여 밖으로 가문과 연계되어 있는 향촌의 질서를, 안으로는 가문의 유지 존속을 위한 입후와 승중의 문제, 여성 관리의 문제를 주요 관점으로 삼았다. 이는 실제로 18세기 예 담론의 핵심 쟁점이기도 했다.
    흔히 예학은 16,17세기에 정점을 이룬 것으로 이해되어 18세기 이후 예학의 전개는 비교적 소홀히 다루어졌다. 그러나 주자가례가 고려말에 도입된 이후 궁극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정착되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조선후기의 예학의 동향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17세기 이후 지속되어 온 예학의 동향을 18세기 역시 계승하고 있음을 전제하되, 이 시기에 들어 변화하거나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측면에 주목하고 그것이 종적으로 예의 발전사와 횡적으로 18세기 문화사에서 지니는 의미를 도출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에서 주목한 18세기 예의 주요 특징은 첫째 가례가 사대부뿐 아니라 일반 서민에게까지 널리 보급되면서 생활의례로 정착하게 된다는 점, 둘째 常禮와 함께 變禮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다는 점, 셋째 가례가 기층민 속으로 파급되면서 俗禮가 사대부 의례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점, 넷째, 가문 단위의 예서가 활발하게 편찬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8세기는 이러한 외적 변화의 추세 속에서 예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시기로 그 중 주목해야 할 것이 성호 이익의 예론에서 보듯 주자가례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18세기는 밖으로는 가례의 저변이 확대되고 시의와 풍속, 지역성 등이 다양하게 수용되면서도 동시에 안으로는 본질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함께 생활 속의 합리적 규범으로 모색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본 연구는 먼저 18세기 예서의 지형도를 살핀 뒤 가문 ․ 향촌 ․ 여성의 관점에서 관혼상제가 가문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다루었다. 연구의 구체적인 주제는 아버지가 생존해 계신데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셨을 때의 喪禮 문제, 생모, 서모 등 여덟 어머니까지 가능한 어머니의 복제 문제, 사대부가에서 가문을 잇는 문제와 직결되는 상례, 제례의 주관자 문제, 서원에서 지내는 향사의 문제, 혼례를 중심으로 여성이 개인과 가문, 친정과 시집 사이에서 겪는 갈등, 가부장 중심 사회가 형성되면서 사대부의 제가 담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의 문제 등이다. 각 연구 결과에서 도출된 내용은 크게 18세기 가부장제가 각 가문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행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연구는 어머니, 가문을 잇는 아들, 시집간 여성이 가문 내에서 갖는 위치가 어떻게 배치되었는지, 향촌에서 예적 질서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가문의 질서를 위해 여성을 어떻게 교육하였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연구의 결과를 18세기 전반의 현상으로 일반화하기보다는 이 연구를 토대로 하여 지역별, 가문별, 학파별 차이가 드러난다면 18세기 조선사회의 실상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이 연구는 의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English
  • 'Ye(禮)' is the core concept in understanding Choseon society. Although 'Ye' or Ye study became to have negative connotation in later period of time, it is an essential means to understand not only Confucian culture and thoughts but also the society and the era of which it had been practiced. Ye was a norm or a form which was materialized in daily life containing the Confucian thoughts and system and the substance of the culture.
    In order to understand the late period of Choseon society at micro level such as day-to-day life, this article examines how Ye discourse was articulated and practiced in regards to family(家門), hyangchon(鄕村), and women in 18th century. The focus was given to ga-moon, hyang-chon, and women because Choseon society was organized around ga-moon and thus categories of Ye was also demarcated through ga-rae(‘家’禮). Given that, this article also puts ga-moon) at the center and divides inside and outside of it; the order of hyang-chon which is linked to ga-moon is related to the outside rule, ip-hu(立後), seung-jung(承重), and control of women which are linked to sustenance of ga-moon is related to the inside, which was the actual points of debate at the time.
    Ye study had been usually seen to be at its peak in 16-17 century and was relatively neglected in 18 century. More attention should be given to the trend of Ye study in late Choseon in order to grasp how and in what way the Ju-ja customary formalities of family was established since it had been introduced in the late period of Goryeo. This study sets forth as a premise that the trend of Ye study in 17 century was continued throughout 18 century. It pays attention to which Ye study was modified or newly stood out in 18 century and attempts to find out the meaning it had in regards to cultural history of 18 century and to development of Ye.
    Main characteristics of Ye in 18C are as follows: firstly, ga-rae was not only introduced to sa-dae-bu, the gentry but also to ordinary people in general and settled as a daily etiquette; secondly, interest in byeollye(變禮) as well as sangnye(常禮) became increased; thirdly, while ga-rea was spreaded into the low class people, songnye(俗禮) was introduced to sa-dae-bu, the gentry etiquette; fourthly, ye-seo, books dealig with Ye(禮) was actively published for each household. 18 century was a period of such external change and debate on the true nature of Ye. One of the debates which has to be given attention to is that there was an attempt to overcome Ju-ja customary formalities of family, which was initially found in the Ye theory of Sung-ho Yi-Ik. In other words, 18 century was the time when ga-rea expanded its coverage, diverse customs and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were accepted, and serious probe into the substance of Ye was made in the aim of introducing it as a rational norms of daily life.
    This article focuses on Ye-seo to find out how the ceremonial occasions such as ceremonies of coming of age, marriage, funeral and ancestral worship were dealt with in regards to ga-moon, hyang-chon, and women. For example, it concretely examined how the funeral of mothers including biological mother and concubine mother was organized when father was yet alive, how sang-rae linked to succeeding lineage was dealt with and so on.
    The research results will be useful to understand how each position of mother, son succeeding lineage, and daughters married out was differently organized; how order of Ye was constructed in hyang-chon; and how women were educated for the sake of the order of ga-moon.
    This research does not intend to generalize its findings to the whole period of 18 century but rather aims to reveal differences made by region, ga-moon and sects of school at that time. It is believed that it would enrich understanding of Choseon society in more concrete manners.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예는 조선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어이다. 후대에 오면서 예, 또는 예학이 부정적인 함의를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예를 이해하는 것은 유교 문화와 사상을 이해할 뿐 아니라 예가 구현되던 시대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다. 예란 유교 사상과 유교 문화의 체계와 내용을 담아 실생활에서 구현되었던 규범 혹은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조선후기 사회를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18세기의 예 담론이 가문 ․ 향촌 ․ 여성의 차원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실천되었는가를 고찰한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가문 ․ 향촌 ․ 여성의 관점을 택한 것은 조선 사회가 가문을 중심으로 움직였고 따라서 예의 범주도 ‘家’禮로 구획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연구에서도 가문을 중심에 놓고 그 안과 밖으로 구분하여 밖으로 가문과 연계되어 있는 향촌의 질서를, 안으로는 가문의 유지 존속을 위한 입후와 승중의 문제, 여성 관리의 문제를 주요 관점으로 삼았다. 이는 실제로 18세기 예 담론의 핵심 쟁점이기도 했다.
    흔히 예학은 16,17세기에 정점을 이룬 것으로 이해되어 18세기 이후 예학의 전개는 비교적 소홀히 다루어졌다. 그러나 주자가례가 고려말에 도입된 이후 궁극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정착되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조선후기의 예학의 동향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17세기 이후 지속되어 온 예학의 동향을 18세기 역시 계승하고 있음을 전제하되, 이 시기에 들어 변화하거나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측면에 주목하고 그것이 종적으로 예의 발전사와 횡적으로 18세기 문화사에서 지니는 의미를 도출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에서 주목한 18세기 예의 주요 특징은 첫째 가례가 사대부뿐 아니라 일반 서민에게까지 널리 보급되면서 생활의례로 정착하게 된다는 점, 둘째 常禮와 함께 變禮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다는 점, 셋째 가례가 기층민 속으로 파급되면서 俗禮가 사대부 의례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점, 넷째, 가문 단위의 예서가 활발하게 편찬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8세기는 이러한 외적 변화의 추세 속에서 예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시기로 그 중 주목해야 할 것이 성호 이익의 예론에서 보듯 주자가례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18세기는 밖으로는 가례의 저변이 확대되고 시의와 풍속, 지역성 등이 다양하게 수용되면서도 동시에 안으로는 본질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함께 생활 속의 합리적 규범으로 모색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본 연구는 먼저 18세기 예서의 지형도를 살핀 뒤 가문 ․ 향촌 ․ 여성의 관점에서 관혼상제가 가문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다루었다. 연구의 구체적인 주제는 아버지가 생존해 계신데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셨을 때의 喪禮 문제, 생모, 서모 등 여덟 어머니까지 가능한 어머니의 복제 문제, 사대부가에서 가문을 잇는 문제와 직결되는 상례, 제례의 주관자 문제, 서원에서 지내는 향사의 문제, 혼례를 중심으로 여성이 개인과 가문, 친정과 시집 사이에서 겪는 갈등, 가부장 중심 사회가 형성되면서 사대부의 제가 담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의 문제 등이다. 각 연구 결과에서 도출된 내용은 크게 18세기 가부장제가 각 가문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행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연구는 어머니, 가문을 잇는 아들, 시집간 여성이 가문 내에서 갖는 위치가 어떻게 배치되었는지, 향촌에서 예적 질서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가문의 질서를 위해 여성을 어떻게 교육하였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연구의 결과를 18세기 전반의 현상으로 일반화하기보다는 이 연구를 토대로 하여 지역별, 가문별, 학파별 차이가 드러난다면 18세기 조선사회의 실상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이 연구는 의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1) 예학 연구로서의 학술 및 활용 가치: 본 과제는 入後와 承重, 八母 服制, 婚禮, 宗法 사회와 사대부의 齊家論, 향촌사회의 書院 享祀등을 18세기 예 담론을 살펴보는 중요한 길잡이로 삼고, 기존 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하였던 다양한 예 관련 자료를 폭넓게 조사하여 활용하였다. 기존 연구에서 다루지 못한 주제들을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연구함으로써 본 과제는 18세기 예 담론의 지형도를 재구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밝혀내는 데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2) 생활사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
    18세기는 조선사회에서는 신분제의 동요가 나타나고 기성의 가치 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 제기되던 시기이다. 이에 사대부들은 다양한 해석과 變禮의 수용 등을 통하여 나름대로의 모색을 보여주었다. 한 사회의 남녀 관계, 가족 관계를 한눈에 드러내어 주는 혼례만 하더라도 남녀간의 사랑 양상은 유교적 혼례 양상과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면과 이면, 이념과 실상 사이의 길항 관계가 포착되는 바, 이러한 면모는 모자 관계의 실상이나 당시 향촌사회의 문화와 일상생활의 변화 측면 등을 읽을 수 있는 18세기 생활사 연구 자료로서의 의의를 갖는다.
    (3) 여성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
    본 과제는 18세기 입후․승중의 문제, 모자의 문제, 혼례의 양상을 다룸으로써 여성사 연구 자료로 활용될 가치가 충분하다. 여훈서의 내용 분석을 시도한 연구는 조선 여성이 유교적 가치와 규범을 내면화하는 동기와 과정을 밝힘으로써, 조선사회가 어떻게 유교가부장적인 사회로 전환되었는가를 보여주었으며 승중의 문제와 어머니 복제와 관련한 담론 연구는 가부장 사회에 맞는 모성이 제도화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즉 본 과제는 주자가례에 의거한 상제례와 혼례가 조선의 의식구조와 문화를 어떻게 변화시키며, 유교적 예 의식이 남성과 여성을 어떻게 다르게 형성해 내었는지를 밝힘으로써 여성 연구 자료로서 가치를 보여주었다.
    (4) 문학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
    본 과제의 장점은 다양한 자료를 폭넓게 수용할 뿐만 아니라 이를 문학적 심미안과 감수성으로 감상하고 분석한다는 점이다. 특히 본 과제의 연구 자료인 논변류, 서독류, 애제, 비지, 전장류 등은 예 연구 자료이자 문학 자료이다. 애제 비지류에서 죽음을 담아내고 삶을 형상화하는 방식이나 논변류, 서독류에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고 호소력 있게 담아내는 방식은 구성의 측면이나 형상화 기법 측면에서 문학 연구의 자료로 손색이 없다. 본 과제에서는 이들 자료를 예와 생활사와 여성사 연구 자료로서만이 아니라 문학 자료로서 접근하여 그것의 문학성을 재평가함으로써 문학 연구의 영역과 지평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였다.
    (5) 사회적 활용 가치:
    현대를 사는 우리가 과거의 예를 탐구하는 것 또한 현대의 삶과 가치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현대의 예를 반성하며 인간의 삶을 좀 더 의미 있고, 행복하게 해 주는 하나의 요소로서 우리 전통의 예의 내용과 형식을 이끌어 내야 할 필요성은 매우 절박하다. 이런 측면에서 본 과제는 기본적으로 예의 정신이 갖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되짚어 봄으로써 전통의 자산을 확인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전통의 예론에서 남과 여의 역할이 어떻게 규정지어졌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고찰을 토대로 ‘복수의 성을 기반으로 하는’ 인식의 틀에 대한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즉 과거 삶의 한 부분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과 情義, 그리고 전체적인 조화로움을 모색하였다는 점에서 현대적 의미 또한 확보했다고 생각한다.
  • Index terms
  • 예담론, 18세기, 가례, 일상, 형식화, 상례, 제례, 혼례, 향촌, 가문, 여성, 입후, 승중, 여훈, 팔모, 제가, 미시사, 주자가례, 예서, 복제, 유교가부장제, 가문소설, 행장, 제문, 묘지명, 전, 가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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