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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한국과 일본의 서유럽 세계에 대한 대응 방식과 국제관계·세계관 변화의 비교 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전근대 한국과 일본의 서유럽 세계에 대한 대응 방식과 국제관계·세계관 변화의 비교 연구 | 2007 년 | 신동규(강원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05
선정년도 2007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1년 02월 26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1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전근대(중근세 시기) 서유럽 세계의 동아시아 진출에 동반한 조선과 일본의 외교적 대응 방식과 국제관계 및 양국의 세계관의 변화를 비교·고찰하는 것으로 3개년 연구 수행 속에서 다음과 같은 연도별 과제와 내용을 가지고 추진해왔다.
    우선 제1년차에는 「전근대 서유럽 세계의 진출로 본 근세 일본의 국제관계 변화에 대한 고찰」(학술등재지 기게재)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여기에서는 전근대 서유럽 및 일본측 사료에 대한 수집·정리·분석을 통해 포르투갈·스페인의 진출을 시작으로 네덜란드·영국 등 서유럽 세계와의 관계를 동아시아의 네트워크 변화(=무역과 선교에 의한 국제관계의 변화) 속에서 규명했다. 특히, 일본은 서유럽의 일본 진출을 계기로 혼란했던 전국시대(戰國時代)로부터 통일의 토대를 마련했고, 이후 서유럽 세계에 대한 대응방식의 변화를 거치면서 새로운 국제관계를 형성시켜 유지해 나갔기 때문에 그 대응 방식의 본질과 논리가 과연 무엇인지를 규명하였다.
    제2년차에는 「일본의 중세적 세계관에서 근세적 세계관으로의 변화와 조선의 전통적 세계관 변화에 대한 비교 고찰」(학술등재지 기게재)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연구를 추진해왔다. 여기에서는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변화가 서양 세력의 진출에 다른 동아시아 각국의 세계관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전제 하에 조선과 일본의 세계관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었는가를 비교·고찰한 것이다. 특히, 일본 중세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삼국세계관(三國世界觀)의 변화와 조선의 전통적 세계관의 변화를 검토하여 양국의 세계관에 어떠한 차이점이 있으며, 서유럽 세계의 진출과 비교하여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제3년차에는 「전근대 서유럽의 조일 진출 의도와 조일의 대응 논리에 대한 비교 연구」(학술등재지 게재 준비중)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서유럽의 동아시아 진출은 지금까지 본인의 연구결과 대략 16세기 중반, 17세기 초반, 17세기 후반, 19세기 초반 등의 시기로 성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서유럽 세계는 식민지화의 논리와 무역확대, 그리고 선교활동의 근거지 확보라는 점에서 조선과 일본으로의 진출을 추구해왔음을 밝혔다. 조선의 경우, 전통적으로 유교적 정치논리와 해금정책이라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대외정책 속에서 서유럽과의 관계단절을 유지하였고, 일본의 경우는 같은 해금정책(쇄국정책)을 실시하였음에도 능동적인 대외통제책 속에서 서유럽과의 관계를 유지하였다. 즉, 나가사키를 통해서 네덜란드와의 무역관계는 문화의 유입은 용인하고 있었지만, 그리스도교의 유입이나 선교활동은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정책을 취하였기 때문에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등과의 적극적인 외교관계는 1641년 이후 사라지게 되면서, 이른바 서유럽 관계가 네덜란드와의 관계로 일원화된 것이었다.
    본 연구의 결과 서양관계의 논증 없이 동아시아 국제관계는 규명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특히 서유럽의 진출이 무역과 선교라는 목적에 의해 추진되었으며, 그 결과 형성된 '무역·종교 네트워크'는 상당한 국제관계·세계관의 변화를 불러왔다는 것도 논증되었다. 일본이 철저한 무역통제, 그리스도교 금제정책을 외교의 근간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지만, 조선 또한 무역과 종교적인 문제로 인해 국제관계가 편성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다. 때문에 본 연구의 가장 큰 성과는 동아시아 해역세계, 특히 조선과 일본이 하나의 네트워크 속에 존재했음과 동시에 또 다른 네트워크를 에스노센트리즘에 의해 편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서유럽의 진출로 증명했다는 점에 있다.
  • 영문
  • This article illustrates what control and foreign relations premodern Japan had in East Asia's international relations by focusing on the change of the international relations of premodern Japan caused by the advance of West Europe and examining the reason of the West Europe's advance, the Japan's countermeasure and the process dealing with the foreign affairs. Portugal and Spain, which had led the Great Cruise Era, come to East Asia for trade and mission, and succeeded in the establishment of many important bases for trading by violently participating in the then existing Asian trade network. The early 17C, however, saw the change of the leaders of the advance of the West from the above two nations to England and the Netherlands. That was partly because Japan prevented the missionary works, which, in turn, changed the trade structure. That is, Portugal and Spain were positively engaged in the missionary works as well as trading, and the then shogunate government excluded trading with the two nations for prevention of the mission. In the other hand, the Netherlands won the trading war against England, which disclosed her commercial center in Japan in 1623, and monopolized trading with Japan. This phenomenon was also because the Netherlands had put mission under a taboo and only focused on the trading. As a result, this reflection of the reality brought the severance of relations with Spain in 1620 and with Portugal in 1639, which, in turn, resulted in the change of international relations and diplomatic network of Japan. At last, 'Sakoku Policy' emerged as the basic foundation of international relations of premodern Japan, where Japan set 'four diplomatic windows' as a control of foreign affairs, and only through the four windows, the country kept relations with East Asia's countries and West European countrie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전근대 시기 서유럽의 동아시아 진출에 따른 朝日의 대응 방식과 국제관계 및 세계관의 변화를 비교·고찰하는 본 연구는 전체 주제 속에서 다음과 같은 연도별 과제와 내용을 가지고 추진해왔다.
    우선 제1년차에는 「전근대 서유럽 세계의 진출로 본 근세 일본의 국제관계 변화에 대한 고찰」(학술등재지 게재)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여기에서는 전근대 서유럽 및 일본 사료에 대한 수집·정리·분석을 통해 포르투갈·스페인의 진출을 시작으로 네덜란드·영국 등 서유럽과의 관계를 동아시아의 네트워크 변화(=무역과 선교에 의한 국제관계의 변화) 속에서 논증했다. 특히, 일본은 서유럽의 일본 진출을 계기로 혼란했던 戰國時代 통일의 토대를 마련했고, 이후 서유럽 세계에 대한 대응방식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국제관계를 형성시켜 유지해 나갔기 때문에 그 대응 방식의 본질과 논리가 과연 무엇인지를 규명하였다.
    제2년차에는 「일본의 중세적 世界觀에서 근세적 世界觀으로의 변화와 조선의 전통적 世界觀 변화에 대한 비교 고찰」(학술등재지 게재)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연구를 추진해왔다. 여기에서는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변화가 서양세력의 진출에 다른 동아시아 각국의 세계관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전제 하에 조선과 일본의 세계관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었는가를 비교·고찰한 것이다. 특히, 일본 중세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三國世界觀의 변화와 조선의 전통적 세계관의 변화를 검토하여 양국의 세계관에 어떠한 차이점이 있으며, 서유럽 세계의 진출과 비교하여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제3년차에는 「전근대 서유럽의 朝日 진출 의도와 朝日의 대응 논리에 대한 비교 연구」(학술등재지 게재 준비중)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서유럽의 동아시아 진출은 지금까지 본인의 연구결과 대략 16세기 중반, 17세기 초반, 17세기 후반, 19세기 초반 등의 시기로 성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서유럽 세계는 식민지화의 논리와 무역확대, 그리고 선교활동의 근거지 확보라는 점에서 조선과 일본으로의 진출을 추구해왔음을 밝혔다. 조선의 경우, 전통적으로 유교적 정치논리와 해금정책이라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대외정책 속에서 서유럽과의 관계단절을 유지하였고, 일본의 경우는 같은 해금정책(쇄국정책)을 실시하였음에도 능동적인 대외통제책 속에서 서유럽과의 관계를 유지하였다. 즉, 나가사키를 통해서 네덜란드와의 무역관계는 문화의 유입은 용인하고 있었지만, 그리스도교의 유입이나 선교활동은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정책을 취하였기 때문에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등과의 적극적인 외교관계는 1641년 이후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본 연구의 결과 서양관계의 논증 없이 동아시아 국제관계는 규명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특히 서유럽의 진출이 무역과 선교라는 목적에 의해 추진되었으며, 그 결과 형성된 ‘무역·종교 네트워크’는 상당한 국제관계·세계관의 변화를 불러왔다는 것도 논증되었다. 일본이 철저한 무역통제, 그리스도교 금제정책을 외교의 근간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지만, 조선 또한 무역과 종교적인 문제로 인해 국제관계가 편성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다. 때문에 본 연구의 가장 큰 성과는 동아시아 해역세계, 특히 조선과 일본이 하나의 ‘네트워크’ 속에 존재했음과 동시에 또 다른 ‘네트워크’를 ‘에스노센트리즘’에 의해 편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서유럽의 진출로 증명했다는 점에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과제는 3개년(2007.09~2010.08)에 걸쳐 수행된 것으로 크게 두 가지 점으로 연구결과를 정리해볼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서유럽세계의 진출에 따른 전근대 일본의 국제관계 변화와 관련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항해시대를 이끌어 나갔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동아시아 진출은 무역과 그리스도교의 포교를 양립시켜 추진되고 있었고, 두 나라는 모두 기존의 아시아 교역 네트워크에 폭력적으로 참가하여 다수의 교역 거점을 구축하는데 성공했지만, 17세기 초를 정점으로 영국과 네덜란드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일본의 그리스도교 금제라는 통제정책과 그에 수반된 무역구조 변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한편, 영국도 네덜란드와 무역경쟁에서 패퇴해 1623년에 일본상관을 폐쇄하게 되어 네덜란드에 의한 일본무역 독점이라는 현상이 발생하지만, 이 역시 네덜란드가 포교를 금기시하고 무역에만 중점을 둔 결과였다.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 1620년 스페인과의 단교, 1639년 포르투갈과의 단교로 이어졌고, 이로써 근세 일본의 '쇄국정책'과 '4개의 외교창구'가 국제관계 설정의 기본적인 토대로서 정착한 것이다.
    두 번째 연구결과는 서유럽 세계의 진출 및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변화로 인한 조선과 일본의 세계관이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어떠한 대응이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고찰인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대시기부터 조선과 일본 양국에는 신화적 세계관과 천축을 중심으로 한 불교적 세계관이 모두 존재하고 있었지만, 조선은 15세기 초반부터「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의 세계관, 즉 일본인들이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아프리카, 유럽, 아리비아 반도 등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었다. 즉, 근대 이전까지 조선의 경우는 세계관의 변화 속에서 잠재적 중국관이 존재해 있었고, 일본의 경우는 중세적 三國世界觀(인도・중국・일본)에서 근세적 二國世界觀(서양・일본)으로 변화되면서도 전통적인 신국관이 잠재되고 있었다. 이러한 일본의 잠재적 신국관은 국가의 위기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표출될 수 있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셋째, 유럽 세계의 진출에 따른 조선과 일본의 세계관 변화의 양상에 커다란 차이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의 경우는 건국초기부터 세계의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고 있어 서양 세계에 대한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일본보다 선진적이었으나, 유교주의적 사상적 토대가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당시 조선의 세계관에 서양의 실체를 적용시키지 못했다. 반대로 일본은 조선보다 서양인식의 측면에서 후진적이었지만, 16세기 중반부터 적극적인 유럽과의 무역 및 외교 네트워크의 형성, 그리고 18세기부터는 蘭學 등의 유럽 학문의 수용으로 서양과 神國 日本이라는 二國世界觀을 정착시켰고, 이를 토대로 부국강병책을 강화시켜 나갔다.
    한편, 본 연구의 기대효과와 활용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朝日 양국의 서유럽 진출에 의한 국제관계와 세계관의 변화를 통해 동아시아사를 통사적으로 파악하려 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기대효과가 크며,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서유럽의 사료를 전반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주관성을 배제한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라고 볼 수 있다. 둘째, 본 연구의 논문작성을 위해 작성된 부수적 성과물의 활용가치가 크다는 점이다. 즉, 관련 사료의 원문과 번역문, 서지사항, 기초적 내용 등은 데이터베이스로 확장하여 자료를 구축할 수 있으며, 추후 계획으로서「전근대 朝日 양국의 서유럽 관계 데이터베이스」(가칭)라는 명칭으로 구축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물론 연구보고서는 학회에서의 발표를 통해 학술지 등에 게재를 하였고, 3차년도의 연구논문은 게재할 예정에 있지만, 그 자료를 공개한다는 것은 역사 관련 자료가 개인의 전유물로 독점되어 사장되는 폐단을 막을 수 있고, 개인의 편집과 제작에 의한 것이라도 공유하여 다른 연구자들에게 검증 받음으로서 그 사실을 더더욱 객관화할 수 있음과 동시에 관련 연구 및 역사 학술분야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의 단계별 계획 제4단계에서 명시한 바와 같이 본 연구를 계획대로 진행시킨 후, 연구결과물을 학술진흥재단에 제출함과 동시에 학술잡지에 발표·게재하고, 학술진흥재단의 연구조성에 의한 연구임을 명시하여 인터넷에 공개함으로서 본 연구의 기대효과를 더욱 극대화 할 수 있다. 셋째, 교육의 현장에서 전근대 서유럽 세계의 진출과 朝日 양국의 서양에 대한 인식을 소개할 때, 이러한 실증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해 준다면, 학문에서의 객관성을 연구의 기본자세로 인식시켜줄 것이며, 인터넷을 통한 화상 자료(원사료, 데이터, 통계자료 등) 등의 제시 또한 시청각 교육의 효율성 증진으로서도 하나의 활용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 색인어
  • 서유럽, 서양, 국제관계, 세계관, 전근대, 근세, 네트워크론, 조일관계, 도쿠가와, 동아시아, 국제무역, 선교, 조선, 일본, 에도막부,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동인도회사, 네덜란드 동인도연합회사, 동북아시아, 쇄국, 쇄국주의, 명청교체, 개국, 상관일기, 나가사키, 히라토, 바타비아, 항해기, 이국선, 표류, 해난, 에스노센트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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