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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 속의 비전, 비전 속의 석굴: 인도 초기 불교미술의 <제석굴설법도> 연구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석굴 속의 비전, 비전 속의 석굴: 인도 초기 불교미술의 <제석굴설법도> 연구 | 2007 Year | 이주형(서울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G00021
Year(selected) 2007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9년 05월 29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9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본 연구는 인도의 초기 불교미술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로 등장했던 <제석굴설법>을 시각적으로 분석하고, 텍스트와의 관계를 추적하여, 그 미술사적, 불교사적 의의를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 <제석굴설법>은 어떤 이유 때문에 초기 인도 불교미술에서 그렇게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졌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지 해석은 이 주제가 인드라로 대표되는 인도의 전통 브라흐만교에 대한 불교의 우위를 강조하기 위해 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바르후트, 산치 등의 초기 미술자료에서는 인드라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이 점은 힌두교에 대한 불교의 우위라는 해석의 가능성을 일축한다. 한편 알렉산더 소퍼는 이 주제의 의미를 서아시아에서 인도까지 퍼져 있던 광명숭배와 연관하여 해석한 바 있다. 그러나 붓다의 몸에서 나오는 화염은 간다라 이외의 지역에서는 전혀 미술에 표현되지 않았으며, 간다라에서도 극히 소수의 작품에만 화염이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이 점은 이 주제를 광명숭배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제석굴설법>은 불전의 여러 사건 가운데 수수께끼 같은 존재이다. 이 전설적 사건이 붓다의 삶에서 언제 일어났는지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역 <태자서응본기경>과 <보요경>에서 그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두 경전에서 <제석굴설법>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고 첫 설법을 하기 전에 일어난 <설법권청>에 앞서 일어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 두 경전의 서술은 인도 초기불교에서 <제석굴설법>을 <설법권청>과 밀접하게 연관된 계기로 보는 이해가 존재했음을 명확히 알려준다. 이러한 이해의 유무에 따라 <제석굴설법>의 전승에는 두 가지 그룹이 존재한다. 그 관계에 대해서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볼 수 있는데,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양자는 서로 독자적으로 발전하며 교류했던 전승이라 보는 것이 가장 개연성이 높다고 본다.
    <제석굴설법>을 <설법권청>에 연결된 사건으로 보는 인식이 초기 인도불교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쿠샨시대의 인도 불교미술과 관련하여 매우 주목할 만하다. 쿠샨시대의 마투라에서는 소위 카파르딘형식의 석가모니 상들이 만들어진 바 있는데, 본 연구자는 이 형식이 석가모니 성도 이전의 보살을 나타낸 것으로 본 바 있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 시대의 마투라 출토 부조 가운데 카파르딘형식이 붓다의 성도 이후, <제석굴설법> 같은 장면에 쓰인 예가 3-4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태자서응본기경>과 <보요경> 계통의 전승에 따라 본다면, 이 <제석굴설법>은 붓다의 성도 이후, 첫 설법 이전의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카파르딘형식이 붓다가 성도 이후, 첫 설법을 하기 전까지의 서사에도 쓰였음을 알려준다. 이것은 붓다도 첫 설법을 하기 전까지는 아직 보살이라는 인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간다라와 마투라에서는 <제석굴설법>과 <설법권청>이 크게 유행했다. 이것은 붓다가 침묵의 삼매를 깨고 법을 설함으로써 불교를 열어주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을 알려준다.
    2. <제석굴설법>은 어떤 양상으로 변화했으며,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반영되었는가 간다라에서도 초기부터 많은 수의 <제석굴설법> 도해가 만들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간다라에서는 <제석굴설법도>가 통상적인 불전 부조와 달리 대형구도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대형구도로 만들어진 것은 이 주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것을 반영한다. 붓다가 제석굴에서 취한 삼매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이에 이어진 붓다의 설법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석굴설법>을 서술한 또 하나의 문헌인 <카루나푼다리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경전의 서술은 여러 면에서 간다라의 대형구도 부조들과 상통하는 점이 많다. 양자 사이의 관계를 단언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카루나푼다리카>의 연대로 보아 이러한 대형구도의 부조들이 <카루나푼다리카>에 전하는 서술을 유발한 것이 아닌가 하다.
    간다라에서 대형구도로 다루어진 것은 <제석굴설법> 외에 대형설법도 부조들을 꼽을 수 있다. 이 부조들의 주제는 오래 전부터 <사위성신변>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근래에는 아미타불의 정토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제석굴설법>의 '삼매'와 대형 설법도의 '설법'은 간다라미술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흥미롭게도 간다라의 독립 불상들에서도 좌상의 경우 대다수를 이루는 것은 선정인을 취한 상들과 설법인을 취한 상들이다. 즉 독립 불좌상에서도 삼매와 설법이 가장 중요한 주제를 이룬 것이다.
  • English
  • In both visual and scriptural traditions in India, more distinguished was Indrasailaguha. It was the locus of an episode commonly known as the "Visit of Indra" from the legendary life of Sakyamuni Buddha, purportedly located near Rajagrha. This famous story recounted in a number of canonical texts of Indian Buddhism, most notably in the Sakkapanhasutta of the Pali Dighanikaya and its equivalents in the Chinese Agamas, and remarks alluding to it are found in many other places in the scriptural tradition. It was also quite a popular theme in visual monuments, as its depictions are seen in wide areas and in large numbers.
    For what reasons did the theme gain such prominence in the visual tradition of early Indian Buddhism The Indrasailaguha is an enigmatic theme in many ways. The way it is presented in the Sakkapanhasutta/Sakraprasna gives little hint to its contextual significance within the Buddha’s life; especially we are curious about in what phase if not moment in the Buddha’s life the incident was believed to have taken place and in what circumstances. Perhaps, in this story the context did not matter as much as the Buddha’s exposition of the Buddha on doctrinal matters. No clue to these questions is found in the Sakkapanha/Sakraprasna, while the Indrasailaguha is not referred to virtually in any major sources of the Buddha’s life.
    However, two accounts of the Buddha’s life preserved in Chinese translations provide valuable information hitherto little noticed in this connection: Taizi ruiying benqijing translated by Zhi Qian in the early third century and Puyaojing, the earliest extant translation of the Lalitavistara by Dharmaraksa from the early fourth century. In these sources, the visit of Indra and Pancasika is told as part of another famous episode from the Buddha’s life, the Entreaty to preach prior to the Buddha’s first sermon. Thus, we evidently have two diverging traditions about the Indrasailaguha, one in the Sakkapanha/Sakraprasna and the other in Taizi ruiying benqijing and Puyao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traditions is immensely intriguing. Whatever the case, the presence of the tradition of Indra’s visit within the Entreaty to preach is clear and significant enough.
    In this connection, two representations of the Indrasailaguha from Mathura draw special attention. In both, the Buddha is depicted in the kapardin type seated inside a cave. As is well known, images of the kapardin type are almost invariably designated as "bodhisattva" in the sense of Sakyamuni in the pre-enlightenment stages. Based on this, I previously suggested that the kapardin type represented the bodhisattva not only in name but also in reality, reflecting a cautious attempt at the earliest stage of the iconic representation of the Buddha in Mathura. A drawback with this interpretation was the existence of kapardin-type figures in what appear to be post-enlightenment scenes. At least four narrative reliefs are known with the kapardin type; one is identifiable as the Meeting with King Bimbisara before enlightenment, another as the Offering of bowls by the Four Heavenly Kings, and the last two as the Indrasailaguha. I understood the use of the kapardin type in other scens as the extension of the usage to the post-enlightenment scenes up to the First sermon when the Buddha became the real Buddha by assuming the role of the great proclaimer of the dharma. But those representing the Indrasailaguha presented a puzzle. Now I consider them to be part of the Entreaty to preach as a parallel to the tradition stated in the Taizi ruiying benqijing and Puyaojing. The prominence of the Indrasailaguha as part of the Entreaty to preach in this phase of Buddhist visual creations in Mathura intrigues us. This reflects the profound concern in early Budhism with the Entreaty to preach as a critical juncture in the emergence of the Buddha as one who opened the great spiritual path rather than remaining a pratyekabuddha.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 본 연구는 인도의 초기 불교미술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로 등장했던 <제석굴설법도>를 시각적으로 분석하고, 텍스트와의 관계를 추적하여, 그 미술사적, 불교사적 의의를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인도의 불교석굴 가운데 불교 성전에서 언급된 가장 중요한 석굴은 제석굴이라 할 수 있다. 제석굴은 천신인 제석천(인드라)의 굴이라는 뜻이다. <제석굴설법>은 지상의 제석천의 굴에서 석가모니 붓다가 삼매에 들어 있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제석천과 함께 내려온 악사인 판차시카가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삼매에서 깨어 법을 설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여러 경전에 실려 있어 일찍부터 불교경전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알려준다. 조형적으로도 <제석굴설법>은 일찍이 바르후트(기원전 1세기)와 보드가야(기원전 1세기), 산치(기원후 1세기)에 등장하여 2-3세기에 간다라와 마투라에서 크게 유행했다. 간다라에서는 현재 수십 점이 알려져 있을 정도로 불교도들의 관심을 모았다. 안드라 지방의 나가르주나콘다에도 도해가 남아있다. 이 주제는 서력기원 전후부터 수세기에 걸쳐 전개된 불교사적 조류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는, 풍부한 함의를 지닌 불교미술사적 다큐먼트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제석굴설법>에 관한 많은 의문들은 해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즉 (1) 이 주제가 불전(붓다의 신화적 삶)에서 언제 일어난 일인가, (2) 제석굴은 정확히 어디쯤 있다고 믿어졌는가, (3) 이 주제가 불교사 및 불교미술사에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4) 이 주제의 시각적 도해에 나타난 양상에는 어떤 관념이 반영되어 있었는가 등의 문제가 제대로 해명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연구에서 이 주제에 서술된 문헌에 대한 분석적 이해가 부족했고, 조형사례에 대한 연구는 피상적인 데에 그쳤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주제가 불교사적으로 갖는 의미에 대한 심도 있는 천착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에 본 연구는 <제석굴설법>의 학술적 중요성과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서두에 제시된 문제들을 모색하고 해명하려 시도하였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 본 연구는 <제석굴설법>에 대한 방대한 유물 및 문헌 자료를 정리하고 정밀하게 분석하여 해석을 도출하였다. 이제까지 알려진 유물을 망라하고, 문헌의 경우는 기존 연구에서 다루어진 팔리어 니카야나 한역 아함 외에 산스크리트어나 티베트어로 전하는 다양한 문헌들에 주목하였다.
    -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 연구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카루나푼다리카>와 한역 <보요경> 등에 실린 <제석굴설법> 관련 기사에 주목하였다. 이 기사들을 통해 초기 불교도들이 <제석굴설법>이 붓다의 생애 어느 시점에 일어났다고 믿었으며, 또 후대에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였지를 알 수 있었다.
    - 새로운 문헌 자료에 주목함으로써 <제석굴설법>이 왜 지금 우리가 보는 것 같은 형태로 조형물에 반영되었는지에 대한 보다 명쾌한 해답을 도출할 수 있었다. 특히 마투라의 경우는 <제석굴설법>이 불상의 기원기에 등장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해석에 이를 수 있었다.
    - 간다라의 경우에 <제석굴설법>은 무엇보다 이 주제가 대형 부조로 만들어져 경배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제석굴설법>은 실제로 설법보다는 제석굴 내에서의 삼매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카루나푼다리카>를 원용하여 그 의의를 해석할 수 있었다.
    - <제석굴설법>이 아라마키 노리토시가 주장하는 대로 대승불교도들의 핵심적인 상징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간다라의 대승불교'라는 특수한 맥락에서 매우 중요시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직 독립적이지는 않았으나 인도의 어느 지역보다 대승불교가 활발했다고 생각되는 이곳 불교계에서 <제석굴설법>이 갖는 의미를 창의적으로 해석하였다.
    - 본 연구의 성과는 이미 본 연구자 초청받아 참석한 두 개의 국제 학술회의(캐나다와 싱가포르)에서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 본 연구의 성과를 싱가포르의 학술회의 측에서는 그 결과물로 발간되는 영문 공동저서(under peer review)의 일부로 출간을 제안해 왔다. 이곳이 아니면 A&HCI급, 혹은 그에 준하는 국제 학술지에 게재하도록 하겠다.
    - 아울러 국내의 등재 학술지에도 국문으로 게재할 계획이다.
  • Index terms
  • 인도미술, 불교미술, 간다라, 마투라, 제석굴, 삼매, 설법권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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