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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초기의 왕위계승과 고추가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고구려 초기의 왕위계승과 고추가 | 2007 Year | 여호규(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24
Year(selected) 2007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9년 05월 25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9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본고는 고구려 초기 왕위계승원리의 전개과정을 정치체제와 연관시켜 고찰했다. 이를 통해 초기 왕위계승원리가 대체로 세 단계로 전개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먼저 《三國史記》에는 초기 5왕의 왕위계승양상이 부자계승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前王과의 혈연관계보다 神聖한 權能과 軍事指揮力 등 비혈연적 요소가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 가장 초기의 왕위계승원리는 현왕의 親子가 아니라도 王者로서의 자질을 갖춘 자가 왕위를 물려받는 비혈연적 계승원리였다. 이러한 비혈연적 계승원리는 桂樓集團이 다른 정치체와의 각축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英雄的 王者를 옹립하는 과정에서 성립되었다. 다만 비혈연적인 地位繼承系譜에서도 前王과의 관계는 ‘子’로 표현되었는데, 이를 후대 史家가 父系的 系譜觀念에 입각하여 현전하는《삼국사기》왕계를 정립했다.
    6-10대의 왕위계승은 兄弟繼承으로 나오지만, 6-8대 태조왕-신대왕은 실제로는 동일 世代에 속한 방계 형제로서 世代主義的 繼承原理에 의해 왕위를 계승했다. 이러한 세대주의적 계승원리는 那部體制라는 형태로 국가체제가 확립되었지만, 桂婁部 왕실의 여러 소혈연집단을 포괄하여 왕위를 계승하는 과정에서 성립되었다. 이에 따라 왕위계승에서 각 소혈연집단을 이끄는 古鄒加의 정치적 역량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으며, 구체적인 왕위계승은 계루부의 소혈연집단이 특정 那部와 결탁하는 복잡한 政爭의 양상을 띠었다.
    세대주의적 계승원리는 고국천왕-산상왕대에 동일 세대의 횡적 폭을 축소하면서 형제계승으로 변형되었다가, 11대 동천왕 이후에는 부자계승으로 전환되어 나갔다. 이러한 전환은 종전의 那部體制가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로 전환되는 것과 맞물려 진행되었다. 다만 3세기 중후반에는 아직 那部體制가 완전히 해체되지 않았고 세대주의적 계승원리의 전통도 잔존했기 때문에 현왕의 형제나 숙부를 살해하여 직계 후손의 왕위계승에 대한 위협 요소를 제거했다. 당시에는 아직 중앙집권체제나 부자계승원리가 확립되지 않았던 것이다.

    주요어 : 고구려, 왕위계승원리, 비혈연적 계승원리, 세대주의적 계승원리, 형제계승원리, 부자계승원리, 那部體制, 고추가
  • English
  • Examined in this article, is how the principles of inheriting the reign were established and then changed during the early days of the Koguryo dynasty, in correlation with the political system of the time. The result shows that there were total of three phases in such progress.
    The《Samguk Sagi/三國史記》shows that the first five kings of Koguryo inherited reigns from father to son, yet in the process elements that had nothing to do with bloodlines, such as the holy nature of one's authority & power, or the military power one displayed, turned out to be more definitive than the blood relation the successor had with its predecessor. So the principle of inheriting the reign in the earliest days of Koguryo seems to have had less to do with bloodline relationships, and we can say that even an entity who was not the biological son of the sitting king was able to inherit the reign if he showed the character to assume the kingdom. This kind of practice must have been born out of the need of enthroning heroic figures, in order to hold and maintain a more advantageous ground for the Gyaeru group(桂樓集團) in its competition with other political entities. And in genealogical records, the new king was always referred to as the son(‘子’) of the former king, and the historians in subsequent periods, armed with patrilineal thinking, established the genealogical structure as we all know from《Samguk Sagi》.
    The inheritance pattern displayed by the kings from the 6th through 10th of the reigns shows inheritance between siblings, from the elder brother to the younger one, yet kings from Taejo-wang(6th) to Shindae-wang(8th) were collateral relatives and belonged to the same generation, so we can say that they inherited the reigns within their generation, and not from one generation to the next. The ancient states were established upon the Na-bu structure(那部體制), yet they were also established during a process which assimilated smaller blood-related groups of the Gyaeru-bu/桂婁部 royal family and then had them inherit the reign. So the political capability(and roles) of the Gochuga/古鄒加 figures(leaders of the smaller blood-related groups) was most important in dictating who would inherit the reign. In actual inheritances, the smaller groups of Gyaeru-bu allied themselves with particular Na-bu entities, in a messy political competition and conflicts.
    In the 'Gogukcheon-wang through Sansang-wang' period, this inheritance principle within the generation was transformed into a brother-to-brother succession pattern(with the distance between successors narrowed), and after the Dongcheon-wang period(11th) it changed into a father-to-son succession pattern. This kind of changes accompanied the changes that were going on in the state leadership, which had been transforming itself from the existing Na-bu system into a king-centered, central ruling system. Yet in the middle and latter half of the 3rd century, the Na-bu system was still not completely dismantled and the generational inheritance principle still partially existed, so the brothers or uncles of the sitting king had to be killed in order to eliminate threats to the succession of figures standing in the direct line. At the time, the central ruling system or the principle of father-to-son succession were still not fully established.

    Key Words: Koguryo, principles observed in royal succession, the principle of inheriting the reign without bloodline relationships, the principle of inheriting the reign within generations, inheriting the reign between siblings, inheriting the reign between father and son, the Na-bu system(那部體制), Gochuga/古鄒加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고는 고구려 초기 왕위계승원리의 전개과정을 정치체제와 연관시켜 고찰했다. 이를 통해 초기 왕위계승원리가 대체로 세 단계로 전개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먼저 《三國史記》에는 초기 5왕의 왕위계승양상이 부자계승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前王과의 혈연관계보다 神聖한 權能과 軍事指揮力 등 비혈연적 요소가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 가장 초기의 왕위계승원리는 현왕의 親子가 아니라도 王者로서의 자질을 갖춘 자가 왕위를 물려받는 비혈연적 계승원리였다. 이러한 비혈연적 계승원리는 桂樓集團이 다른 정치체와의 각축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英雄的 王者를 옹립하는 과정에서 성립되었다. 다만 비혈연적인 地位繼承系譜에서도 前王과의 관계는 ‘子’로 표현되었는데, 이를 후대 史家가 父系的 系譜觀念에 입각하여 현전하는《삼국사기》왕계를 정립했다.
    6-10대의 왕위계승은 兄弟繼承으로 나오지만, 6-8대 태조왕-신대왕은 실제로는 동일 世代에 속한 방계 형제로서 世代主義的 繼承原理에 의해 왕위를 계승했다. 이러한 세대주의적 계승원리는 那部體制라는 형태로 국가체제가 확립되었지만, 桂婁部 왕실의 여러 소혈연집단을 포괄하여 왕위를 계승하는 과정에서 성립되었다. 이에 따라 왕위계승에서 각 소혈연집단을 이끄는 古鄒加의 정치적 역량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으며, 구체적인 왕위계승은 계루부의 소혈연집단이 특정 那部와 결탁하는 복잡한 政爭의 양상을 띠었다.
    세대주의적 계승원리는 고국천왕-산상왕대에 동일 세대의 횡적 폭을 축소하면서 형제계승으로 변형되었다가, 11대 동천왕 이후에는 부자계승으로 전환되어 나갔다. 이러한 전환은 종전의 那部體制가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로 전환되는 것과 맞물려 진행되었다. 다만 3세기 중후반에는 아직 那部體制가 완전히 해체되지 않았고 세대주의적 계승원리의 전통도 잔존했기 때문에 현왕의 형제나 숙부를 살해하여 직계 후손의 왕위계승에 대한 위협 요소를 제거했다. 당시에는 아직 중앙집권체제나 부자계승원리가 확립되지 않았던 것이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연구자는 본 연구를 통해 종래 형제계승에서 부자계승으로 전환되었던 것으로 이해했던 고구려 초기의 왕위계승원리가 실제로는 영웅적 왕자관에 입각한 비혈연적 계승원리, 세대주의적 계승원리(형제계승원리 포함), 부자계승원리 등 세 단계로 전개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와 더불어 가장 초기의 비혈연적 지위계승계보가 4세기 후반에 부계적 계보관념에 입각하여 혈연적 계보로 재정리되었고, 2세기대의 동일 세대에 속한 방계 형제 간의 왕위계승이 4세기 후반에 친형제 간의 계승으로 재정리되었다는 사실도 파악했다. 또한 계루부 왕실에 적통의 승계와 관련된 고추가가 여러 명 존재한 사실로부터 계루부 왕실이 여러 소혈연집단으로 구성되었고, 세대주의적 계승원리는 각 소혈연집단을 이끌던 고추가의 정치적 역량에 의해 좌우되었음도 파악했다.
    이로써 초기 왕위계승원리뿐 아니라 왕권의 성격, 정치체제의 운영양상, 왕실의 구성양상 등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울러 세계 여러 지역의 왕위계승양상과 비교 검토함으로써 고구려 초기 왕위계승원리의 보편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연구성과는 고구려 초기 정치체제뿐 아니라 삼국 초기사에 대한 일본학계의 부정적인 시각을 불식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일본학계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는 구미학계의 삼국 초기사에 대한 인식체계를 새롭게 전환시키고, 국내학계의 연구성과를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본 연구성과는 국내학계뿐 아니라 일본학계 나아가 구미학계에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한국에 대한 구미인의 인식체계를 교정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입안하는 정책입안자에게도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나아가 역사에 관심있는 일반 국민들이 민간외교를 수행하는데도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본 지원자는 국내 학술세미나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연구결과물을 국내외 저명학술지에 기고하여 관련 학계에 연구자료로 제공하는 한편, 관련 학회의 홈페이지 등에 간략한 요약문을 게재하여 각종 정책입안자나 일반 국민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 그리고 각 대학의 관련 학과나 연구소 홈페이지 등에도 요약문을 게재하여 대학이나 대학원의 전공교육, 각종 교양교육에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 Index terms
  • 고구려, 왕위계승원리, 비혈연적 계승원리, 세대주의적 계승원리, 형제계승원리, 부자계승원리, 태자제, 那部體制, 계루부, 비류나부, 소노부, 절노부, 고추가, 삼국사기, 위서, 광개토왕릉비, 동명성왕, 추모왕, 주몽, 추, 유리명왕, 유류왕, 대무신왕, 대주류왕, 막래, 태조왕, 궁, 차대왕, 수성, 신대왕, 백고, 고국천왕, 산상왕, 발기, 연우, 이이모, 동천왕, 중천왕, 서천왕, 봉상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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