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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3741&local_id=10025200
20세기 전반 지역사회의 재편과 지역민의 대응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20세기 전반 지역사회의 재편과 지역민의 대응 | 2007 Year | 김건태(성균관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09
Year(selected) 2007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중단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10년 01월 27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10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조선후기에는 개간 가능지가 점차 줄어들고, 分割相續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개별 양반가의 경제력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한 양반들은 그들 모두의 재산규모가 영세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편을 강구했다. 그들은 長子에게 토지를 집중시켰다. 장자우대상속을 실시한 결과 조선후기 농촌 양반들 대부분은 영세지주로 전락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땅으로는 생계조차 연명하기 어려운 부류도 생기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빈한한 양반이 늘어남으로써 양반과 상민의 경제력 차이가 그 이전 시기보다 줄어들게 되었다. 이같은 현실 하에서 양반들이 개별·분산적으로 행동한다면, 향촌사회에서 그 이전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쉽지 않다. 양반들이 향촌사회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집단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양반동성촌락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19세기가 되면 동성촌락은 더 이상 양반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상민들도 동성촌락을 형성해갔다. 이러한 현상은 촌락 단위로 부세를 납부하는 里定法의 확산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진행되었다. 즉 이정법이 확산됨으로써 班村에 거주하는 상민들은 양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부세를 부담했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한 상민들은 饒戶富民을 중심으로 새로운 행정촌락을 형성하고자 부단히 노력했고, 그 결과가 바로 조선후기에 활발히 진행된 分洞이었다. 分洞의 결과 하나의 里가 양반들로 구성된 班村과 상민들로 구성된 常村으로 이분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같이 구성원의 신분구성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면서 성립된 동성촌락은 20세기 들어 해체되기 시작한다. 해체시기와 해체양상은 동성촌락마다 조금씩 다르다. 본 연구에서는 촌락민의 구성이 동성촌락의 해체시기와 해체양상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본 연구는 20세기 전반 전라도 長興郡 蓉山面 上金里, 下金里, 鸛池里에 주목했다. 조선후기에서 20세기 전반 사이 향교임원과 면약임원의 배출 현황을 통해 볼 때 상금리는 班村, 하금리는 中村, 관지리는 下村이었다. 20세기 전반 3개 리의 토지이전율, 토지소유자, 토지소유 불평도 등의 추이는 里에 따라 상이했다. 토지이전율의 고하와 촌락의 위상이 비례관계를 보이고 있다. 이전율은 상금리에서 가장 높고, 관지리에서 가장 낮다. 촌락별 토지소유자 수의 증가율과 촌락의 위상 사이에는 비례 관계가 확인되지 않는다. 토지소유자 증가율은 상금리에서 가장 높고, 그 다음 관지리, 하금리 순이다. 촌락의 위상은 토지소유 불평도 추이에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렇듯 일제시기 동안 토지소유구조 변화상은 3개 리에서 뚜렷한 차별성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일제시기가 되면 班常 문제가 경제적 부분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고 할 수 있다.
  • English
  • This paper examines the impact of traditional status system on landownership pattern in the early 20th century Korea. Three single-surname villages in Changhǔng County in Chŏlla Province are chosen for the case study: Sanggǔmni (S Village), Hagǔmni (H Village), and Kwanjiri (K Village). In terms of the number of members affiliated with the Village School and the County Council, S Village was a yangban village, H Village was a middle status village, and K village was a low status village.
    Despite a hierarchy evident in status, however, three villages show no fixed pattern in rate of land transfers, increaseof landowners, and concentration of land distribution. In the rate of land transfer, there exists a correspondence between the higher village status and the rate of land transfer, thus S Village has the highest rate and K Village has the lowest. Yet, there exists no correspondence between the increase of landowners and the village status, thus S Village has the largest increase, K Village has the second, and H Village has the lowest. Furthermore, the village status has little impact on the concentration of land distribution.
    In short, the landownership patterns in these three villages show little connection with their status. In other words, entering the 20th century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e village status as yangban and commoner has little impact on its economic change.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 연구결과는 2편의 논문으로 작성되었다.
    1) 20세기 전반 동성촌락의 경제적 변화
    이 글은 신분제의 유제가 20세기 전반 토지소유 구조 변화에 미친 영향을 고찰해 보려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20세기 전반 전라도 長興郡 蓉山面 上金里, 下金里, 鸛池里에 주목했다. 조선후기에서 20세기 전반 사이 향교임원과 면약임원의 배출 현황을 통해 볼 때 상금리는 班村, 하금리는 中村, 관지리는 下村이었다. 20세기 전반 3개 리의 토지이전율, 토지소유자, 토지소유 불평도 등의 추이는 里에 따라 상이했다. 토지이전율의 고하와 촌락의 위상이 비례관계를 보이고 있다. 이전율은 상금리에서 가장 높고, 관지리에서 가장 낮다. 촌락별 토지소유자 수의 증가율과 촌락의 위상 사이에는 비례 관계가 확인되지 않는다. 토지소유자 증가율은 상금리에서 가장 높고, 그 다음 관지리, 하금리 순이다. 촌락의 위상은 토지소유 불평도 추이에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렇듯 일제시기 동안 토지소유구조 변화상은 3개 리에서 뚜렷한 차별성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일제시기가 되면 班常 문제가 경제적 부분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고 할 수 있다.
    2) 조선후기 契의 재정운영 양상과 그 성격
    이 글은 조선시대 계의 재정운영의 특성과 그 변화상에 주목한다는 문제의식 하에 전라도 장흥군 용산면 상금리 수원백씨들이 創契한 書契의 재정운영에 주목하였다. [書契冊]의 錢 지출규모는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이었다. 租를 실제로 판매하지 않고, 다만 장부상에서 조를 돈으로 교환한 것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이 발생했다. 서계는 수입규모에 맞추어 지출규모를 결정했던 것이 아니고 지출규모를 고려하여 수입규모를 결정했다. 즉 量入爲出한 것이 아니고 量出制入하였던 것이다. 이는 서계의 재정운영 시스템은 단순재생산 체제를 지향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서계는 20세기 전후한 무렵부터 재정규모를 확대하려고 했고, 1920 ∼ 30년대 들어 큰 위기가 닥쳐도 스스로 헤쳐나 갈 수 있을 만큼 견실한 재무구조를 같게 되었다. 재정의 확대재생산을 끝없이 추구하는 모습, 이것은 전통시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근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시대에는 필요한 만큼 재정을 확보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것이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본 연구과제는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을 지역사회를 매개로 고찰한다. 공간자료의 광범위한 활용과 현지자료의 발굴 및 심층 분석을 통해 중앙중심적이고 정책사적인 기존 연구의 시각을 극복하고 지역민의 삶에 기반한 지역사회 연구를 진행한다.
    따라서 본 연구과제의 결과는 지역사회 연구의 활성화에 기여할 뿐 아니라 한국근현대사 연구에서 부족한 연구 분야였던 지역사회 연구를 종합적으로 밝힘으로써 한국 근현대 역사상의 재정립에도 도움이 된다.
    현재 지방자치시대는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이해는 현재 지역사회의 기원이 되는 한말, 일제강점기의 지역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학계의 지역사회에 대한 연구는 중앙중심적인 연구에 종속되어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연구가 제시할 지역사회에 대한 새로운 역사상은 지역사회를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현재의 지역정책을 수립하는데 역사적으로 중요한 판단기준을 제공해 주어 정책의 내실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Index terms
  • 향교임원, 면약임원, 토지이전율, 토지소유자, 토지소유 불평등도, 契, 量入爲出, 量出制入, 단순재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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