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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4328&local_id=10017172
간도의 정치적 특수성과 일본의 ‘간도 분리론’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간도의 정치적 특수성과 일본의 ‘간도 분리론’ | 2006 Year | 이성환(계명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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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189
Year(selected) 2006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8년 04월 22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8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간도협약으로 영토에 대한 주권은 일단락되었으나, 그로 인해 간도에는 근본적으로 정치, 사회적 불안정 구조를 내포하게 되었다. 그것은 간도협약이 간도 인구의 80%이상을 차지하는 조선인의 존재와 관계없이 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간도에는 정치적 영역(political sphere)과 사회적 영역(social sphere)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을 내포하게 되었다. 즉 간도에는 조선인, 중국인, 그리고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지만, 간도를 지배하는 통일된 정치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고 권한을 서로 달리하는 중국과 일본의 정치적 영역―지배체제 내지는 통치기구―이 공동의 정치적, 사회적, 민족적 영역 위에 혼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서로 다른 민족이 하나의 지역 공동체로서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주체적 통치기구를 매개로 통합된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했다. 이러한 불안정 요인은 한일합방과 21개조 요구를 통해 더욱 증폭되었으며, 그것은 간도에 대한 전반적인 지배력의 약화를 초래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은 간도를 만주로부터 분리하여 독자적인 지역으로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것이 ‘대고려국’ 구상이었다.
    이는 1920년대 말 장작림 폭살 사건, 그 이후 장학량 정권의 국민정부 귀순(이른바 易幟) 이후 고양되고 있는 만주에서의 반일 운동에 대응하기 위해 만주사변을 통해 만주를 중국본토로부터 분리하여 ‘만주인의 만주국’이라는 괴뢰국가를 건설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복해서 이야기하면, 만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주를 중국본토로부터 분리하여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건설한 것처럼, 간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도를 만주로부터 분리하여 대고려국을 건설하려는 구상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고려국의 구상은 "일부의 조선인들이 독립을 주창하며 빈번히 음모를 꾸미고 있고, 또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을 빙자하여 ‘약탈’을 일삼고 있는 이 때, 옛 대고려국을 부흥하여 한편으로는 조선인의 자존심을 만족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및 러시아에 대한 완충국으로" 하기 위한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고려국은 간도를 수도로 하고, "옛 고구려의 판도를 동남을 축소하고 서북을 넓힌" 형태로 산해관(山海關)북쪽 장가구(張家口) 동쪽의 직예성과 내몽고, 성경성(盛京省), 길림성, 흑룡강성, 연해주, 캄차카반도 전부를 포함하는 지역을 영토로 규정했다. 이는 옛 고구려의 판도를 대고려국의 영토로 함으로써 고구려와 대고려국과의 역사적, 영토적 관련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영토는 3단계로 나누어 확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1단계는 길림성 전부와 봉천성 일부, 2단계는 봉천성의 나머지 부분과 산해관 이북 장가구 이동의 만리장성 이북, 3단계는 흑룡강성 전부와 캄차카반도를 포함하는 연해주 전부로 확장하여 대고려국의 영토가 확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계별 시기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간도의 만주로부터의 분리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덧붙여 스에나가의 대고려국 구상과 관련하여 조선인으로서 정안립(鄭安立)이 자주 등장을 한다. 예를 들면 1921년 4월 1일 󰡔다이쇼일일신문󰡕에는 정안립을 "대고려국 건국의 열심자(熱心者)"로 묘사하고 있으며, 󰡔동아선각지사기전󰡕에는 "정안립 등이 봉천 방면에서 고려국 건설의 격문을 산포(散布)"하다 체포되었으나 스에나가가 이를 구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안립은 1918년 7월 초 하라 다카시(原敬), 도야마 미쓰루(頭山滿) 등 일본의 유력자를 만나 이와 유사한 구상을 피력한 적이 있으며, 1917년 12월에는 길림에서 조선인의 독립․자치를 목적으로 하는 동삼성한족생계회(東三省韓族生計會)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간도 및 만주에서의 조선인 문제를 둘러싸고 정안립과 스에나가, 그리고 일본정부가 모종의 관련성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이에 관해서는 최종보고 단계에서 보충하기로 한다.
  • English
  • The two points analyzed in this research are as follows: First, the Kando Problem developed after the Kando Treaty that had been concluded in 1909 was analyzed in terms of the unique political characteristics of Kando. Kando had a very unique political structure that the people, the territory, and the political power were not consistent, which provided Koreans in Kando with an autonomouspolitical space. Second, the Great Korea Plan of Suenaga Misao which was based on the unique political structure of Kando was examined. The Great Korea Plan resulted from an attempt to resolve the unique political structure of Kando. It was one of the diverse political experiments conducted around Kando during the periods, which had pre-historical significance of Manchukou. In this regards, this research can be considered as an essay on the various political experiments centered on the Koreans in Kando in 1920s and 1930s.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간도는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족문제, 국경 문제, 경제(구조)문제, 사상 문제, 사회적 관계 등 多岐에 걸친 문제가 뒤엉켜 하나의 복합체(complex)를 구성하고 있다. 이것을 총체적으로 "간도문제"라 한다. 이 복합체를 관통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간도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이었다. 정치적 불안정이란 간도에 거주하는 전 인구의 약 80%가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간도 지역이 중국에 속해 있다는 모순 때문이었다. 이러한 모순은 형식적으로는 1909년 일본과 중국 사이에 체결된 간도협약에 유래한다.
    간도의 정치적 특수성은 대내적 측면과 대외적 측면에서 고찰해 볼 수 있다. 우선 대내적 측면이다. 간도의 정치적 특수성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정치적 영역(political sphere)과 사회적 영역(social sphere)이 일치하지 않는다 것이다. 즉 간도에는 조선인, 중국인, 그리고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지만, 간도를 지배하는 통일된 정치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고 권한을 서로 달리하는 정치적 영역―지베체계 내지는 통치기구―이 공동의 정치적, 사회적, 민족적 영역 위에 혼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서로 다른 민족이 하나의 지역 공동체로서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주체적 통치기구를 매개로 통합된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것이 바로 간도의 정치적 불안정의 원천이었으며, 나아가서는 당시 만주(현재의 중국 동북부 지역)전체―조선인, 일본인, 중국인 등의 복합 민족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봤을 때―에 존재하는 정치적 불안정의 근본 원인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1) 중국은 간도협약을 통해 간도에 대한 형식적 주권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간도의 제민족을 통합하는 통치체계를 확보하지 못했으며, (2) 간도에서 최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간도에 있어서 정치적 주체가 되어야 할 조선인은 최소한의 정치적 주체성마저도 확보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는 두 가지의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특수성을 해결하기 위한 관점에서 일본은 간도를 중국(만주)로부터 분리하여 특수취급을 하려는 구상을 하게 된다. 그 일환으로 나타난 것이 1920년대 초의 ‘대고려국’ 구상이며, 만주사변 이후의 간도성의 성립이었다. 이러한 구상은 간도를 만주에서 분리하여 조선인 중심의 지배체제를 형성함으로서, 형식적으로나마 간도에 내포되어 있는 정치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었다. 즉 지배의 객체로서 조선인들에게 지배체제의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간도에서의 지배구조의 모순을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하고 이를 통해 간도에서의 항일운동을 완화시키려는 것이었다. 거꾸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일본은 간도를 만주로부터 분리할 필요가 있었다.
    대고려국 구상은 ‘간도 조선인에 의한 국가’라는 형태를 취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괴뢰국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고려국 구상은 일본의 괴뢰국으로서의 만주국을 향한 정치 실험적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상은 기본적으로 간도에 대한 조선인의 지리적, 역사적 관련성과 간도협약에 의해 간도의 영유권이 중국에 귀속됨으로써 내포하게 된 현실적 모순이 반영되어 나타난 것 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1. 한중 수교 이후 연변(한국측의 명칭으로는 간도) 지역과의 왕래가 빈번해 지고 연변 조선족 및 연변 지역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 연장선상에서 본 논문은 간도(연변)지역에 대한 민족적, 역사적 아이덴티티를 밝힘으로써 간도에 대한 현대적 이해를 넓힐 수 있다.

    2. 지금까지 간도 문제는 한중간에 간도 지역을 둘러싼 영유(領有) 문제로만 인식되어 온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간도 문제에 대한 연구는 간도라는 땅에 대한 귀속(歸屬) 문제에만 관심이 집중되었으며, 한국과 중국 학계에서는 간도귀속에 대한 자국에 유리한 관점에서만 논의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영유권 문제는―그곳이 무인지대가 아닌 한― 그곳에 살고 있는 거주민의 문제를 수반한다. 즉 간도문제는 단순한 간도 지역의 귀속 문제가 아니라 간도에 대한 한인들의 거주 및 존재양태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간도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간도 조선인의 삶의 양태에 대한 역사적 시각이 매우필요하다. 본고는 그 일환이며, 간도연구를 위한 새로운 단초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3. 종래 한국에서의 이루어진 일본의 이른바 대륙정책(만주정책)은 만주침략정책이라는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연구되어 왔다. 일본의 간도정책도 그 범주에 있었다. 그러나 본고에서 밝힌바와 같이, 일본의 만주정책과 간도정책은 분리된 형태로 진행된 측면이 매우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간도 정책과 만주 정책은 양자를 통합적이면서 분리하여 연구해야할 필요가 있다.
  • Index terms
  • 간도문제, 간도협약, 간도 조선인, 대고려국, 간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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