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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4325&local_id=10017462
파노르미타의 [헤르마프로디투스]와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딜레마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파노르미타의 [헤르마프로디투스]와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딜레마 | 2006 Year | 곽차섭(부산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사업별 신청요강보기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323
Year(selected) 2006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7년 12월 08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본 연구는 1차적 목표는 휴머니스트 학자인 안토니오 베카델리(1394-1471), 일명 파노르미타에 의해 1425년경 간행된 라틴어 풍자시집 󰡔헤르마프로디투스(Hermaphroditus)󰡕가 당시의 학자와 성직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를 추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 연구가 지향하는 더 큰 목표는 파노르미타의 예를 통해 에로티카 문학/문화를 둘러싸고 르네상스 초기 휴머니즘과 기독교 문화가 어떤 갈등 관계에 있었는지 살피는 데 있다. 이는 또한 르네상스기 에로티카/포르노그래피 문학 작품들을 실마리 삼아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경계를 재규정하고자 하는 더 큰 연구의 첫 걸음이기도 하다.
    잘 알다시피,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기본적으로 고전고대의 복원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로마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유럽에는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새로운 가치관이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따라서 고전고대의 ‘복원’이란 실제로는 고대와 기독교 가치관의 ‘접합’을 뜻한다. 이 접합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두 문화 간의 갈등은 어느 정도였는가 하는 것은 휴머니즘의 성격은 물론이고 르네상스, 나아가서는 그것을 기점으로 하는 근대 개념의 규정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르네상스 초기 기독교 문화가 고전고대의 학문과 가치를 접했을 때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고대로부터 유래하는 에로틱한 시나 산문, 그리고 조각 작품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고전고대인들은 다양한 성적 행위들을 예찬하였다. 그들은 거대한 남근을 가진 프리아푸스 신을 집안에 모셔놓을 정도였고, 나체를 찬양하였으며, 성인 남자와 소년간의 동성애 역시 인간이 지닌 섹슈얼리티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과 태도를 문학과 예술작품으로도 남겨놓았다. 마르티알리스, 오비디우스, 초기 베르길리우스, 카툴루스 등 많은 고대 작가들의 외설적 작품, 또한 민간에 전해져 오던 남근신(男根神) 프리아푸스를 예찬한 시, 적나라한 성행위를 표현한 조각 등은 다만 그 예의 일부일 뿐이다. 르네상스 초기의 휴머니스트들은 고전고대의 유물과 문헌들을 찾아내고 복원하면서, 강력한 금욕주의 문화를 내세우는(물론 실제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겠지만) 자신의 시대와 문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교적 섹슈얼리티의 세계와 대면하게 된 것이다.
    두 문화의 상반된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 것인가 휴머니스트들에게 이는 자신들의 학문 및 사회적 위치의 향방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페트라르카나 보카치오 등 14세기 휴머니즘의 선구 격인 인물들의 작품이 기독교적 가치와 도덕을 앞세우는 보수적 성직자들로부터 지나치게 세속적이라 비난받고 있던 상태였으므로, 휴머니스트들은 일종의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15세기 휴머니스트들은 비록 외설성이 짙은 작품이라 해도 학문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전문학자(휴머니스트)가 제한된 언어(라틴어) 안에서 연구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지고 권위 있는 고대 작가들의 전범을 따라 에로틱하고 외설성이 짙은 라틴어 시들을 써내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고대의 프리아푸스 시집(Carmina priapea)은 1517년경까지 무려 22판을 거듭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휴머니스트들이 고대의 에로틱 문학작품 뿐 아니라 그것을 모방한 자신들의 시 작품들도 유통시키는 풍조가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이교문화의 확산을 우려한 보수적 성직자 및 학자들의 비판/비난도 가중되었다.
    본 연구의 직접적인 주제인 파노르미타 작(作) 󰡔헤르마프로디투스󰡕의 간행은 바로 이런 시대적 조류의 초두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것은 이런 유의 작품으로는 최초의 경우이다. 따라서 그것은 에로틱한 이교문화가 기본적으로 금욕주의적인 기독교 문화 속에서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를 시험하는 일종의 시금석인 셈이었다. 그 결과는 새로운 흐름의 선구자들이 항상 그렇듯이, 저자에 대한 엄청난 박해로 귀결되었다.
  • English
  • The aim of this essay is to trace how the Hermaphroditus, an erotic and even obscene Latin poems published by Antonio Beccadelli, Il Panormita (1394-1471) in 1425, was accepted by contemporary churchmen, patrons, scholars, etc. and, by doing this, understand how much there was the conflict between the Renaissance humanism and Christian culture surrounding the revived erotic pagan literature or culture. The Hermaphroditus was, at the time of first appearance, so acclaimed that it was rapidly diffused to many Italian cities, but soon had to face many fierce denunciations. Preachers (Bernardino da Siena and Roberto da Lecce) attacked his immorality and scholars (P. C. Decembrio, Antonio da Rho, Lorenzo Valla) were jealous of his talent and success. The patron (Cosimo de' Medici) wanted to shrink from getting involved with the scandal. In spite of that hostile atmosphere, Panormita acquired the position of the poeta aulicus in the court of Filippo Maria Visconti, Duke of Milano, in 1429 and was finally appointed the poet aureate by Sigismund, Holy Roman Emperor, in 1432, but, discouraged by continuous attacks, he left for his homeland and entered under the patronage of Alfonso V, later King of Naples. The episodes surrounding the obscenity and immorality of the Hermaphroditus show the advent of a new aesthetic standard by early humanists. In other words, it was an earlier part of modern massive secularistic movement. The new sense of body in the Hermaphroditus, through Poggio Bracciolini's witty novella Facetiae, would be transformed into the modern pornography in Pietro Aretino's bawdy works, I modi and Dialoghi.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The aim of this essay is to trace how the Hermaphroditus, an erotic and even obscene Latin poems published by Antonio Beccadelli, Il Panormita (1394-1471) in 1425, was accepted by contemporary churchmen, patrons, scholars, etc. and, by doing this, understand how much there was the conflict between the Renaissance humanism and Christian culture surrounding the revived erotic pagan literature or culture. The Hermaphroditus was, at the time of first appearance, so acclaimed that it was rapidly diffused to many Italian cities, but soon had to face many fierce denunciations. Preachers (Bernardino da Siena and Roberto da Lecce) attacked his immorality and scholars (P. C. Decembrio, Antonio da Rho, Lorenzo Valla) were jealous of his talent and success. The patron (Cosimo de' Medici) wanted to shrink from getting involved with the scandal. In spite of that hostile atmosphere, Panormita acquired the position of the poeta aulicus in the court of Filippo Maria Visconti, Duke of Milano, in 1429 and was finally appointed the poet aureate by Sigismund, Holy Roman Emperor, in 1432, but, discouraged by continuous attacks, he left for his homeland and entered under the patronage of Alfonso V, later King of Naples. The episodes surrounding the obscenity and immorality of the Hermaphroditus show the advent of a new aesthetic standard by early humanists. In other words, it was an earlier part of modern massive secularistic movement. The new sense of body in the Hermaphroditus, through Poggio Bracciolini's witty novella Facetiae, would be transformed into the modern pornography in Pietro Aretino's bawdy works, I modi and Dialoghi.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르네상스 기 휴머니스트들을 통해 고전고대의 이교적/에로틱 문화가 기독교적 가치와 조우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파노르미타의 에로틱/포르노그래피적 라틴 시집 [헤르마프로디테](1525/26)의 간행을 둘러싼 찬반 반응들을 면밀히 추적함으로써 당시의 지적 분위기를 세심하게 복원하고자 하였다. 결국 교회의 압력으로 파노르미타는 쫓겨나지만, 길게 볼 때 이는 세속주의 흐름의 도입부에 해당한다는 점을 음미하였다.
  • Index terms
  • 1. 안토니오 베카델리(Antonio Beccadelli) 2. 파노르미타(Panormita) 3. 헤르마프로디투스(Hermaphroditus) 4. 에로틱 휴머니즘(erotic humanism) 5. 15세기 고전주의(Quattrocento class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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