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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5913&local_id=10020391
고대 한국과 일본의 양전제 비교 고찰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고대 한국과 일본의 양전제 비교 고찰 | 2007 Year | 박찬흥(고려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21
Year(selected) 2007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9년 05월 29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9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고구려에서는 한나라의 척도와 척도제도를 받아들였다고 생각된다. 그 뒤, 4세기 후반 율령의 반포를 계기로 척도제도를 정비하면서, 새로이 35~35.6㎝ 길이의 독자적인 고구려척을 마련하였다. 초기에 한척을 도입하여 사용했을 때에는, 한나라의 경무제를 받아들였다. 그 뒤, 고구려척을 제정하고 새로운 척도제를 마련하면서, 동시에 독자적인 단보제를 성립시켰다. 5척=1보를 기준척도단위로 하여 1단=250보의 단을 설정함으로써 단보제를 마련하였다. 고구려의 1단=250보의 구획형태는, 일본 조리제 구획에서의 단의 형태를 참조해볼 때 50보×5보나 25보×10보의 직사각형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의 조리제 구획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면, 1단의 면적 250보는 792.1㎡[약 239.61평]에 해당하며, 그 모양은 50보×5보 또는 25보×10보의 형태였을 것이다. 신라의 결부제는 7세기 중엽에 제도화되었다. 그 이전에도 수확물을 생산하는 토지면적을 각각 1부, 1속, 1파라고 하였으며, 그 면적의 크기는 고구려척으로서 정했다. 이들 단위는 신라의 고유한 양전단위였고, 6세기 전반에 율령을 반포했을 때 마련되었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고구려의 척도와 단보제의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신라의 양전제는 다시 일본의 정단보제에 영향을 주었다. 일본에서는 처음에 고구려척으로 6척을 1보로 하여 5보[길이 5보×너비 1보]의 면적을 1대로 정한 뒤, 다시 50대=250보를 1단으로 정해 양전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 뒤 대보율령 때 10단을 1정으로 정하여 정단보제가 마련되었다.파와 속은 신라의 결부제에서만 보이는 단위이고 1속=10파인 점도 신라와 같다. 이로부터 속․파가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양전단위였음을 알 수 있다. 또, 고구려의 1보는 5척이었고 신라의 1보는 6척이었으므로, 처음 1보의 길이를 6척으로 정한 것도 신라의 영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일본에서는 1파와 1속을 생산하는 토지면적을 고정된 양전단위로 정하는 방법을 신라로부터 받아들였고, 그 면적을 재는 기준척도는 고구려에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 뒤, 7세기 중엽 방33보=1,089보를 1결로 정했고, 1결의 1/100의 면적을 1부로 정했다. 신라시대에는 1결의 면적은 방33보=1,089보였고, 1보=6척이었으므로, 1결의 면적은 3458.1㎡으로, 약 1,046평에 해당한다.
  • English
  • At first Kogurey is likely to use 'Kyung' as a unit of area influenced by the China's Kyungmoo System. It has not been well-known whether Kogurey's Kyung was equivalent to the China's, which had the same area and contents, or Japan's, in which only the term was used but it represented the totally-different unit of area. It is surmised to be a measure of Han's Chuck category. Afterward Kogurey invented a Chuck(35.6㎝) on its own and instituted one Bo that is equal to five Chucks. The Tanbo System, in which one Bo is five Chucks, was launched by setting up one Tan(250 Bos). In China, Tan was never used as a unit of area but as the meaning of district or precinct. But Tan in Kogurey was fixed as a term of some area, independent of China's Yangjun System.
    The area of 250 Bos, 1 tan, was equal to 792.1㎡, and its shape might be a rectangle of 50 Bos x 5 Bos, or 25 Bos x 10 Bos. And its superior unit could be 2,500 Bos which is 10 times of tan. Its lower unit might be 1 Bos, 25 Bos(1 Bo x 25, or 5 Bos x 5 Bos). or 5 Bos(1 Bo x 5 Bos).
    Kogurey's Tanbo System is likely to be enforced at the second half of the 4th century. Kan, instead of Bo, is used in this carved stone, and this signifies that Bo was employed as a unit of area. Japan, influenced by Kogurey, used Kan for 6 Chuck-length after the Tanbo System was established. Since the use of Kan means Bo was a unit of area, the Tanbo System had been already carried out in the middle of the 6th century. In the ancient Japan's Jungtanbo System, however, Kogurey's Chuck was used as a standard unit. Considering this, it is possible for Kogurey to have the Tanbo System, an independent Yangjun System, and also to institute a unit of measure on its own.
    Considering improvement of the Yangjun System was deeply relevant to enforcement, the Tanbo System could come a long way. In Silla, the Yangjun System was first established under King Beopheung's reign. The Kyolbu System was instituted after Dang's systems and Chuck were introduced to Silla. Thus, the Tanbo System was settled down at the reign of King Sosurim(AD 373), when the law system was enforced and the Kogurey Chuck was rearranged.
    The Kyolbu System as an original land surveying system began for the first time in the Silla Dynasty. The units of the system consisted of 'Pa,' 'Sok,' 'Bu,' and 'Kyol.' Pa, Sok and Bu originally designated the production in volume, but the Silla's system signified the size of a land in which harvested crops of one Pa, one Sok, and one Bu. As the agricultural productivity gradually improved, land surveying became highly demanded and the units, Pa, Sok, and Bu, were institutionalized by an ordinance in the early sixth century. The land is thought to be measured in the unit of Kogurye. On the other hand, Kyol was set as the unit of one hundred times of Bu regarless of production. The Kyol unit led to the Kyolbu system in the middle of the seventh century.
    The area of one Kyol in the Silla Dynasty was fixed and used until the early Korye. At that time one Kyol represented bang(square) 33 bo(step), that is 1,089 bo. One Kyol, on the model of the Jyengjyen System of the Ju Dynasty, was equal to the size of one-ninth of 100 bo in every direction. The Silla adapted the Tangdaechyek, referring to 29.7㎝. As one bo was equal to 6 chyek, the area of one Kyol corresponded to 3458.1㎡.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고구려에서는 초기에 한척의 길이는 약 23.7㎝였을 것이다. 4세기 후반 율령의 반포를 계기로 새로이 35~35.6㎝ 길이의 독자적인 고구려척을 마련하였다. 초기에는 한나라의 경무제를 받아들였다. 고구려척을 제정하면서, 독자적인 단보제를 성립시켰다. 5척=1보를 기준척도단위로 하여 1단=250보의 단을 설정함으로써 단보제를 마련하였다. 고구려의 1단=250보의 구획형태는, 일본 조리제 구획에서의 단의 형태를 참조해볼 때 50보×5보나 25보×10보의 직사각형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의 단의 형태는 장지형과 반절형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고구려의 단은 일본의 조리제 구획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1단의 면적 250보는 792.1㎡[약 239.61평]에 해당한다. 신라의 결부제는 7세기 중엽에 제도화되었다. 그 이전에는 수확물을 생산하는 토지면적을 각각 1부, 1속, 1파라고 하였으며, 척도는 고구려척이었다. 이것은 신라의 고유한 양전단위였고, 6세기 전반에 마련되었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고구려의 척도와 단보제의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신라의 양전제는 다시 일본의 정단보제에 영향을 주었다.
    일본에서는 처음에 고구려척으로 6척을 1보로 하여 5보[길이 5보×너비 1보]의 면적을 1대로 정한 뒤, 다시 50대=250보를 1단으로 정해 양전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 뒤 대보율령 때 10단을 1정으로 정하여 정단보제가 마련되었다. 여기서 대란 곡물 1속을 생산할 수 있는 토지면적을 가리키는 것으로 1속대라고도 하였고, 1속=10파였다. 그런데, 파와 속은 중국에는 없고 신라의 결부제에서만 보이는 단위이고 1속=10파인 점도 신라와 같다. 이로부터 속.파가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양전단위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처음 1보의 길이를 6척으로 정한 것도 신라의 영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일본에서는 1파와 1속을 생산하는 토지면적을 고정된 양전단위로 정하는 방법을 신라로부터 받아들였고, 그 면적을 재는 기준척도는 고구려에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 뒤, 7세기 중엽 당대척으로 사방 100보 면적의 1/9에 해당하는 면적, 즉 방33보=1,089보를 1결로 정했고, 1결의 1/100의 면적을 1부로 정했다. 신라시대에는 1결의 면적은 방33보=1,089보였고, 1보=6척이었으므로, 1결의 면적은 3458.1㎡으로, 약 1,046평에 해당한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1. 연구결과
    본 연구는 한국과 일본의 양전제를 비교 고찰하는 것이다. 고구려의 단보제와 신라의 결부제를 일본 고대의 정단보제와 상호 비교시켜 검토하였다. 그 결과 고구려에서 신라에 고구려척이 전래되었지만, 양전제는 고구려의 단보제를 수용하지 않고, 신라는 독자적인 결부제를 제도화했음이 밝혀졌다. 또한 고구려의 단보제는 일본의 정단보제에 그대로 전해졌고, 고구려척 또한 일본에 수용되었다. 한편, 신라의 결부제 역시 생산량에 기초한 면적단위라는 점에서 일본에 영향을 주었고, 신라가 당대척을 수용한 이후에는 그것이 그대로 일본에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고구려와 신라의 선진적인 척도제도, 양전제도가 일본 고대에 전해져서 일본 고대의 척도제 양전제에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2. 활용방안
    첫째, 한국 고대 척도사 연구에 기여할 수 있다. 한척, 고구려척, 당척 등을 하나의 체계로 엮어서, 한국 고대 척도사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기여할 수 있고, 일본 고대 척도사 연구에도 일정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양전제 연구에 기여할 수 있다. 현재 고대의 양전제로는 신라의 결부제만이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고구려의 단보제에 대한 연구 성과가 덧붙여진다면 고대 양전제 연구에 새로운 영역이 추가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결부제에 대한 연구는 신라 중대 이후만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본 연구의 결과, 결부제 성립 시기는 물론이고, 성립 초기의 상황, 단보제와의 관계 등에 대한 해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고구려의 단보제, 신라의 결부제에 대한 연구는 이들 제도를 수용한 일본 조리제의 기원에 대한 연구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셋째, 고구려, 신라, 일본 고대 왕경의 도시구획 방식 연구에 기여할 수 있다. 최근 도성제 연구가 매우 활발한데, 중국, 고구려의 장안성, 신라 경주, 일본 고대의 도성제에 대한 비교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경주의 도시 구획에는 한척과 고구려척, 당척이 시기적으로 잇달아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단보제의 구획방식과 결부제의 구획방식과도 일정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추측된다. 양전 방식에 대한 규명을 토대로 도성제, 특히 도시구획과 공간 설정 방식에 대한 연구에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Index terms
  • 고구려척, 한척, 당대척, 경무제, 단보제, 결부제, 정단보제, 양전제, 조리제, 경, 무, 단, 보, 결, 부, 속, 파,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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