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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휴전회담 초기 '개성사건'과 군사분계선 협상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한국전쟁 휴전회담 초기 & #39;개성사건& #39;과 군사분계선 협상 | 2006 년 | 김보영(한양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250
선정년도 2006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8년 04월 29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8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휴전회담 초기의 군사분계선 협상이 진행되는 시기를 대상으로 하여, 군사분계선 협상의 의미와 쟁점, '개성사건'과 회담장소 이전, 회담과 연계된 군사작전 등을 분석하였다.
    군사분계선 협상에서 가장 핵심사안은 군사분계선을 어디에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였지만, 논쟁은 엉뚱하게 회담장소 문제와 결부되어 진행되었고, 양측은 '개성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대립하였다. 일련의 개성사건은 실체를 분명히 밝히기는 어렵지만, 회담장소 이전문제와 미묘하게 결합되어 있었으며, 회담의 결렬과 재개 과정에서 회담장소는 개성에서 판문점으로 이전되었다.
    군사분계선 협상에서 공산측은 38도선을, 유엔군측은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할 것을 주장하였다. 유엔군측이 우월한 해군과 공군력의 보상을 요구하고, 개성확보를 위한 지역흥정과 전선의 조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협상이 난항을 겪었지만, 결국 양측은 지상전선의 실제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할 것에 합의하였다. 그 과정에서 공산측은 38도선 주장을 양보하는 대신 실제접촉선에 동의하는 것을 단순한 양보가 아니라 '38도선 조정방안'이라는 개념으로 합리화하였다. 유엔군측은 개성을 확보하기 위해 집요하게 매달렸지만, 결국 전투를 통해 얻지 못한 것을 회담장에서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개성을 포기하고 실제접촉선으로 합의하였다.
    군사분계선 협상 과정에서 특히 양측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치열하게 고지쟁탈전을 전개하였으며, 상대방을 압박하여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군사작전을 강화하였다. 특히 군사분계선 협상과정에서 유엔군측은 휴전협정 체결시까지 전투를 계속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우선적으로 주장하였고, 공산군측은 처음에 이를 반대하였지만, 최종 합의문에 동의함으로써 이를 슬그머니 수용하였다. 전투계속의 원칙에 대한 합의는 이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소모전을 지속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책임은 양측 모두에 있었다.
  • 영문
  • Since the negotiations had begun, the path that the negotiations would take would determine whether the Korean war would continue or end with an armistice. Naturally, the continuing talks could have heavily affected the ongoing war, and driven it into an entirely new direction. But the entire poecess of talks were colsely related to the military operations. Negotiations began to end the war, but quite ironically, in order to ensure a more favorable position in talks, both sides just kept fighting, In the early days of the negotiations for establisning the military denarcation line, both sides agreed that battles would continue until an armistice is signed. Yet when negotiations for the military demarcation lines were finally closed in November 1951, although they could have halted their battles. U.S. wanted the war to continue, and China also concurred. That was why this attritive war continued even after that. Both sides were donfident that military pressures would be most effective in ensuring a higher position for themselves in talk, so large-scale bombings amd struggles for high areas in the front-lines continued.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양측은 군사분계선 설정이 휴전회담에서 가장 핵심적 사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회담의 기획단계에서부터 이미 군사분계선 협상에서 달성할 목표와 원칙을 확정하고 있었다. 공산측은 이미 의제 채택과정에서 38도선 주장을 제기한 이래 일관되게 이러한 주장을 계속하였고, 유엔군측은 원칙적으로는 접촉선에 근거한 군사분계선이었다. 그러나 협상 초기에는 우월한 해군과 공군력을 반영한 보상을 요구했고, 점차 이것을 포기하는 대신 전선의 조정을 통한 지역흥정을 통해 개성지역을 확보하고자 하였고, 결국 최종적으로 실제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할 것에 동의하였다.
    군사분계선 협상이 진행된 이 시기는 회담의 초기 단계로서, 협상의 추이에 따라 휴전이 성사되거나 전쟁이 장기화하거나 하는 기로에 있었다. 양측은 사실상 군사분계선 협상이 해결되면 곧 휴전이 성사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협상과정은 쉽지 않았다. 군사분계선을 어디에 설정할 것인가가 가장 핵심 사안이었지만, 논쟁은 엉뚱하게 회담 장소문제와 결부되어 진행되었다. 일련의 '개성사건'은 회담장소 이전 문제와 미묘하게 결합되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일시적으로 회담이 결렬되었고 회담장소는 개성에서 판문점으로 이전되었다. 군사분계선 협상에서 양측의 대립점은 38도선과 접촉선 주장이었지만, 그 내용은 개성지역 확보와 휴전협정 체결 시점에 대한 전망, 협상과 전투의 병행문제 등이 쟁점이었다.
    군사분계선 협상 과정에서 양측은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군사적 압력이 효과적이라는 인식을 가졌으며, 이는 대규모 폭격과 전선에서의 고지쟁탈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협상을 시작하였지만, 그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전투를 계속하였던 것은 일견 모순이었다. 그러나 양측은 군사분계선 협상 과정에서 '휴전협정 체결 시까지 전투를 계속한다'는 원칙에 합의하였다. 잠정군사분계선에 합의한 1951년 11월 말 시점에 사실상 전투를 중단할 수 있었지만, 미국은 전투를 계속하기를 원했고, 중국도 여기에 동의했다. 그것이 소모전이 지속된 이유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개성에서 회담이 시작된 이래, 회담지역과 중립협정 위반사건에 대한 양측의 비난과 이에 대한 반대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회담장소인 개성을 공산군 측이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담장소 문제는 비본질적이면서도 매무 미묘했고, 불필요한 마찰이 계속되었다. 유엔군측은 개성의 회담지역을 완전하게 중립화하여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주도하거나 회담장소를 이전하고자 했다. 일련의 '개성사건'은 개성중립지대 위반사건으로, 주로 공산측이 제기한 유엔군측의 위반사건이었다. 그러나 유엔군측은 공산측이 제기한 거의 모든 사건을 부인하였으며 공산측의 조작이라고 보았다. 결국 회담의 결렬과 재개를 거치면서 회담장소는 개성에서 판문점으로 이전되었다.
  • 색인어
  •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38도선, 접촉선, 보상, 실제접촉선, 전투계속의 원칙, 잠정군사분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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