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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과 그리스 내전 비교 연구-미국의 역할을 중심으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제주4.3과 그리스 내전 비교 연구-미국의 역할을 중심으로 | 2007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양정심(이화여자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02
선정년도 2007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9년 02월 21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9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미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한 그리스 내전(1947~949)과 제주4.3(1948~1949)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는 중국 내전, 그리스와 터키 사태 등 국제정세의 악화와 국방예산의 삭감으로 초래된 외교정책의 목표와 가용자원 간 불균형을 조정하기 위해 새로운 대외전략을 모색했다. 트루먼 독트린과 봉쇄전략에 의해 냉전은 공식화됐고, 미국의 대소 정책은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저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냉전 시기 미국의 관심은 주 그리스 미 대사관의 랜킨(Rankin)이 밝혔듯이 "그리스에서 공산주의 반란과 이의 영향력을 없애는 것"이었다. 이는 극동의 한국, 제주4.3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미국에게 있어서 문제는 전쟁 시기 독일에 대한 저항과 전후 상황으로 인해 좌익세력이 그리스의 사회, 문화, 정치에 깊이 뿌리박혀 있고, 그리스 정치권의 주요 세력이 됐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도파 정치인들을 포함해 많은 그리스인들은 미국과는 달리 그리스인들 사이의 처참한 내전수행을 꺼려했다. 결국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그리스 정치권의 우파 가운데 자신들의 가장 지속적인 동맹자들을 찾아냈다. 우파에 대한 이러한 의존은 그리스 정치에 대한 미국인 관리들의 개입 결의를 깊게 했으며, 그리스를 자치정부에 맡길 수 없는 것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미국은 그리스에 친미, 반공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정치조작을 일삼았고, 비우호적이라고 생각하는 정권은 와해시켰던 것이다. 한반도에서도 미국은 자국에 우호적인 정부를 세우고자 했고,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성공리에 끝내기 위해 4.3을 철저히 진압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리스와 제주에서도 항쟁을 진압하는 데에 직접적인 개입을 드러내는 것은 피했다. 미국은 이면에 숨은 채 한국인 군대와 경찰을 통해서, 그리고 그리스 정부군을 통해서 상대를 진압하고자 했다. 작전계획을 세우고 군사적 원조를 아끼지 않았지만 싸움은 한국인들, 그리스인들 손에 맡긴 채 뒤에 서 있었다. 미국은 은폐된 학살의 공범자였지만, 결국 보이고 드러나는 피울음과 비극은 고스란히 한국인, 그리스인의 몫이었다.
  • 영문
  • Comparative Study on Jeju 4.3 and Greek Civil War
    ― Focusing on the role of U.S. ―

    The Cold War really began in the latter part of the 40's through the Truman Doctrine and ‘containment’ policy. The Greek civil war(1947~1949) and Jeju 4.3 resistance(1948~1949), which were mostly involved with the U.S. intervention, broke out at that time. In the milieu of the Cold War, the U.S. policy focused its attention aggressively on stopping the expansionism of the Soviet Union.
    In this period of the Cold War, the U.S. concentrated on "eliminating communist rebellion and its effect in Greece." Like in the Greek civil war, this was done with reference to Jeju 4.3 case in Korea, located in the far East.
    The U.S. ran into troubles due to the situations as follows; the Greek Leftists had taken their root deeply in the common society, cultural place, and the politics in Greece because of their resistance against Nazi invaders during the World war II and the postwar circumstance; They came to form the mainstream in the Greek political world. Furthermore, unlike the U.S. viewpoint on the politics, never did most Greeks including middle-of-the-roader politicians want to prosecute bloody civil war in Greece.
    Eventually, the U.S. decision-makers found the most stable allies among the Rightists in the Greek political world. The U.S. used to do political manipulations on the purpose of establishing a pro-American and anticommunist regime in Greece. It destabilized another regime which had not been thought to be close to the U.S. In the Korean peninsular, the U.S. purposed to set up a pro-American government; it needed to quell Jeju 4.3 throughly for the successful single election for South Korea only.
    However, the U.S. avoided showing its direct interventions to suppress resistances in Greece and Jeju. It wanted to quell resistances by the hands of Korean military and the police, by virtue of Greek government forces, with concealing its virtual role in the suppressions; it planned operations to oppress resistances ; it provided rich military aid for its allies; with all these actions, it pretended that it was not related with conflicts. The U.S. was a concealed party of the massacre in Korea and Greece, but the bloodsheds and tragedies were fully alloted to Koreans and Greeks onl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트루먼 독트린은 전후 미국 외교정책과 국제질서의 모습을 결정지었고, 세계 곳곳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바꾸어놓았다. 이 정책의 본질은 전후 세계질서의 수립에서 소련을 배제하고 오히려 소련의 팽창으로부터 서방을 지키려는데 있었다. 이는 소련과의 대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지정학적 고려에 있어서, 서구를 지키기 위한 전략적 요충들이 선택되었고, 이 지역들에 대한 소련의 도전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자세가 확립되었다.
    그리스는 유럽대륙의 남부에 위치하여 소련의 지중해 진출을 막아야 하는 전략적 요충이었고, 부패한 현지국 정부도, 구 식민세력 영국도 버티지 못하는 상황에 있었으므로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야 했던 첫 사례였다. 트루먼 독트린이 공포되었던 직접적 계기이기도 했으며, 이후 미국의 냉전정책과 제3세계 정책의 모델이 된 사례였다. 미국은 좌우간의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그리스 사태를 공산주의 대 반공 자유주의간의 싸움으로 규정짓고, 공산화를 막기 위해 군사 고문단의 파견과 경제 지원을 포함하여 막대한 규모로 직, 간접 개입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리스 내전은 우파의 승리로 귀결되었고 이후 그리스는 외적으로는 반공 자유세계의 일원으로, 내적으로는 독재와 부패정권의 전형으로 남게 되었다.
    한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끝에서 이러한 실험이 벌어진 사례이다. 그리스 내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이루어진 일년 뒤 제주를 비롯한 각지에서 좌우간의 대립이 벌어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내전의 양상을 띠었다.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의 기조 아래 그리스 개입의 경험대로 한국에서 반공 우파 정권의 수립을 원했고, 이를 위해 적
    극적으로 우익 세력을 원호했으며, 이 과정에서 우익의 무자비한 폭력 행사가 용인되어졌던 것이다.
    미국은 그리스내전에서도 제주4.3에서도 그 역할이 드러나는 것을 피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진압작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무기 원조, 자문뿐만 아니라 작전 계획 수립, 군사 훈련 등이 미군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군사고문단을 통해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면서도 군경토벌대의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을 방조했다. 겉으로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부르면서 실제적으로는 학살을 방조하거나 부추겼던 것이다. 그리스와 남한을 반공의 전초 기지로 상정한 냉전 시기의 미국으로서는 당연한 결론이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는 냉전 초기 유사한 시기에 발발한 제주4.3과 그리스 내전에 대한 미국의 역할을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미국이 제주4.3과 그리스 내전의 본질을 동일시했다는데 주목하고, 이에 대한 미국의 시각 및 진압과정에서의 개입 정도에 대해 살펴보았다. 따라서 이 연구는 제주4.3과 그리스 내전의 본질과 전개과정, 제노사이드의 일반적 형태와 역사적 해석에 대한 비교연구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두 사건의 배경과 전개과정, 두 사건에 대한 미국의 인식과 개입, 미국의 대외정책과의 연관성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본 연구는 미군정 시기에 일어났던 제주4.3을 미국과의 연관성 속에서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나아가 제주4.3의 국제화를 통한 연구 활성화를 기대하고 동서양에서 일어난 제노사이드에 대한 학문적 비교 연구를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본 연구의 활용방안은 그리스 내전과 제주4.3의 비교분석 결과를 학술지를 통해 발표함으로써 4.3연구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제노사이드에 대한 역사적 해석과 처리는 한국적 특수성으로만 다루어질 것이 아니라, 외국의 제노사이드 사례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제노사이드 연구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과거청산을 위한 학문적 근거로서 본 연구 결과가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 색인어
  • 그리스 내전, 제주4.3, 트루먼독트린, 미군정, 군사고문단, 군경토벌대, 학살, 소개, 반공, 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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