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문명의 시대인 21세기를 주도하는 영화, 만화, 게임과 같은 영상매체들에서 가히 괴물들의 제국이라 일컬을 수 있을 정도로 공포의 형상들이 유행하고 있다. ‘데몬들‘(die Dämonen, das Dämonische)로 통칭되는 이 공포의 형상들은 넓은 의미로 파악할 때 ...
첨단 문명의 시대인 21세기를 주도하는 영화, 만화, 게임과 같은 영상매체들에서 가히 괴물들의 제국이라 일컬을 수 있을 정도로 공포의 형상들이 유행하고 있다. ‘데몬들‘(die Dämonen, das Dämonische)로 통칭되는 이 공포의 형상들은 넓은 의미로 파악할 때 악마. 유령, 괴물을 비롯해 여러 판타지 형상들을 포괄한다. 이 형상들은 원래 인간이 ‘낯선 것’에 대해 지니는 공포와 불안의 생산물로서, 이들은 신화의 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조형예술, 영상매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와 모습으로 생산되고 수용되어 왔다. 이러한 데몬들에 대한 표상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모든 문화에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구는 서구에서도 이제 시작을 알릴만큼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국내에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에 우리는 이러한 ‘마적인 것’의 현상방식 및 사회적 역사적 의미와 기능을 다각적 방법으로 접근해 연구해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목적은 계몽, 산업화 및 합리화 과정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이후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르기까지 데몬의 형상들이 소멸하거나 퇴출되기는커녕 왜 더욱 강렬한 표현을 얻고 나타나는지, 그리고 그 형상들이 특히 산업화 이후 문명사적 격동기에 서구사회에서 어떤 사회적 심미적 의미와 기능을 수행해 왔는지의 물음을 문학, 조형예술 및 영상매체를 통해 학제적으로 탐구하는 데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대중문화 시대에 그러한 데몬들이 계속 변형되어 생산되고 수용되는 현상을 해명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첫째, 대중과 대도시의 데몬적 측면에 대해 사회학적 고찰을 시도하였다. 대중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현대의 산업화 초기 이래 대도시와 대중은 문학과 예술에서 매혹과 동시에 역겨움 내지 두려움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대도시 문화를 채우는 각종 마술환등적 현상들은 과학기술문명의 소산이면서 상품을 만들어내는 사회에 대중의 욕망과 불안이 투사된 결과들로 해석되었다.
둘째, 문학 파트에서는 19세기 후반 이래 독일어권 문학에 나타난 데몬의 형상들을 추적한다. 특히 표현주의 문학은 문명사적 위기의식과 불안감을 강렬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이와 함께 20세기의 시, 소설, 드라마 작품들에 사용된 문학 소재들과 주제들에서 표현된 데몬적 요소들을 추적하였다. 하나는 대도시와 군중의 마성적 측면을 묘사한 대표적 작품들을, 다른 하나는 내면적 악마성에 집중한 초자연적이고 괴기스런 현대 작품들을 분석하였다. 더 나아가 위의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오늘날에 인기를 얻고 있는 대중문화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셋째, 서양의 조형예술에서 나타난 데몬의 계보를 추적하였다. 서양미술사에서 악은 공포와 기피의 대상이자 질병, 죽음, 어둠의 주제와 밀착해 있다. 선과 악의 투쟁, 미덕과 악덕의 싸움, 바른 신앙의 길을 방해하고 영육의 타락과 실족으로 이끄는 악마의 유혹은 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흔히 다루어진 주제이다. 악의 체현이 연기하는 구체적인 눈빛과 표정 그리고 자세에 관한 연구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종교, 신화, 역사를 가로지르는 미술사의 가장 기름진 주제가 될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그러한 서양 미술에 나타난 악의 계보가 모더니티 이후 다양한 방향으로 분화, 해체, 내면화되어가는 과정을 대표적인 도상을 통해 추적하였다. 서양미술의 관점에서 악의 시각적 형상화 연구는 인문학 분야의 같은 주제 연구자들에게 가시화된 그림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협동연구를 통해서 학문적 방법론의 다양성을 환기하고, 나아가서 동양미술 분야의 동종 주제 연구로 확장되는 수평적 개방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넷째, 매체기술이 폭발적으로 발달한 시대에 특히 영상매체에 나타난 데몬적인 것을 연구하였다. 본 연구는 매체를 단순히 내용과 정보의 전달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문화적 상징형식의 기술적 역사적 아프리오리’로서 주목하는 매체이론적 문제틀에 입각하여, 19세기 중반 이래 사진과 영화에서 ‘데몬적인 것’이 어떤 형태로 표현되고 암시되어 왔는가를 구체적인 예를(모티브, 구성방식, 기술적 기법들, 작품, 스타일) 통해 재구성해 보고자 하였다. 특히 영상매체의 기술적 복제영상을 통해 인간과 세계가 어떻게 가장 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낯설고 섬뜩한 것으로, 흉물스럽고 기괴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가를 몇 가지 주제, 즉 영화 이미지의 환영성과 독일 표현주의의 '검은 미학'을 중심으로 천착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