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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권력의 자기재현: 조선총독부의 선전활동과 국가효과, 1919~1936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식민권력의 자기재현: 조선총독부의 선전활동과 국가효과, 1919~1936 | 2007 Year | 정근식(서울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B00089
Year(selected) 2007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10년 01월 29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10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본 연구는 1919년에서 1936년 동안 조선총독부의 자기재현 활동을 중심적인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상호 연관된 이론적 문제제기의 산물이다. 첫째, 조선총독부는 ‘식민국가’인가 둘째, 조선총독부는 ‘선전’으로 통칭되는 다차원적인 자기재현적 실천을 통해 어떠한 표상을 생산하였는가 셋째, 이러한 표상을 통해 총독부는 대내외적으로 어떠한 정치사회적 효과를 창출하였는가 본 연구는 1919~1936년에 이르는 조선총독부의 선전활동에 대한 미디어 분석적 연구를 통하여 식민권력의 자기재현적 실천과 그 국가효과의 복합성을 이론화하고자 한다.
    조선총독부의 지배는 국사학(national history)적 관점에서는 ‘국망’, 즉 외세의 강점에 의한 ‘국가부재’ 또는 ‘국가소멸’의 상태로 서술되어 왔던 데 반해, 사회과학적 관점에서는 일반적으로 '식민정부' 혹은 ‘식민국가’에 의한 통치로 인식되어 왔다. 조선총독부가 제국 일본의 하나의 독자적인 행정적 단위로서 성립·운영되었음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하나의 통합된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일제의 식민 지배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국가부재의 상황인지 아니면, 식민국가의 통치인지, 권력의 실체를 선험적으로 확정하기 이전에, 조선총독부가 어떻게 대외적으로 식민지 ‘조선’ 위에 군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는지, 즉 권력의 실천 및 효과를 검토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본 연구는 식민권력의 문제를 실체보다는 실천 및 효과에 초점을 맞추어, 식민권력의 자기재현적 실천과 그 사회적 효과에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총독부는 대내외적으로 이러한 그 자신의 태생적 모순성을 호도하기 위해 대단히 과장된 자기재현 전략을 구사했다. ‘검열’과 ‘선전’으로 대표되는 총독부의 자기재현 전략은 특히 문화정치로 통치전략이 전환되고 재현의 사회적 장이 제도적으로 안정화된 특히 1920년대 이래 광범위한 사회적 영향력을 미쳤다.
    본 연구는 이와 관련하여 총론, 시각미디어, 신체미디어, 문자미디어 등 세 미디어 분야에 걸쳐 총 12편의 연구논문을 생산하였다. 총론으로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과 국가자율성", 시각미디어 분야에서는 "일본 식민주의의 시각자료를 통한 선전", "조선미술전람회 분석", "총독부 기관지 <朝鮮>의 사진화보 분석" 등의 주제를, 신체미디어 분야로는 "경성의 광장과 골목", "조선 주둔 일본군", "오락의 표상", "여성의 신체", "황실 하사금을 통한 사회사업", "옛 왕조의 국가제사", "조선신궁체육대회" 등의 주제를, 문자미디어 분야에서는 "문자미디어와 사회적 사실의 생산" 등의 연구주제를 검토하였다.
    결론적으로 조선총독부는 그 자체로서 완결된 국가가 아니라 식민지배라는 특수 상황에서 과대성장한 국가장치인 것으로 판단된다. 식민권력이 독자적인 자율성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는 없으며, 조선총독부가 행사한 자율성은 세계자본주의체계 내의 위치라는 맥락 속에서 파악할 때만 그 위상이 이해될 수 있다.
    조선총독부가 자기 완결적이고 자율적인 국가가 아닌 것은 명백했지만, 권력의 자기 재현의 구체적, 미시적 과정에서는 때로는 우발적으로, 때로는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자신과 조선을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통치의 영역으로 재현했던 것이 확인된다. 이는 조선총독부의 실체적 독자성의 반영이 아니라, 일본 제국의 하위 구성단위, 즉 지방으로 식민지 조선을 유기적으로 통합하기가 그만큼 어려웠던 사정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는 절대로 국가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마치 독자적인 국가인 듯 자신을 표상해야 하는 모순적 과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 English
  • This research project aimed to examine the self-representation of Chosen Colonial Government between 1919 and 1936. The research is based on three inter-related theoretical questions. Firstly, can we say Chosen Colonial government as ‘colonial state’ Secondly, what kinds of representation did Chosen Colonial Government produce through multi-faceted practices of self-representation which were labeled as ‘propaganda’ Thirdly, what kind of social and political effects did Chosen Colonial Government produce through such practices of representation. This research project, based on the analytical studies on media and propaganda made by Chosen Colonial Government, aimed to theorize the complexity of state effects and self-representation of colonial power.
    The rule of Chosen Colonial Government is often said to be the ‘absence of the state(國亡)’ with the forced occupation of foreign forces from the viewpoint of ‘national history’. However, in social sciences, this rule was regarded as ‘colonial government’ or the rule by ‘colonial state’. Although it is quite evident that Chosen Colonial Government was installed and operated as an independent administrative body within Japanese empire, it is still difficult to say that such ruling entity created a single and integrated political community. In order to clarify the viewpoints on the rule of Chosen Colonial Government, whether it was the absence of state or the rule of colonial state, instead of predetermination of the reality of power, we have to make a detoured approach on power by examining the practices and effects of power, how Chosen Colonial Government represented herself internally and also externally. In this regard, this research project aimed to focus on the practices and effects of colonial power instead of presupposing the reality of colonial power and studied the practices of self representation of colonial power and their social effects.
    Chosen Colonial Government made strategies of exaggerated self-representation in order to prevailing over the inherent contradiction of their existence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The strategy of self-representation of Chosen Colonial Government, exemplified by ‘censorship’ and ‘propaganda’, went through immense changes and produced comprehensive social effects especially in the twenties with the shift of colonial policy from military rule to cultural rule and also with the creation of social field for representation and media.
    This project resulted in twelve original research papers concerning theoretical and historical overview, visual media, corporeal media, and literary media. Historical and theoretical overview examined the issue of "Japanese colonial policy and the autonomy of state." As for visual media, studies on "Japanese colonialism and propaganda through visual materials", "The analysis of Chosen Art Exhibition", "The Examination of Pictures of Chosen(朝鮮), official magazine of the colonial government" were written. In corporeal media, the issues of "Squared and back alleys of Keijo", "Japanese Army occupied in Chosen", "Representation of entertainment", "Body of women", "Imperial benevolence and social works focusing on imperial donation" , "State ritual of failed state", "Athletic Game Organized by Chosen Shrine". Finally, in order to examine literary media, "literary media and the production of social facts" was studied.
    In conclusion, Chosen Colonial Government was not an independent state entity in herself, but rather an overdeveloped state apparatus during the extraordinary situation of colonial rule. The colonial power did not have autonomy independent from Japanese empire. Moreover, modicum of autonomy the colonial power enjoyed can be understood only in the context and location of world system of capitalism.
    While Chosen Colonial Government was not an autonomous or self-completed state, the colonial power still represented the government and Chosen as a distinct and au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 연구는 1919년에서 1936년 동안 조선총독부의 자기재현 활동을 중심적인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상호 연관된 이론적 문제제기의 산물이다. 첫째, 조선총독부는 ‘식민국가’인가? 둘째, 조선총독부는 ‘선전’으로 통칭되는 다차원적인 자기재현적 실천을 통해 어떠한 표상을 생산하였는가? 셋째, 이러한 표상을 통해 총독부는 대내외적으로 어떠한 정치사회적 효과를 창출하였는가? 본 연구는 1919~1936년에 이르는 조선총독부의 선전활동에 대한 미디어 분석적 연구를 통하여 식민권력의 자기재현적 실천과 그 국가효과의 복합성을 이론화하고자 한다.
    조선총독부의 지배는 국사학(national history)적 관점에서는 ‘국망’, 즉 외세의 강점에 의한 ‘국가부재’ 또는 ‘국가소멸’의 상태로 서술되어 왔던 데 반해, 사회과학적 관점에서는 일반적으로 '식민정부' 혹은 ‘식민국가’에 의한 통치로 인식되어 왔다. 조선총독부가 제국 일본의 하나의 독자적인 행정적 단위로서 성립·운영되었음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하나의 통합된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일제의 식민 지배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국가부재의 상황인지 아니면, 식민국가의 통치인지, 권력의 실체를 선험적으로 확정하기 이전에, 조선총독부가 어떻게 대외적으로 식민지 ‘조선’ 위에 군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는지, 즉 권력의 실천 및 효과를 검토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본 연구는 식민권력의 문제를 실체보다는 실천 및 효과에 초점을 맞추어, 식민권력의 자기재현적 실천과 그 사회적 효과에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총독부는 대내외적으로 이러한 그 자신의 태생적 모순성을 호도하기 위해 대단히 과장된 자기재현 전략을 구사했다. ‘검열’과 ‘선전’으로 대표되는 총독부의 자기재현 전략은 특히 문화정치로 통치전략이 전환되고 재현의 사회적 장이 제도적으로 안정화된 특히 1920년대 이래 광범위한 사회적 영향력을 미쳤다.
    본 연구는 이와 관련하여 총론, 시각미디어, 신체미디어, 문자미디어 등 세 미디어 분야에 걸쳐 총 13편의 연구논문을 생산하였다. 총론으로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과 국가자율성”, 시각미디어 분야에서는 “일본 식민주의의 시각자료를 통한 선전”, “조선미술전람회 분석”, “총독부 기관지 <朝鮮>의 사진화보 분석” 등의 주제를, 신체미디어 분야로는 “경성의 광장과 골목”, “조선 주둔 일본군”, “오락의 표상”, “여성의 신체”, “황실 하사금을 통한 사회사업”, “옛 왕조의 국가제사”, “조선신궁체육대회”, “조선-만주 문화영화” 등의 주제를, 문자미디어 분야에서는 “문자미디어와 사회적 사실의 생산" 등의 연구주제를 검토하였다.
    결론적으로 조선총독부는 그 자체로서 완결된 국가가 아니라 식민지배라는 특수 상황에서 과대성장한 국가장치인 것으로 판단된다. 식민권력이 독자적인 자율성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는 없으며, 조선총독부가 행사한 자율성은 세계자본주의체계 내의 위치라는 맥락 속에서 파악할 때만 그 위상이 이해될 수 있다.
    조선총독부가 자기 완결적이고 자율적인 국가가 아닌 것은 명백했지만, 권력의 자기 재현의 구체적, 미시적 과정에서는 때로는 우발적으로, 때로는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자신과 조선을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통치의 영역으로 재현했던 것이 확인된다. 이는 조선총독부의 실체적 독자성의 반영이 아니라, 일본 제국의 하위 구성단위, 즉 지방으로 식민지 조선을 유기적으로 통합하기가 그만큼 어려웠던 사정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는 절대로 국가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마치 독자적인 국가인 듯 자신을 표상해야 하는 모순적 과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총론적 차원에서 조선총독부, 식민권력은 자기 완결적인 근대국가로 규정할 수 없다.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선전-재현활동의 영역들에서 수시로 식민권력과 그 통치공간인 조선을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것으로 표상하기도 하였다.
    조선총독부의 선전-재현체제는 1920년대 초반 조선정보위원회, 1925년~1930년대 중반 사회과, 문서과, 그리고 1930년대 후반 조선중앙정보위원회를 축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를 담당한 식민지국가기구가 문서과였음을 확인하였다. 또 식민지의 정보통제와 선전정책은 식민지의 내적 필요에 의하기도 하지만, 본국의 정책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식민지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 시차는 전시체제로 갈수록 감소된다는 점을 밝혔다.
    시각적 재현으로서 조선미술전람회나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의 사진화보들은 식민지 조선을 향토 조선, 도시화된 조선, 일본화된 조선으로 재현하였다. 이 표상들은 서로 호응하면서도 때로 상호 모순되었으며, 이 균열은 식민지 조선을 일본제국 안에 온전히 통합하기 어렵다는 난관을 반영한다.
    신체적 재현으로서 도시공간은 식민권력이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식민권력은 제국의 스펙터클로서 경성의 광장을 동원, 연출했지만, 식민지 조선의 뒷골목은 황폐했다. 조선 주둔 일본군의 과시 이벤트는 대다수 조선인들에게 일본의 군사력을 새삼 확인하게 만들고 그에 순응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계기였다. 유흥과 오락은 존재만으로도 폭력적, 비정상적인 억압 속에서도 일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모호한 느낌을 줌으로써 총독부가 통제하고 재현하는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 1920년대 이후에는 이전과는 달리 여성의 몸에 대해 건강함과 동시에 아름다워야 한다는 인식이 대두하였다. 이는 일본의 식민지, ‘오리엔트’로서의 조선 여성의 몸으로 변형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사회사업이라는 공적 영역의 형성은 행정적으로는 총독부라는 국가기구와 전문관료기구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 작동원리는 천황제적 자혜라는 도덕적이고 인격적 담론에 근거하는 모순을 노정하였다. 조선 왕조의 국가제사였던 석전제는 조선총독부에 의해서 지속되었다. 석전제는 전통이자 문명으로서, 동시에 식민담론(유교를 공유하는 한·중·일의 삼국연대", "유교=교육칙어" 등)으로서 삼중으로 작동했다. 조선신궁체육대회는 일본 제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메이지신궁체육대회의 예선전이면서 식민지 조선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결승전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녔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조선신궁체육대회는 조선인 민족감정의 결집과 표출을 위한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시각, 신체, 문자미디어를 통한 조선총독부의 선전, 재현활동에 대한 분석의 결과, 조선총독부는 자신을 재현하는 구체적 과정에서 때로는 우발적으로, 때로는 의도적으로 자신과 조선을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통치영역으로 재현했던 것이 확인된다. 이를 조선총독부의 실체적 독자성의 반영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선전-재현활동이 일본 제국에 순수히 기능적이고 통합적인 활동이었다고 해석하기도 어렵다. 일본 제국-조선총독부는 한편으로는 식민지 조선을 일본 제국의 하위 구성단위, 즉 일개 지방으로 유기적으로 통합하려 했지만, 동시에 식민지로서 본국과 철저히 구별-차별하고자 했다. 이 양립 불가능한 균열, 모순의 폭만큼 식민권력 자신과 식민지에 대한 선전-재현은 불안정했고, 끊임없이 동요하였다. 절대로 국가일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마치 독자적인 국가인 듯 자신을 표상해야 하는 모순적 과제가 일제 식민권력에 부여되었던 것이다.
    본 연구는 일제 식민지기 연구에서 거의 공백상태에 있는 식민지 ‘국가효과’ 또는 ‘국가프로젝트’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천착함으로써,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정치사회학적 국가이론의 형성에 기여하리라고 본다. 기존의 국가부재론의 공백에 대처하면서도 식민지 합리화론적 함축도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식민지기 국가적 활동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비판할 수 있는 이론적 자원을 제공하리라고 믿는다. 또한 식민지의 구조와 경험을 계승한 해방 이후 탈식민국민국가 건설기에까지 이르는 강한 ‘국가주의’와 정치적 선전과 검열의 이중구조에 대한 더 광범한 연구에 자극을 제공하리라고 기대한다.
    본 연구는 전임교원 연구자, 박사 전임연구인력, 대학원 석·박사과정생들의 협동작업을 통해 진행되었다. 애초 예정 이상의 풍부한 연구의 성과(총 12편의 논문)가 제출되었다. 제출된 논문들은 보완을 거쳐서 국내외 전문학술지에 투고를 추진 중이다. 학술지 게재 후에 다시 해당 논문들을 편집, 보완하고, 추가적인 글들을 보완하여 별도의 단행본을 출간하고자 한다.
  • Index terms
  • 조선총독부, 식민권력, 자기재현, 선전, 검열, 시각미디어, 문자미디어, 사회적 사실, 신체미디어, 국가효과, 통치효과, 조선총독부 문서과, 조선미술전람회, 조선총독부 기관지, 관보, 경성부청앞 광장, 조선은행앞 광장, 조선군, 조선박람회, 육군기념일, 유흥, 오락, 여성의 몸, 규율, 천황제, 사회사업, 국가제사, 석전제, 유교이데올로기, 조선신궁체육대회, 메이지신궁체육대회, 스포츠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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