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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戰爭期 中國 工業經濟와 通貨膨脹의 相關關係 硏究 - 國民政府統治區, 汪精衛政府統治區, 敵占領區의 比較硏究를 중심으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中日戰爭期 中國 工業經濟와 通貨膨脹의 相關關係 硏究 - 國民政府統治區, 汪精衛政府統治區, 敵占領區의 比較硏究를 중심으로 | 2007 년 | 김지환(고려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15
선정년도 2007 년
과제진행현황 중단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9년 08월 21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9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현재까지의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연구의 요약문은 다음과 같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작성할 수 있다.

    1. 중일전쟁시기 왕정위정부의 통제경제정책
    전시 상해 지역의 통화팽창, 물가상승, 화폐가치의 하락, 실업문제 등의 경제위기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정책을 왕정위정부의 정책과의 관계 속에서 분석한 것이다. 상해지역은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기타 지역에 대한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전시 중국경제를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시 상해의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정책이 바로 왕정위정부에 의해 입안되고 실행되었기 때문에 전시경제와 정책과 관련된 분석과 연구는 전시 중국경제사의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통제경제정책이 입안되고 실시된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태평양전쟁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노정된 경제적 어려움을 들 수 있다. 즉 태평양전쟁으로 불황이 시작되면서 왕정위정부에 대한 공상자본가와 일반 시민들의 신뢰가 크게 동요되어 물가상승과 암시장의 발호 등 심각한 경제 위기가 발생하였다. 이와같은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왕정위정부에 대한 자본가 및 시민들의 지지가 크게 약화될 것임은 명확한 일이었다. 이러한 결과 입안되고 모색된 것이 바로 통제경제정책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상해의 물가는 일시적으로 하락하였으나, 전시물자의 부족과 수급의 불안정, 대외무역의 두절 등으로 야기된 경제적 악화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는 없었다.

    2. 상업통제총회의 면사포수매정책 재론
    본 연구는 제목에서 재론이라고 붙일 정도로 기존의 연구와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기존의 정치사적으로 재단된 연구를 비판하고 본 연구의 과정에서 수집되고 분석된 실사구시적 사료와 통계를 바탕으로 경제사적 경제사를 추구했다는 데에 연구의 의의가 있다.
    진주만사건 이후 전쟁의 범위와 양상이 확대되면서 동아시아 국제질서에는 커다란 변화가 발생하였다. 미국은 중경국민정부에 막대한 차관을 제공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침략을 저지할 수 있는 맹방으로서의 역할과 위상을 기대하였다. 즉 일본은 이제 연합국의 지지를 업은 강력한 중국과 새로운 단계의 전쟁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신생 왕정위정부는 정치적 정당성이 매우 취약하였으며, 이러한 결과 인민에 대한 장악력 또한 매우 불안정하였다. 특히 전시물자 부족과 수급의 불균형, 통화팽창과 물가상승 등 일련의 경제위기는 정권에 대한 자본가와 일반의 신뢰를 동요시켰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상업통제위원회의 설립과 면사포수매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중경국민정부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협력정권의 존재와 지지가 매우 절실하였다. 따라서 왕정위정부의 대영미 선전포고를 전제로 전향적인 양보정책을 실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정책 기조 하에서 조계의 반환, 불평등조약의 폐지, 상업통제총회 설립과 면사포 수매정책에 대한 재정적 지원 등이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상업통제총회는 일본의 전시 중국 자원의 수탈기구라기 보다는 오히려 왕정위정부 주도의 비상경제대책기구라는 성격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상업통제총회의 성립과 면사포수매정책의 배경에는 전후 상해를 중심으로 한 물가의 급등과 통화팽창 등 심각한 경제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상해 경제의 위기는 전시 경제의 보편적 성격 뿐만 아니라 은행, 금융자본가, 공상업자본가 등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투기행위에 적지않은 원인이 있었다.
    투기행위는 상품의 유통과정에서 비정상적 가격의 상승과 이윤을 도모하는 것이므로, 왕정위정부는 국가권력이 중층적인 유통단계에 개입함으로써 생산과 소비를 직접 연계시켜 사재기와 투기를 소멸시키고자 하였다. 특히 상해로 몰려든 유휴자본의 대부분이 면사포의 투기에 집중되었으므로 면사포의 통일적 수매와 배급이 필요하였고, 이를 총괄하기 위한 기구가 바로 상업통제총회였으며, 면사포 수매정책이었던 것이다.
    상업통제총회가 시행한 면사포 수매정책은 당시 공상자본가의 강력한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자본가들의투기행위로 말미암아 일용필수품이 면사포가 이미 주요한 투기대상이 된 상황에서 일반 시민들은 오히려 이러한 정책에 우호적일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면사포 수매정책은 단기적이나마 투기행위를 억제하고 유휴자본을 동결시킴으로써 물가의 상승을 억제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 영문
  • After Pacific War, economic situation in China including Shanghai faced a crisis. Wartime shortage, the cessation of foreign trade, the imbalance between supply and demand, inflation, and cornering and hoarding weakened the economy, which caused a flutter in the capitalists and lay people trusting the government. Especially, Wang jing wei Government, whose political legitimacy was weak, was not able to control the people. For compensating the political weakness, the government established Commercial Control Association and launched compulsory purchase policy of cotton yarn and textile. Japan wanted a strong government which cooperated and supported Japan against Guomindang Government in Chungqing. As a token of concession policy, Japan financially supported economic policy of Wang jing wei Government. Commercial Control Association was not the organization for Japan's exploiting resources from China but an economic organization in emergency. Although Commercial Control Association was temporarily successful, the influence of its controlled economy was very limited. Capitalists in Shanghai, who cannot help cooperating with Wang jing wei Government for its economic policy, lost their political legitimacy after Pacific War.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래 3년의 연구과제로 시작되어 1년여만에 중단되어 현재까지 발표된 연구 성과와 관련된 초록을 제시하려 한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 제국주의는 경제 일반에 대한 국가권력의 간섭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에 있는 왕정위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이 주요한 과제로 부상하였다. 왕정위정부는 전시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통제경제정책을 실시하였다. 통제경제정책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금융통제, 물자통제, 산업통제를 들 수 있는데, 물자통제는 상업통제총회 및 각 전문위원회의 활동이 중심이 되었으며, 산업통제는 국책공사 및 소속 전업공사와 중일합판 기업이 정책 시행의 주요한 대상이 되었다. 중일전쟁 시기 중국의 통화팽창과 경제위기의 진행 과정에서 전중국에서 차지하는 경제적 비중에 비추어 상해지역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43년 2월 13일 왕정위정부는 전시경제정책강령을 반포하고 이에 근거하여 통제경제정책의 시행에 본격적으로착수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왕정위정부는 상해자본가들과의 연계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으며, 이들을 정책 추진의 주체로서 위치시킴으로써 국가권력과 자본가들과의 연계를 적극 모색하였다. 이와같이 전시 상해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제정책은 전시 수요와 공급의 불안정에서 기인하는 물가상승과 통화팽창의 해결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으며, 시행된 경제정책의 결과를 보더라도 단기적이나마 일정한 경제적 효과를 거두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침략의 장본인인 일본제국주의의 강력한 지지 위에서 민심으로부터 유리된 왕정위정부의 경제정책은 그것이 당시 경제적 상황에 비추어 절실하고 시행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지속적인 효과를 달성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통제경제정책은 일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전체 경제에 대한 영향에서는 매우 제한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왕정위정부의 경제정책에 협조가 불가피했던 상해 공상자본가로서는 전후 처리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을 상실하는 주요한 전기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연구의 결과- 연구의 내용과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가. 일차사료의 수집과 분석- 본 연구를 위해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을 비롯하여 일본 국회도서관의 자료복사신청, 그리고 중국 상해시도서관과 당안관 등을 조사하여 일차사료의 확보와 활용을 통해 연구를 진행하였다. 본 연구는 이와같이 본 연구와 관련된 중국과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1차사료의 확보와 수집에 중점을 두었다.

    나. 통계 수치의 계량화 및 데이타베이스 작업- 본 연구를 진행하면서 특히 사료의 분석과 정리 과정에서 논문 작성을 위한 통계사료의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진행하였다. 특히 각 지역에서 발행된 신문과 정기간행물에서 각 항목에 걸쳐 시기별로 물가 및 경제통계수치를 수집하여 정리하고 자료로서 축적하였다.

    다. 현재까지 발표된 논문의 서술과 주요 내용- 현재까지 발표된 논문은 <중일전쟁시기 왕정위정부의 통제경제정책>이다. 주요한 내용은 전시 상해 지역의 경제현상의 분석을 왕정위정부의 정책과의 관계 속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통제경제정책이 입안되고 실시된 배경 가운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태평양전쟁을 계기로 노정된 통화팽창 등 경제적 곤경을 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통제경제의 입안과 실행은 전시 통화팽창, 수급의 불안정 등의 경제위기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결과 상해의 물가는 일시적으로 하락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물자 부족과 수요 및 공급간의 불균형, 대외무역의 두절 등으로 야기된 경제의 총체적 악화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었다.

    라. 연구 중단 이후 심화연구를 통한 논문의 서술- 본인은 연구 중단 이후 기왕의 연구를 바탕으로 연구지원의 중단과 관계없이 심화된 연구를 진행하여 <상업통제총회의 면사포수매정책 재론>이라는 논문 초고를 완성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종래의 연구에서 일본제국주의의 대행기관이며 일제의 중국물자수탈기구로서 평가되어 오던 상업통제총회의 연구를 경제사적 시각에서 분석하였다. 즉 왕정위정부의 상업통제총회와 면사포수매정책은 전시 물자의 부족, 수급의 불균형, 물가의 상승과 통화팽창 등 일련의 경제위기의 해결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왕정위정부는 경제전반에 대한 국가권력의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전시 경제위기를 타개하고 나아가 일반에 대한 장악력을 제고하기 위해 상업통제총회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면사포의 수매정책을 시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태평양전쟁 이후 중국에서 협력정권의 존재가 절실하였으며, 이러한 결과 대폭적인 양보정책의 실시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이러한 양보정책으로서 시행된 것이 조계의 반환, 불평등조약의 폐지, 상업통제총회의 성립과 면사포 수매정책에 대한 재정직 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상업통제총회는 일제의 중국물자 수탈기관이 아니라 오히려 왕정위정부 주도의 전시비상경제기구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2. 연구의 활용방안

    가. 앞서 계통적으로 정리한 경제관련 각종 통계수치는 이후 중국경제사와 관련된 후속 연구에서 유용한 기본 자료로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나. 연구 중단 이후 심화연구로 진행된 <상업통제총회의 면사포수매정책 재론>은 현재 초고 완성 단계에 있으며, 동양사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며, 학회 발표 이후 동양사학연구에 투고될 예정이다.

    다. 금번 연구는 중일전쟁 시기의 중국경제사 관련 주제로서, 이후 중일전쟁 시기의 중국경제사의 다양한 방면으로 연구를 확대된 이후에, 다시 통합되어 단행본으로 연구성과를 묶어 출판할 예정이다.
  • 색인어
  • 전시통제경제, 왕정위, 윤함구, 상해, 상업통제총회, 면사포 수매정책, 중일전쟁, 중앙저비은행, 저비권, 군용표, 태평양전쟁, 행정원, 최고국방회의, 송자문, 루즈벨트, 처칠, 장개석, 중국은행, 교통은행, 통화팽창, 유휴자본, 물자통제심의위원회, 고도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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