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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인천지역의 일본인 연구(1910~45)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일제하 인천지역의 일본인 연구(1910~45) | 2007 Year | 이규수(성균관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57
Year(selected) 2007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9년 05월 28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9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이 글에서는 개항장 인천을 중심으로 개항 이후 한국강점에 이르기까지 일본 식민지배세력이 인천에 세운 식민사회의 구조적 특성이 무엇이며, 또 그런 사회구조적 특성은 일제의 식민지배정책과 서로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재조일본인 연구는 연구사적으로 보아도 이제 출발에 불과하다.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이 처음부터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겠지만, 우선 체계적인 자료 정리와 구체적인 사례연구 , 그리고 지역연구를 통하여 연구 성과를 축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시기별, 지역별, 계층별 차이에 따른 다양한 조선 거주 일본인 사회의 특질에 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본고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인천으로 도항한 재조일본인은 시기별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개항 직후부터 청일전쟁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 조선으로 도항한 일본인들은 고위 관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제적인 목적을 갖고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즉,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 본국에서 생활기반을 잃은 사람 등이었고, 이들은 가족을 본국에 두고 독신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이유는 당시 조선으로 건너오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고, 또 당시 조선의 정황이 불안정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시기는 청일전쟁 이후부터 러일전쟁까지이다. 이 시기에 도항한 자들은 전쟁특수를 노린 상인들과 군인들, 종군기자들이었고, 일본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 되고 난 이후에는 조선에 일본문화를 이식하기 위해 도항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시기는 일본 정부의 이민 장려정책이라는 배경 하에 일본인들의 도항은 더욱 늘어나는 시기였다. 세 번째 시기는 러일전쟁 이후부터 한국강점까지로, 초기의 이주민들과 달리 가족이민과 다양한 직업군의 이민이 보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조선으로의 이민 수속이 이전보다 훨씬 간소화되고,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가 거의 확실해졌기 때문이었다. 개항장 인천의 위치는 일본의 조선침략의 전진기지로 활용되었다. 인천은 개항과 더불어 격동기 일본의 이권 획득의 발판이 되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당시에는 일본 관헌의 유일한 피난처이자 도주로였다. 한성에 접근할 수 있는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배경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일본인들의 경유지 혹은 종착지로 중시되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이들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급격한 인구증가 현상이 말해주듯 일본인은 개항장 인천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해나갔다. 다양한 계층이 재조일본인 사회를 구성했다. 그들은 본국 정부의 지원 아래 일본의 지방행정체제를 도입한 식민도시를 건설했다. 한국강점을 전후로 한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인천 거류민들은 한국강점 이후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철도 개통 이후 인천이 지닌 사회경제적 약점을 보완하는 방안과도 연결된다. 이것은 조선의 식민지화 과정에서 인천이 담당한 역할과 식민지 이후의 역할은 약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조선 제일의 무역항이었던 인천은 이후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다. 조선 내에서는 철도를 중심으로 한 경제시스템이 우위를 차지했지만, 일본의 대륙정책과 관련한 해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와 함께 한국강점 이후의 재조일본인 사회의 변모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양태를 띄며 전개되었다.
  • English
  • Making 'the agreement of Korea-Japan' after the accident of the ship, Wunyang in February of 1876, Japan started to invade Korea. For this project, Japan needed the strategic base. Japan chose Inchon, the third port to Korea, which was thought to be easy to access to Japan. Inchon opened in January of 1883, as a basic port of Japanese invasion to Korea. Characteristics of the Japanese to Korea were divided into three periods. The first period was the one, after opening port from the Chung-Japan war. In this period, almost of all Japanese, coming to Korea, had economic ends. The second period was from the Chung-Japan war to the Russia-Korea war. In this period, because Japanese government encouraged the emigration, Japanese emigranta to Korea increased much more. The third period was from the Russia-Korea war to the impulsive seize of Korea. In this period, many family immigrants and various vocational immigration increased, because Japanese domination was secure and emigration registery to Korea was much easier than before. The location of the opening port, Inchon, was used as a progressing base of Japanese invasion to Korea. Also, because of its geographic advantage, Inchon was an important base as a passing or terminal place to Korea from Japan. The Chung-Japan war and the Russia-Japan war provided good opportunities for Japanese who dreamt a great fortune. Many Japanese immigrants accumulated great fortune on the basis of Inchon, and they formed Japan society in Inchon. They established colony city in Inchon, taking the support from Japanese government.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근대전환기 한국 사회가 식민지로 전락하던 한말과 일제 시기는 한국 역사상 매우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하게 한 시기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이라는 측면에서도 그 연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시기에 대한 연구는 역사학은 물론이고 문학, 사회학 등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오래 전부터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왔다. 지금까지의 한말과 일제시기 연구는 그 어느 분야이든, ‘식민자의 지배와 피지배 민족의 저항’이라는 거시적 프레임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 가운데에서도 지배에 대한 저항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지다 보니, 정작 지배의 성격 그 자체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발전시켜 오지 못한 한계도 드러냈다. 물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에는 일제시기 식민지 정책사 연구가 정치 경제는 물론 종교 문화의 영역으로 확대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조차도 보다 온전하게 식민지 정책자, 식민지 지배자들 자신에 대한 연구로까지 발전되지 못하여, 정책의 생산구조나 지배의 내면적 구조와 성격을 밝히는 ‘지배세력’ 그 자체에 대한 내재적인 분석 작업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일제시기 식민정책을 연구하면서 식민지 지배자 및 지배집단의 내부구조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면, 식민정책사 연구는 명백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현실을 돌이켜 보면 식민정책사 연구는 엄연히 한국사 연구의 한 영역으로 들어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반면, 일제시기 일본인 사회나 사회조직에 대한 연구는 그것이 마치 일본사 연구의 고유 영역인 양 특별한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또 한국사 영역에서이든 일본사 영역에서이든 실제 그와 관련된 연구 성과는 일부의 기초적 연구를 제외하면 거의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재조일본인 연구는 연구사적으로 보아도 이제 출발에 불과하다.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이 처음부터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겠지만, 우선 체계적인 자료 정리와 구체적인 사례연구 및 지역연구를 통하여 차근차근 연구 성과를 축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시기별, 지역별, 계층별 차이에 따른 다양한 재조일본인 사회의 특질에 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본고 집필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실제로 이러한 연구는 연구사적으로 보아도 이제 출발에 불과하다.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이 처음부터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겠지만, 우선 체계적인 자료 수집과 구체적인 사례 연구와 지역 연구를 통하여 차근차근 연구 성과를 축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본 연구의 대상인 인천지역은 개항 이후 일본인사회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최적의 연구 대상 지역의 하나이다. 인천지역은 일찍이 상업지대로 일본인 진출의 주요 대상이었다. 비옥한 농지의 확보와 소작제 농장경영을 통한 미곡 유출은 일본의 식량과 인구문제 해결에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천지역의 일본인 인구는 급증했고, 이들 일본인들은 다양한 사회조직을 이루면서 그들의 경제적 부를 축적해나갔다. 이러한 인천지역의 사회경제적 특성을 고려하면, 전북을 중심으로 한 지역연구는 일제시기 식민지배세력이었던 일본인사회와 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식민지배구조의 특성, 그것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연구하는 데 더없이 좋은 모델을 제시해 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본 연구에서는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개항이후 일제시기에 걸친 약 70여년의 기간 동안 일본 식민지배세력이 인천지역에 세운 식민사회의 구조적 특성이 무엇이며, 또 그러한 사회구조적 특성은 일제의 식민지배 정책과 서로 어떠한 연관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한국 사회 발전에 미친 영향과 일본인사회의 형성 과정에서 일어난 민족간 갈등의 구체적 양상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떠한 방식으로 해소 또는 확대되었는가 등을 연구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을 둘 것이다. 물론 본 연구는 인천이라는 특정 지역에 한정시키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전국적인 연구를 목표로 하지만, 일단 그 출발점을 인천지역으로 삼아 지역연구를 심화시키고자 한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본 연구의 첫 번째 목적은 인천지역에 진출한 일본인의 실태를 살펴봄으로써 일본 식민지 지배의 특색을 실증적으로 밝히는 데 있다. 두 번째 목적은 지금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천지역 일본인의 언동을 살펴봄으로써, 그들이 일본의 식민지정책과 일본인의 한국관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고자 한다. 세 번째 목적은 인천지역 재조일본인의 행동이 한국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졌는지를 살펴본다. 본고에서는 먼저 일본인의 인천지역 진출 배경과 존재형태를 수량적으로 파악한다. 인천지역 일본인사회와 사회계층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인구변화의 추이 및 산업별 계층별 인구 구성현황을 면밀히 추적함으로써 인천지역 일본인사회의 기본적인 특성과 일본인사회로서의 보편성을 아울러 파악하였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일본인 진출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검토하였다. 일본인의 인천지역에 대한 경제적 가치와 그에 따른 거주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청일전쟁 이후 러일전쟁 시기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주체에 의한 인천지역 산업조사보고서가 주요 검토 대상이다. 인천지역을 둘러싼 광범한 경제조사보고서를 검토함으로써 일본인 진출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논의되었다. 이러한 분석 위에서 일본인의 구체적인 존재형태에 대해서 논의하겠다. 먼저 인천을 중심으로 한 일본인 단체의 구성과 활동이 검토되었다. 주요 지역의 거류민단, 상업회의소의 현황을 중심으로 각종 이익단체의 활동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이들 일본인 단체는 일본인의 전북 지역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되었음이 논증되었다. 또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인천지역 일본인의 존재형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였다. 서술방식은 인천을 중심으로 각 시기별, 연도별, 계층별 서술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는 일본인의 라이프 히스토리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인천지역 일본인의 의식주 생활, 교육과 학교생활, 조선인과의 교류, 경제 및 사회생활의 특징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본 연구는 연구 수행을 통해 그것이 일제시기 지역사 연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사회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새로운 디딤돌로서 각 방면의 인문사회과학 연구의 토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일본인의 인구 변동을 비롯하여 한말 일제시기 일본인사회의 사회조직 및 단체의 현황과 그 사회구조적 특성을 밝힘으로써 일제의 식민지 지배의 성격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또 인천지역에 관한 미시적 연구를 통해 당대 전체 사회 혹은 전체사 연구의 유용한 방법론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일제시기 한국사회 연구의 새로운 영역과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근대 한일문화 교류 및 근대 한일관계사 영역에 새로운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보다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연구 풍토를 조성하는데 기여하고, 인천지역사 연구를 한층 활성화시키고 지역사회의 문화발전에 기여함과 동시에 한일 간의 문화교류와 상호 이해의 증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 Index terms
  • 일본인, 조선인, 식민지, 인천, 개항, 거류민단, 상업회의소, 지주, 상인, 계층, 교육,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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