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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5912&local_id=10024528
북한지역 고려시대의 문화 연구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북한지역 고려시대의 문화 연구 | 2007 Year | 김창현(성신여자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26
Year(selected) 2007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11년 05월 23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11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고려시대 서해도 지역의 위상과 사원]은 고려시대 서해도 지역의 위상, 국왕의 순행, 불교사원을 다루었다. 고려시대에 서해도 지역은 한 때 關內道로 불리고 해주가 右神策軍․右輔로 불렸을 만큼 개경․경기와 밀접한 공간이었다. 이 지역의 중심은 해주와 황주였는데 황주는 목이었고, 해주는 안서도호부→안서대도호부→해주목의 변천 과정을 밟았다. 서해도는 개경과 서경 사이에 끼여 金郊道와 岊嶺道가 교차하며 개경-금교-평주-절령-황주-서경으로 이어졌다. 절령은 황주 일대와 더불어 개경․서해도와 서경․서북면의 경계선이고 전략선이었다. 서해 연안의 풍주와 옹진은 대륙과의 교통․무역로였다. 서해도의 물자는 개경을 위해서 쓰이기도 했고, 권력자나 왕에게 수탈당하기도 했으며, 서해도 사람들은 개경의 공사와 행사에 동원되곤 했다. 서해도는 개경에 인접했기에 그 토지가 왕족과 권력자에게 점유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고 평주를 중심으로 거주지 내지 별장지로 인기가 많았다. 서해도는 고려전기에는 서경과 남경에 버금가는 국왕의 순행지였고 고려말기에는 서경과 남경을 뛰어넘는 국왕의 순행지였다. 이 지역에서도 해주가 주된 순행지였는데 나한신앙의 중심지인 신광사가 해주에 위치한 점이 많이 작용했다. 延基의 땅으로 백주 兎山이 떠올라 의종 때 중흥궐이 창건되어 의종이 행차했다. 원간섭기를 거치면서 서해도로의 행차 고을과 빈도는 더욱 늘어나 평양․한양 행차를 능가해 그것을 대체할 정도였다. 국왕의 서해도 순행이 고려 전기는 민생․국토를 돌아보고 불교성지를 순례하는 측면이 강했던 반면 말기는 그보다 사냥, 휴양, 유희의 측면이 강했다. 서해도 지역의 사원으로는 해주의 북숭산 신광사(숭산사)와 수미산 광조사, 동주(서흥)의 성수사, 백주의 견주사․반야사․등암사, 절령의 미륵원 내지 나한당 등이 대표적이었다. 신광사는 오백나한 도량으로서 나한신앙의 중심지였고, 광조사는 선종 9산의 하나였다. 견불사는 화엄사찰이면서 인예태후와 의천의 천태종 개창에 기여했고, 반야사와 등암사는 충숙왕의 주요 행차지였다. 미륵원(자비사)은 미륵도량으로서, 나한전은 나한도량으로서 절령을 넘는 여행객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고려 서북면의 사원과 불교신앙]은 고려 서북면 북부지역의 사원과 불교신앙을 조명했다. 고려시대 서북면의 북부지역은 군사적인 요충지라서 요새들이 건축되었다. 이 지역 사원들은 압록강의 진강사, 안북도호부 혹은 延州의 진북영화사, 선주(통주)의 신중사에 보이듯이 외적을 진압하기 위한 호국도량의 성격이 강했다. 延州의 보현사와 약산사도 그러했으리라 생각되었다. 고려시대는 보현보살이 승려는 물론 일반인에게 널리 숭배되었으며, 보현보살이 중심을 이루는 화엄경의 보현행원품과 법화경의 보현보살권발품이 인기를 끌었다. 보현보살은 화엄경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존재이지만 종파를 초월해서 신앙되었다. 보현신앙은 종파의 화합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고 불교가 대중에게 좀 더 깊숙이 다가가는 촉매로 작용했다. 하지만 보현신앙은 고려말로 가면서 화엄종의 쇠퇴와 더불어 약화되어 갔다. 延州의 묘향산은 고려시대 이래 보현보살의 住處로 인식된 신성한 공간이었다. 이곳의 화엄사찰 보현사는 고려 현종 때 혹은 靖宗 때 창건되어 번창해 나갔다. 이는 보현사 승려들의 헌신적인 활약 덕분이기도 했지만 문종의 후원과 최우정권의 후원에서 보이듯이 중앙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 덕분이기도 했다. 중앙 정부는 서북면 지역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묘향산 보현사의 도움이 필요했고, 보현사는 번창하기 위해 중앙 정부의 지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중앙 정부는 보현사를 적극 지원했고 延州와 보현사는 중앙 정부에 적극 협조했다. 연주는 외적이 쳐들어오든 내란이 일어나든 늘 중앙정부의 편이었다. 보현사는 소속 승려들의 노력과 중앙 정부의 지원을 받아 번성해 오대산 문수신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그 결과 때로는 서북면 城들로부터 延州가 미움을 받은 적도 있었고, 서북면 사람들로부터 보현사가 미움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고려말로 가면서 중앙 정부와 보현사의 관계는 느슨해졌고 묘향산에도 윤필암과 안심사를 중심으로 나옹의 선종이 세력을 얻어 갔다.

  • English
  • The Position and Buddhist Temples of Seohaedo Area in Koryeo : This study is about the position of Seohaedo area, King's patrolling, Buddhist temples during the Koryeo Dynasty. The Seohaedo area of Koryeo was closely connected with Gaekyeong and Gyeonggi. Haeju and Hwangju were the center of the area. Seohaedo was the place where the roads of Geumgyo and Jeolnyeong intersected between Gaegyeong and Seogyeong. The goods of Seohaedo were often used for Gaegyeong or were plundered by men of power and its lands were often occupied to be very popular as a residence or villa. Seohaedo was the kings' patrolling place next to Seogyeong and Namgyeong in the early years of Koryeo and beyond Seogyeong and Namgyeong at the end of Koryeo. Haeju was the kings' favorite patrolling place. While the kings' visit to Seohaedo focused on supervising problems concerning public welfare, looking around the territory, and making a pilgrimage to Buddhism fortress in the early Koryeo; instead it was done for hunting, leisure, and amusement at the end of Koryeo. In Seohaedo there were so many Buddhist temples related to the King, the royal family and Gaegyeong. Model temples were Shingwang-sa of Buksung mountain, Gwangjo-sa of Sumi mountain, seongsu-sa in Dongju and Gyeonju-sa in Begju, Shingwang-sa was the center of Nahan belief.
    Buddhist Temples and Buddhism in the Northwest Area of Koryeo : In Koryeo Samanthabhadra Bodhisattva was widely admired by people as well as Buddhist monks. He was admired, paired up with Manjusri Bodhisattva. In late Koryeo Manjusri became more popular, while Samanthabhadra got less popular. Samanthabhadra was believed by people beyond Buddhist sects. He played a role in stimulating the harmony of sects as the catalyst that made Buddhism more popular to people. The north area of the northwest of Koryeo was a strategically significant place for the national defense. The temples of this region assumed a strong character of defeating the foreign enemy. Myohyang Mountain of Yeongju was the holy space which was recognized as the shelter of Samanthabhadra since Koryeo. Bohyeon Temple on Myohyang Mountain, was built during the reign of King Hyeonjong or King Jeongjong. The central government needed the help of Bohyeon Temple to rule the northwestern region effectively, while Bohyeon Temple needed its help to be prosperous. Thus the central government supported Bohyeon Temple, and Yeongju and Bohyeon Temple backed it up positively. Bohyun Temple became more prosperous with the effort of its own monks and the support of the central government. In late Koryeo the relationship of the central government and Bohyeon Temple was loose, Zen Buddhism of Naong became powerful with Yunpil Temple and Anshim Temple on Myohyang Mountain. A great monk, Naong who was admired by the public had an influence on Bohyeon Temple beyond sects.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고려시대 서해도 지역의 위상과 사원]의 초록은 다음과 같다. 고려시대에 서해도 지역은 한 때 關內道로 불리고 해주가 右神策軍․右輔로 불렸을 만큼 개경․경기와 밀접한 공간이었다. 이 지역의 중심은 해주와 황주였는데 황주는 목이었고, 해주는 안서도호부→안서대도호부→해주목의 변천 과정을 밟았다. 서해도는 개경과 서경 사이에 끼여 金郊道와 岊嶺道가 교차하며 개경-금교-평주-절령-황주-서경으로 이어졌다. 절령은 황주 일대와 더불어 개경․서해도와 서경․서북면의 경계선이고 전략선이었다. 서해 연안의 풍주와 옹진은 대륙과의 교통․무역로였다. 서해도의 물자는 개경을 위해서 쓰이기도 했고, 권력자나 왕에게 수탈당하기도 했으며, 서해도 사람들은 개경의 공사와 행사에 동원되곤 했다. 서해도는 개경에 인접했기에 그 토지가 왕족과 권력자에게 점유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고 평주를 중심으로 거주지 내지 별장지로 인기가 많았다. 서해도는 고려전기에는 서경과 남경에 버금가는 국왕의 순행지였고 고려말기에는 서경과 남경을 뛰어넘는 국왕의 순행지였다. 이 지역에서도 해주가 주된 순행지였는데 나한신앙의 중심지인 신광사가 해주에 위치한 점이 많이 작용했다. 延基의 땅으로 백주 兎山이 떠올라 의종 때 중흥궐이 창건되어 의종이 행차했다. 원간섭기를 거치면서 서해도로의 행차 고을과 빈도는 더욱 늘어나 평양․한양 행차를 능가해 그것을 대체할 정도였다. 국왕의 서해도 순행이 고려 전기는 민생․국토를 돌아보고 불교성지를 순례하는 측면이 강했던 반면 말기는 그보다 사냥, 휴양, 유희의 측면이 강했다. 서해도 지역의 사원으로는 해주의 북숭산 신광사(숭산사)와 수미산 광조사, 동주(서흥)의 성수사, 백주의 견주사․반야사․등암사, 절령의 미륵원 내지 나한당 등이 대표적이었다. 신광사는 오백나한 도량으로서 나한신앙의 중심지였고, 광조사는 선종 9산의 하나였다. 견불사는 화엄사찰이면서 인예태후와 의천의 천태종 개창에 기여했고, 반야사와 등암사는 충숙왕의 주요 행차지였다. 미륵원(자비사)은 미륵도량으로서, 나한전은 나한도량으로서 절령을 넘는 여행객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고려 서북면의 사원과 불교신앙]의 초록은 다음과 같다. 고려시대 서북면의 북부지역은 군사적인 요충지라서 요새들이 건축되었다. 이 지역 사원들은 압록강의 진강사, 안북도호부 혹은 延州의 진북영화사, 선주(통주)의 신중사에 보이듯이 외적을 진압하기 위한 호국도량의 성격이 강했다. 延州의 보현사와 약산사도 그러했으리라 생각되었다. 고려시대는 보현보살이 승려는 물론 일반인에게 널리 숭배되었으며, 보현보살이 중심을 이루는 화엄경의 보현행원품과 법화경의 보현보살권발품이 인기를 끌었다. 보현보살은 화엄경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존재이지만 종파를 초월해서 신앙되었다. 보현신앙은 종파의 화합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고 불교가 대중에게 좀 더 깊숙이 다가가는 촉매로 작용했다. 하지만 보현신앙은 고려말로 가면서 화엄종의 쇠퇴와 더불어 약화되어 갔다. 延州의 묘향산은 고려시대 이래 보현보살의 住處로 인식된 신성한 공간이었다. 이곳의 화엄사찰 보현사는 고려 현종 때 혹은 靖宗 때 창건되어 번창해 나갔다. 이는 보현사 승려들의 헌신적인 활약 덕분이기도 했지만 문종의 후원과 최우정권의 후원에서 보이듯이 중앙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 덕분이기도 했다. 중앙 정부는 서북면 지역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묘향산 보현사의 도움이 필요했고, 보현사는 번창하기 위해 중앙 정부의 지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중앙 정부는 보현사를 적극 지원했고 延州와 보현사는 중앙 정부에 적극 협조했다. 연주는 외적이 쳐들어오든 내란이 일어나든 늘 중앙정부의 편이었다. 보현사는 소속 승려들의 노력과 중앙 정부의 지원을 받아 번성해 오대산 문수신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그 결과 때로는 서북면 城들로부터 延州가 미움을 받은 적도 있었고, 서북면 사람들로부터 보현사가 미움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고려말로 가면서 중앙 정부와 보현사의 관계는 느슨해졌고 묘향산에도 윤필암과 안심사를 중심으로 나옹의 선종이 세력을 얻어 갔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북한지역 고려시대의 역사와 문화는 평양과 개성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 고려시대 서해도(황해도)의 역사와 문화, 서북면(평안도)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해 [고려시대 서해도 지역의 위상과 사원]이라는 논문과 [고려 서북면의 사원과 불교신앙]이라는 논문을 완성해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 게재했다. 금강산을 답사해 금강산 지역의 문화까지 고찰하려 계획했지만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상태이고 재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고찰하지 못했지만, 2개의 논문을 게재했기에 의무사항은 충족했다. 본 연구는 남한의 연구자들에게 북한지역의 문화와 유적을 알리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북한의 당국과 연구자들에게도 자극을 주어 지역학 연구를 활성화하는 계기를 제공하리라 기대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일반대중에게 북한을 정치측면이 아닌 문화의 측면에서 바라보도록 유도함으로써 북한 문화의 이해와 남북갈등의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 남한의 북한학은 현재의 북한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이 연구가 북한학이 모든 시대를 포괄하는 쪽으로 나아감을 촉진하여 북한학의 확대와 심화에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북한지역에 대한 본 연구가 남한의 지역학 연구성과와 조화를 이루며 만나면 우리나라 지역학의 균형 발전에 기여하리라 기대한다. 교육 부분에 힘써 연구성과를 강의, 강연, 발표회, 대중적인 글쓰기 등을 통하여 연구자들은 물론 학생들과 일반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알려 북한지역의 문화 이해와 남북 화해의 증진에 기여하고자 한다. 본 연구와 관련된 주제는 물론 북한지역의 문화 전반에 관하여 강의 주제로 적극 활용함으로써 북한지역학 내지 북한학을 연구하는 자들을 지속적으로 양성해 나가려 한다. 또한 사회 환원과 사회 교육을 위해 소프트웨어 전문가와 협력해 북한의 문화와 유적을 미디어용 콘텐츠로 만들어 보급하려 한다. 또한 고조선, 고구려, 조선, 근현대 전공자와 협력하여 북한의 문화와 유적을 연구하고 보존하는 데 연구성과를 활용하려 한다. 이러한 활용방안이 실행되면 역사교육, 남북한의 교류, 국내․외의 북한인식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며, 북한지역을 연구하는 인력을 배출하는 데 자극을 줄 수 있다.
  • Index terms
  • 서해도, 황주, 해주, 순행, 불교사원, 불교신앙, 서북면, 연주, 묘향산, 보현사, 보현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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