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한문산문의 하나인 策文을 대상으로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책문은 과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시험이다. 왕은 時弊, 王道政治, 民俗, 經傳의 解釋 등 다양한 주제를 제시하고, 응시자는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때문에 策問은 당시의 주요한 사안이거나 국왕의 ...
본 연구는 한문산문의 하나인 策文을 대상으로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책문은 과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시험이다. 왕은 時弊, 王道政治, 民俗, 經傳의 解釋 등 다양한 주제를 제시하고, 응시자는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때문에 策問은 당시의 주요한 사안이거나 국왕의 관심사이며, 策文은 新進才藝들의 思惟와 文章의 총화이다. 이 사이에는 일치되는 점이 있을 수 있으며 부분적으로 견해가 相衝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지향은 동일하다. 왕은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한다. 선비들은 자신이 갈고 닦은 학문적 역량과 정확한 관점을 표현해야 한다. 때문에 策文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아가기 이전의 신진학자들의 사유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출사 이전에 학문적 토대가 구축되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 검토한 『殿策精粹』는 선초의 名臣들이 殿試에서 작성하여 올린 策文을 뽑아 편찬한 것이다. [嘉靖丁未歲仲秋下澣慶州京低開印]이라 기재된 것을 근거로 1547년(명종 2)에 발간되었음을 알 수 있다. 魚變甲(1380-1434), 成三問(1418-1456) 등 선초의 관료로부터 宋世琳(1479-1541) 金安國(1478-1543) 張玉(1493 - ), 趙光祖(1482-1519) 등 신진 사림의 책문까지 실려 있다.
‘策問의 주제’를 살펴보면 紀綱을 세우는 데 대한 방안을 세워보라는 형이상학적인 것에서부터 風俗의 敎化, 野人 또는 夷狄에 대한 대응방식, 貢法을 유래 및 적용방법, 城郭의 수리 문제, 등 다양하다. 아울러 춘추나 맹자 등 경전 내용의 해석과 실현 방법 등 학문적인 면도 담겨있다. 策問의 내용은 왕도정치의 실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세부적인 주제는 다르더라도, 歷史, 典籍을 통한 다양한 자료를 요구한다. 아울러 當今의 成果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요구한다.
策問에 대한 對策, 즉 策文은 형식적인 면에서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虛頭 부분에서는 전편의 大旨를 담아낼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한다. 이 대지는 臣聞---의 형식을 띠는 경우가 많은 바, 유가의 일반적 이상이나 이념을 인용한다.
中頭 부분에서는 策問의 내용을 하나하나 제시하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개별 항목에 대한 내용은 전체의 내용과 관련되기 때문에 개별적이면서도 논리의 큰 틀은 유지된다. 논리의 전개는 지극히 정제되어 있다. 때문에 典故를 제시하는 경우도 압축적이면서 간략하다. 논리의 진행은 간명하게 진행되어 번잡함이 없다. 논술 과정에 개인적 감정이 개입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객관성을 바탕으로 의론적 진술이 이루어진다. 時弊를 논하는 경우도 지나친 예를 들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도 역대 성현의 행적이나, 한․당의 善治를 인용한다. 주장을 마무리할 때는 단정적인 문체가 사용된다.
종편 부분에서는 策問의 마무리 부분을 인용하면서, 자신을 낮춘 후 앞에서 주장했던 내용을 다시 정리하여 분명한 의지를 밝힌다. 이때 典故를 인용하기도 하는바, 허두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이는 책문의 주제를 강화하시 위한 상투적 장치로 판단된다.
책문의 내용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전기 士는 국가 경영의 중심 및 모든 질서의 근원을 철저하게 君主로 설정한 점이다. 즉 군주 중심의 사유를 바탕으로 왕도정치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三皇五帝를 정치의 모범으로 설정하여 논리를 전개한다. 왕도 정치에 대한 희망과 삼황오제를 모범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역사, 경전에 대한 해박함을 바탕으로 주장을 제기하고 논리를 전개하면서 역사에 대한 재해석을 추구한다. 논리의 바탕과 추구 경향에는 복고주의 경향이 강하다.
時弊를 해결하는 다양한 시각과 논리가 부재하며, 당금의 문제보다 왕 개인의 덕성과 수신을 강조한다. 이러한 경향은 전통적인 유가적 관점 및 心을 강조하는 성리학적 학문태도에 기인한 것이다. 현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긍정적 사유를 토대로 하며, 그 물적 근거로서 왕의 덕성함양이나 바른 마음을 강조 한다. 장기적이고 낙관적인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성을 담지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