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의 유형을 크게 보면 중국은 철학 문화를 대표하고 서양은 과학 문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문화의 접촉에서 보면 이 두 문화는 상호 영향을 미쳤다. 현대 중국의 과학 문화가 서양의 영향 하에서 이루어졌듯이, 18세기 서양의 철학 문화는 중국 문화의 영향 ...
세계 문화의 유형을 크게 보면 중국은 철학 문화를 대표하고 서양은 과학 문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문화의 접촉에서 보면 이 두 문화는 상호 영향을 미쳤다. 현대 중국의 과학 문화가 서양의 영향 하에서 이루어졌듯이, 18세기 서양의 철학 문화는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이루어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프랑스 독일 중심의 근대 계몽사조 형성기에 중국 문명이 서구 지식인의 문화․사상 운동을 촉진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즉 서양이 중세의 신 중심 사회에서 이성 중심 사회로 탈바꿈하는 데 중국 철학인 송유 이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중국의 유교 도덕과 정치는 서구 기독교의 종교 지배에 저항하는 계몽운동의 유력한 도구가 되었다. 철학 시대, 이성의 시대를 대표하는 계몽사조는 프랑스의 볼테르나 백과전서파 학자들, 독일의 라이프니츠와 칸트 등 많은 지식인들을 통해 서구에 본격적인 근대를 가져왔으며, 철학문화인 중국 문명, 특히 宋儒 理學이 근대 이성 개념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과학을 토대로 한 서구 문명은 중국의 이학을 통해서 종교의 시대로부터 철학의 시대로 옮아갔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이단적인 학설이 유럽에 전해짐으로써 유럽 사상계가 일대 자극을 받았고,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기독교와 다른 ‘理學’을 통해서 그들의 계몽 운동의 대기치를 내걸었다는 사실이다. 18세기 프랑스․독일 학자들은 중국 철학에 반대하든 환영하든 간에 모두 송유의 ‘理氣二元說'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중국 철학을 유물론, 무신론으로 인식해서 공격을 가하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중국 철학을 유물론, 무신론으로 인정하여 크게 환영했다. 그런가 하면, 한 측에서는 중국 철학의 ‘理氣說’을 이단 외도로 치부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 측에서는 이 ‘理神論’을 옹호하여 중국 철학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을 가하기도 했다. 전자의 영향은 프랑스 말브랑슈(Malebranche)의 중국 철학 공격이 그 예이며, 후자의 영향은 독일 라이프니츠(Leibniz)의 중국 철학 옹호가 그 예이다. 전자의 공격은 프랑스 백과전서파의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철학에 그 반향을 일으켰고, 후자의 옹호는 마침내 독일 관념론의 정통 철학을 발생시켰다. 전자의 영향이 바로 프랑스 정치 혁명이며, 후자의 영향은 바로 독일의 정신 혁명인 것이다. 이것은 두 계보 차원에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프랑스의 이성파, 즉 데카르트(Descartes)로부터 시작하여 백과전서파의 유물론과 무신론을 거쳐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주었고, 둘째는 독일의 고전 철학, 즉 라이프니츠(Leibniz), 볼프(Wolff)로부터 칸트(Kant), 피히테(Fichte)와 헤겔(Hegel)에 이르는 관념론적 철학으로서 정신 혁명에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송유 이학은 유럽 사상계에 있어서 ‘반기독교’, ‘반신학’, ‘반종교’의 이론적 기초가 되어, 이로 인해서 마침내 유럽의 철학 시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본 연구는 크게 보아 ‘반서구중심주의’의 논의에 합류한다. 하지만, 서구중심주의 극복 논의에 있어서는 기존의 학자들의 예처럼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와 권력 행사를 위한 담론’이라는 단선적 논리의 사이드식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설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이 단순히 지배적인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은 이미 검증되었다. 나는 본 논고의 ‘근대 유럽 계몽주의에 대한 송유 이학의 영향’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오리엔탈리즘이 서구 제국주의적 권력의 광범위한 지배 구조를 강화했다는 면보다는 그것을 전복하거나 서구의 자기비판과 자기갱신을 위한 귀감이 되었다는 면에 더 주목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근대 서구의 지적 성취에 동양사상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이 논의는 어쩌면 동서 철학 교류사 측면에서 존 홉슨(JohnM. Hobson)의 서구 문명의 동양적 기원 즉 ‘동양적 서양의 발흥’ 및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라는 노선과 동일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다만, 샤오메이 천의 경우처럼 문화 수용 과정을 그 수용자의 능동적인 주체성을 부각시키는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단순한 동양 내지는 서양의 이분법적 승리주의를 넘어선 동서 문명의 유기체적 화합점 모색이 본고의 주제가 될 것이다. 역사상 세계 인류가 함께 현대 문명을 만들었고, 때문에 인류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동서를 막론해 함께 합심해 노력해야 한다는 ‘인류애적 세계주의 시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업을 위해 본 ‘근대 유럽 계몽주의에 대한 송유 이학의 영향’이란 연구는 문화 철학적 의미에 있어서 하나의 모형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