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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祖의 성장과정을 통해 본 조선후기 왕위계승교육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正祖의 성장과정을 통해 본 조선후기 왕위계승교육 | 2006 Year | 육수화(한국학중앙연구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B00713
Year(selected) 2006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8년 04월 26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8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조선의 왕은 유교의 이상적 모델이자, 萬人의 模範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일반 사대부들보다 더욱 엄격하고 치열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만 했고, 왕실과 국가는 왕위계승에 부족함이 없는 후계자를 양성하기 위한 최고의 교육환경과 교육체계를 구축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성장과정에 따라, 그 시기에 적합한 교육기관을 설치하였고, 또 그에 상응하는 교육의례를 거행함으로써 왕위계승자로서의 권위를 부여하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의 소명의식을 내면화시켜 나갔다.
    왕실에서는 출산의 과정에서 妃嬪과 후궁을 구분하여, 비빈들의 출산을 돕기 위해서는 産室廳을, 후궁의 출산을 돕기 위해서는 護産廳을 설치하였다. 元子와 元孫이 탄생할 경우에는, 告廟와 백관의 陳賀가 이루어지지만, 다른 왕실자손들의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곧 원자와 원손이 왕실의 종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널리 표명하기 위한 의식이었다. 그리고 왕실에서는 吉地에 태를 매장하는 安胎의 풍습이 있었는데, 안태지도 왕위계승자와 다른 왕실자손은 등급에 차등을 두어 매장하였다.
    원자와 원손이 태어나면 이들의 보육을 담당하기 위한 輔養廳이 설치되었다. 보양청의 설치는 대개 3세 이전에 이루어지는데, 다른 왕실자손들을 위해서는 설치하지 않았다. 보양청은 원자보양청과 원손보양청을 구분되며, 이 또한 각종 의례와 소속관원들의 구성에 차등을 두어 설치되었다. 보양청시절은 원자와 원손의 본격적인 교육이 이루어진 단계라기보다 말 그대로 보양이 중심이었다. 보양청이 설치되면 보양관이 임명되지만, 실질적인 보육은 유모와 보모 등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선발기준을 매우 엄격히 하였다. 원자와 원손이 글을 읽기 시작할 무렵이 되면, 대개 5세를 전후하여 조기교육을 위한 講學廳이 설치되었다. 보양청과 강학청은 별개로 설치되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 보육을 위주로 할 경우에는 보양청을 설치하고, 글을 읽을 무렵이 되면 그 연장선상에서 그대로 강학청을 설치하였다.
    본격적인 왕위계승교육은 왕세자의 교육기관인 世子侍講院과 왕세손의 교육기관인 世孫講書院을 통해 이루어진다. 태조는 건국 직후 왕세자를 위한 世子官屬을 두어 왕위계승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 왕실교육기관의 기반이 조성된 시기는 태종대의 일이며, 제도가 정착된 것은 세종대의 일이다.
    왕위계승자들은 책례․입학례․관례 등과 같은 교육의례를 거행하였다. 冊禮는 왕위계승자를 책봉하는 의식으로, ‘宗統의 承繼’를 상징하는 의식이었고, 入學禮는 왕위계승자가 성균관에 나아가 文廟를 배향하고, 학생의 신분으로서 박사에게 배움을 청하는 의식으로, ‘道統의 承繼’를 상징하는 의식이었으며, 冠禮는 성인이 되는 의식이었다. 왕실에서는 비록 10세 전이라 하더라도 관례와 책례를 행하였는데, 이는 제왕학의 일환으로써 일찍부터 제왕으로서의 책무를 부여하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 English

  • Joseon was a Confucian dynasty. It was ruled by Kings of the Royal family that had secured the orthodoxy of clan rules under Confucian ideas. Royal family was the main prop of Confucian culture and Kings were leaders who leaded society and culture from the top. Therefore, Kings should complete more strict and intense education than noblemen. The Royal family and the government should have to establish prime educational environments and systems to foster successors qualified for the throne.
    This study examined concretely what educational courses did they complete and how were the educational systems established, through the education for throne succession in the late Joseon. The reason why the successors in the late Joseon were selected as subjects is to certify how could they, who kept relatively weak orthodoxy of clan rules compared with their ancestors in the early Joseon, secure the required mental ability and morality to show leadership as a monarch.
    This study focused on educational institutes and educational ceremonies. Study on educational institutes could clarify the purposes of educational institutes that were installed along the growth of throne successors and the educational courses that successors completed by each period.
    On the other hand, study on educational ceremonies could make it clear how were throne successors given with authority and did they internalize the duty of sense as the leader to lead next generation. In addition, by tracing the form with which politics and education had combined each other through ceremonies, it could be learned that the ceremonies of Joseon Dynasty had have a unique 'educational function'.
    Education is the crystallization of the ideas and culture of those days and at the same time the cornerstone on which new ideas and culture can be created. In the Confucian society where the union of politics and education were claimed, politics and education had an indivisible relation. Also, power and education were in organic relation.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 연구는 정조를 통해 조선시대 왕위계승자들이 등극하기까지 이수한 교육과정과 교육의례를 살펴봄으로써, 그들이 內聖外王을 구현하는 최고의 통치자로 어떠한 방식으로 지적능력과 도덕성을 확보함으로써 군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조선의 왕은 유교의 이상적 모델이자, 萬人의 模範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일반 사대부들보다 더욱 엄격하고 치열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만 했고, 왕실과 국가는 왕위계승에 부족함이 없는 후계자를 양성하기 위한 최고의 교육환경과 교육체계를 구축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성장과정에 따라, 그 시기에 적합한 교육기관을 설치하였고, 또 그에 상응하는 교육의례를 거행함으로써 왕위계승자로서의 권위를 부여하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의 소명의식을 내면화시켜 나갔다.
    왕실에서는 출산의 과정에서 妃嬪과 후궁을 구분하여, 비빈들의 출산을 돕기 위해서는 産室廳을, 후궁의 출산을 돕기 위해서는 護産廳을 설치하였다. 元子와 元孫이 탄생할 경우에는, 告廟와 백관의 陳賀가 이루어지지만, 다른 왕실자손들의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곧 원자와 원손이 왕실의 종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널리 표명하기 위한 의식이었다. 그리고 왕실에서는 吉地에 태를 매장하는 安胎의 풍습이 있었는데, 안태지도 왕위계승자와 다른 왕실자손은 등급에 차등을 두어 매장하였다.
    원자와 원손이 태어나면 이들의 보육을 담당하기 위한 輔養廳이 설치되었다. 보양청의 설치는 대개 3세 이전에 이루어지는데, 다른 왕실자손들을 위해서는 설치하지 않았다. 보양청은 원자보양청과 원손보양청을 구분되며, 이 또한 각종 의례와 소속관원들의 구성에 차등을 두어 설치되었다. 보양청시절은 원자와 원손의 본격적인 교육이 이루어진 단계라기보다 말 그대로 보양이 중심이었다. 보양청이 설치되면 보양관이 임명되지만, 실질적인 보육은 유모와 보모 등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선발기준을 매우 엄격히 하였다. 원자와 원손이 글을 읽기 시작할 무렵이 되면, 대개 5세를 전후하여 조기교육을 위한 講學廳이 설치되었다. 보양청과 강학청은 별개로 설치되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 보육을 위주로 할 경우에는 보양청을 설치하고, 글을 읽을 무렵이 되면 그 연장선상에서 그대로 강학청을 설치하였다.
    본격적인 왕위계승교육은 왕세자의 교육기관인 世子侍講院과 왕세손의 교육기관인 世孫講書院을 통해 이루어진다. 태조는 건국 직후 왕세자를 위한 世子官屬을 두어 왕위계승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 왕실교육기관의 기반이 조성된 시기는 태종대의 일이며, 제도가 정착된 것은 세종대의 일이다.
    왕위계승자들은 책례․입학례․관례 등과 같은 교육의례를 거행하였다. 冊禮는 왕위계승자를 책봉하는 의식으로, ‘宗統의 承繼’를 상징하는 의식이었고, 入學禮는 왕위계승자가 성균관에 나아가 文廟를 배향하고, 학생의 신분으로서 박사에게 배움을 청하는 의식으로, ‘道統의 承繼’를 상징하는 의식이었으며, 冠禮는 성인이 되는 의식이었다. 왕실에서는 비록 10세 전이라 하더라도 관례와 책례를 행하였는데, 이는 제왕학의 일환으로써 일찍부터 제왕으로서의 책무를 부여하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왕위계승자의 교육과정은 주자의 공부론에 입각하여,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대략적으로는 『小學』을 이수한 이후에 四書三經와 史書를 순차적으로 이수하였다. 조선후기 서연이나 경연이 조선전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성리학의 발전과 함께 조선에서 지어진 책이나 편찬한 책들이 교재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신하들을 압도할 수 있는 지적능력이 우선 확보되어야 했지만, ‘洞察力과 包容力’이 겸비되어야만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고, 권위 또한 유지될 수 있었다. 지식은 주로 신하들을 통해 전수받지만, 이러한 통찰력과 포용력은 임금의 경험에 기초한 御製訓書를 통하거나, 經筵 혹은 次對에 侍坐함으로써 확보되었다. 이러한 교육방식은 英祖의 正祖에 대한 왕위계승교육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왕위계승자들은 일상이 곧 공부이고, 공부가 곧 일상이었다. 修己治人은 유학이 지향하는 이상적 교육목표이지만, 왕실에서의 교육은 이것이 더욱 요구되어, 修己로서의 교육과 治人으로서의 교육이 對待的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조선은 유교국가이며, 왕조국가였다. 유교의 이념 아래, 종법적 정통성을 확보한 왕실에서, 왕에 의해 다스려지는 국가였다. 왕실은 유교문화의 중추요, 왕은 정점에서 그 사회와 문화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였다. 修己治人을 실현하는 선비이자 內聖外王을 구현하는 治者로서, 유교의 이상적인 모델이자,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 바로 조선의 왕이다. 때문에 그들은 일반 사대부들보다 더욱 엄격하고 치열한 교육과정을 이수하여야만 했고, 왕실과 국가는 왕위계승에 부족함이 없는 후계자를 양성하기 위한 최고의 교육환경과 교육체계를 구축해야만 했다.
    본 연구는 정조를 통해 조선시대 왕위계승자들이 등극하기까지 어떠한 방식으로 지적능력과 도덕성을 확보함으로써 군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의 내용구성은, 교육기관과 교육의례를 두 축으로 하였다. 교육기관을 통해서는, 왕위계승자들의 성장과정에 따라 설치되는 교육기관이 어떠한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각 시기별로 이수하는 교육과정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왕위계승자들의 교육을 누가 담당하는가 하는 점은 차기 권력구도와도 직결되는 것이니 만큼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교육적 의도를 함께 살펴볼 수 있었다.
    교육의례를 통해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왕위계승자들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의 소명의식을 내면화시켰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의례는 ‘권위의 상징화’와 정치적 질서체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었고, 정치와 교육이 상호 결합하는 독특한 ‘교화적 기능’을 함의하고 있었다.
    교육이란 그 시대의 사상과 문화가 축적된 결정체이며, 동시에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창출하는 밑거름이기도 하다. 정교일치를 표방한 유교사회에서의 정치와 교육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고, 교육과 권력 또한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으므로, 교육과정과 교육현상을 파악함으로써 정치․사회․사상․문화를 포괄한 조선시대의 주류문화를 확인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연구가 가지는 의의라 하겠다. 더욱이 왕위계승자들이 이수한 교육은, 그것이 곧 등극 이후 정책수립의 근간이 된다는 점에서도 주목할만하다. 그리고 이 연구를 통해 오늘날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 이월적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 Index terms
  • 왕위계승교육, 보양청, 강학청, 세자시강원, 세손강서원, 책례, 관례, 입학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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