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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한인여성 이주노동자의 역사를 위한 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파독 한인여성 이주노동자의 역사를 위한 연구 | 2007 년 | 나혜심(성균관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08
선정년도 2007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9년 05월 09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9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파독 한인여성이주노동자의 역사
    -1960-1970년대 한인 간호인력 독일행의 원인


    1950대 말 이후 약 만 여명의 젊은여성들이 독일로 갔고 그 중 많은 수가 해외 한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간호인력의 문제는 현재 진행형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한국의 독일의 역사의 한 부분이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그 먼 곳까지 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그동안에 있었던 다양한 설들을 넘어 역사가의 작업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처음에는 간호학생으로 주로 종교단체에 의해 추진된 간호인력의 독일행은 양 국가의 상황들에 의해서 본격적인 국가적인 사업으로 발전해갔다. 이것이 진행되는 데에는 각 개인이 갖고 있는 다양한 주관적인 이유들이 작용했지만 객관적인 상황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식민지에서의 해방과 분단, 전쟁을 겪은 한국은 산업사회로 발전하기 위하여 당시의 인구과잉과 실업문제, 그리고 외화의 확보가 절실하였다. 이는 한국의 의료현실을 왜곡해서라도 추진해야할 명분이었다. 다른 한편 사회적 자본의 확충, 근로인력의 확보와 사회적 서비스인력의 확보가 필요했던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는 대대적인 외국인 고용허용정책에도 불구하고 주변국에서 간호인력을 구할 수 없었다. 이 중간을 연결해준 것은 독일의 간호업이 역사적, 사회적으로 종교적 봉사와 선행, 그리고 저급한 노동력 행사로 인식된 점이었다. 왜냐하면 종교적 단체들은 선교와 원조를 진행하는 국가의 여아들을 봉사라는 명분과 실업에서의 해결,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여아들이 제외되어 있던 교육적인 혜택이라는 명분으로 이들을 독일사회와 연결시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외에 이 두 국민국가의 국경을 넘는 관계의 시작에는 미국, 독일, 한국이 서로 경제원조체제로 엮여 있던 구조의 힘이 작용하였다.
    가난에서 해방되는 일과 가족에 대한 희생의식을 갖고 있던 한국의 여아들에게 "간호유학"은 이 모두를 해결하는 기회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독일에서의 많은 고생스러운 경험들은 이 여러 가지 의미의 해방감과 겹치면서 오늘날 그 시기에 독일행을 했던 여성들에게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상을 만들어 낸다. 이는 우리가 객관적인 역사 속에서 찾아낸 원인과 반드시 같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역사로 바로 받아들여야 할 내용들임은 분명하다.
  • 영문
  • What made Korean nurses move to West Germany during 1960~1970

    Since the end of 1950s, about 10,000 young Korean nurses went to West Germany. As many of them ended up remaining in Germany, the issue of those nurses is ongoing. At the same time, those Korean nurses are part of German and Korean histories. There have been many explanations concerning the motives for them to move to Germany but I believe the issue should become the study object for historians.

    At first, in most cases, religious institutions drove the movement but later governments of West Germany and Korea led it as a national project. Various subjective reasons might have played their role. Followings are objective situations at that time.

    First, Korea which suffered from division, civil war after it was barely released from the Japanese colonial rule, desperately needed to secure foreign currency and to resolve overpopulation and unemployment issue in order to become industrial nation. This was an absolute cause for the Korean government, even sacrificing medical situation in Korea.

    Second, at that time, West Germany needed to secure social capital, employees and social service providers. However, it could not get nurses from neighboring countries despite its working permit policy for foreigners.

    Against this backdrop, Korean nurses naturally met the demands of Germany. However, the problem was it was regarded as historic, social and religious service or good deed as well as low-cost labors. That is because many religious institutions send those Korean nurses under the cause of mission, assistance, employment and education opportunity.

    Besides, relationship of economic assistance among the US, West Germany and Korea played an important role.

    "Working in a foreign country as a nurse" was regarded as a wonderful opportunity for many Korean women to be free from poverty and unconditional sacrifice for their family. Thus, hard experiences in Germany are overlapped with freedom in many ways and it creates its own historic images to women who went to Germany many years ago. These images are not necessarily same with cause that we found in objective histories. However, all of these should be regarded as histor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파독 한인여성이주노동자의 역사
    -1960-1970년대 한인 간호인력 독일행의 원인


    1950대 말 이후 약 만 여명의 젊은여성들이 독일로 갔고 그 중 많은 수가 해외 한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간호인력의 문제는 현재 진행형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한국의 독일의 역사의 한 부분이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그 먼 곳까지 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그동안에 있었던 다양한 설들을 넘어 역사가의 작업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처음에는 간호학생으로 주로 종교단체에 의해 추진된 간호인력의 독일행은 양 국가의 상황들에 의해서 본격적인 국가적인 사업으로 발전해갔다. 이것이 진행되는 데에는 각 개인이 갖고 있는 다양한 주관적인 이유들이 작용했지만 객관적인 상황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식민지에서의 해방과 분단, 전쟁을 겪은 한국은 산업사회로 발전하기 위하여 당시의 인구과잉과 실업문제, 그리고 외화의 확보가 절실하였다. 이는 한국의 의료현실을 왜곡해서라도 추진해야할 명분이었다. 다른 한편 사회적 자본의 확충, 근로인력의 확보와 사회적 서비스인력의 확보가 필요했던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는 대대적인 외국인 고용허용정책에도 불구하고 주변국에서 간호인력을 구할 수 없었다. 이 중간을 연결해준 것은 독일의 간호업이 역사적, 사회적으로 종교적 봉사와 선행, 그리고 저급한 노동력 행사로 인식된 점이었다. 왜냐하면 종교적 단체들은 선교와 원조를 진행하는 국가의 여아들을 봉사라는 명분과 실업에서의 해결,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여아들이 제외되어 있던 교육적인 혜택이라는 명분으로 이들을 독일사회와 연결시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외에 이 두 국민국가의 국경을 넘는 관계의 시작에는 미국, 독일, 한국이 서로 경제원조체제로 엮여 있던 구조의 힘이 작용하였다.
    가난에서 해방되는 일과 가족에 대한 희생의식을 갖고 있던 한국의 여아들에게 “간호유학”은 이 모두를 해결하는 기회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독일에서의 많은 고생스러운 경험들은 이 여러 가지 의미의 해방감과 겹치면서 오늘날 그 시기에 독일행을 했던 여성들에게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상을 만들어 낸다. 이는 우리가 객관적인 역사 속에서 찾아낸 원인과 반드시 같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역사로 바로 받아들여야 할 내용들임은 분명하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그동안 파독 광부의 문제와 연결되어 무차별적으로 파악되어오고 있었고 1960년대 경제개발을 위한 차관교섭의 과정 중 획득한 정치적인 성과로 오인되고 있던 간호인력 파독의 계기가 제대로 밝혀질 수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의 한국선교과정과 개발원조, 노동자 부족으로 인한 사회적 체제의 위기를 막으려는 독일측의 이해와 많은 노동력을 해외로 보내고 필요한 경제적 자금의 사회적 유동을 유도하려는 양 국가의 정책적인 차원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간호인력들의 개인적인 원인들의 자발성 역시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요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의 제대로 된 정리를 통하여 양국의 현대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주노동자의 파견의 역사를 학술연구자들은 물론 이에 관심 있어 하는 사회의 관심을 수정하고 제대로 된 역사적 사실을 전달 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어느덧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숫자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이주민의 우리사회 내 정착이 명실상부하게 확대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앞 서 이런 과정을 진행해 나갔던 국가의 예를 살펴봄으로써 역사적, 사회적 선례를 살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비단 역사분야 만이 아니라 현재 사회학이나 정치학 등 사회과학 분야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디아스포라의 구체적인 예들을 제공해 줌으로써 이에 대한 현실적인 정책을 세우거나 이론적인 틀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색인어
  • 간호인력, 이주민, 사회문제, 한국간호사, 손님노동자, 파독 한인간호여성,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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