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국인의 중국 내 불사활동에 대해서 감숙, 섬서, 하남, 산서지역에 현존하는 사원, 석굴, 조상비, 불감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제Ⅱ장에서는 509년 감숙성 경천현에 지방관으로 재직하였던 고승신 이하 고구려 후예들이 중심이 되어 건립한 숭현선사에 대해 살펴 ...
고대 한국인의 중국 내 불사활동에 대해서 감숙, 섬서, 하남, 산서지역에 현존하는 사원, 석굴, 조상비, 불감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제Ⅱ장에서는 509년 감숙성 경천현에 지방관으로 재직하였던 고승신 이하 고구려 후예들이 중심이 되어 건립한 숭현선사에 대해 살펴 보았다. 사원과 비석은 이미 현존하지 않으나 문헌기록을 통해 당시 장군부에서 활약한 고구려 후예와 현지에 거주한 소수민족 지방관과 사람들이 숭현선사를 건립하였음을 밝혔다.
제Ⅲ장에서는 섬서지역에 거주한 고구려 후예들이 개착한 복지석굴, 향방석굴, 548년 조상비, 임동구 발견 남북조시기 조상비에 대해 살펴 보았다. 이 석굴들과 조상비는 남북조시대 섬서지역 불교조각상 양식을 파악하는데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당시 이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된 기타 소수민족의 생활양상과 종교활동 내역을 파악하는데에도 아주 중요한 자료들로 여겨진다.
제Ⅳ장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이 하남지역 용문석굴에 개착한 석굴과 불감에 대해 살펴 보았다. 북위대에는 당시 정권을 장악한 고구려 후예 세력과 이와 관련있는 인물들의 불상조성에 대해 서술하였으며 당대에는 고구려, 백제로 부터의 강제 이송자와 통일신라의 승려, 인물상이 개착한 석굴과 불감에 대해 알아 보았다. 북위대 이들은 낙양의 새로운 불상 양식의 창조와 선도를 비롯하여 당대에는 당시 낙양의 불상양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제Ⅴ장에서는 최근 중국인에 의해 새로이 밝혀진 백제 흑치상지 딸과 물부순장군의 공덕비 분석과 그들이 개착한 석굴이 천룡산 제15굴임을 현장 조사를 통해 다시 한번 더 확인하였다. 또한 필자는 물부순장군이 천룡산에 석굴을 개착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의 관직역임, 당시 태원의 위치 등을 새로이 밝혔다.
제Ⅵ장에서는 고대 한국인의 출신지와 중국 불교문화와의 관계에 대해 밝혔다. 남북조시대 중국 내에서 불사활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한 한국인은 고구려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였음을 밝혔다. 그들은 결혼동맹 혹은 강제이주를 통해 현지에서 정착하여 고구려 문화를 계속 유지하면서 살아 가고 있었다. 당시 귀족, 평민이 모두 불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기타 다른 민족과 함께 불사활동을 진행한 예도 많았다.
당대에는 고구려, 백제의 멸망을 통한 강제 이송을 통해 중국에서 거주하게 되었으며 불사활동에 참여한 신분은 대부분 귀족계층이었다. 결국 고대 한국인은 중국 내에서 중국 불교문화를 답습하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문화도 창출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고대 한국인이 중국 내에서 펼친 불사활동에 대해 살펴 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현장 조사한 감숙, 섬서, 하남, 산서지역은 물론 산동, 하북, 요녕, 강남지역의 유존 예에 대해서도 필자의 조사가 이루어지 않은 곳이 많다.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며 아울러 더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