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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방정례로 보는 조선왕실의 복식구조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상방정례로 보는 조선왕실의 복식구조 | 2006 년 | 김소현(배화여자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G00090
선정년도 2006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8년 04월 02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8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왕실의 모든 의례는 곧 국가 의례였으므로 의례의 격에 맞는 복식을 준비하여 국가의례의 완성도를 높였으며 『상방정례』는 왕실복식의 매뉴얼 기능을 하였다. 왕실 의례복은 전교에 따라 조제하여 올리거나 단자를 만들어 품의한 후 낙점이 내려오면 실행하였고 평상복은 항시 이루어지는 진상의 예로 의복의 재료를 올렸다.
    상의원에서는 평상복 제작에 소요되는 옷감과 재료를 항시 이루어지는 진상(進上)의 예로 각궁과 각전에 올려서 만들도록 하였다. 왕실 남성이 착용하는 평상복은 반가의 남성이 착용하는 평상복과 다를 바 없이 바지[把持], 적삼[삼아(衫兒)], 저고리[과두(裹肚)], 철릭[帖裏], 더그레[加文剌]로 구성된다. 상투를 튼 머리는 말총 망건으로 정리하고, 겉에 입는 포의 종류에 따라 종립(鬃笠)[마미두면(馬尾頭冕)]을 쓰거나 익선관을 썼다. 왕실여인이 착용하는 평상복 역시 반가 여인이 착용하는 복장과 다를 바 없다. 니의(裏衣)[속곳], 赤亇[치마], 삼아(衫兒)[적삼], 고의(串衣)[저고리]가 기본복장이다.
    왕실의 각종의례를 실행할 때마다 격에 맞는 의례복을 갖추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왕실복식을 담당한 상의원에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필요한 복식을 준비하여 올렸다. 그 과정은 전례에 따르거나 전교에 따랐으며, 연례적으로 치르지 않던 왕실행사가 생기면 단자를 만들어서 품의하고 결재하는 과정을 거쳐서 복식을 준비하였다. 평상복은 여름철에 홑옷을 입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개 겹옷을 마련하였지만 의례복의 경우에는 조선전기처럼 홑옷을 겹쳐 입는 방식을 고수했다.
    일상적인 하루일과에 왕은 익선관과 곤룡포로 구성되는 시사복(視事服)을 입었다. 익선관은 모라(毛羅)로 싸고 두후(頭後)에 대각(大角)과 소각(小角)을 위로 향하게 달았다. 곤룡포는 대홍단(大紅緞)으로 제작하고 여름용은 대홍사(大紅紗)로 하였으며, 포에는 첩금한 오조원룡보(五爪圓龍補)를 달았다. 옥대의 바탕은 대홍단(大紅緞)으로 싸고 금화(金畵)를 그린 위에 조옥(雕玉)을 붙였으며, 화(靴)는 검은색 고라니가죽[궤자(麂子)]으로 만들고 여름용은 검은색 담비가죽[사피(斜皮)]으로 제작하였다. 왕비나 세자빈은 속저고리로 분홍이나 보라색을 입고 겉저고리는 송화색으로 하였으며 그 위에 초록당의를 입었다.
    왕은 능행길에 융복을 입고, 능이나 원을 배알할 때는 익선관(翼善冠), 참포(黲袍), 오서대(烏犀帶)를 갖추었다. 친림열무에 갖추는 복장과 북한산에 거둥할 때의 복장은 모두 능행시의 복장과 동일하다. 친림모화관관무재에는 열병의례에 착용했던 종립을 벗고, 익선관을 쓴 상복(常服)차림을 하였다. 황제가 내린 칙사를 맞이하기 위해서 모화관에 거둥할 때 임금은 상복을 갖추었다. 왕․왕비․왕대비․대왕대비 등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행사인 존숭(尊崇)과 왕실 잔치인 진연(進宴)에는 참석인물들이 모두 상복을 착용했다. 임금과 세자는 익선관․곤룡포차림이며, 대왕대비․왕비․세자빈은 적의를 갖추지만 용보를 단 법복용 적의와 구별되는 상복용 적의 즉 옥대, 패옥, 규를 갖추지 않고 봉황보를 단 적의를 입었다. 왕세자 입학에는 청금복(靑衿服)을 갖추었다.
    왕실 법복은 왕실의 적통을 잇는 인물만이 입을 수 있는 최고의 예복으로 책봉, 관례, 가례에 착용하였다. 육례로 구성되는 가례의 절차 중 왕이 면복을 입는 의례는 간택된 왕비 집에 청혼하기 위하여 사자를 보내는 납채의(納采儀)와 가례의 핵심절차인 친영의(親迎儀)이며, 혼인의 징표로 왕비 집에 예물을 보내는 납징의(納徵儀)와 책비의(冊妃儀)에는 원유관․강사포를 입었다. 왕세자는 납징의와 책빈의에는 참여하지 않으므로 원유관․강사포를 착용할 일이 없지만 역대 가례도감의궤에는 동뢰연에 왕세자가 원유관․강사포를 착용하는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왕세자 가례법복에 강사포를 포함시키지 않은 『상방정례』를 근거로 생각해 본다면 왕세자도 왕처럼 동뢰연에 면복을 착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왕비와 세자빈은 육례의 주요 의례에서 모두 적의를 입었다.
    착용사례를 중심으로 조선왕실의 복식 구조를 밝혀냄으로써 조선시대 복식의 큰 축을 이루는 왕실복식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체계를 구축하고 이해의 폭을 넓혔다.. 또한 아직 연구의 손길이 닿지 않은 다양한 왕실 사료를 이해하고 분석하여 더 깊은 연구로 나아가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며, 그동안 갖고 있던 왕실복식에 대한 단편적이고 편중된 지식을 수정하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방대한 왕실행사를 제한된 지면에 다루어야하는 어려움이 있어서 보다 세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 영문
  • The Regular rule of Sang-uiwon served as a manunal of Royal Attires. According to the procedures, like as making letters about the affairs, consulting, and permission, Royal ceremonial attire was made and presented to the royal family. The materials for the Royal informal dress were presented in accordance with usual tributes.
    There was no difference in informal dress between the royal family and noble class. But the name of items was different such as Goa du[man's jacket], Go ui[woman's jacket], etc. The royal family continued to wear old days dress as akjurm and noui, which were not worn by common people any more, as a means of differentiating clothes.
    Bub-bok, which was designed only for key figures of the royal family such as the king, crown prince, queen, and crown princess, was the best status symbol. Because of its highly limited example of wearing, bub-bok was the authority of the wearer itself, with only difference in color, pattern, and material depending on social status.
    Yong-po is the most frequently worn by the Royal men. Yong-po worn with jong-lip served as yung-bok or gun-bok, and iksun-gwan functioned as sang-bok. Royal Attire for men was clearly divided into Yong-po as sang-bok, bub-bok as myun-bok and gangsa-po, while jeok-ui for women functioned as both sang-bok and bub-bok. However, the use of jeok-ui was defined by differentiate sang-bok from bub-bok like as the pattern of Hyung-bae, number of embroidered round badges, shoes and ornament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The Regular rule of Sang-uiwon served as a manunal of Royal Attires. According to the procedures, like as making letters about the affairs, consulting, and permission, Royal ceremonial attire was made and presented to the royal family. The materials for the Royal informal dress were presented in accordance with usual tributes.
    There was no difference in informal dress between the royal family and noble class. But the name of items was different such as Goa du[man's jacket], Go ui[woman's jacket], etc. The royal family continued to wear old days dress as akjurm and noui, which were not worn by common people any more, as a means of differentiating clothes.
    Bub-bok, which was designed only for key figures of the royal family such as the king, crown prince, queen, and crown princess, was the best status symbol. Because of its highly limited example of wearing, bub-bok was the authority of the wearer itself, with only difference in color, pattern, and material depending on social status.
    Yong-po is the most frequently worn by the Royal men. Yong-po worn with jong-lip served as yung-bok or gun-bok, and iksun-gwan functioned as sang-bok. Royal Attire for men was clearly divided into Yong-po as sang-bok, bub-bok as myun-bok and gangsa-po, while jeok-ui for women functioned as both sang-bok and bub-bok. However, the use of jeok-ui was defined by differentiate sang-bok from bub-bok like as the pattern of Hyung-bae, number of embroidered round badges, shoes and ornaments.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왕실의 모든 의례는 곧 국가 의례였으므로 의례의 격에 맞는 복식을 준비하여 국가의례의 완성도를 높였으며 『상방정례』는 왕실복식의 매뉴얼 기능을 하였다. 왕실 의례복은 전교에 따라 조제하여 올리거나 단자를 만들어 품의한 후 낙점이 내려오면 실행하였고 평상복은 항시 이루어지는 진상의 예로 의복의 재료를 올렸다.
    상의원에서는 평상복 제작에 소요되는 옷감과 재료를 항시 이루어지는 진상(進上)의 예로 각궁과 각전에 올려서 만들도록 하였다. 왕실 남성이 착용하는 평상복은 반가의 남성이 착용하는 평상복과 다를 바 없이 바지[把持], 적삼[삼아(衫兒)], 저고리[과두(裹肚)], 철릭[帖裏], 더그레[加文剌]로 구성된다. 상투를 튼 머리는 말총 망건으로 정리하고, 겉에 입는 포의 종류에 따라 종립(鬃笠)[마미두면(馬尾頭冕)]을 쓰거나 익선관을 썼다. 왕실여인이 착용하는 평상복 역시 반가 여인이 착용하는 복장과 다를 바 없다. 니의(裏衣)[속곳], 赤亇[치마], 삼아(衫兒)[적삼], 고의(串衣)[저고리]가 기본복장이다.
    왕실의 각종의례를 실행할 때마다 격에 맞는 의례복을 갖추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왕실복식을 담당한 상의원에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필요한 복식을 준비하여 올렸다. 그 과정은 전례에 따르거나 전교에 따랐으며, 연례적으로 치르지 않던 왕실행사가 생기면 단자를 만들어서 품의하고 결재하는 과정을 거쳐서 복식을 준비하였다. 평상복은 여름철에 홑옷을 입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개 겹옷을 마련하였지만 의례복의 경우에는 조선전기처럼 홑옷을 겹쳐 입는 방식을 고수했다.
    일상적인 하루일과에 왕은 익선관과 곤룡포로 구성되는 시사복(視事服)을 입었다. 익선관은 모라(毛羅)로 싸고 두후(頭後)에 대각(大角)과 소각(小角)을 위로 향하게 달았다. 곤룡포는 대홍단(大紅緞)으로 제작하고 여름용은 대홍사(大紅紗)로 하였으며, 포에는 첩금한 오조원룡보(五爪圓龍補)를 달았다. 옥대의 바탕은 대홍단(大紅緞)으로 싸고 금화(金畵)를 그린 위에 조옥(雕玉)을 붙였으며, 화(靴)는 검은색 고라니가죽[궤자(麂子)]으로 만들고 여름용은 검은색 담비가죽[사피(斜皮)]으로 제작하였다. 왕비나 세자빈은 속저고리로 분홍이나 보라색을 입고 겉저고리는 송화색으로 하였으며 그 위에 초록당의를 입었다.
    왕은 능행길에 융복을 입고, 능이나 원을 배알할 때는 익선관(翼善冠), 참포(黲袍), 오서대(烏犀帶)를 갖추었다. 친림열무에 갖추는 복장과 북한산에 거둥할 때의 복장은 모두 능행시의 복장과 동일하다. 친림모화관관무재에는 열병의례에 착용했던 종립을 벗고, 익선관을 쓴 상복(常服)차림을 하였다. 황제가 내린 칙사를 맞이하기 위해서 모화관에 거둥할 때 임금은 상복을 갖추었다. 왕․왕비․왕대비․대왕대비 등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행사인 존숭(尊崇)과 왕실 잔치인 진연(進宴)에는 참석인물들이 모두 상복을 착용했다. 임금과 세자는 익선관․곤룡포차림이며, 대왕대비․왕비․세자빈은 적의를 갖추지만 용보를 단 법복용 적의와 구별되는 상복용 적의 즉 옥대, 패옥, 규를 갖추지 않고 봉황보를 단 적의를 입었다. 왕세자 입학에는 청금복(靑衿服)을 갖추었다.
    왕실 법복은 왕실의 적통을 잇는 인물만이 입을 수 있는 최고의 예복으로 책봉, 관례, 가례에 착용하였다. 육례로 구성되는 가례의 절차 중 왕이 면복을 입는 의례는 간택된 왕비 집에 청혼하기 위하여 사자를 보내는 납채의(納采儀)와 가례의 핵심절차인 친영의(親迎儀)이며, 혼인의 징표로 왕비 집에 예물을 보내는 납징의(納徵儀)와 책비의(冊妃儀)에는 원유관․강사포를 입었다. 왕세자는 납징의와 책빈의에는 참여하지 않으므로 원유관․강사포를 착용할 일이 없지만 역대 가례도감의궤에는 동뢰연에 왕세자가 원유관․강사포를 착용하는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왕세자 가례법복에 강사포를 포함시키지 않은 『상방정례』를 근거로 생각해 본다면 왕세자도 왕처럼 동뢰연에 면복을 착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왕비와 세자빈은 육례의 주요 의례에서 모두 적의를 입었다.
    착용사례를 중심으로 조선왕실의 복식 구조를 밝혀냄으로써 조선시대 복식의 큰 축을 이루는 왕실복식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체계를 구축하고 이해의 폭을 넓혔다.. 또한 아직 연구의 손길이 닿지 않은 다양한 왕실 사료를 이해하고 분석하여 더 깊은 연구로 나아가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며, 그동안 갖고 있던 왕실복식에 대한 단편적이고 편중된 지식을 수정하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방대한 왕실행사를 제한된 지면에 다루어야하는 어려움이 있어서 보다 세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 색인어
  • 상방정례(Regular rule of Sang-uiwon), 왕실복식(Royal attire), 의대(Royal informal dress), 융복(Yung-bok), 상복(Sang-bok), 법복(Bub-b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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