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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5947&local_id=10014163
중국 국공 내전기 목단강 지역 조선인 사회와 북한과의 관계(1945.8-1948.3)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중국 국공 내전기 목단강 지역 조선인 사회와 북한과의 관계(1945.8-1948.3) | 2007 Year | 염인호(서울시립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68
Year(selected) 2007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9년 05월 31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9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본고에서는 목단강 조선인 사회를 제1단계(인민협회・해방동맹 시기, 1945.8-1946.2), 제2단계(민주동맹 시기(1946.2-1946.8), 제3단계(민주연맹 시기, 1946.9 - 1947.8), 제4단계(조선인 조직 부재 시기, 1947.9-1948.3)로 나누어서 살폈다. 목단강에서 지속적으로 발간되었던 인민신보 기사를 주 자료로 활용하였다. 인민신보는 목단강시 조선인을 대표했던 조선인 정치조직(인민협회 - 해방동맹 -민주동맹 - 민주연맹)의 기관지였던 까닭에 인민신보의 인식과 태도는 곧 목단강 조선인 사회 주류의 인식과 태도라고 간주해도 될 것이다. 본고에서는 인민신보 기사를 통해 각 시기별 한반도 혹은 북한에 대한 조선인 사회의 인식과 태도를 살폈다.
    제1단계의 경우, 비록 일찍부터 중공이 목단강 조선인 사회를 장악했다. 그러나 이 시기 목단강 조선인 사회는 국내 한반도의 북쪽만을 편애・지지하거나 좌익만을 편애・지지하지는 않았다. 목단강 조선인 사회는 일찍부터 한반도 신탁통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반응했는데 1946년 1월 말까지 반탁 입장에 서 있었다. 그리고 반탁운동을 이끌었던 김구 이승만이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서는 호의적 입장을 취했다.
    제2단계의 경우, 상대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적었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남북한 가운데서 확실히 북한을 편애・지지하였고, 좌 우익 가운데서도 역시 좌익 편에 섰다. 또 김구나 이승만은 더 이상 민족 지도자로 간주되지 않았고 반면 박헌영 김일성 무정 권오직 등 좌익 각 당파의 리더들이 민족지도자로 추앙되었다. 박헌영과 김일성 가운데 박헌영이 우위를 보이고 있다.
    제3단계의 경우, 목단강 조선인 사회는 확고히 북한 편에 가담하였고,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이 시기 가장 뚜렷한 특징을 김일성을 절대화한다는 점이다. 최고 민족 지도자로 추앙했을 뿐 아니라 김일성의 발언은 국내 조선인만이 아니라 해외 동포인 자신들도 반드시 받들어야 하는 지시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제4단계의 경우, 중공의 정책에 따라 조선인 정치조직은 해산당하고 만다. 이제 목단강(나아가 재동북) 조선인들에게는 중국 혁명이 主이며 조선혁명은 副의 위치가 되었다. 김일성을 숭배하는 행동도 공식적으로는 잘 드러나 있지 않다. 그만큼 목단강(나아가 재동북) 조선인과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와의 거리는 멀어졌다.
  • English

  • (1) 1945.8-1946.2
    Soviet Union communist troops took possession of Mudanjiang(牧丹江) China at August 16. After this Chinese Communist Party ruled over Mudanjiang. But Mudanjiang Koreans concerned about not only North Korea but also South Korea. They declared themselves against placing Korea under 4 country trusteeship. They respected Korean right-wing leader Kim goo and Lee Sungman.
    (2) 1946.3-1946.9
    Mudanjiang Koreans praised only communist North Korea. they respected Korean left-wing leader Park Heunyoung and Kim Ilsung. But they hated South Korea right-wing leader Kim goo and Lee Sungman.
    (3) 1946.9-1947.8
    Mudanjiang Koreans praised only Kim Ilsung, not but Park Heunyoung. They considered Kim Ilsung as only one their director. They concerned about their fatherland and supported south left-wing Korean's anti American military administration.
    (4) 1947.9-1948.2
    Chinese Communist Party disorganized Korean political organization. That time Korean in Mudanjiang had to declare "for China first! for Korea second!" That time Kim Ilsung was not considered as a chief(首領).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고에서는 목단강 조선인 사회를 제1단계(인민협회・해방동맹 시기, 1945.8-1946.2), 제2단계(민주동맹 시기(1946.2-1946.8), 제3단계(민주연맹 시기, 1946.9 - 1947.8), 제4단계(조선인 조직 부재 시기, 1947.9-1948.3)로 나누어서 살폈다. 목단강에서 지속적으로 발간되었던 인민신보 기사를 주 자료로 활용하였다. 인민신보는 목단강시 조선인을 대표했던 조선인 정치조직(인민협회 - 해방동맹 -민주동맹 - 민주연맹)의 기관지였던 까닭에 인민신보의 인식과 태도는 곧 목단강 조선인 사회 주류의 인식과 태도라고 간주해도 될 것이다. 본고에서는 인민신보 기사를 통해 각 시기별 한반도 혹은 북한에 대한 조선인 사회의 인식과 태도를 살폈다.
    제1단계의 경우, 비록 일찍부터 중공이 목단강 조선인 사회를 장악했다. 그러나 이 시기 목단강 조선인 사회는 국내 한반도의 북쪽만을 편애・지지하거나 좌익만을 편애・지지하지는 않았다. 목단강 조선인 사회는 일찍부터 한반도 신탁통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반응했는데 1946년 1월 말까지 반탁 입장에 서 있었다. 그리고 반탁운동을 이끌었던 김구 이승만이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서는 호의적 입장을 취했다.
    제2단계의 경우, 상대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적었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남북한 가운데서 확실히 북한을 편애・지지하였고, 좌 우익 가운데서도 역시 좌익 편에 섰다. 또 김구나 이승만은 더 이상 민족 지도자로 간주되지 않았고 반면 박헌영 김일성 무정 권오직 등 좌익 각 당파의 리더들이 민족지도자로 추앙되었다. 박헌영과 김일성 가운데 박헌영이 우위를 보이고 있다.
    제3단계의 경우, 목단강 조선인 사회는 확고히 북한 편에 가담하였고,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이 시기 가장 뚜렷한 특징을 김일성을 절대화한다는 점이다. 최고 민족 지도자로 추앙했을 뿐 아니라 김일성의 발언은 국내 조선인만이 아니라 해외 동포인 자신들도 반드시 받들어야 하는 지시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제4단계의 경우, 중공의 정책에 따라 조선인 정치조직은 해산당하고 만다. 이제 목단강(나아가 재동북) 조선인들에게는 중국 혁명이 主이며 조선혁명은 副의 위치가 되었다. 김일성을 숭배하는 행동도 공식적으로는 잘 드러나 있지 않다. 그만큼 목단강(나아가 재동북) 조선인과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와의 거리가 벌어지게 되었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중국 동북지방(만주) 조선인 역사를 체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6.25전쟁 때 동북 조선인 부대가 참전했으므로, 6.25전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Index terms
  • 목단강, 고려인민협회,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인민 민주동맹, 조선인민주연맹, 김동렬, 임송, 강우, 정경호, 김일성, 김광협, 마교하전투
  • List of digital content of this re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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