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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5946&local_id=10014664
근대 부산의 조선인 자본가와 기업활동의 성격 -남선창고주식회사를 중심으로-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근대 부산의 조선인 자본가와 기업활동의 성격 -남선창고주식회사를 중심으로- | 2007 Year | 차철욱(부산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62
Year(selected) 2007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9년 05월 31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9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근대 부산의 조선인 자본가와 기업활동의 성격-남선창고주식회사를 중심으로-

    남선창고주식회사는 개항 이후 조선인 상인들이 근대화과정에 적응하는 한 방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개항 이후 일본인 상인들이 조선에서 영업을 시작하면서, 부산은 경상도 내륙과 일본을 연결하는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기존의 연구는 일본인 상인들 때문에 조선인 상인들은 거의 성장하지 못하고 몰락한다고 정리하였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조선인 상인들이 이 시기의 경제적인 조건을 이용해 얼마나 능동적으로 움직였던가를 확인할 수 있다. 함경도에서 이주해온 상인들은 부산에 창고를 만들어 명태를 보관하면서 한편으로는 경상도 내륙과 서울로 유통시켰다. 이 회사의 경영형태로는 일본인 상인과 갈등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이 회사의 경영이 일본 자본의 시스템에 편입되기 시작한 것은 1914년 경원선 개통과 관련있다. 경원선 개통은 함경도 상인에게 유용한 교통망을 제공했고, 경성이라는 커다란 시장으로 접근을 쉽게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결국 부산에 있던 일본인 상인들은 1916년 함경도로 철수하였다. 이후 1926년 부산의 조선인 상인들이 이 회사를 매입하여 남선창고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식민지 시대라는 경제구조 속에서 어떤 경영실태를 보였는가에 따라 여러 가지 성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회사는 1916년부터 1936년까지 공동경영에서, 그 이후 개인경영으로 바뀐다. 부산에서 오래동안 객주활동을 해 오던 상인들이 공동경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이 회사가 지니고 있는 경제적인 이익이 어느정도 보장되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1936년 이후 개인 경영방식은 조선인 자본가 내부의 균열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내용은 이 회사의 장부류(帳簿類) 분석을 통해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창고에 상품을 맡기는 기탁자 수를 보면 전기보다 후기로 갈수록 증가한다. 하지만 조선인 수는 감소하고, 이 부분에 일본인의 비중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조선인 가운데 오래동안 활동을 유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지고 있다. 즉 조선인 상인들의 몰락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반면 일본인들의 경우에는 먼 거리에서 수입해 오는 상품을 보관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즉 기존에 부산 주변에서 가져오던 미역을 이 시기가 되면 홋카이도(北海道)에서 가져온다. 상품의 유통 거리가 길 수록 유통비용이 증가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자본이 미약한 조선인들의 몰락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상에서 이 회사를 이용하는 고객들 즉 조선인과 일본인들의 수와 취급 상품, 회사 경영자들의 분석을 통해 식민지시대 경제구조의 한 부분을 짐작할 수 있다.
  • English
  • The Characteristic of Korean Capitalists and Bussiness Activity in Modern Busan.
    - Laying stress on Nam-sun Warehouse Incorporated Company -

    Nam-sun warehouse Inc. is a typical example to represent one of processes how merchants in Chosun had been adopted to process of modernization after opening ports. As Japanese merchants started their bussiness, after opening ports, Busan became one of the important strongpoints in which connected from Japan to Kyung-sang province. Established studies have been addressing that Korean merchants hardly grow up and collapsed because of growth of Japanese merchants. This study, however, is trying to verify how actively Korean merchants were working by using condition of economy during contemporary stages. The Korean merchants from Ham-Kyung province not only kept the Alaska pollacks in warehouse in Busan but also distributed it to Kyung-sang province and Seoul. It is hard to predict conflicts between Korean and Japanese merchants by forms of management of the company. It was connected with opening Kyung-won railroad in 1914 ― between Seoul and Won-san ― that management of company was starting to be incorporated into a system of Japanese capitalism. The opening Kyung-won railroad provided a useful traffic network for merchants from Ham-kyung province as well as made them easily approach to market in Seoul, one of the biggest market in Chosun. Japanese merchants in Busan, therefore, went back to Ham-kyung province in 1916. After then, 1926, Korean merchants in Busan purchased the existing company and established Nam-sun warehouse Inc. Several characteristic can be checked according as how the company managed itself in a structure of colonial economy.
    This company was a form of joint management from 1916 to 1936, and then, it changed private management. It means profit of the company was guaranteed after a fashion to have been joint management by Gaek-Ju merchant for a long time. After 1936, however, to be private management means there were cracks in Korean capitalists. It is possible to analyze through several kinds of company account books analysis. First of all, if you find number of depositors, the later term was increased than the former term. While Korean depositors decreased, instead of them, Japanese depositors increased. The cases, moreover, were getting disappear: many Korean merchants were on the decline. On the other hand, Japanese merchants kept products from far distance increasingly : they brought seaweeds from Hokkaido not from Busan. The more distributive distance of products became longer that made much costs of distribution of products, the more Korean whose capital was week became bankrupt.
    Following this, a part of colonial economic structure would be judged by analysis of number of Korean and Japanese ― clients of the company ―, of products, of manager.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근대 부산의 조선인 자본가와 기업활동의 성격-남선창고주식회사를 중심으로-

    남선창고주식회사는 개항 이후 조선인 상인들이 근대화과정에 적응하는 한 방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개항 이후 일본인 상인들이 조선에서 영업을 시작하면서, 부산은 경상도 내륙과 일본을 연결하는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기존의 연구는 일본인 상인들 때문에 조선인 상인들은 거의 성장하지 못하고 몰락한다고 정리하였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조선인 상인들이 이 시기의 경제적인 조건을 이용해 얼마나 능동적으로 움직였던가를 확인할 수 있다. 함경도에서 이주해온 상인들은 부산에 창고를 만들어 명태를 보관하면서 한편으로는 경상도 내륙과 서울로 유통시켰다. 이 회사의 경영형태로는 일본인 상인과 갈등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이 회사의 경영이 일본 자본의 시스템에 편입되기 시작한 것은 1914년 경원선 개통과 관련있다. 경원선 개통은 함경도 상인에게 유용한 교통망을 제공했고, 경성이라는 커다란 시장으로 접근을 쉽게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결국 부산에 있던 일본인 상인들은 1916년 함경도로 철수하였다. 이후 1926년 부산의 조선인 상인들이 이 회사를 매입하여 남선창고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식민지 시대라는 경제구조 속에서 어떤 경영실태를 보였는가에 따라 여러 가지 성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회사는 1916년부터 1936년까지 공동경영에서, 그 이후 개인경영으로 바뀐다. 부산에서 오래동안 객주활동을 해 오던 상인들이 공동경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이 회사가 지니고 있는 경제적인 이익이 어느정도 보장되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1936년 이후 개인 경영방식은 조선인 자본가 내부의 균열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내용은 이 회사의 장부류(帳簿類) 분석을 통해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창고에 상품을 맡기는 기탁자 수를 보면 전기보다 후기로 갈수록 증가한다. 하지만 조선인 수는 감소하고, 이 부분에 일본인의 비중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조선인 가운데 오래동안 활동을 유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지고 있다. 즉 조선인 상인들의 몰락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반면 일본인들의 경우에는 먼 거리에서 수입해 오는 상품을 보관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즉 기존에 부산 주변에서 가져오던 미역을 이 시기가 되면 홋카이도(北海道)에서 가져온다. 상품의 유통 거리가 길 수록 유통비용이 증가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자본이 미약한 조선인들의 몰락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상에서 이 회사를 이용하는 고객들 즉 조선인과 일본인들의 수와 취급 상품, 회사 경영자들의 분석을 통해 식민지시대 경제구조의 한 부분을 짐작할 수 있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1. 조선인 기업의 성격과 관련해 단순히 민족적인 요소를 얼마나 보유했느냐 보다 참여한 기탁자를 보면 일본인 회사도 상당수 많았음에서 민족적인 요소를 분석의 중심 대상으로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 창고가 소재한 초량이라는 장소가 지니는 의미, 즉 해양과 내륙을 연결하는 접점이라는 점을 중시해, 이곳을 중심으로 한 지역적 특성이 혼종적이고 개방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부각해 학문적으로 기존의 민족적인 관점보다 부산이라는 지역과 이 창고가 소재한 지역의 특징을 우선적으로 분석하는데 집중했다. 이 결과 지역의 관점에서 지역을 바라보는 방법과 시각을 제안했다고 할 수 있다.
    2. 본 연구의 과정에서 최근 부산시의회의 한 의원이 부산의 근대 건축 시설물 등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를 위해 '부산광역시 근대건조물 보호에 관한 조례안'을 제출해, 심의에 들어갔다. 즉 본 연구의 성과가 실제 부산의 근대근축물의 가치를 되짚어 보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의의가 있었다고 하겠다.
    3. 앞으로 남선창고주식회사를 부산이 지니고 있는 유통과 소통의 상징적인 요소로 리모델링하는데 그 내용을 채울 수 있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지역의 시설물의 관리와 보존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Index terms
  • 남선창고주식회사, 조선인 상인, 명태, 미역, 현미, 우피, 경원선, 경부선, 부산, 객주, 공동경영, 장부류, 영업보고서, 기탁자, 유통비용, 내부 균열, 이병진, 이태조, 근대성, 식민성, 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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