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귀" 게열의 한자의 분석을 통해 고대 중국인들의 귀신 관념에 대한 형성과 변화 과정 및 그에 대한 인식의 특징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는 "중국의 전통 사상이 줄곧 초월적 신이나 절대적 정신으로 발전하지 못한채 자연 속에 함몰되어 있는 가장 낮은 단계 ...
본 논문은 "귀" 게열의 한자의 분석을 통해 고대 중국인들의 귀신 관념에 대한 형성과 변화 과정 및 그에 대한 인식의 특징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는 "중국의 전통 사상이 줄곧 초월적 신이나 절대적 정신으로 발전하지 못한채 자연 속에 함몰되어 있는 가장 낮은 단계의 정신에 머물고 있다"는 서구인들의 주장을 보충하고 바로잡을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였다. 이를 위해 갑골문과 금문에서의 형상과 용례, {설문}에서의 귀와 "귀"로 구성된 글자드릉 의미분석을 통해 다음의 몇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1. 鬼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각종 개별신과는 달리 개별 자연물에는 귀속시키기 힘든, 사람의 영혼과 관련된 상상속의 "귀신"을 사람이라는 잣대를 통해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
2. 갑골문에서 鬼는 아직 "귀신"이라는 개념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전통적인 해설과는 달리 여러 용례에서 "귀신"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합≫ 7153, 13751편 등은 "귀신"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욱 타당해 보인다.
3. 神은 번개 신을 지칭하였다가 서주에 들면서 일반적인 "신"의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지만, 鬼와 神은 여전히 분리되지 않았고, 서로 혼용되어 사용되어, 이들 간에 의미적 차이가 없었다. 특히 䰠은 鬼와 申(神의 원래 글자)이 합쳐져 하나로 통일된 모습을 형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금문은 물론 ≪주역≫, ≪좌전≫, ≪예기≫ 등 춘추전국 시대의 선진문헌에서도 이러한 전통은 그대로 이어져 神=鬼의 등식이 성립되었으며, ≪설문≫ 鬼부수에 귀속된 글자들에서도 鬼에는 후세의 인식처럼 부정적인 내용만이 아닌 긍정/부정의 개념이 함께 들어있으므로, 鬼神合一의 전통이 그때까지도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한대 이후로 神은 좋은 개념으로, 鬼는 나쁜 개념으로 구분되었다. ≪잠부론≫, ≪사기정의≫ 등에 이르러 神은 천상의 세계를, 鬼는 지하의 세계를, 인간은 지상의 세계를 지배하는 대표가 되었으며, 이러한 귀신인식은 한나라 때의 백서 등 그림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다. 나아가 천상의 神이 지상의 인간과 지하의 鬼를 통괄하고 지배하게 됨으로써 神이 절대적 우위에 서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神과 鬼가 구분되고, 그들 간의 영역이 확정되었지만, 鬼神合一의 전통은 여전히 언어 속에 남아 현대 중국어의 일부 어휘에서도 神과 鬼가 서로 호환되고 대체 가능한 모습을 보여, 이러한 인식이 축적된 기억으로서 오늘날의 중국적 사유 기저에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4. 神과 鬼의 분리는 마르크스의 개념을 빌리자면 인간이 類적인 존재라는 것에 기인해 보인다. 즉 먼저 인간과 자연으로 유적 분류가 가능했는데 여기서 자연신을 대표하는 神과 인간의 역병을 ?i기 위한 무속 행위에서 출발해 인간의 형상에서 근원한 鬼가 분리되게 되었다. 이후 鬼 중에서도 다시 악한 귀신과 선한 귀신과의 유적 분류가 행해져, 선한 귀신은 신의 대열에 참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惡鬼와 善鬼의 類적 구분은 인간이 포섭가능한 귀신인가의 여부에 의해 구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포섭 가능한 것은 神으로 불가능한 것은 鬼로 남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神은 인간화 된, 길들여진, 인격적인, 인간우호적인 존재로 인식되었고, 鬼는 그의 대립 점에 있는 초월적 존재가 된 것으로 보인다.
5. 神과 鬼라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개념이 하나로 일치되고, 서로 호환될 수 있다는 것은, 절대 악과 절대 선이 바로 한 자리에 같이 설 수 있다는 칸트의 철학적 입장을 지지해 줄 수 있으며, 존재와 사물을 2항 대립으로 인식해왔던 서구의 철학 관점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며, 이러한 해석에 한자가 대단히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상에서처럼 한자는 축적된 기억이기에, 한자가 발생단계의 의미를 그대로 보존하지 않고 계속 의미의 변천을 겪어왔다 할지라도 한자는 표음문자체계와는 달리 예전의 모습들을 어느 정도 보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한자의 경우에는 그 의미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의미의 층차들이 歪像(anamorphosis)의 형태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한자 속에도 숨어 있다. 물론 표음문자체계 속에도 그 변화의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표음문자문화에서보다 훨씬 더 강하게 중국의 문자는 그 속에 집단적 무의식이라고 이름 할 만 한 흔적들을 담고 있다. 따라서 한자의 자원으로 올라갈 때 표층과 심층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神은 체계적 질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념적 발전을 겪었다면 鬼는 체계가 담아내지 못하는 체계의 이면, 즉 상징적 질서를 금가게 하고 상징질서에 균열을 내기 때문에 체계에 의해서는 억압될 수밖에 없는 개념들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변화해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