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현대문학의 출발점으로 쇼와(1926년) 출발과 패전 이후를 보는 두 견해가 일반적인데, 전쟁을 통하여 가치관의 굴절을 겪어내며, 패전으로 인하여 완전한 소멸과 새로운 출발이라는 의미에서는 전쟁 이후로 보는 시점이 타당하리라 여겨진다.
가와바타에 있어서 ...
일본현대문학의 출발점으로 쇼와(1926년) 출발과 패전 이후를 보는 두 견해가 일반적인데, 전쟁을 통하여 가치관의 굴절을 겪어내며, 패전으로 인하여 완전한 소멸과 새로운 출발이라는 의미에서는 전쟁 이후로 보는 시점이 타당하리라 여겨진다.
가와바타에 있어서 새로운 출발로서의 전후를 논의할 때, 그 시점으로 제시되는 것은 시마키 켄사쿠(島木健作)의 장례식 조사(弔辭)(1945.11)와 「여수」(1947)에서의 이른바 ‘일본회귀 선언’을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와바타는 이 글들에서 <일본의 고래의 슬픔으로 돌아갈 뿐> <일본의 전통미가 아닌 것은 한 줄도 쓰지 않겠다>고 표명한다. 그 배경으로 전쟁 중에 고전문학에 심취했던 것과 결부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즉, 전쟁 중에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재독하고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것을 낭독하며 빠져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은 전후 문학의 달성이라고 일컬어지는 「천우학(千羽鶴)」「산소리(山の音)」 등의 일본 전통미와 일본 문화의 미덕을 살린 작품으로 연결된다는 논리이다. 그렇다면, 1945년부터 대략 1952년 직후에 걸친 작품들에서 보이는 패전에 의한 좌절․절망감, 망국민으로서의 슬픔, 전쟁에 대한 공포, 그와 동시에 나타나는 옛것에 대한 재평가와 동경 등은 가와바타 문학에서 어떻게 처리하고, 위치 지워져야되는 것일까를 이 연구의 문제제기와 출발점으로 삼았다.
본 연구에서는 가와바타가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전쟁 이후에는 어떠한 심리적 굴절을 겪게 되는지, 또한 그것은 가와바타의 전후문학에 어떻게 반영되며 영향을 끼지는지를 분석 종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 대상 자료로서는 우선 패전의식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문장들을 그 재료로 삼았다. 「주위의 문답(めぐる問答)」(1947.9),「최근의 일(近事)」(1949.1),「애수(哀愁)」(1947.10),「흘러 나오는 것(流れ出るもの)」(1948.10),「도쿄 재판의 노인들(東京裁判の老人達)」(1948.11),「평화를 지키기 위하여(平和を守るために)」(1949.4),「도쿄재판 판결의 날(東京裁判判決の日)」(1949.11) 등의 평론 및 문장에서 패전 후의 감정, 특히 절망감을 절실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것이 정리되는 시점에서 표출된 가와바타의 패전의식의 표현에 대한 객관적 자료가 되어주었다.
소설로는 「생명의 나무」(1946.7)「굽은 다리」(1948.10)「재회」(1946.2~7)「무희」(1950~51)를 분석대상 작품으로 삼았다. 「생명의 나무」는 1945년 4월 오키나와의 해군특공대 기지에 한 달 동안 종군하였던 것이 기초가 된 소설로, 종전 후 발표된 소설이다. 취재와 발표 시점이 전쟁과 전후라는 측면에서 가와바타의 전쟁에 대한 심적 추이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재회」는 전쟁후의 파괴와 혼란상, 그 안에서의 인간 군상들의 모습의 묘사가 뛰어나, 당시의 생생한 전후 상황을 가와바타의 감각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패전의식과 가와바타 문학을 논함에 있어서 가장 주목해야할 작품은 「무희」이다. 등장하는 무희 세 명을 통하여 예술에 있어서의 전쟁의 의미를 파악해볼 수 있었다. 또한 나미코의 남편인 야기(矢木)에 주목하였는데, 그는 패전에 관한 굴욕감과 전쟁에 대한 공포, 일본 고전에 대한 심취, 골동품 취미 등 그 당시의 가와바타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있는 존재이다. 이 작품을 통하여 반드시 읽어내야 할 것은, 전쟁 직후 가와바타의 내적 세계의 하나로 ‘패전의식’이 존재하였음이었을 밝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