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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農桑관련 국가제사의 변화양상과 祭儀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16세기 農桑관련 국가제사의 변화양상과 祭儀 | 2007 Year | 한형주(고려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41
Year(selected) 2007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9년 05월 21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9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본고는 󰡔국조오례의󰡕 편찬 이후의 사직ㆍ선농ㆍ선잠ㆍ기우제 등 농상관련 제례의 변천과정 및 祭儀를 분석하여 16세기 국가제례의 역사적 성격을 파악하려고 하였다. 우선 본 연구를 위해 사용한 방법론은 다음과 같다.
    먼저 연대기 자료와 의례서의 종합적 검토를 시행하였다. 이 시기 기본사료인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 󰡔명실록󰡕 등의 연대기 자료를 통해 제의 변화의 전체적인 추이를 살폈고, 󰡔국조오례의󰡕, 󰡔국조속오례의󰡕, 󰡔춘관통고󰡕 등의 조선전ㆍ후기에 편찬된 의례서, 그리고 친경 및 친잠 등과 관련된 각종 儀軌와 謄錄을 참고하여 의식의 실제 모습을 살폈으며, 중국사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개원례󰡕, 󰡔정화오례의󰡕, 󰡔대명집례󰡕, 󰡔오례통고󰡕 등 중국의 관련 의례서를 검토하였다.
    둘째로는 연대기자료를 통해 16세기 정치사와 의례와의 상관성을 살펴보았다. 특히 성종~선조 연간은 훈구세력과 사림세력, 국왕의 삼자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많았던 시기인데, 국가의례는 이러한 정치상황, 특히 君臣관계의 强弱에 따라 변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연대기 자료를 통해 정치 현실을 파악하고 이것이 제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파악하였다.
    셋째는 한․중 의례를 비교사적인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조선의 국가의례는 중국의 당→송→명에 이르는 시기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는데, 이를 확인하기 위해 중국의 역대 예서의 관련 의식을 조선의 것을 상호 비교하여 그 차별성을 검토하였다.
    넷째는 실제로 농상관련 국가제사의 의례를 분석하였다. 󰡔국조오례의』의식을 바탕으로 각종 농상관련 국가제사의식을 시기별로 상호, 비교 검토하였다.
    이상의 방법론을 통해 마련된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성종 5년『국조오례의』의 편찬은 유교적 祀典의 정형화를 의미했지만 곧이어 성종 14년부터 오례의 개정이 이루어지는데, 그 과정은 2차례의 사직친제와 3차례의 선농친제, 그리고 1차례의 선잠친행을 통해 검증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종대의 오례의 개정에서 주목되는 사실은 기존 종묘제와는 별도로 농상관련제사가 강조된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농사관련 제사는 천자의 예라는 이유로 圜丘祭가 폐지되면서 중국과 달리 운영되었다. 중국에서 圜丘祭와 方澤祭는 천자 권위의 상징인 동시에 농업관련 최고의 제사였지만 조선에서는 이들이 폐지되면서 社稷을 종묘와 대등한 위치로 높였다. 그렇지만 실제로 왕조의 관심은 종묘에 집중되어 사직의 중요성은 떨어졌다. 그런데 성종대 이후 등장한 사림들은 왕도정치를 명분으로 이들 제사를 강조하였다. 즉 사직에서의 친제를 강화할 뿐 아니라 기우제에 국왕이 직접 참여하도록 촉구하고, 아울러 환구제의 주요 기능인 祈穀祭를 사직에서 시행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농상관련 제사의 국왕친행이 제도화된 것은 성종대 이전 종묘이외에 국왕의 친제가 거의 없었던 사실과 비교하면 큰 변화이다. 국왕의 친제는 형식상 爲民政治의 실체화를 주장했던 사림측의 주장에 기인된 듯 보이지만 성종~중종대 이래 훈구세력과의 갈등속에서 정치력을 높이려던 국왕측의 의도가 작용하였다. 특히 祈穀祭의 시행은 天祭가 갖는 권위에 관심이 많았던 국왕측이 爲民의 명분아래 강행한 것이다.
    한편 사직제에 비견될 수 있는 農桑관련 제사는 선농제와 선잠제이다. 이것은 제사의식과 국왕(왕비)이 親耕(親蠶)의 행하는 가례의식이 결합된 것이다. 이를 통해 국왕(왕비)은 일반 민과 직접 접촉하며, ‘親萬民’이라는 국왕의 정치력을 과시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제도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영조대 편찬된 󰡔국조속오례의󰡕에는 사직의 정기제사와 더불어 정월에 사직에서 시행되는 기곡제가 大祀에 편입되었고, 각종 기우제를 왕이 친행하는 대상으로 바꿈으로써 농상관련제사는 종묘와 실제로 비견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 English
  • This study aims at looking over sacrificial rites related agriculture and sericulture during the 16th century(King Sŏngjong~King Sŏnjo period)) in Chosun dynasty.
    Sŏngjong, who didn't take part in compiling Kukchooryeŭi, started to govern in person, review of this was instantly made. Sŏngjong himself gave sacrificial rituals to Jongmyo(宗廟), Sajik(社稷), Moonmyo(文廟) and Sunnong(先農), revised the contents of the ceremony and on the basis of this, the revision of whole Oryeŭi was set out after the 14th year of Sŏngjong. Such effort was distinctively shown in Kyŏnggukdaejŏn(經國大典) published in the 16th year of Sŏngjong and the contents between Kukchooryeŭi and Kyŏnggukdaejŏn showed different aspects.
    The revision of "Oreeŭi" in those days had a feature to put an emphasis on national sacrificial rituals related to policy based on agriculture like Sajik, Sunnong escaping from preference for Jongmyo, and that laid the foundation in sacrificial rituals code in the mid of Chosŏn. This Change is more extended and provides a backdrop for the birth of Kukchosokoryeŭi, new version of Kukchooryeŭi, in the late 18th century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현재 조선시대 農桑관련 국가제사에 대한 연구는 조선초기에는『국조오례의』체제까지의 의례의 정비에, 조선후기에는 관련 의궤에 대해서만 집중되었을 뿐 양자의 매개시기인 16세기~17세기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어 조선시대 국가제례 전체를 유기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기존연구에 반성하여 󰡔국조오례의󰡕체제 이후의 16세기 국가제례, 그중에서도 君臣, 君民 모두의 관심사였던 농상관련 국가제사를 주제로 삼아 그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이를 위해 다음의 연구 방법론을 취하였다. 첫째 관련 의례의 제도적 변천과 의식을 검토하기 위해 󰡔조선왕조실록󰡕 등의 연대기자료와 󰡔國朝五禮儀󰡕를 비롯해 각종 儀軌, 謄錄, 그리고 중국측의 각종 예서와 󰡔明實錄󰡕등 연대기를 검토하였다. 둘째 조선에서는 당→송→명으로 이어지며 변화되는 국가의례를 바탕으로 당시의 실정을 감안하여 제정했는데, 이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조선과 중국의 관련 의례들을 비교사적인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셋째 연대기의 검토를 통한 16세기 제례의 변화 양상, 특히 성종~선조 연간의 훈구와 사림, 국왕의 삼자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제례에 대한 영향을 파악하려고 하였다. 넷째 󰡔국조오례의󰡕에 의식을 기준으로 전후 농상관련 제사의식의 변화 양상을 검토하되, 社稷祈雨親祭儀, 社稷祈穀儀, 先農祈穀儀 등 새로 등장한 의식은 별도로 분석하였다.
    이러한 방법을 통한 연구에서 본고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하였다. 첫째 성종 5년『국조오례의』의 편찬으로 유교적 祀典의 정형화가 이룩되었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였다. 이미 성종 14년부터 오례의 개정이 이루어지는데, 그 과정은 2차례의 사직친제와 3차례의 선농친제, 그리고 1차례의 선잠친행 등 국왕의 친행을 통해 검증․수정되는 과정이었다. 둘째 오례의 개정의 주요 내용이 농상관련 제사의 확대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의 농사관련 제사는 천자예인 圜丘祭가 폐지된 후 중국과 달리 운영되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圜丘祭와 方澤祭는 천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시에 최고의 농업관련 제사였지만 조선에서는 초기에 이들이 폐지되면서 社稷이 종묘와 대등한 위치로 높여졌는데, 그러나 실제 국왕측의 관심은 종묘에 집중되는 한계를 보였다. 그런데 성종대 사림들이 등장하면서 왕도정치를 명분으로 이들 제사를 강조하였고, 특히 사직친제뿐 아니라 기우친제를 주장되었으며, 환구제의 주요 기능인 祈穀祭를 사직에서 시행하도록 촉구된 것이다.셋째로는 국왕 親祭 활성화의 의미를 검토하였다. 농상관련 제사의 국왕친행은 성종대 이전 종묘이외에 거의 없었던 사실과 비교하면 큰 변화이다. 왕의 친제는 爲民政治의 실체화를 주장했던 사림측의 주장에 따른 듯 하지만 성종 이래 훈구와의 갈등속에서 정치력을 높이려던 국왕의 의도가 크게 작용되었다. 특히 祈穀祭의 시행은 天祭가 갖는 권위에 관심이 많았던 국왕측이 爲民의 명분아래 강행한 것이다. 넷째 선농․선잠의례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사실이 주목된다. 조선시대 사직제에 비견될 수 있는 農桑관련 제사는 선농제와 선잠제이다. 이것은 제사의식과 국왕(왕비)이 親耕(親蠶)의 행하는 가례의식이 결합된 것인데, 이를 통해 국왕(왕비)은 일반 민과 직접 접촉하며 ‘親萬民’이라는 국왕의 정치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1. 연구결과
    「16세기 農桑관련 국가제례의 변화양상과 祭儀」라는 본 주제는 연구사정리와 관련 자료의 검토를 거쳐 현재 초고가 완성단계에 있다. 이를 수정․보완하여 금년도 안에 󰡔역사학보󰡕, 󰡔한국사연구󰡕, 󰡔한국사학보󰡕 등을 비롯한 등재지에 수록할 예정이다.

    2. 연구의 활용방안
    본고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학술적ㆍ사회적ㆍ대중적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1) 국가제례 분야의 연구시야 확대
    조선시대 국가의례, 그중에서도 제례에 대한 기존연구는 종묘제도와 祭儀의 역사적 변천 및 왕위계승과 관련된 제반 논쟁 등 제도사․정치사의 관점에 집중되었다. 이것은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현실과 조선시대 정치사를 언급할 때 왕통문제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학문적․대중적 욕구에 기인하였다. 반면에 종묘와 대등한 국가제례의 다른 대상인 사직을 비롯한 농상관련 제사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부족하다. 그러나 농업사회를 기반한 조선왕조에서는 왕통의 이해 못지않게 농민의 염원을 의례화하는 작업을 중시하였고 이것은 일련의 농상관련 국가제사로 표현되었다. 본 연구는 농민적 염원이 국가의례에 어떻게 표현되었고, 그것의 역사적 전개는 어떠했는가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조선시대 국가의례 연구의 시야를 보다 확대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2) 16세기 국가의례의 학문적 이해의 바탕 마련
    현재 국가의례는 그 연구 시기가 조선초기와 후기로 양극화되어 있다. 전자가 󰡔국조오례의󰡕 편찬과정까지의 제도적인 정비과정을 살펴본 것이라면, 후자는 대부분 영정조대 이후에 편찬된 현존 의궤를 검토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시기의 양극화로 16세기~17세기의 국가의례 연구는 거의 공백이 되었다. 15세기말 제도의 성립 이후 그 제도가 점차 변화해가는 16세기와 양란을 겪으면서 새로운 예제를 재정립을 시도하는 17세기 연구는 이후의 역사적 이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국가의례는 통치자를 중심으로 한 지배층의 정치인식과 현실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시대에 따라 변화되는 속성을 갖는다. 본 연구로 지금까지 공백기였던 󰡔국조오례의󰡕성립 이후 국가의례의 실상을 파악함으로써 당대 사회의 이해 및 조선후기 국가의례 이해의 기반이 될 것이다.

    3) 국가의례 비교사를 통한 한국문화의 독창성 확인
    요 근래 중국정부는 동북공정을 통해 다양한 부분에서 한국사를 자국사에 종속시키려고 획책하고 있는데, 이중에서 유교적 전통문화, 특히 의례의 경우 한국학자들도 중국에의 종속성을 일부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유교문화가 비록 중세기 동아시아의 보편 문화였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에 수용,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독자성을 띠었고, 이것은 국가의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은 명에 대해 事大를 내세웠기 때문에 천자국이 아닌 제후국의 의례를 바탕으로 국가의례를 정비했지만 천자국의 의례를 넣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중국과는 다른 역사 현실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내용을 설정하려고 시도하였다. 본고에서는 한중 양국의 관련 의례의 구체적으로 비교․분석함으로써 우리 문화의 독자성을 이끌어 낼 것이다.

    4) 문화재현 행사에 학문적 고증 제공
    현재 전통문화를 대중들에게 교육ㆍ홍보하려는 노력은 사회 각계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문화재청과 경향의 자체단체에서 시행하는 각종 전통문화 및 의례의 재현행사에 대중의 호응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러한 현상은 서구화에 경도된 현대인들에게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새로운 한국문화의 창출에 다양한 방법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런 행사들 상당수가 올바른 문헌고증 및 학술적 평가가 결여된 채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한 이벤트성으로 시행되어 올바른 문화․역사인식의 파악을 해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하고 농상관련 국가제사의 엄밀한 문헌 검증을 통하여 문화재현행사에 이론적, 의례적 고증성과를 제공하도록 하겠다.

  • Index terms
  • 농상(農桑), 사전(祀典), 국가의례(國家儀禮), 社稷(사직), 선농(先農), 선잠(先蠶), 환구(圜丘),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춘관통고(春官通考), 의궤(儀軌), 친제(親祭), 기곡(祈穀), 기우(祈雨), 왕도정치(王道政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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