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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4481&local_id=10015009
「일본 근세의 도시지배와 도시문화」 - 에도막부의 ‘검약령’을 중심으로 -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일본 근세의 도시지배와 도시문화」 - 에도막부의 ‘검약령’을 중심으로 - | 2006 Year | 박진한(인천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283
Year(selected) 2006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8년 04월 16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8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중세 무사의 거주지에서 비롯된 조카마치는 전국다이묘 이래 일본 전역의 통일을 지향해온 무가권력에 의해 시장의 통합, 영주 권력의 상징성 등을 확보함으로써 도시의 영속적인 발전을 위해 필요한 안전, 통상, 신성의 요소를 갖추게 된다. 이처럼 다이묘의 거성에서 시작된 조카마치는 17세기중반까지 에도막부의「일국일성령(一國一城令)」, 참근교대(參勤交代) 등을 계기로 영국 내부에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기능을 높여가는 동시에 병농분리에 따른 무사인구의 유입과 이들의 소비활동을 통해 도시 발전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17세기 중반 이후 대화재, 기근, 자연재해 등을 이유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해온 이들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조카마치는 이제 더 이상 무가의 도시만이 아닌, 다양한 직종과 생계에 종사하는 도시민, 즉 조닌의 도시로 그 성격과 주역이 전환된다.
    다양한 지역과 배경을 가진 도시민에 의해 도시가 구성됨에 따라 더 이상 신분별 관할로는 도시지배의 안정성을 도모할 수 없게 되면서 도시전체를 대상으로 삼는 도시정책의 수립과 함께 주민의 생활 안정이 도시지배의 무엇보다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되었다. 더욱이 소비생활의 진전으로 말미암은 ‘사치’는 상품가격의 상승 등을 비롯한 갖가지 도시문제의 근본 요인으로 간주되면서, 소비에 대한 통제는 도시 안정화를 위한 현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7세기중반 이후 에도, 교토, 오사카의 삼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검약령의 대폭적인 증가 현상은 이 같은 막부의 인식 변화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소비에 대한 통제를 수반하는 검약령은 조카마치가 더 이상 무가의 거주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간이 아닌, 소비에 의한 ‘욕망의 분출구’이자 ‘여흥의 장’임을 인식한 결과로서 나타난 도시정책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막부의 검약령은 (사원) 축제의 실시, (스모, 가부키) 흥행 행사의 인정, 유곽의 설치 등과 같은 도시번영책과 함께 도시주민의 생활안정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에도막부의 도시지배가 갖는 또 하나의 측면이라 할 수 있다.
  • English
  • Urban society and urban governing in Early Modern Japan

    A Jokamachi 城下町 (town castle), originated from a medieval warrior's residence, acquired safety, commerce, and divinity, which were needed for a continual development of a city by Sengoku Daimyou 戦国大名. This was secured by military power who achieved merger of market and symbolism of lord power while pursuing national unification. The development of a Jokamachi, a castle town, by the mid-17th century was enabled by Edo bakufu's Ikkokuichizyorei 一国一城令 and Sankin Kotai 参勤交代 that enhanced a town's function as a center of politics, economy, and culture. The Heino Bunri 兵農分離 policy brought warriors into the town to promote commerce by forbidding armament of non-samurai class. However, a Jokamachi became more diversified town of various Chonin 町人 (towns' people), as people left country for city because of big fires, famine, and natural disasters since the mid-17th century.
    The reorganization of a town by Chonin from different origins and backgrounds made governing by social classes impossible; therefore an urgent need to make a new urban policy to embrace the whole city and to stabilize urban living grew. Moreover, the advancement of consumer life caused indulgence, the rise of price, and other urban problems, all of which raised the need to control consumption for stabilizing urban life.
    The great increase of the sumptuary laws, kenyakurei 倹約令, was witnessed commonly in the mid-17th century Edo, Kyoto, and Osaka areas which showed the recognition of the bakufu to the new social circumstances. In another word, the thrifty laws proved that the Jokamachi was not merely the warriors residence, but also served as an 'outlet of desire' and a 'center of leisure' by consumption. Therefore, the thrifty laws was an example of urban governing of Edo bakufu, the foremost goal of which was stabilization of urban society which was also seen in the urban prosperity policies, such as administering temple festivals, allowing Sumo and Kabuki, and opening of brothels.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중세 무사의 거주지에서 비롯된 조카마치는 전국다이묘 이래 일본 전역의 통일을 지향해온 무가권력에 의해 시장의 통합, 영주 권력의 상징성 등을 확보함으로써 도시의 영속적인 발전을 위해 필요한 안전, 통상, 신성의 요소를 갖추게 된다. 이처럼 다이묘의 거성에서 시작된 조카마치는 17세기중반까지 에도막부의「일국일성령(一國一城令)」, 참근교대(參勤交代) 등을 계기로 영국 내부에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기능을 높여가는 동시에 병농분리에 따른 무사인구의 유입과 이들의 소비활동을 통해 도시 발전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17세기 중반 이후 대화재, 기근, 자연재해 등을 이유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해온 이들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조카마치는 이제 더 이상 무가의 도시만이 아닌, 다양한 직종과 생계에 종사하는 도시민, 즉 조닌의 도시로 그 성격과 주역이 전환된다.
    다양한 지역과 배경을 가진 도시민에 의해 도시가 구성됨에 따라 더 이상 신분별 관할로는 도시지배의 안정성을 도모할 수 없게 되면서 도시전체를 대상으로 삼는 도시정책의 수립과 함께 주민의 생활 안정이 도시지배의 무엇보다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되었다. 더욱이 소비생활의 진전으로 말미암은 ‘사치’는 상품가격의 상승 등을 비롯한 갖가지 도시문제의 근본 요인으로 간주되면서, 소비에 대한 통제는 도시 안정화를 위한 현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7세기중반 이후 에도, 교토, 오사카의 삼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검약령의 대폭적인 증가 현상은 이 같은 막부의 인식 변화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소비에 대한 통제를 수반하는 검약령은 조카마치가 더 이상 무가의 거주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간이 아닌, 소비에 의한 ‘욕망의 분출구’이자 ‘여흥의 장’임을 인식한 결과로서 나타난 도시정책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막부의 검약령은 (사원) 축제의 실시, (스모, 가부키) 흥행 행사의 인정, 유곽의 설치 등과 같은 도시번영책과 함께 도시주민의 생활안정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에도막부의 도시지배가 갖는 또 하나의 측면이라 할 수 있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17세기 전반 일본에서 조카마치라는 도시공간이 일거에 창출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와 함께 17세기 중반 도시사회에 나타난 변화의 양상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기인했는가 그리고 이에 대한 막부의 대책은 무엇이었는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중세 무가(武家)의 거주지에 그 원형을 가지는 조카마치의 도시공간이 17세기 전반 에도막부가 지시한 「일국일성령」 「참근교대제」 등의 법령을 통해 일본 각지에서 일거에 건설된 사실에 주목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조카마치라는 도시의 형성은 ‘병농분리’의 사회적 분화 과정의 결과물임에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는 막번(幕藩)영주의 정책과 의지가 결정적인 인자로 작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조카마치의 형성과 발전은 유럽의 중세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원거리 무역이나 상공업 발달 등의 요인보다 영국지배 거점과 유통 중심지를 확보하려는 막번영주 측의 정책과 의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의 조카마치와 유럽의 중세도시 사이에 발견되는 형태적인 유사성을 비교하여 도시사회와 공간구성, 나아가 사회발전에까지 양자의 동질성을 살펴보려는 시도는 다소 성급한 견해라 생각된다.
    하지만 영주의 정책이 도시 형성에 결정적인 인자로 작용했다 치더라도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공간 내의 도시사회는 막번영주의 의도와 통제에 따라 움직여 나가지 않았다.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 기근, 자연재해 등을 이유로 농촌사회에서 방출된 하층민들이 조카마치에 대거 유입하게 되고, 이렇게 늘어난 도시인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서비스산업이 전개되면서 도시사회는 이제 더 이상 신분별 거주공간의 분리에 따른 지배 원칙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안게 되었다. 특히나 중하층 무사의 생활수준을 능가하는 상층 조닌(町人)의 사치적 소비와 지가 및 물가 상승은 도시사회의 안정을 위해 막부가 해결해야할 긴급한 도시현안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17세기 중반 이후 조카마치는 더 이상 ‘무가의, 무가에 의한, 무가를 위한’ 도시공간이 아닌, 다양한 직종과 생계에 종사하는 도시민, 즉 ‘조닌의 도시’로 그 성격과 주역이 전환되는 한편 기능 역시 사회적 분업에 따른 수공업생산・유통의 결절점이자 소비를 통한 ‘욕망의 분출구’이며 ‘여흥의 장’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조카마치가 더 이상 무가의 거주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간이 아닌, 소비에 의한 ‘욕망의 분출구’이자 ‘여흥의 장’으로 전환된 이상, 막부의 도시지배정책 역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가 17세기중반 이후 에도, 교토, 오사카의 삼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막부 검약령의 대폭적인 증가 현상에 주목하고자한 것은 다름 아닌 도시지배에 관한 막부의 인식 변화를 직접적으로 반영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비’에 대한 통제라는 개념을 통해 막부의 도시지배정책을 고찰해볼 수 있다면 단지 근세 중기 이후의 도시폭동에 대한 대처와 같이 신분제사회의 형성과 유지라는 틀 속에서 이해되어온 막부의 도시지배가 갖는 의의 역시 좀 더 새로운 시각에서 재인식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Index terms
  • 조카마치(城下町), 도시, 도시사, 에도(江戶), 조닌(町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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