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국내 연구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장애’ 문제를 ‘근대성’의 관점에서 보면 철저하게 소외되고 묵살되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설계되었다. 한센병(나병)과 같이 집단배제 장치를 떠올릴 필요도 없이, 근대적 시민사회의 가치 시스템에서 장애, 질병, 히스테리나 광 ...
이 연구는 국내 연구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장애’ 문제를 ‘근대성’의 관점에서 보면 철저하게 소외되고 묵살되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설계되었다. 한센병(나병)과 같이 집단배제 장치를 떠올릴 필요도 없이, 근대적 시민사회의 가치 시스템에서 장애, 질병, 히스테리나 광기는 ‘죄’와 같은 부정적 가치와 등치되어 예컨대 장애는 폐쇄적 가정이나 요양소, 질병은 병원, 히스테리나 광기는 정신병원 등 감옥 시설과 아날로지를 이루는 공간에 봉인되었다. 근대적 신체는 징병검사라는 등급제를 통해 관리되거나, 임신출산을 통한 국가인력관리의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산업자본주의 하에서 노동하는 신체는 착취 대상이 되어 ‘불구’가 될 수도 있는 위험에 노출되었다.
이는 근대문학 작품이 ‘장애’ 양상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였는지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일본 근대문학의 경우 개별 주체의 정신적 저항이 심화되어 정신적 질환으로 나타나는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면 오에 겐자부로가 장애인 아들을 표현 대상으로 삼기까지는 드문 문학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후’ 작가들에게 이미 ‘장애’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것은 시이나 린조(椎名麟三)의 ꡔ영원한 서장(永遠なる序章)』(1948)의 주인공 안타(安太)를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1차 ‘전후’파 작가인 시이나 린조가 제국주의 전쟁에서 복귀한 남성에게 발을 절게 한 것은 절름발이 근대의 한 단면을 제시한 것이었다. 아베 고보(安部公房)는 한술 더떠서 ꡔ타인의 얼굴(他人の顔)ꡕ(1964)에서 ‘장애’를 넘어서 ‘변형’된 신체장애를 도입한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는 전쟁이나 패전, 혹은 현대의 무력감, 결핍감 등의 특수하고 개별적인 수준의 논의가 함유하는 중요성을 인식하지만, 그 이전에 근대 문학작품의 몸 담론의 계보학적 토대를 연구하고, 일본의 근대와의 관계성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일본의 패전 이후 현대문학에 대한 검토는 그 이후에 종합적인 관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사항이기 때문이다.
근대문학의 몇몇 중요 작품의 예를 들면 오타 도요타로의 귀국에 발광해버리는 에리스가 인상적인 모리 오가이(森鴎外)의 ꡔ무희(舞姫)ꡕ(1890)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산속의 미녀가 등신 남편을 데리고 사는 약간 요염한 서사인 이즈미 교카(泉鏡花)의 ꡔ고야성(高野聖)ꡕ(1900)이나, 비정상적인 지식인을 소재로 한 시가 나오야(志賀直哉)의 ꡔ광기어린 머리(濁った頭)ꡕ(1911), 신체적 결함에 고심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竜之介)의 ꡔ코(鼻)ꡕ(1916), 지성 결함인 ꡔ어느 바보의 일생(或阿呆の一生)ꡕ(1927) 등이 먼저 떠오르는 작품들이다. 여기에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처럼 위괘양 등의 질병적 장애까지 넣는다면 범위는 더욱 확장되겠지만, 비정상으로 사회에서 배제되는 신체라는 시점을 엄밀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한편 아리시마 다케오의 문학작품에 장애를 겪는 등장인물들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ꡔ오스에의 죽음(お末の死)ꡕ(1914), ꡔ카인의 후예(カインの末裔)ꡕ(1917), ꡔ미로(迷路)ꡕ(1918), ꡔ어떤 여자(或る女)ꡕ(1911-1919) 등 아리시마의 대표작품에 등장하는 장애 인물들은 ‘근대’적 규범에서 소외되는 인간의 신체를 수탈하는 전형을 띠고 있다. 여기에 아리시마 다케오 문학에서 보이는 장애양상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다리를 저는 동생의 죽음이 여주인공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ꡔ오스에의 죽음ꡕ, 다리를 절며 거구인 남편의 노동력을 보조하는 부인이 등장하는 ꡔ카인의 후예ꡕ, 결핵으로 격리된 삶을 살다가 죽는 아내를 그린 ꡔ어린 자에게(小さき者へ)(1918), 정신병자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ꡔ미로ꡕ, 여주인공이 자궁후굴증과 히스테리로 사회에서 격리되는 ꡔ어떤 여자ꡕ에서는 백치인 사촌동생의 언급도 있다. 만년의 작품인 ꡔ성좌(星座)ꡕ(1922)의 히로인격인 오누이상의 아버지도 반신불수로 설정되고, 세이이치의 동생은 저능아이다.
이 연구를 통하여 살펴본 일본근대문학에 나타난 ‘장애’ 양상의 정도는 근대와 밀접한 관계를 드러낸다. 예컨대 근대는 ‘정상’이거나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들을 소외시키는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이 소외시키고 배제한 장애를 가진 인물들은 그들 자체로 조명되는 예가 거의 없다. 정상적인 것들을 부각시키고 그 음화로서, 바탕색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나 문학에서는 이들을 잠재적인 표현 대상으로 삼아 그 시대에 엄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