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조선-明 관계 외교문서의 정리와 분석
-『吏文』, 『高麗史』, 『조선왕조실록』 소재 문서를 중심으로-
『吏文』에는 1370년(고려 공민왕19, 明 洪武3)~1476년(조선 성종7, 明 成化1)까지 고려,조선과 明 사이에 行移된 외교문서 중 사대문서인 詔書, 勅旨, 表文 등을 제외한 실무외교 ...
고려․조선-明 관계 외교문서의 정리와 분석
-『吏文』, 『高麗史』, 『조선왕조실록』 소재 문서를 중심으로-
『吏文』에는 1370년(고려 공민왕19, 明 洪武3)~1476년(조선 성종7, 明 成化1)까지 고려,조선과 明 사이에 行移된 외교문서 중 사대문서인 詔書, 勅旨, 表文 등을 제외한 실무외교문서 93건이 대개 문서의 全文 상태로 수록되어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 중에서 고려,조선과 직접 行移한 외교문서 47건을 『高麗史』,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편찬 正史類 史書에 어느 정도 수록되어 있는가를 비교하였다. 정사류 史書에 수록되지 않은 문서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이제까지 학계에서 거의 이용해오지 않은 『吏文』의 사료로서의 가치를 확인하려고 하였다. 분석하지 않은 46건 문서는 고려,조선과 明 사이에 行移된 외교문서가 아니며, 조선 사행원이 明을 다녀오면서 베껴온 明측의 榜文, 告示 등이므로 제외하였다.
본 연구에서 검토한 47건 문서 중, 고려와 明 사이에 行移된 문서는 20건, 조선과 明 사이에 行移된 문서는 27건이다. 이 중에서 『高麗史』, 『조선왕조실록』에 전문이 수록된 경우는 11건(23%), 일부가 수록된 경우는 6건(13%)이며, 전혀 기록되지 않은 경우가 30건(64%)이다. 특정한 외교현안을 다룬 『吏文』에 수록된 외교문서의 64%가 편찬 正史에 전혀 수록되지 않은 것들이다. 특히 正史와 같은 연대기에 수록된 문서는 의례적 事大문서의 성격이 강한 것들이다. 『吏文』에 수록된 외교문서들은 국가 수준에서, 혹은 국왕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조공책봉질서의 의례적인 것보다는 지방 단위, 혹은 개인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이 많다. 전근대 동아시아세계에서 두 국가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외교적 문제를 검토하는데 유용한 자료들이다.
발행주체별로 검토하면, 고려, 조선에서 明으로 발행한 문서 7건은 모두 국왕, 혹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발행된 문서이다. 반면 明이 발행한 문서 40건 중에서는 중앙정부가 발행한 문서는 16건(40%)에 불과하며 지방기관이 발행한 문서는 24건(60%)를 차지한다. 접수기관은 고려국왕, 조선국왕, 혹은 도평의사사와 같은 중앙관청이다. 여기의 지방기관은 거의 遼東都司를 가리킨다. 그 내용은 遼東과 고려 국경 사이에서 도망인구 추쇄 등과 같은 현안 뿐 아니라 고려, 조선과 明 사이에서 유동적인 여진족 동향 등 원말명초 요동지방의 정세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자료들이다.
각 문서의 내용을 검토하면 『吏文』소재 문서의 가치가 더욱 높아진다. 『高麗史』, 『조선왕조실록』에는 고려,조선과 明 국가 수준의, 혹은 군주 수준의 외교에 관련된 문서가 주로 수록되어 전한다. 조공과 책봉의 의례적인 외교 절차에 관련된 문서는 우선적으로 수록되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는 국가(국왕) 수준의 거대범주로 한·중관계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에는 월경한 범죄인 인도, 사행원, 혹은 두 나라 민들의 절도 사건, 군사 동원에 대한 상대국에의 통보 등 다양한 외교현안이 발생했다. 이러한 외교현안이 어떻게 발생하고 처리되었는지 구체적인 과정은 물론, 두 나라에서 공통된 현안을 처리하는 방법, 범법자의 경우 법 적용의 실례, 혹은 두 나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군사동원의 경우 사후 통보 등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다. 제11문서 「金甲雨盜賣馬罪名咨」는 貢馬 절도건에 관해 주모자와 공모자, 동조자들에 대한 처벌에 관한 구체적 법 적용을 살필 수 있는 사례이며, 제12문서 「濟州行兵都評議使司申」는 고려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제주를 토벌한 일에 대한 사후 통보 사례이다. 또한 이들 문서 중에는 여말선초 여진족의 동향과 이동한 여진족 추쇄에 관한 것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요동, 만주 지역을 확보하는 것은 여진족의 동향과 결부되어 있었다. 이를 둘러싸고 고려,조선과 명은 14~15세기 내내 갈등을 겪었다. 여진족 초유, 조선 영내로 이주한 여진족의 추쇄, 조선과 명의 인구 귀속 정책과 그에 관한 외교정책 등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자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