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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왕실의 제향(祭享) 공간과 왕권의 신성화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조선후기 왕실의 제향& #40;祭享& #41; 공간과 왕권의 신성화 | 2006 년 | 이욱(한국학중앙연구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57
선정년도 2006 년
과제진행현황 중단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8년 01월 09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8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의 목적은 조선후기 왕실 제향의 주요 공간이었던 종묘, 왕릉, 원묘에서의 상징과 제향을 검토하고 비교함으로써 국가 제사가 왕권을 표상하고 신성화하는 과정을 고찰하는 것이다. 1차 연도에는 연구 주제를 〈신주와 종묘 제향〉으로 정하고, "종묘제도와 증수 논의", "신주의 제작과 봉안의례", "종묘 제향의 종류와 운영", "친향과 알묘의례"라는 네 가지 연구 테마를 정하였다. 이 중에서 본 연구는 현재까지 첫 번째 테마를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신주의 제작과 봉안의례"에 대한 연구는 종묘를 봉안 장소로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하였다. 종묘는 우선적으로 선왕의 신위를 봉안하는 곳이지만 그 외에 국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책보(冊寶)를 비롯하여 왕의 공적을 기록한 국조보감, 국왕의 어제, 선원계보 등이 함께 봉안된 곳이다. 이 중에서도 본 연구는 "보책"과 "신주"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종묘의 중요 상징물을 살펴보았다. 보책이란 국왕의 인장인 보인과 책봉 때 만들어지는 책보를 가리킨다. 1705년(숙종 31)에 조정에서는 오랜 시간에 따른 자연적 훼손, 병난에 의한 망실, 제도의 변화 등에 따라 보수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명종의 금보와 각실의 금보를 제작하고 또한 영녕전 사조와 신의왕후 금보를 제작하였다. 이러한 금보의 개조와 제작을 중심으로 한 숙종대 종묘에 대한 관심은 《종묘의궤》의 제작으로 이어졌으며 숙종의 왕권 강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신주에 관한 사항은 인조대 병자호란으로 잃어버린 인순왕후 신위와 상처나고 더렵혀진 신주를 개조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애초 개조할 신위로 6위가 제기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28위로 대폭 늘어났고 다시 11위로 조절되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정리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전쟁의 상처를 씻어버리려는 욕구와 오랫동안 신이 거주한 곳이라는 신위의 기능 간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이 사건은 당시 종묘에 봉안된 신위의 모습, 규격의 차이,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한편, 본 연구는 종묘 제향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에서 희생에 관한 사항을 집중적으로 고찰하였다. 희생제의의 일종인 고대 제사의 원형적 모습이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이 국가의 종묘 제향이기 때문이다. 먼저 󰡔국조오례의󰡕를 비롯한 국가 전례집에 나타난 희생 관련 규정을 정리하고 비교하였다. 그리고 조선후기 전향사(典享司)에서 기록한 《제례등록》에서 희생 관련 기록들을 찾아 분석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중국 경전에 보이는 희생의 규정과 조선시대 실제 운영의 차이, 조선후기 자연 재해로 인한 희생 공급의 문제와 변용, 희생의 관리와 공급 등의 문제를 밝힐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친향과 알묘의례"는 숙종대 왕세자빈의 가례를 계기로 전개된 왕비와 왕세자빈의 종묘 알현을 고찰하였다. 애초 숙종이 사가(私家)의 예를 모방하여 거행하려고 했던 이 묘현례(廟見禮)는 전거의 부족으로 포기되었다. 그러나 《대명회전》에서 그 전거가 찾아짐으로써 왕비와 왕세자빈의 종묘 알현이 마침내 성사되었다. 그리하여 이전과 달리 종묘는 왕실의 의례 공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밝혔다.
  • 영문
  • A Study on the Spaces for Royal Ancestor Worship and the Sacralization of Kingship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first inquiry about the Royal Ancestor Temple, begins with regarding the Royal Ancestor Temple as the sacred place of enshrinement. The Royal Ancestor temple was the sacred place at which Chaekbo(冊寶), Gukjo-bogam-gam(國朝寶鑑), Seonwon-gyebo(璿源系譜), Yeolseong-eoje (列聖御製) as well as the spirit tablets had been enshrined. I concentrated this study on the Chaekbo and Spirit tablets. The Chaekbo were the titular sheets and royal seals of kings or queens. At 1705 some royal golden seals were re-made which had been impaired or lost because of wars etc. This repair of Chaekbo leaded to compile 󰡔Jongmyo-uigwe(宗廟儀軌)󰡕 and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And The repair or remaking of the spirit tablets of king was issued after Byeongja horan(丙子胡亂), so 11 spirit tablets was remade at 1938.
    Secondly I inquire into the sacrifices that were offered to royal temple by investigating 󰡔Jerye-deungrok(祭禮謄錄)󰡕, which edited by the Ministry of Rites. So, I reveal the differences of sacrifices between Joseon and China, the transformations according to natural disaster.
    Thirdly I study the visiting of Queen or the Crown Princess to the Royal Ancestor Temple at the period of King Sookjong. The permission of visiting of Queen resting on the authority of 「Daemyung-jiprye(大明集禮)󰡕 , made the Royal Temple into the center of Royal Rites at the latter period of Joseon Dynast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근대 이전 왕조 사회에서 왕권을 높이고 신성시하는 데에 종교적 역할은 매우 컸다. 한국이나 중국과 같이 중앙집권적인 왕조국가가 일찍부터 발달하였던 곳에서 유교, 불교, 도교 등의 종교와 왕권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종교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전통 종교에 대한 기존의 연구에서 이 분야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근대 이후 정교분리가 확산되면서 종교가 개인의 실존이나 초현세적인 것으로 간주되어버린 것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또한 봉건적 개념인 왕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역시 왕과 왕실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켰다.
    이러한 기존 연구경향을 벗어나 본 연구는 왕실 제향(祭享)의 주요 공간이었던 종묘(宗廟), 왕릉(王陵), 원묘(原廟)에서의 상징과 제향을 검토하고 비교함으로써 국가 제사가 왕권을 표상하고 신성화하는 과정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본 연구에서 ‘신성화의 과정’란 구체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신성화의 과정은 시간적 연속성에 중점을 둔 개념으로서 한 개인이 죽음의 단계를 넘어서 지속적인 의례의 대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둘째, 신성화의 과정이란 공시적 대비에 역점을 둔 것으로 차별화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별화로서의 신성화는 조선후기의 시대적 상황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조선전기에는 《주자가례》의 보급에 국가가 앞장섰지만 조선후기에 이르면 유교의례가 이미 보편화되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사대부들이 국가보다 앞서 유교 문화를 수용하였다. 조상을 매개로 한 혈연적 문중 조직이 점차 지배적인 사회 조직으로 되었으며, 정치 현장에서는 혈연과 학연이 결합된 붕당이 국왕의 위치마저 위협하였다. 조선후기 왕실 의례가 새롭게 부각하는 데에는 이러한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왕실 의례가 왕권 및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동시에 신하와 백성들을 규제하고 통합하는 것을 밝히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조선후기 선왕의 제사가 지닌 다양성과 시대적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왕실 제향을 종묘, 왕릉, 원묘의 세 공간으로 나누어 연차적(年次的)으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각 제향 공간에 대한 분석은 제향 공간의 표상적 기능과 제향의 신성화 기능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물론 이 둘이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분석을 위한 구분임을 전제로 하였다.
    제향 공간의 표상적 기능에는 ‘제향 공간의 선정 방식’, ‘제향 공간의 조성 방식’, ‘제향 공간에 봉안된 상징물’ 등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하였으며, 각 공간의 제향에서는 ‘제향의 종류와 그 의미’, ‘제관과 제물’, ‘봉안과 어가 행렬’, ‘금기와 계율’ 등을 다루고자 하였다. 제 1차 연도 연구대상인 종묘의 경우에는 ‘신주와 종묘제향’이란 주제 하에 (1) 종묘제도와 증수(增修) 논의 (2) 신주의 제작과 봉안의례 (3) 종묘 제향의 종류와 운영 (4) 친향(親享)과 알묘(謁廟)의례 등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위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던 중 취업으로 인하여 연구가 중단되었으며, 상기 연구는 제 1차 연도 연구 테마 중 첫 번째 테마를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테마까지 진행되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종묘 복원의 기초자료 : 종묘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왕통과 관련된 정치사적 관점과 종묘 공간의 건축사적 관점이 주류를 이루었다. 본 연구는 종묘를 봉안 공간으로 이해함으로써 기존 연구에서 소홀히 다루었던 종묘 내 신위와 봉안 물품을 고찰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종묘에 봉안된 주요 상징물에 대한 이해를 높일 뿐 아니라 조선시대 실제 봉안된 상징 및 물품들을 세밀하게 밝힘으로써 종묘의 전체적 공간을 봉안하는 데에 필요한 1차적인 자료를 제공해 줄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조선시대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을 생산할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이다.
    2) 국가 의례에 대한 서술의 새로운 방식 : 본 연구는 조선후기 종묘 제례에 관한 것으로, 나아가 국가의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다 줄 것이다. 종묘제향과 희생의 관계는 종묘 제향의 시스템에 대한 연구였다는 점에서 국가 의례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줄 것이다. 희생을 관리하는 전생서의 역할을 종묘 의례 뿐 아니라 국가 제례 전반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국가의례는 정치적인 상관 관계 외에도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틀 내에서 검토되고 이해될 때 보다 더 잘 이해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제례등록󰡕의 자료를 이용한 것은 국가의례의 새로운 방법으로서 그 의의가 있다. 또한, 희생의 수급을 통해서 제사가 당대 자연 환경 속에서 어떻게 변동되었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자연환경에 대응하는 조선후기 국가의례의 능동적 측면을 고찰하였다는 점 다른 연구에서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3) 왕실 문화에 대한 이해의 심화 : 최근 왕실문화에 대한 관심이 학계와 문화사업 모두에서 크게 높아졌다. 이러한 관심의 고조는 왕실의 다양한 콘텐츠에 보다 세밀한 검증을 필요로 한다. 본 연구는 종묘 내부의 구성과 상징물에 대한 봉안 내력을 실증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이러한 지적 관심을 만족시켰다. 조선후기 최상의 고급문화에 속하는 왕실문화는 상징물 하나하나가 당대 뛰어난 예술적 심미안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상징물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는 왕실 문화 전반에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종묘를 제향 공간으로 간주하던 것에서 벗어나 가례의 한 절차로 편입되는 과정을 고찰함으로써 조선후기 왕실문화의 중요한 변화를 지적하였다.
  • 색인어
  • 종묘 신주 보책 봉안 희생 알묘 왕실 왕권 의례 길례 가례 병자호란 자연재해 전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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