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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 지배와 헤게모니 경쟁: 일제하 교육, 의료, 사회사업의 정치사회학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식민 지배와 헤게모니 경쟁: 일제하 교육, 의료, 사회사업의 정치사회학 | 2006 Year | 박명규(서울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사업별 신청요강보기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B00079
Year(selected) 2006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7년 12월 31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이 연구는 지배자의 정당성의 결여와 억압에 기초한 지배라는 식민지 연구의 오래된 가정들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이를 위해 헤게모니가 분산되었을 가능성, 제한적인 비정치적인 영역에서의 정치성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근대세계체제에서 지닌 하위 제국으로서의 열위적 입지 및 사회문화적인 헤게모니 상의 한계와, 최근 연구들을 통해 본 사회문화적인 것의 정치적인 것으로의 번역가능성은 이러한 새로운 연구를 가능하게 해준다. 구미세력과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사회적 영역에서 활동한 개신교라는 연구대상은 이런 새로운 가능성을 검증하는 데 좋은 대상이다.
    이 연구는 교육, 의료, 사회사업의 장을 선택하여 연구한다. 이는 정치적 경쟁 불가능의 구조적 조건과 헤게모니 참여 주체들의 목표의 공통성, 경쟁의 가시성 등의 차원에서 이 영역들이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션스쿨은 개신교 선교세력의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졌지만 식민지 현실 속에서 식민권력이 마련한 교육체제의 대항마 구실을 하였다. 미션스쿨은 독자적 존재가 아니라 얽힌 존재였다. 선교세력은 1910년대에 이르러 기초부터 고등교육까지 자체적인 교육체제를 갖추고자 했지만 동시기에 식민권력은 천황숭배를 목표로 한 자신들의 교육체제를 조선에 주입하려 하였다. 이 점에서 1910년대는 헤게모니 경쟁의 양상을 잘 드러내준다. 미션스쿨의 설립 동기는 두가지다. 첫 번째는 종교성이 강한 현지지도자를 양성하는 것, 두 번째는 근대문명을 가르치는 것. 이런 맥락 속에서 미션스쿨 속에는 근대라는 단어를 둘러싼 식민권력과 선교 세력간의 헤게모니 경쟁이 녹아들어 있다.
    식민지기 동안 일제 관립의료와 선교의료는 서로 다른 목적과 실천의 장, 의료관을 지니면서 협력과 갈등의 이중전선을 형성하였다. 관립의료는 국가권력이 사회로 침투하는 수로가 되었다. 식민권력은 감시와 교정의 대상으로 조선인 사회를 타자화했다. 반면 개인중심 치료의학에 집중한 선교의료는, 관립의료와의 경쟁관계에 의해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그것은 선교의료가 기반한 미국/서구라는 대안적 모델의 확산과정이기도 했다. 선교의사들은 대부분 미국인이었고, 재정적 기반과 유학경로도 미국에 집중되었다. 미국식 의료모델이 강력한 대안으로 조선인 의사들에게 자리잡았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협력의 전선에서 양자는 식민지 조선 사회를 부정적으로 가시화했다. 갈등의 전선에서 관립의료는 조선인 사회를 억압함으로써 제국에 통합하는 데 실패했다. 반면 선교의료는 인도주의적 외면으로 인해 이런 반감을 피할 수 있었다. 개인 중심 치료의학에 치중한 선교의료는 공식의료에 대비되는 사회적 자율성의 한 이미지를 창출했다. 동시에 미국으로 대표되는 당대 서구 근대성에 대한 상상적 동일시를 낳는 기반으로 작용했다.
    서구와 달리 조선의 사회사업은 위로부터 행해진다는 인식이 강하였다. 총독부도 사회사업을 천황의 은혜를 보여주기 위한 영역으로 삼았다. 특히 선교사들이 사업을 하고 있던 맹아나 나환자 등의 영역에 뛰어들었다. 설립 초기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는 선교세력이 더 나은 기술과 의학, 노하우, 치료적 접근으로 인해 우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1930년대 중반 이후에 이러한 우열관계가 역전된다. 총독부의 안정된 재정과 취직, 자격증 같은 제도적 인센티브와 더불어 선교사들의 우월주의적 태도, 기술 낙후, 종교적 열정의 감소가 맞물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세력의 사회사업이 총독부가 만들어 놓은 근대적 사회사업에 대한 대안으로 비춰지기에는 충분했다는 사실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쟁의 구도 속에서 이뤄진 사회사업은 장기적인 비전이 없이 실행되었고, 그 영향은 해방이후까지 개인적인 차원에서 접근되거나 은혜의 자원에서 접근되는 사회사업의 이미지로 계승되었다
  • English
  •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hegemony struggle between the Japanese colonialism and Western missionaries in the field of education, medicines and social works. Through this, we hope to illuminate the formation of the 'social' in colonial Korea. In colonial Korea, although Japanese colonial power held power in official regime, western missionaries were also powerful in so-called cultural fields. Those two were sometimes struggling and sometimes cooperating each other and built the 'social' realm in colonial Korea, especially in the field of education, medicine and social works.
    Firstly, in the field of education, mission schools should be closely examined. Mission schools built and run by western missionaries acted as a counter system to the colonial education, but they were closely intertwined with the colonial education system.
    Secondly, the official medicine and medical missionaries had different purposes, fields, and medical cosmology. While official medicine regarded the Koreans as the body to control and correct, medical missionary approached Koreans for individual treatments.
    Finally, in the field of social works, the western missionaries initiated the social work such as special education and medical treatment for the hansen's disease patients. But, with the establishment of colonial power, the western missionaries gradually lost influences in terms of material resources and technical knowledges. But their influences were still strong in terms of spiritual influences.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이 연구는 지배자의 정당성의 결여와 억압에 기초한 지배라는 식민지 연구의 오래된 가정들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이를 위해 헤게모니가 분산되었을 가능성, 제한적인 비정치적인 영역에서의 정치성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근대세계체제에서 지닌 하위 제국으로서의 열위적 입지 및 사회문화적인 헤게모니 상의 한계와, 최근 연구들을 통해 본 사회문화적인 것의 정치적인 것으로의 번역가능성은 이러한 새로운 연구를 가능하게 해준다. 구미세력과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사회적 영역에서 활동한 개신교라는 연구대상은 이런 새로운 가능성을 검증하는 데 좋은 대상이다.
    이 연구는 교육, 의료, 사회사업의 장을 선택하여 연구한다. 이는 정치적 경쟁 불가능의 구조적 조건과 헤게모니 참여 주체들의 목표의 공통성, 경쟁의 가시성 등의 차원에서 이 영역들이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션스쿨은 개신교 선교세력의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졌지만 식민지 현실 속에서 식민권력이 마련한 교육체제의 대항마 구실을 하였다. 미션스쿨은 독자적 존재가 아니라 얽힌 존재였다. 선교세력은 1910년대에 이르러 기초부터 고등교육까지 자체적인 교육체제를 갖추고자 했지만 동시기에 식민권력은 천황숭배를 목표로 한 자신들의 교육체제를 조선에 주입하려 하였다. 이 점에서 1910년대는 헤게모니 경쟁의 양상을 잘 드러내준다. 미션스쿨의 설립 동기는 두가지다. 첫 번째는 종교성이 강한 현지지도자를 양성하는 것, 두 번째는 근대문명을 가르치는 것. 이런 맥락 속에서 미션스쿨 속에는 근대라는 단어를 둘러싼 식민권력과 선교 세력간의 헤게모니 경쟁이 녹아들어 있다.
    식민지기 동안 일제 관립의료와 선교의료는 서로 다른 목적과 실천의 장, 의료관을 지니면서 협력과 갈등의 이중전선을 형성하였다. 관립의료는 국가권력이 사회로 침투하는 수로가 되었다. 식민권력은 감시와 교정의 대상으로 조선인 사회를 타자화했다. 반면 개인중심 치료의학에 집중한 선교의료는, 관립의료와의 경쟁관계에 의해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그것은 선교의료가 기반한 미국/서구라는 대안적 모델의 확산과정이기도 했다. 선교의사들은 대부분 미국인이었고, 재정적 기반과 유학경로도 미국에 집중되었다. 미국식 의료모델이 강력한 대안으로 조선인 의사들에게 자리잡았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협력의 전선에서 양자는 식민지 조선 사회를 부정적으로 가시화했다. 갈등의 전선에서 관립의료는 조선인 사회를 억압함으로써 제국에 통합하는 데 실패했다. 반면 선교의료는 인도주의적 외면으로 인해 이런 반감을 피할 수 있었다. 개인 중심 치료의학에 치중한 선교의료는 공식의료에 대비되는 사회적 자율성의 한 이미지를 창출했다. 동시에 미국으로 대표되는 당대 서구 근대성에 대한 상상적 동일시를 낳는 기반으로 작용했다.
    서구와 달리 조선의 사회사업은 위로부터 행해진다는 인식이 강하였다. 총독부도 사회사업을 천황의 은혜를 보여주기 위한 영역으로 삼았다. 특히 선교사들이 사업을 하고 있던 맹아나 나환자 등의 영역에 뛰어들었다. 설립 초기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는 선교세력이 더 나은 기술과 의학, 노하우, 치료적 접근으로 인해 우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1930년대 중반 이후에 이러한 우열관계가 역전된다. 총독부의 안정된 재정과 취직, 자격증 같은 제도적 인센티브와 더불어 선교사들의 우월주의적 태도, 기술 낙후, 종교적 열정의 감소가 맞물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세력의 사회사업이 총독부가 만들어 놓은 근대적 사회사업에 대한 대안으로 비춰지기에는 충분했다는 사실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쟁의 구도 속에서 이뤄진 사회사업은 장기적인 비전이 없이 실행되었고, 그 영향은 해방이후까지 개인적인 차원에서 접근되거나 은혜의 자원에서 접근되는 사회사업의 이미지로 계승되었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본 연구는 일제 식민지기 조선에서의 개신교 선교사업/활동의 의미와 메커니즘, 그리고 그것이 구성해 낸 다양한 정치적, 문화적 효과 등에 주목하여, 그동안 ‘정치 공간에서의 일제의 지배’와 ‘한국민족의 저항’으로 단순히 파악해 왔던 식민지 정치공간의 다층적 측면을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조명한다. 이런 기획은 식민지기 문화적 근대성의 양상과 성격을 발굴하는 시도로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된 이른바 ‘미국화’의 문제를 적극 제기하는 동시에, 식민지 조선에서 구축된 ‘식민지 근대성’의 전체적 의미를 재해석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연구팀이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헤게모니 경쟁’ 개념은 그간 식민지 근대성을 둘러싸고 진행되어 온 논쟁들에 대해서도 중요한 이론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헤게모니 경쟁 개념은 19세기 말 제국주의 패권경쟁 안으로 진입한 후발제국주의 국가이자, 아시아 유일의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한 20세기 전반 일본국가가 지닌 특수성을 보다 선명히 드러내는 이론적 장치로 기능할 것이다. 즉 일제 식민지배의 공간을 헤게모니라는 문제로 재고할 경우, 권력기구의 취약한 지배구조가 드러날 것이고 그 맥락 안에서 행위한 다양한 헤게모니 경쟁적 행위자들의 활동이 시야에 포착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치 부재라는 식민지에 대한 그간의 일반적인 상식은 사회문화적 정치공간의 발굴을 통해 이론적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시도는 탈식민 유산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고하도록 하여, 20세기 한국사의 전체적 맥락을 복원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공/사(公/私) 관념, 국가/민간 영역이라는 관념 등의 연원을, 헤게모니 경쟁의 장이었던 식민지 사회 공간의 구성조건과 그 역동적 정치동학을 검토함으로써 재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헤게모니 경쟁 개념은 공식정치의 부재와 사회문화적 정치의 실재라는 당대 정치의 이중구조를 보다 적실히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이론적 자원이 될 것이다.
    본 연구는 한국사회의 역사적 경험에 기반하여 적합한 사회이론을 개발하는 작업으로서, 한국사회학의 토착화 노력의 일환이다. 그간 서구이론을 기반으로 하여 역사와 맥락을 일원적으로 환원시켜 온 연구들이 빠진 함정들, 반대로 토착화를 고유성이라는 닫힌 체계로 해석해 온 연구들이 지닌 편협성을 뛰어넘어 한국사회분석에 보다 적합한 개념의 적용과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아울러 이 연구는 사회학·역사학·정치학·인류학·교육학·종교학·의료사학 등 분과학문 분야 간의 간학제적 연구를 촉진하여 학문의 교류를 증진시키는 데 있어 긍정적 사례가 될 것이다. 나아가 한국사회에 대한 국제협동연구를 증진시키기 위한 하나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연구팀은 연구의 성과를 저명한 국제학술회의 및 국제학술지에 발표를 통해 외화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사회에 대한 세계학계와 국제사회의 이해를 돕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Index terms
  • 헤게모니경쟁, 식민지근대성, 미션스쿨, 선교의료, 선교계 사회사업, 사회문화적 정치, 사회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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