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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1935년 重慶의 ‘內的’·‘人的’ 요소와 도시근대화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1926-1935년 重慶의 ‘內的’·‘人的’ 요소와 도시근대화 | 2007 Year | 김희신(상명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91
Year(selected) 2007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9년 05월 29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9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1926-1935년 9년간 劉湘의 지배는 이 시기 중경이 상대적 안정성을 갖게 되는 결정적 배경이었다. 1926년 商埠督辦公署, 1927년 市政廳, 1929년 정식 市政府 수립 등 행정관리기관이 정비되면서 행정적 지위 제고 및 도시 발전의 조건이 마련되었다. 더욱 19세기 후반 중경이 지리적 우세와 발전 잠재력을 가진 "통상항구"로 되었지만, 이후 외국 세력의 영향력에서 상해·천진·무한 등과 같은 도시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1895년 일본이 유일하게 중경 조계를 세웠지만, 도시 중경의 발전 역사 속에서 일본 조계의 위상과 영향은 매우 적다. 조계에 정착한 일본인이 조계 밖 城內에 거주하는 일본인보다 훨씬 적었던 상황이며, 영사관도 성내에 두었기 때문에 조계는 일본의 활동거점으로도 될 수 없었다. 1926년 북벌이후 중경 주재 5개국의 領事와 外商 교민들이 철수하였다. 개항이후 세력을 확대시켜 갔던 매판자본은 주로 川江航運과 山貨業 업종에 집중되었다. 신해혁명을 전후하여 重慶에 노동운동이 고조되었고, 중경 내 경영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고 매판들의 영향력은 점차 사라져갔다. 서남지역의 중심에 있던 중경과 양자강 하류의 선진 도시들과의 물적·인적소통은 航運이 관건이었다. 천진조약 체결로 중국이 內河항운권을 상실하였고, 외국 자본 윤선공사와 官輪이 거의 독점하며 경쟁하던 川江의 상황은 점차 중국자본이 川江 航運의 통일을 이루면서 도시 중경 발전을 위한 양호한 조건을 완성하였다. 천강 항운의 번영으로 중경은 "下江"에 대한 개방을 위해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하게 되었다.
    시정당국(市長 潘文華)은 󰡔重慶特別市潛行條例󰡕를 제정하였고, 최초의 건설계획은 新市場의 적극 개발, 舊城 市街의 정리, 공용사업의 건설, 학교·사회단체의 사찰과 처방이라는 4대 원칙을 바탕으로 하였다. 新區 개발과 교통에서부터 착수, 다시 수도·전기 시설, 공원·부두 시설, 도로·전화·소방 등 사업을 추진하였다. 도시민의 견문을 새롭게 하거나 정신건설을 우선하기보다는 물리적 건설에서 시작하는 것이 비교적 쉬웠기 때문이다.
    어떤 도시에서 어느 부분에 행정관리의 중점을 둘 것인지는 그 도시를 관리하는 主政者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유상의 민족주의 사상이나 ‘군사집단과 경제집단 합작론’은 지역 엘리트 집단의 인재를 적극 받아들이고 도시의 신흥 산업에 대해 아낌없는 지지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군정 당국에 대한 정치 참여를 적극 유도함으로써 중경을 중심으로 한 도시 발전과 기업 발전에 순조로운 작용을 기대하였다. 이 시기 산업화 계획은 중경 군사당국자의 지지와 협력에 의해 주도되었던 民生公司와 華西實業公司에 의해 주로 실행되었다. 중경에서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던 다수의 工商界 인사들은 전문적 소질을 갖춘 도시 내부의 금융가·실업가였다. 그들이 일구어낸 각 주요기업은 발전과정 중에서 비교적 완정적인 제도 규칙들을 만들어내고, 연습생제도 등 일련의 조치를 통해 기업 종사자의 단체정신·업무소질 개발과 활동 능력을 훈련시킴으로써 분명한 지역 특색을 갖춘 기업 문화를 만들어갔다.
    중경 도시 상계·금융계와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상당정도 민간자본이 중경도시의 경제건설에 참여토록 하였다. 이 도시에서 중경상공회의소, 각 상인길드 또는 은행에 의한 심각한 저항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부가세나 공채 발행과 같은 분쟁의 해결은 오랜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그들은 타협, 억압과 화해의 과정을 통해 접근했다. 도시 중경의 지역엘리트와의 협력은 도시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민단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그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1933년 사적인 민단자금의 징수 금지, 인구조사, 무기장부 조사, 민단원·지도자 훈련 등 민단 개혁이 시행되었다. 중경 내 민단의 통일화와 표준화, 그리고 사회질서를 안정시키는 과정이었다. 치안의 정돈과 질서는 도시 발전을 위한 양호한 조건 제공을 하였다. 여기서 중경 근대화 과정에 대응하는 방법이 개인·집단마다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들이 상호 협력·충돌하면서 중경 도시 내에서 질서가 확립되는 과정을 확인하게 된다.
  • English
  • This study was conducted as a part of the history of urban transformation, namely, how urban spaces have reflected and structured historic situations, focused on people living in cities and urban societies.
    Among the open port cities under the treaty system, the centers (coastal areas) and the surroundings (inland areas) show very remarkable differences from each other. The opening of Chongqing was around 50 years later than Shanghai, and the coastal cities represented by Shanghai had already been substantially modernized. When Shanghai had gradually been positioned at the center of Chinese modernization, Chongqing in the deep inland was very slow in modernization and was merely a region remote from the center owning most of traditions. However, the influence of the centers on the surroundings was much stronger than the shock of ‘port opening.’
    The prosperity and development of steamship transportation business on the Chuan River and the high enthusiasm of Chongqing city administrators, managers and supporters provided favorable conditions for the influence of the centers (coastal cities) to infiltrate into relatively closed environment. In particular, urban constructors (劉湘, 潘文華, 盧作孚, 劉航琛, 胡光麃, 胡仲實, 康心如, 周見三, 曾禹欽, 楊燦三, 吳受彤, 潘昌猷, etc.) who tried to connect Chongqing, an enclosed world in the inland, to the outside, the open world, and to cope with rapidly changing global trends had direct impacts on the process of urban development.
    This meant that Chongqing was faced with the time to accept modern things. The modernization of Chongqing was a process that the influence of ‘the centers’ was continuously exerted on inland Chongqing full of obsolete and premodern things. However, in very ‘diverse’ modern changes (urbanization, the development of commerce and industry, people’s value system or cultural consciousness, change in the existence pattern of pubic areas), the urbanization of Chongqing basically concentrated on ‘construction’ imitating the material aspect of large cities such as Shanghai. In general, the urbanization process included education, police and organization services related to transportation, energy, telecommunication, water supply, education, health, public administration and other facilities. On the other hand, as revealed by the expression ‘downstream people (downstream culture),’ the historical and spatial distance was too large to achieve a cohesive force of unified Chinese culture and this meant the requirement of time and effort as that much.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 논문은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나 사회를 염두에 두면서 시대마다 시대상이 도시공간에 어떻게 반영되고 구조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도시 변천사의 일환으로 시도되었다.
    條約體制下에서의 개항 都市群들내에서도 ‘中心’(沿海)과 ‘周邊’(內陸)의 차이는 매우 현저하다. 중경의 개항은 상해에 비해 근 50년 정도 지체되었고, 상해를 대표로 하는 연해의 도시들은 이미 상당한 현대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상해가 점차 중국 근대화의 ‘중심’을 이루었을 때 깊숙한 내륙의 중경은 근대화의 움직임이 아주 늦고 대부분 전통성을 보유한, 중심에서 먼 ‘주변’이었다. 그러나 중심의 주변에 대한 영향력은 ‘개항’의 충격보다 훨씬 더 컸다. 川江 輪船航運業의 번영·발달과 중경 도시 관리자·경영자·조력자 등의 극대한 열정은 ‘中心’(沿海)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환경에 침투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였다. 특히 내륙의 닫힌 세계 중경을 열린 세계인 외부와 연결시키고 빠르게 달라지는 세계 조류에 대응하고자 했던 도시 건설자(劉湘, 潘文華, 盧作孚, 劉航琛, 胡光麃, 胡仲實, 康心如, 周見三, 曾禹欽, 楊燦三, 吳受彤, 潘昌猷 등)들이야말로 도시 발전과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중경이 이미 근대적 요소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시기에 처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중경의 근대는 낙후되고 전근대적 요소가 강한 내륙 중경에 ‘중심’의 영향이 끊임없이 확대되는 과정이었다. 통상적으로 교통시설, 에너지·통신시설, 상수도 시설, 교육보건시설, 공공행정시설, 이 시설들과 연관되어 발생하는 교육, 경찰, 團務 서비스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매우 ‘다양한’ 근대 지향적 변화들(도시화 과정, 상공업 발전, 시민들의 가치관이나 문화의식, 공공영역의 존재양태 등의 변화) 가운데 중경 도시화 과정은 新區와 교통 개발에서부터 착수, 수도·전기, 공원·부두, 도로·전화·소방 등 기본적으로 상해와 같은 대도시의 물질적 측면을 모방하는 ‘건설’에 우선 집중되었다. 도시민의 견문을 새롭게 하거나 정신건설을 우선하기보다는 공공건설에서 시작하는 것이 비교적 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下江人(下江文化)’이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중화의 同源 문화라는 응집력을 발휘하기에는 그 역사적·공간적 거리가 너무 컸고, 그 만큼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①중경의 도시 건설은 거의 없었던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성취’된 것은 적었지만 이미 도시 면모의 의미있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유상의 중경지배와 그것이 도시 발전에 미친 영향등의 문제는 도시사의 관점에서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또한 기존의 ‘군벌사’ 혹은 ‘군벌시기’ 연구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②1920-30년대 유상과 그의 지지자들은 같은 시기 ‘중심’(연해)에서의 정치, 문화적 추세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고, 이러한 변화의 흐름이 사천과 같은 ‘주변’(내륙)에도 들어오기를 열망했었다는 사실이다. ‘暗黑’은 1920년대 상해 등에서 간행된 정기간행물에 사천을 설명할 때 짝을 이루어 등장하는 표현이었다. 유상 시기 중경 도시 발전에 대한 연구는 이 ‘暗黑’은 발달된 해안도시와 내지도시 사이에 가로놓인 ‘편면 유리 효과’라는 사실을 부분적으로 드러내 줄 수 있을 것이다.
    ③중경 근대화 과정에 대응하는 방법이 개인·집단마다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들이 상호 협력·충돌하면서 중경 도시 내에서 질서가 확립되는 과정을 확인하게 된다. 도시의 공간 배치를 비롯하여 市政관리, 환경, 도시건설 방식 등 여러 분양에서 사회세력이 ‘경쟁하고 타협해 간 역동적인 과정’으로 중경 도시 근대화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본 연구가 중경 도시 발전을 분석 대상으로 하면서도 ‘인적’ 주관적 요소간의 상호 협력과 갈등의 측면에 중점을 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로부터 근대 개항이후 ‘근대화’라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추진되었던 도시 건설이 지역별로 각기 다른 결과를 초래하게 된 역사적 원인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본 연구는 단순히 도시 건설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와 지역과의 관계, 그리고 국민국가의 장래 문제를 해명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 Index terms
  • -중경, 근대화, 유상, 반문화, 노작부, 유항침, 민생공사, 화서실업공사, 천강항운업 -Chongqing, modernization, Liu Xiang, Pan WenHua, Lu ZuoFu, Liu HangChen, West Development Corporation, Minsheng Shipping Company, steamship transportation business on the Chuan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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