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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노동자 생활세계에 관한 연구 - 전후 복구기 작업장질서와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1950년대 노동자 생활세계에 관한 연구 - 전후 복구기 작업장질서와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 | 2006 년 | 이종구(성공회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B00082
선정년도 2006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8년 12월 30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8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과제의 주요 목적은 ‘1950년대 전후 복구기 노동자의 일상생활’을 규명하는 것이다. 관련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주요 방법론으로 적용하였으며 이에 관련 노동자들의 당시 경험담을 청취한 40건의 구술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였다. 수집한 구술자료와 각종 문헌자료를 통해서 분석한 주요한 연구의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수집한 구술자료와 각종 문헌자료를 통해서 분석한 주요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철강산업을 통해서 볼 때, 1950년대 작업장에서 식민지 시대에 양성된 숙련공의 역할은 해방 이전에 사용하던 작업방식이 통용되는 범위 안에서만 부분적으로 의미를 가지며, 반면에 선진국으로부터 신규 설비와 기술이 도입되었을 때에는 고급 기술자의 역할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제조업체의 사례를 통해서 볼 때, 당시 제조업체의 근로조건이나 그곳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일상은, 소득이 결코 높지도 않고, 따라서 미래에 대한 준비는 사실상 할 수가 없는 상황이던 반면, 노동의 강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태평양 전쟁과 한국 전쟁 시기에 등장했던 전시동원의 이데올로기와 기구는 이후 박정희 정부 시기에도, 국가주의․전체주의적 노동관은 5.16 쿠데타 직후의 군사정부나 1970년대로 변형되어 재생되었다. 또, 경찰과 행정기구가 사업장 노무관리에 개입했던 경험 또한 행정․경찰․정보기관이 1970년대에 노동조합을 감시하고 탄압했던 관행 등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넷째, 철도노조의 사례를 통해 볼 때, 이 시기의 철도노조를 단순히 ‘어용’노조로 규정하는 것은 이 시기 국가-노동관계, 공공부문 노사관계, 대한노총시기 노동운동의 성격 등을 이해함에 있어서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대구의 제일모직의 사례연구 결과, 제일모직 노동조합은 공장 내에서 과거의 급진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들이 주도하여 결성하였다. 1950년대는 대한노총이 주도하는 독무대라기보다는 각각의 조직들 안에 다양한 이념과 지향들을 포함하는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탄광노동자의 사례를 통해서,1950년대 탄광 공동체를 둘러싼 지역민-지역공동체의 특성, 광산노동자의 의식구조의 특징, 탄광 공동체의 주변문화 그리고 등을 고찰하였다.
    일곱째, 전후 파생된 전쟁미망인은 사회로 나가 다양한 비공식 부문에서의 노동활동을 시작했고 이에 따라서, 이전까지 여성의 역할이 가족 내로 제한되었던 것에 반하여 소위 사회적 주체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례연구 결과, 전후 1950년대에 나타난 눈에 띄는 사회변동과 여성의 역할이동에 비하여 이에 수반하는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의식에서의 유의미한 변화는 찾기 힘들었고, 이것의 주된 원인은 동기가 결여된 생계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시작된 경제활동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 영문
  • This research aims to collect materials and make analysis about the everyday lives of Korean workers in 1950s. After armistice on 27th June 1953, Korea began to reconstruct and build industrial infrastructure destroyed by Korean war. We try to collect historical facts by way of interviewing workers and hearing experience and memory. The method of oral history analysis is applied to the 40 cases of in-depth interview. Documents, photographies and other written materials are included in the process of analysis. The major findings can be showed as following.

    1) In steel industry, we can confirm the formation of new skilled production workers trained by new Korean college graduated engineers and foreign consultants. The influence and contribution of skilled workers trained by Japanese before liberation at 1945 can only be recognized in part. The knowledge and skills of pre-war skilled workers could not be utilized at the production facilities supplied by German manufacturers. New generation of steel workers enjoyed the high level of wage and organized the moderate labor union seeking maximization of economic well being.

    2) Bur on the whole, manufacturing workers could not help but to endure low wage and heavy duty, in the midst of mass unemployment, so they cannot prepare themselves for future.

    3) During Korean war, military mobilized civilian manual workers en-masse. The apparatus of wartime labor mobilization was organized on the basis of Japanese colonial ruling body. The idea and practice of labor mobilization repeatedly appeared in the military dominated government after coup d'éta of 1961. In this tradition, police and public authority regard it normal to intervene at the labor management relations and control labor movement.

    4) In railroad industry, union democracy was incomplete. But opposite faction could challenge to acquire leadership via democratic decision making process. On the one hand, they were loyal to government and ruling party. On the other hand, we can discern the formation of rule of order in union and company. Union officials could not despise the initiative of rak and file. Institutionalization of labor management relation was started.

    5) Remaining influence of socialist labor movement can be ascertained at the radical labor movement at Jeil wool textile company in Daegu. We can see the mixture of various ideological tradition in labor movement organizers, despite the monopoly of union apparatus by official peak organization called Korea Federation of Trade Unions.

    6) In cases of coal miners, we can see the existence of communal life shared by workers. The influence community can be seen in the consciousness and subculture of coal field.

    7) The large number of women lost husbands and family members during Korean war. They have struggled to survive and should work in various informal sectors. But the tradition of patriarchy had remained almost intact durind 1950s, despite the active economic participation of war widows. But, active social participation of women was recognized as one of the ordinary way of life.

    In sum.. we can see various aspects of dynamic change after the Korean war. The basic social order and institution formed in 1950s have remained one of the vital factors for the understanding of social change brought forth by rapid industrialization after 1960s. The methodology of oral history is a effective instrument to collect and analyze the real features of social life in 1950d, due to the massive destruction of documents in the midst of political turmoil in Korea.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과제의 금년도의 주요 목적은 ‘1950년대 전후 복구기 노동자의 일상생활’을 규명하는 것이다. 노동쟁의, 작업장 및 가족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이 시기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을 파악하였다. 관련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주요 방법론으로 적용하였으며 이에 관련 노동자들의 당시 경험담을 청취한 40건의 구술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였다.
    수집한 구술자료와 각종 문헌자료를 통해서 연구한 주요한 내용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즉, 1950년대 노동자들의 작업장에서의 경험적 숙련과 사회관계 및 일상생활, 전시 노무동원의 실상과 노동자들의 경험, 1950년대 노동자들의 노조운동 및 노동운동, 광산 공동체 노동자의 일상생활 그리고 전쟁미망인의 경제활동 및 가족관계 등이다. 위와 같은 연구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철강산업을 통해서 볼 때, 1950년대 작업장에서 식민지 시대에 양성된 숙련공의 역할은 해방 이전에 사용하던 작업방식이 통용되는 범위 안에서만 부분적으로 의미를 가지며, 반면에 선진국으로부터 신규 설비와 기술이 도입되었을 때에는 고급 기술자의 역할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제조업체의 사례를 통해서 볼 때, 당시 제조업체의 근로조건이나 그곳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일상은, 소득이 결코 높지도 않고, 따라서 미래에 대한 준비는 사실상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 노동의 강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1950년대의 전시동원이 1960~70년대의 고용관계 및 노사관계에 미친 영향을 전시동원의 법, 이데올로기와 기구, 그리고 전시노무관리의 방식 등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연구결과, 태평양 전쟁과 한국 전쟁 시기에 등장했던 전시동원의 이데올로기와 기구는 이후 박정희 정부 시기의 고용관계에도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가주의․전체주의적 노동관은 5.16 쿠데타 직후의 군사정부나 1970년대로 변형되어 재생되었다. 또, 경찰과 행정기구가 사업장 노무관리에 개입했던 경험 또한 행정․경찰․정보기관이 1970년대에 노동조합을 감시하고 탄압했던 관행으로 이어졌다.
    넷째, 철도노조의 사례를 통해 볼 때, 1950년대 철도연맹의 경우 조합내 민주주의가 불철저하기는 하였지만 반대파의 조합지도권 쟁취를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이 설치되어 있던 것은 아니고, 또 조합내 반대파들이 지도권 쟁취를 위해 경쟁할 수 있는 공간 자체는 비교적 널리 열려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철도노조를 단순히 ‘어용’노조로 규정하는 것은 이 시기 국가-노동관계, 공공부문 노사관계, 대한노총시기 노동운동의 성격 등을 이해함에 있어서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대구의 제일모직을 중심으로 1950년대의 급진주의적 전통의 전개방식을 살펴본 결과, 제일모직 노동조합은 공장 내에서 과거의 급진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들이 주도하여 결성하였다. 1950년대는 대한노총(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전국노련)이 주도하는 독무대라기보다는 각각의 조직들 안에 다양한 이념과 지향들을 포함하는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탄광노동자의 사례를 통해서,1950년대 탄광 공동체를 둘러싼 지역민-지역공동체의 특성, 광산노동자의 의식구조의 특징, 탄광 공동체의 주변문화 그리고 등을 고찰하였다.
    일곱째, 전후 파생된 전쟁미망인의 사례를 통해서 1950년대 여성노동의 단면을 살펴보았다. 당시 미망인은 전쟁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비공식 부문에서의 노동활동을 시작했고 이에 따라서, 이전까지 여성의 역할이 가족 내로 제한되었던 것에 반하여 사회로 나가 일하고 돈을 버는 소위 사회적 주체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례연구 결과, 동기가 결여된 생계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시작된 경제활동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초래한 결과로 보여지는데, 전후 1950년대에 나타난 눈에 띄는 사회변동과 여성의 역할이동에 비하여 이에 수반하는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의식에서의 유의미한 변화는 찾기 힘들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 연구결과 >
    수집한 구술자료와 각종 문헌자료를 통해서 분석한 주요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철강산업을 통해서 볼 때, 1950년대 작업장에서 식민지 시대에 양성된 숙련공의 역할은 해방 이전에 사용하던 작업방식이 통용되는 범위 안에서만 부분적으로 의미를 가지며, 반면에 선진국으로부터 신규 설비와 기술이 도입되었을 때에는 고급 기술자의 역할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제조업체의 사례를 통해서 볼 때, 당시 제조업체의 근로조건이나 그곳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일상은, 소득이 결코 높지도 않고, 따라서 미래에 대한 준비는 사실상 할 수가 없는 상황이던 반면, 노동의 강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태평양 전쟁과 한국 전쟁 시기에 등장했던 전시동원의 이데올로기와 기구는 이후 박정희 정부 시기에도, 국가주의․전체주의적 노동관은 5.16 쿠데타 직후의 군사정부나 1970년대로 변형되어 재생되었다. 또, 경찰과 행정기구가 사업장 노무관리에 개입했던 경험 또한 행정․경찰․정보기관이 1970년대에 노동조합을 감시하고 탄압했던 관행 등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넷째, 철도노조의 사례를 통해 볼 때, 이 시기의 철도노조를 단순히 ‘어용’노조로 규정하는 것은 이 시기 국가-노동관계, 공공부문 노사관계, 대한노총시기 노동운동의 성격 등을 이해함에 있어서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대구의 제일모직의 사례연구 결과, 제일모직 노동조합은 공장 내에서 과거의 급진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들이 주도하여 결성하였다. 1950년대는 대한노총이 주도하는 독무대라기보다는 각각의 조직들 안에 다양한 이념과 지향들을 포함하는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탄광노동자의 사례를 통해서,1950년대 탄광 공동체를 둘러싼 지역민-지역공동체의 특성, 광산노동자의 의식구조의 특징, 탄광 공동체의 주변문화 그리고 등을 고찰하였다.
    일곱째, 전후 파생된 전쟁미망인은 사회로 나가 다양한 비공식 부문에서의 노동활동을 시작했고 이에 따라서, 이전까지 여성의 역할이 가족 내로 제한되었던 것에 반하여 소위 사회적 주체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례연구 결과, 전후 1950년대에 나타난 눈에 띄는 사회변동과 여성의 역할이동에 비하여 이에 수반하는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의식에서의 유의미한 변화는 찾기 힘들었고, 이것의 주된 원인은 동기가 결여된 생계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시작된 경제활동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 활용방안 >
    (1) 한국 노동자 구술사 아카이브의 확충
    본 연구팀은 이번 1950년대 노동자 생활세계에 대한 연구과정에서 1차년도와 2차년도에 70~80여건의구술자료를 수집, 정리하였다. 이 자료는 음성파일과 녹취 텍스트의 형태로 기존의 노동자 구술사 아카이브에 통합시킬 예정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본 연구팀은 이 아카이브를 한국노동사연구를 위한 기초자료가 집대성된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노동사아카이브"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2) 한국 노동사 연구의 기초자료 제공
    확충된 노동자 구술사아카이브는 소정의 절차를 거쳐 본 연구진 외부의 연구자들에게도 공개될 예정이며, 문헌 및 현물자료 아카이브는 외부 연구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1950년대로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노동자 생활세계에 대한 광범한 구술자료를 바탕으로 후속 연구자들의 연구를 촉진시킬 것이다.

    (3) 후속세대 및 일반시민의 교양,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
    이러한 노동사아카이브는 연구목적뿐만 아니라 학문 후속세대의 교육, 그리고 일반시민의 교양 및 역사교육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개방시킬 예정이다.

    (4) 국제 학술교류 네트워크의 구축
    본 연구소와 다년간 학술교류 관계에 있는 해외 노동기관 -일본의 오하라사회문제연구소(大原社會問題硏究所), 네덜란드 사회사국제연구원(The International Institute of Social History)-와 본격적인 자료 및 학술교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노동사 연구의 국제비교를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 색인어
  • 1950년대, 노동자 문화, 노동자 일상생활, 철강산업, 철도산업, 금속산업, 광산, 제조업, 노동운동, 전시동원, 전쟁미망인, 구술사, 숙련, 작업장, 작업환경, 방직공장, 산업재해, 고용관계, 노무관리, 개발 이데올로기, 대한노총, 철도노조, 파벌투쟁, 철도연맹, 대한방직, 제일모직, 탄광노동자, 가족,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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