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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3214&local_id=10013068
『海東諸國紀』의 역사 지리에 대한 종합적 연구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海東諸國紀』의 역사 지리에 대한 종합적 연구 | 2006 Year | 손승철(강원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사업별 신청요강보기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04
Year(selected) 2006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7년 08월 10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본 연구는 1471년 신숙주가 저술한 『海東諸國紀』를 소재로 삼아「『海東諸國紀』의 역사 지리에 대한 종합적 연구」라는 대주제하에 5가지 소주제를 가지고 2006년 7월 1일부터 2007년 6월 30일까지 1년간 각기 연구원(책임1, 공동2. 전임2)의 책임 하에 연구를 진행해왔다. 연구진행 사항은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海東諸國紀』윤독모임은 한 달에 두 차례 연구자 전원 참석 하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윤독모임은 학문후속세대 양성 차원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연구진 전원의 팀웍 형성과 세대간의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둘째, 연구과제 진행과 관련된 사항에 대한 문제점과 협력사항에 대한 회의는 매주 정기적(화요일)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대한 내용은 회의록을 작성하였다.
    셋째, 『海東諸國紀』관련 지역의 조사이다. 이는 크게 국내조사(2회)와 일본조사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먼저 국내 답사는 2006년 9월 22일(금)부터 9월 25일(월)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삼포(진해(제포)-부산(부산포)-동래-울산(염포))지역을 답사하였다. 책임연구원을 위시하여 보조연구원까지 연구진 전원이 참석한 본 답사를 통해 『海東諸國紀』에 수록된 삼포지도 즉, 「熊川薺浦之圖」, 「東來釜山浦之圖」, 「蔚山鹽浦之圖」 의 위치비정을 통해 삼포의 지리적 특성, 대일교류의 유적, 삼포 방어 및 통제에 관련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제포지역의 경우 지표조사와 간이 실측조사의 필요성을 느끼고 2007년 1월 23일(금)부터 1월 25일(일) 2박 3일에 걸쳐 재조사를 한 결과, 다음과 같은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①지금까지 왜관에 대한 아무런 조사가 실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왜관에 대한 실측조사를 실시함으로써 추측에 그쳤던 왜관의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또한 현재의 터에서 당시 왜관의 瓦片을 다량으로 발견했다. ②재덕토성의 규모를 확인, 그 역할과 기능을 밝혀냈다. 지금까지 재덕토성의 규모는 약 340m로 알려졌으나, 본 조사를 통해 약 1㎞에 걸친 대규모 토성이었으며, 왜관 및 왜인들의 거주지를 격리시킨 구조로 축조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③『海東諸國紀』의 「熊川薺浦之圖」에 보이는 거주지가 왜인거주지로 인식되어져 왔으나 그곳에서 동쪽의 산기슭에도 왜인들의 거주지로 추측되는 지역이 있음을 밝혀냈다.
    일본지역 답사는 2007년 1월 13일(토)부터 1월 22일(월) 9박 10일 여정으로, 그 대상지는 對馬島-壹岐-九州全域-沖繩 지역이었다. 국내 답사와 마찬가지로 연구진 전원이 참석한 일본 답사는 지역에 대한 현장 조사를 통해 『海東諸國紀』에 기록된 浦口, 마을 등 관련 지명을 확인하여 기록과의 부합여부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국내, 일본답사 모두 답사자료집을 간행하였으며, 특히 일본답사의 경우에는 기록담당자를 두어 답사일정을 빠짐없이 기록한 답사기록과 전 연구진의 답사감상문을 수록하여 답사보고서를 작성하였다.
    넷째, 본 연구의 최종 결과물인 연구논문은 총 5개 분야로 『海東諸國紀』사료적 가치의 재검토, 『海東諸國紀』속의 三浦를 중심으로 한 군사방어에 대하여,『海東諸國紀』지명에 반영된 한일 중세어 표기법」,『海東諸國紀』의 역사지리적 고찰」, 『海東諸國紀』로 본 中世日本의 國王觀과 日本國王使의 성격으로 세분되었다. 이러한 연구원들의 개별 주제 논문은 2007년 7월 13일(금) ‘동아시아 세계와『海東諸國紀』’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여 발표하였으며, 국내 및 일본의 관련분야 전공자를 초빙한 본 학술대회는 『海東諸國紀』에 대한 한일 양측의 견해의 교류의 장으로써의 기대도 충분히 부응하였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진 본 연구를 통하여 역사적 가치가 높은『海東諸國紀』를 종합적으로 재조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을 현실 속에서 정확히 재조사하고 그 흔적이 어디에 남아있으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관련 자료들이 어떻게 남아있는지에 대한 구제척이고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다섯 분야의 소주제 연구논문과 답사지역에 관련된 자료집을 완성할 수 있었다. 연구논문의 경우 이미 학술지(『한일관계사연구』)에 투고를 마친 상태이며, 조사내용은 정리하여 단행본으로 간행할 예정이고, 조사자료(사진, 사료, 현장조사 내용)는 모두 DB화하여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여 관련 학술분야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
  • English
  • This research was conducted with 『Haedongjegukgi』written by Shin, Sook-Ju in 1471 under a broad subject of 「Comprehensive study about the historical geography of 『Haedongjegukgi』」and 5 different small subjects for a year from July 1, 2006 to June 30, 2007 with responsibilities of separate researcher (chief 1, joint 2, exclusive 2). Proceeding of the study is broadly categorized into 4 different parts as below.
    First, the meetings of the reading『Haedongjegukgi』by turns have been held twice a month with every researcher in attendance. These meeting of the reading by turn not only take the important roles for promoting the next generation of scholars, but also provide good opportunities for creating teamwork among the group of researchers and friendship between generations.
    Second, the meeting for resolution of the problems relate to proceeding of the research subject has been held on weekly basis (Tuesday). The minutes of the meeting has also been prepared.
    Third, the geographical survey has been conducted on『Haedongjegukgi』. It has been conducted broadly three times in Korea ( twice) and in Japan (once) overall. The geographical survey in Korea was done for 4 days from September 22 (Friday) to September 25 (Monday), 2006, and the Sampo region (Jinhae : Jepo-Busan : Busanpo-Dongrae-Woolsan : Yumpo) was surveyed. Through this survey of all research staffs consisting of supplementary researchers and chief researcher and the location misruling of the Sampo maps of 「Jepo Jido of Woongchun」, 「Busanpo Jido of Dongrae」and「Yumpo Jido of Woolsan」, the geographical characteristic of Sampo, ruins of interchange between Korea and Japan and defense and control of Sampo could be learned. Especially, for the Jepo area, the following research results were attained as a result of the re-survey of 3 days from January 23 (Friday) to January 25 (Sunday), 2007 for necessity of the surveys for both index and simplicity.
    ①As no research of the Japanese center had been conducted, the actual survey for the Japanese center was conducted to find out the overall scale of the Japanese center, and many pieces of the roof tile were found in ruins.
    ②The function and use of ‘Jaeduk mud fortification’ were found after checking its scale. Size of ‘Jaeduk mud fortification’ had been known to be only about 340m, but it was a large scaled mud fortification of about 1km and built to segregate the Japanese center and the Japanese residential area.
    ③The residential area in 「Woongjin Jepo map」was known to be for Japanese, but the eastern slope of the mountain also has the Japanese residential area.
    The survey for Japan was conducted for 10 days from January 13 (Saturday) to January 22 (Monday), 2007 the subject areas were Tsushima-Iki- the whole Kyushu-Okinawa. As the survey for Korea, the whole research staffs attended and they could find the names of ports and villages recorded in『Haedongjegukgi』are matched with the records. All the survey materials for Korea and Japan have been published, and the detailed survey report on the itinerary of the survey in Japan was prepared by the recorder, and the survey report has been made based on the writing of the whole research staffs.
    Four, the research thesis as the final product of this research covers all five different fields and they are divided into the re-review of historical value of 『Haedongjegukgi』, the military defense based on Sampo in 『Haedongjegukgi』, orthography in the mid age Korean and Japanese consists of the locations in 『Haedongjegukgi』, the historical and geographical survey of 『Haedongjegukgi』, and the view to the Japanese kin in the mid age and the characteristic of the delegates of the Japanese king in 『Haedongjegukgi』.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 연구는 1471년 신숙주가 저술한 『海東諸國紀』를 소재로 삼아「『海東諸國紀』의 역사 지리에 대한 종합적 연구」라는 대주제하에 5가지 소주제를 가지고 각기 연구원(책임1, 공동2. 전임2)의 책임하에 연구를 진행해왔다.
    연구 결과로서 첫째는「『海東諸國紀』사료적 가치의 재검토」라는 소주제로『海東諸國紀』에 수록된 「日本國紀」와「琉球國紀」에 수록된 내조기록을 중심으로 그 사료적 가치를 재조명한 것이다. 특히, 여기에서는 내조기사를 통해 당시 조선에 온 일본인들이 어느 지역에서 어떤 사람이 왔고, 또 무슨 목적에서 어떻게 내왕했는가를 상세히 검증·검토하여 지금까지 확인할 수 없었던 지역의 내조자까지도 명확히 논증하였다.
    둘째,「『海東諸國紀』속의 三浦를 중심으로 한 군사방어에 대하여」이다.『海東諸國紀』삼포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내용은 삼포지역 군사방어체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착목하여 포구를 직접 통제하는 營廳과 배후의 鎭城, 그리고 주변의 수군진이 유기적으로 연계를 가지고 왜선 도박처를 포위하고 있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특히 제포의 경우는 제포방어를 위해 배후지역에 새로운 鎭을 만들고, 나아가 독립 縣을 만들어 운영하였으며, 부산포의 경우는 동평진을 운영하기도 하였으며, 울산에는 좌병영을 두었다는 것을 밝혔는데, 이러한 포치는 기본적으로 掎角構圖를 중시한 전통적인 방어체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삼포지도를 통하여 왜인 거류지와 일반주민 거주지를 상호 격리 시키려는 의도를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제포에는 토성을 축조하여 차단하고 있으며, 염포에도 성벽을 축조하여 막고 있었으며, 부산포의 경우는 직접적인 차단 시설을 보이지 않으나 營廳-梁直-동평진이 라인을 이루면서 내륙과의 연결을 차단하고 있었다. 이러한 명에서『海東諸國紀』 삼포지도는 군사적인 측면에서의 활용을 중시한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셋째,「『海東諸國紀』지명에 반영된 한일 중세어 표기법」에 대한 연구이다.『海東諸國紀』에 수록된 일본 중세 지명 자료는 언어사 연구 및 한일 중세어 표기법 연구에 중요하다.『海東諸國紀』의 일본 지명은 15세기 한국 한자음을 원용하여 漢字借字表記法 중 音借 表記와 訓借 表記로 기록한 것으로 대부분의 지명은 음차 표기이지만 ‘訓羅串(훈라곶)’의 ‘串’과 ‘五時浦(오시개)’ ‘時多浦(시다개)’의 ‘개(浦)’는 훈차 표기로 나타났다.『海東諸國紀』「對馬島之圖」와 『海東諸國紀』대마도 본문 지명을 대조해 본 결과 9곳의 지명이 다르게 표기되었으며, 『海東諸國紀』 지명에 반영된 일본 지명 표기음이 대부분 그대로 현재 일본 지명에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넷째,「『海東諸國紀』의 역사지리적 고찰」에 대한 연구로서 이것은 同書에 수록된 ‘해동제국총도’ 등을 비롯한 9점의 고지도를 통해 역사 지리학적인 측면에서의 고찰을 중심으로 논증한 것이다. 특히 당시의 최신 정보와 해로의 里程 등 중세 일본과 관련된 지도로 가장 오래된 지도라는 점에서 중요성과 의의를 평가하였다. 또한 조선에서 日本 및 琉球에 이르는 도로 里數, 기착지점들을 명시하여 분석하였고, 이로써『海東諸國紀』수록의 고지도가 중세의 동아시아 항로연구나 해상교역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입증하였다.
    다섯째, 「『海東諸國紀』로 본 中世日本의 國王觀과 日本國王使의 성격」에서의 주된 논점은『海東諸國紀』에 수록된 일본의 國王觀, 그리고 일본에 國王이라는 용어가 외교적 측면으로 정착되면, 탄생한 日本國王使라는 사절단이 『海東諸國紀』가 편찬된 1471년을 전후해서 과연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변화되고 있었는가라는 것인데, 이를 몇 가지 점에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海東諸國紀』에 수록된 일본의 國王이라는 용어와 국왕관에 대한 의미 부여로서 일본에서의 國王의 의미는 대외적 대내적인 양면성을 띠고 있었고, 이것은 일본의 외교적 양면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는 점이다. 둘째, 조선 측의 입장에서 『海東諸國紀』의 國王觀을 본다면, 일본 ‘최고의 정치적 실력자’로서 미나모토씨(源氏)=征夷大將軍(將軍, 쇼군)=국왕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海東諸國紀』가 편찬된 1471년을 전후한 중세 이후 조일관계 속에 일본의 정치권력 주체를 규정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셋째, 일본에서는 외교적인 차원에서 國王이라는 용어가 정착이 되어, 일본국왕사라는 사절단을 조선에 파견하게 되는데, 이는 1471년 『海東諸國紀』 편찬을 전후하여 그 성격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 일본국왕사의 명의로 파견된 사절 중에 僞使들이 많다는 것을 조선 정부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으나, 이를 접대한 것은 조선의 大國觀에 의해 일본을 회유·기미하기 위한 정책의 발현이었다는 점이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본 연구 과제에 참여한 책임연구원 1명, 공동연구원 2명, 전임연구인력 2명, 연구보조원 6명은『해동제국기』관련 일본지역 조사와 국내 지역 조사, 정리,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5가지의 연구 결과를 얻었다.
    첫째,「『海東諸國紀』사료적 가치의 재검토」:『海東諸國紀』에 수록된「日本國紀」와 「琉球國紀」의 내조기록을 중심으로 그 사료적 가치를 재조명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조선으로 온 일본인들이 어느 지역에서 누가,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내왕했는가를 상세히 검증, 검토하여 지금까지 확인할 수 없었던 지역의 내조자까지도 명확히 논증하였다.
    둘째, 「『海東諸國紀』속의 三浦를 중심으로 한 군사방어에 대하여」:『海東諸國紀』 삼포지도를 통해 포구를 직접 통제하는 營廳과 배후의 鎭城, 그리고 주변의 수군진이 유기적으로 연계를 가지고 왜선 도박처를 포위하고 있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또한 삼포지도를 통하여 왜인 거류지와 일반주민 거주지를 상호 격리시키려는 의도 또한 논증하여 밝혔다.
    셋째, 「『海東諸國紀』지명에 반영된 한일 중세어 표기법」:『海東諸國紀』에 수록된 일본 중세 지명 자료를 통해『海東諸國紀』의 일본 지명이 15세기 한국 한자음을 원용하여 漢字借字表記法 중 音借 表記와 訓借 表記로 기록하였음을 논증하였고, 대부분의 지명은 음차 표기이지만 ‘訓羅串(훈라곶)’의 ‘串’과 ‘五時浦(오시개)’ ‘時多浦(시다개)’의 ‘개(浦)’ 등의 훈차 표기도 있음을 밝혔으며, 『海東諸國紀』 지명에 반영된 일본 지명 표기음이 대부분 그대로 현재 일본 지명에 나타남도 명확히 하였다.
    넷째,「『海東諸國紀』의 역사지리적 고찰」: 이것은 同書에 수록된 ‘해동제국총도’ 등을 비롯한 9점의 고지도를 통해 역사 지리학적인 측면에서의 고찰을 중심으로 논증한 것이다. 특히 조선에서 日本 및 琉球에 이르는 도로 里數, 기착지점들을 명시하여 분석하였고, 이로써『海東諸國紀』수록의 고지도가 중세의 동아시아 항로연구나 해상교역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입증하였다.
    다섯째, 「『海東諸國紀』로 본 中世日本의 國王觀과 日本國王使의 성격」: 『海東諸國紀』에 수록된 일본의 國王이라는 용어와 국왕관에 대한 의미 부여로서 일본에서의 國王의 의미는 일본의 외교적 양면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는 점, 『海東諸國紀』가 편찬된 1471년을 전후한 중세 이후 조일관계 속에 일본의 정치권력 주체를 미나모토씨(源氏)=征夷大將軍(將軍, 쇼군)=국왕으로 규정하고 있었다는 점, 일본에서는 외교적인 차원에서 國王이라는 용어가 정착이 되어, 일본국왕사라는 사절단을 조선에 파견하게 되는데, 이는 1471년 『海東諸國紀』 편찬을 전후하여 그 성격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점, 일본국왕사의 명의로 파견된 사절 중에 僞使들이 많다는 것을 조선 정부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으나, 이를 접대한 것은 조선의 大國觀에 의해 일본을 회유, 기미하기 위한 정책의 발현이었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한편, 본 연구과제는 다음과 같은 활용방안을 가지고 있다. ①석박사과정생 교육에서는 연구계획서 작성에 대한 교육, 연구수행을 위한 자료수집 및 분석에 대한 교육, 고증을 위한 현장 조사 교육, 자료의 디지털화 방법과 활용에 대한 교육에 활용한다. ②학부생 교육에는 사료 해독 능력 배양을 위한 기초한문 교육 실시, 해동제국기 원문 강독과 사료의 중요성 교육, 현장 조사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한 교육에 활용한다. ③교육자료 활용측면에서는 『한일관계사연구』강좌 교재편찬에 활용하며, 현장조사를 통해 확보된 사진 자료 등을 강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연구 활동으로 생성된 모든 자료 즉, 연구 논문 이외에 확보된 해동제국기에 소재하는 인명, 지명과 관련된 문헌자료, 현장 사진 등 방대한 자료는 모두 데이터베이스화(DB구축화)하여 역사학 분야의 기초자료로서 사업 종료 후라도 공개할 예정이며, 이는 역사학 관련의 연구에 파급효과를 가져오리라 생각하고 있다.
  • Index terms
  • 해동제국기, 신숙주, 일본, 조선, 조일관계, 무로마치, 중세, 삼포, 유구, 국제관계, 부산포, 염포, 제포, 일기, 대마, 구주, 천황, 일본국왕, 웅천, 왜관, 막부, 쇼군, 왜인, 오키나와, 임진왜란, 도쿠가와, 동아시아, 국제질서, 국제무역, 고지도, 일본관, 국왕관, 중세, 기미정책, 회유, 방어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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