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에 나타난 불교생태학적 상상력은 크게 연기론적 상상력, 윤회론적 상상력, 대칭적 상상력의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국 현대시에서 연기론적 상상력은 카오스적인 인과론에 의하여 하나의 유기체로 통합된 우주-생태계를 형상화하고 있다. 미당의 〈 ...
한국현대시에 나타난 불교생태학적 상상력은 크게 연기론적 상상력, 윤회론적 상상력, 대칭적 상상력의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국 현대시에서 연기론적 상상력은 카오스적인 인과론에 의하여 하나의 유기체로 통합된 우주-생태계를 형상화하고 있다. 미당의 〈국화 옆에서〉이광수의 〈꽃〉, 조지훈의〈피리를 불면〉, 미당의 〈겨울의 정〉등의 작품은 연기론적 상상력이 잘 드러난다. 이러한 작품들은 우주가 카오스적-연기론적 인과론에 의하여 상호의존성(순환성과 항상성)으로 이루어진 우주-생태계를 형상화하고 있다.
한국 현대시인들은 윤회를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순환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들은 윤회를 자아와 타자, 인간과 생물, 생물과 무생물을 하나의 가족으로 묶어주는 생태학적이고 미학적인 순환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당의 〈旅愁〉, 조지훈의 〈念願〉 등의 작품은 사후의 자아가 해체되어 우주로 흩어져 다양한 물질과 개체로 흘러들어가고 합생되는 윤회론적 상상력을 담고 있다. 한국 현대시에서 윤회론적 상상력의 핵심에는 사랑이 놓여있다. 만해의 〈나의 〉, 미당의 〈인연설화조〉,〈마른 여울목〉, 박재삼의 〈恨〉, 미당의〈산수유꽃나무에 말한 비밀〉, 박재삼의〈꽃나무〉, 이형기의〈草上靜思〉, 박재삼의 〈天地無劃〉등의 작품은 남녀 사이의 연정, 이웃과 벗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등을 윤회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윤회론적 상상력에서 사랑은 심층생태론자들이 말하는 자아실현과 맞물린 사랑이다.
한국 현대시에서 대칭적 상상력은 마이크로코슴(microcosm)에 대한 사랑과 관심, 겸손한 자아, 전일적 생명체로서의 우주 등을 형상화한다. 김달진의 〈벌레〉는 프랙탈적 겹으로 이루어진 우주를 형상화하고 있다. 만해의 〈일경초의 생명〉,〈일경초〉등에는 작은 풀 한 포기가 갖는 위대한 생태적 가치가 담겨있다. 만해는 〈쥐〉,〈파리〉,〈모기〉등의 시편에서 해충이나 유해동물의 생태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이광수의 〈그 나무 왜 꺾나〉,〈구더기와 개미〉,〈도라지〉등의 시편은 마이크로코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풀잎단장〉을 비롯한 조지훈의 월정사 시편도 마이크로코슴를 형상화하고 있다. 조지훈의 〈묘망〉, 김달진의〈샘물〉등은 무한한 우주에 대비하여 작은 자아를 그려내면서, 우주-생태계 내의 자아를 겸손한 자아로 만든다. 반면, 이광수의 〈지구〉는 프랙탈적 상상력에 의하여 자아를 지구-태양계-우주의 차원으로 부풀리면서, 자아-지구-태양계-우주를 하나의 단일한 생명체로 통합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한국 현대시의 불교생태학적 상상력은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갖는다. 첫째, 한국 현대시인들은 고대나 중세로의 회귀의 차원에서 불교를 수용한 것이 아니라, 불교생태학적 상상력이 현대 과학과 공존하면서 과학의 미래를 지남(指南)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 한국 현대시의 불교생태학적 상상력은 미학주의의 맞은편에서 생태-윤리적인 시학의 큰 줄기를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셋째, 산업화 시대 이전의 불교생태학적 상상력은 전통으로서의 불교를 수용하여, 20세기 후반 한국생태시학의 토대를 다져놓으면서, 문학사적 연속성의 확보에 크게 기여하였다.
본 연구의 성과는 다음 몇 가지 차원에서 활용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현대시의 전통사상을 대안적 지성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확보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다. 둘째, 생태시학의 연구 대상을 산업화 시대이전으로 끌어올리고, 연구의 학술적인 성격을 강화하는 데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글로벌한 차원의 생태시학사 차원에서 한국 현대시의 위상과 의의를 제고(提高)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