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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活佛轉世 제도의 확산과 근세 내륙아시아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티벳 活佛轉世 제도의 확산과 근세 내륙아시아 | 2006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성수(연세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17
선정년도 2006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8년 02월 29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8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티벳을 둘러싼 동부 유라시아 또는 중동부 유라시아에 걸쳐 14세기는 새로운 질서의 모색이라는 도전을 맞이하게 된다. 1368년 元朝가 북경에서 퇴각함으로써 몽골세계제국의 위상에 큰 변화가 발생했고, 원조의 직간접적인 통치를 받고 있던 주변 정치세력들은 새로이 등장한 명조와의 관계 형성을 시도하면서도 여전히 북방의 패자인 몽골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다시 말해 과거와 같은 강력하고 절대적인 주변 세력이 존재하지 않으며, 나름대로 정치 상황에 따라 독자적인 정권의 수립 또는 새로운 내부 질서의 창출이 가능한 국제적 환경이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시아 근세의 논의와 관련하여 필자는 이 시기가 중요한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 14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엽, 즉 몽골세계제국이 쇠퇴하고, 청조의 변강지배 질서가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기 까지 4세기에 걸친 시기에 대한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시기는 동부 유라시아가 오늘의 모습으로 변천되는 데 중요한 고비가 되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 내륙아시아의 문제를 다룰 때는 역시 티벳, 몽골, 만주가 주요한 분석의 대상이며, 그를 아우르는 티벳불교적 질서가 이 시대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에 이 각각의 민족 집단과 티벳 불교적 질서의 관계를 하나하나 이해해 볼 필요가 있겠다. 몽골의 경우, 다민족 국가 대몽골국 시대를 맞아 몽골 고원의 여러 부족들은 대규모의 통일 국가 시대를 거쳐 서서히 몽골이라는 하나의 민족을 형성해 갔다. 이들이 과연 언제부터 민족으로서의 몽골로 거듭 태어났는지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나, 최소한 이 문제를 설명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할 점은 과연 이들이 무엇을 기준으로 몽골인과 타민족을 구분하기 시작했는가 하는 점, 즉 몽골인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몽골에 수용되는 티벳 불교는 단지 샤머니즘을 대신할 고급 종교였다기 보다는 제국시대의 전통을 회복한다는 민족 정체성의 문제와 깊이 연결된다. 이는 활불제도의 성격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 제도가 만주, 티벳, 몽골에서 각기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다른 발전을 방향성을 갖게 되는 원인을 살펴봄으로써 이 시기 내륙 아시아의 시대 성격을 이해하고자 한다.
  • 영문
  • After the collapse of Yuan Dynasty, the East part of Eurasian World faced a new era for the establishment new regional disorder, like as the conflicts between the Mongols and the Ming court. During this time, it was happened that Sakyapa were unable to resist the Pakmodrupa forces any longer, Tibetan leadership shifted to the Pakmodrupa Jangchup Gyeltsen(1302-1364) from the Lang family.
    He tried to re-establish the old traditions from the Tubo dynasty 7-9th centuries. we can find some evidences from the new code of Law and some religion ceremonies. For examples, under the support of Pakmodrupa, in 1409 Tsongkhapa established the major Lhasa festival The Great Prayer, commemorating the Buddha's manifestation of miracles and performed during the first lunar month of the New Year. This festival focused public energy on a common religious enterprise, in which both the supremacy of the sangha and Tibet's past history were honored; for the pageantry at Lhasa's ancient shrines required, among other symbolic gestures, that the lay aristocracy be dressed in costumes representing ancient Tibetan imperial fashion. The similar phenomenon also can be found in Mongolia. From 16th century Mongolian tribes re-converted the Tibetan Buddhism which had been a principal religion during the Yuan dynasty. Because of that reason, the Tibetan Buddhism evoked the memory of the Mongol Empire(Yeke Mongol Ulus)'s honor which had originated from the Qinggis Khan and Kubilai Khan. By the middle of 17th century, most of the Mongols had aspired to be a Tibetan Buddhist. Under these circumstances the incarnation system emerged in Tibet, but made gigantic development in Qinghai, Mongolia and so on. In the beginning this system invented for the dissemination of the kagyu lineage in Tibet, but in Mongolia this system made important role to strengthen the hegemony of the Qinggisid lineage. From these two cases we can approach to the different historical role of this same system aruond the Inner Aisa. This topic can provide some sources for the discussion about the early modern, nation, and the nationalism in inner asia.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티벳을 둘러싼 동부 유라시아 또는 중동부 유라시아에 걸쳐 14세기는 새로운 질서의 모색이라는 도전을 맞이하게 된다. 1368년 元朝가 북경에서 퇴각함으로써 몽골세계제국의 위상에 큰 변화가 발생했고, 원조의 직간접적인 통치를 받고 있던 주변 정치세력들은 새로이 등장한 명조와의 관계 형성을 시도하면서도 여전히 북방의 패자인 몽골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다시 말해 과거와 같은 강력하고 절대적인 주변 세력이 존재하지 않으며, 나름대로 정치 상황에 따라 독자적인 정권의 수립 또는 새로운 내부 질서의 창출이 가능한 국제적 환경이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시아 근세의 논의와 관련하여 필자는 이 시기가 중요한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 14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엽, 즉 몽골세계제국이 쇠퇴하고, 청조의 변강지배 질서가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기 까지 4세기에 걸친 시기에 대한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시기는 동부 유라시아가 오늘의 모습으로 변천되는 데 중요한 고비가 되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 내륙아시아의 문제를 다룰 때는 역시 티벳, 몽골, 만주가 주요한 분석의 대상이며, 그를 아우르는 티벳불교적 질서가 이 시대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에 이 각각의 민족 집단과 티벳 불교적 질서의 관계를 하나하나 이해해 볼 필요가 있겠다. 몽골의 경우, 다민족 국가 대몽골국 시대를 맞아 몽골 고원의 여러 부족들은 대규모의 통일 국가 시대를 거쳐 서서히 몽골이라는 하나의 민족을 형성해 갔다. 이들이 과연 언제부터 민족으로서의 몽골로 거듭 태어났는지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나, 최소한 이 문제를 설명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할 점은 과연 이들이 무엇을 기준으로 몽골인과 타민족을 구분하기 시작했는가 하는 점, 즉 몽골인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몽골에 수용되는 티벳 불교는 단지 샤머니즘을 대신할 고급 종교였다기 보다는 제국시대의 전통을 회복한다는 민족 정체성의 문제와 깊이 연결된다. 이는 활불제도의 성격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 제도가 만주, 티벳, 몽골에서 각기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다른 발전을 방향성을 갖게 되는 원인을 살펴봄으로써 이 시기 내륙 아시아의 시대 성격을 이해하고자 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수를 통해 본인은 17-19세기 티벳불교 전파 지역에 산재해 있던 활불 계통의 존재 양태를 파악하고, 겔룩 교단 이외의 사캬, 파모추, 닝마 등 교단의 활불들이 겔룩 교단의 영향 아래 활불 전세제도를 적극 수용하게 되는 과정과 이들 교단의 활불들이 겔룩 교단의 그것과 어떤 차별성을 갖는지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잘 알려진 겔룩 교단 이외의 여러 교단 활불 계통에 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를 통해 겔룩 교단이 주도했던 17세기 이후 여타 교단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으며, 기존의 연구가 지니고 있던 겔룩 교단 위주의 연구 풍토에서 새로운 논의를 전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이 문제는 이미 러시아의 Uspensky와 같은 학자들이 제기했던 닝마, 카르마 교단과 청조의 관계-구체적으로는 이 교단의 활불과 청 황실의 관계- 등에 관한 논의를 확대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본 연수를 통해 필자는 17-19세기 내륙아시아 연구와 관련된 기초적인 사료를 발굴,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사실상 이 시기 내륙아시아는 티벳 불교가 승려나 지식인 계층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던 시기이며, 많은 자료가 활불이나 고승의 전기문, 이들에 의해 작성된 기도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활불과 관련된 자료는 결국 이 시기 주요한 자료를 망라하게 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단, 활불의 전기문이 갖는 문제점은 많은 부분을 종교적 행위와 관련하여 기술하고 있고, 활불이 정치 문제에 개입한 경우 자세한 내용을 적지 않고, 사건의 경과 정도만 기술하는 경우가 많아 檔案 자료에 비해 정치사 연구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 이들 자료는 독자적인 불교식 세계관을 바탕으로 청조 중심의 변강지배 질서 속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불교적 지역 질서를 설명하는 근거를 제시하기도 하므로 내륙아시아의 다극화된 양상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를 통해 필자는 시대구분론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 그간 역사학계는 시대구분론의 형식화된 연구 풍토에서 벗어나 실제 역사상을 면밀히 밝히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미시사에 관한 관심을 확대시켜 왔으며, 정치사나 경제사 중심의 논의에서 탈피하고자 사회사적 전망에 눈을 돌려 왔다. 이에 상대적으로 각 시대의 독자적 성격을 설명하면서도, 그 위에서 각 시기의 유기적 관계를 설명하는 거시적 시각을 견지한 시대구분론에 대한 관심이 후퇴하였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동아시아론이나 경제사 방면에서 이미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는 세계체제론 등을 통해 다시금 시대구분론이 역사학의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즉, 아시아의 근세 또는 (초기) 근대성의 논쟁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본 연수를 통해 필자는 17세기 이래 몽골과 티벳, 청조라는 내륙아시아의 주요 구성원을 통해 이 시기 내륙아시아의 (초기) 근대를 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이를 통해 여타 동아시아 국가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과의 의견교환, 비교연구를 수행하여 보다 보편적이며 타당한 논리 구조를 세워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에 필자는 본 연구가 청대사나 내륙아시아사 넓게는 동아시아사의 시대구분 논쟁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색인어
  • 티벳불교/ 몽골/ 겔룩바/ 청조/ 팍모추바 정권/ 활불전세제도/ 근세 내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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