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간도협약으로 영토에 대한 주권은 일단락되었으나, 그로 인해 간도에는 근본적으로 정치, 사회적 불안정 구조를 내포하게 되었다. 그것은 간도협약이 간도 인구의 80%이상을 차지하는 조선인의 존재와 관계없이 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간도협약으로 영토에 대한 주권은 일단락되었으나, 그로 인해 간도에는 근본적으로 정치, 사회적 불안정 구조를 내포하게 되었다. 그것은 간도협약이 간도 인구의 80%이상을 차지하는 조선인의 존재와 관계없이 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간도에는 정치적 영역(political sphere)과 사회적 영역(social sphere)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을 내포하게 되었다. 즉 간도에는 조선인, 중국인, 그리고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지만, 간도를 지배하는 통일된 정치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고 권한을 서로 달리하는 중국과 일본의 정치적 영역―지배체제 내지는 통치기구―이 공동의 정치적, 사회적, 민족적 영역 위에 혼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서로 다른 민족이 하나의 지역 공동체로서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주체적 통치기구를 매개로 통합된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했다. 이러한 불안정 요인은 한일합방과 21개조 요구를 통해 더욱 증폭되었으며, 그것은 간도에 대한 전반적인 지배력의 약화를 초래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은 간도를 만주로부터 분리하여 독자적인 지역으로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것이 ‘대고려국’ 구상이었다.
이는 1920년대 말 장작림 폭살 사건, 그 이후 장학량 정권의 국민정부 귀순(이른바 易幟) 이후 고양되고 있는 만주에서의 반일 운동에 대응하기 위해 만주사변을 통해 만주를 중국본토로부터 분리하여 ‘만주인의 만주국’이라는 괴뢰국가를 건설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복해서 이야기하면, 만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주를 중국본토로부터 분리하여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건설한 것처럼, 간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도를 만주로부터 분리하여 대고려국을 건설하려는 구상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고려국의 구상은 "일부의 조선인들이 독립을 주창하며 빈번히 음모를 꾸미고 있고, 또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을 빙자하여 ‘약탈’을 일삼고 있는 이 때, 옛 대고려국을 부흥하여 한편으로는 조선인의 자존심을 만족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및 러시아에 대한 완충국으로" 하기 위한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고려국은 간도를 수도로 하고, "옛 고구려의 판도를 동남을 축소하고 서북을 넓힌" 형태로 산해관(山海關)북쪽 장가구(張家口) 동쪽의 직예성과 내몽고, 성경성(盛京省), 길림성, 흑룡강성, 연해주, 캄차카반도 전부를 포함하는 지역을 영토로 규정했다. 이는 옛 고구려의 판도를 대고려국의 영토로 함으로써 고구려와 대고려국과의 역사적, 영토적 관련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영토는 3단계로 나누어 확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1단계는 길림성 전부와 봉천성 일부, 2단계는 봉천성의 나머지 부분과 산해관 이북 장가구 이동의 만리장성 이북, 3단계는 흑룡강성 전부와 캄차카반도를 포함하는 연해주 전부로 확장하여 대고려국의 영토가 확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계별 시기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간도의 만주로부터의 분리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덧붙여 스에나가의 대고려국 구상과 관련하여 조선인으로서 정안립(鄭安立)이 자주 등장을 한다. 예를 들면 1921년 4월 1일 다이쇼일일신문에는 정안립을 "대고려국 건국의 열심자(熱心者)"로 묘사하고 있으며, 동아선각지사기전에는 "정안립 등이 봉천 방면에서 고려국 건설의 격문을 산포(散布)"하다 체포되었으나 스에나가가 이를 구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안립은 1918년 7월 초 하라 다카시(原敬), 도야마 미쓰루(頭山滿) 등 일본의 유력자를 만나 이와 유사한 구상을 피력한 적이 있으며, 1917년 12월에는 길림에서 조선인의 독립․자치를 목적으로 하는 동삼성한족생계회(東三省韓族生計會)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간도 및 만주에서의 조선인 문제를 둘러싸고 정안립과 스에나가, 그리고 일본정부가 모종의 관련성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이에 관해서는 최종보고 단계에서 보충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