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의 세계적 동향은 일찍이 "미니마 모랄리아"(Minima Moralia)에서 아도르노가 진단했듯이 대중사회 속 개인들이 다양화되고 개별화하는 동시에 사회의 총체화가 완성되어가면서 ‘개체화의 원리’가 아이러니컬하게 실현되는 경향을 확인시켜 준다. 아메리카니즘을 두고 ...
현금의 세계적 동향은 일찍이 "미니마 모랄리아"(Minima Moralia)에서 아도르노가 진단했듯이 대중사회 속 개인들이 다양화되고 개별화하는 동시에 사회의 총체화가 완성되어가면서 ‘개체화의 원리’가 아이러니컬하게 실현되는 경향을 확인시켜 준다. 아메리카니즘을 두고 보자면, 19세기 산업혁명 이래 근대화 과정이 선진 산업국들의 주도로 진행되어 온 이래 자본주의적 산업화, 미국화, 사회의 발전과 진보, 민주화가 서로 연관된다는 것은 아메리카니즘에 찬성하는 진영에서나 반대하는 진영에서나 모두 인정되어 온 사실이다. 하지만 21세기 벽두에 이 근대화 과정을 되돌아볼 때 우리는 과연 이 경향들이 모두 합치하는 방향으로, 즉 일직선적으로 진행되어 왔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전에 근대성 개념은 윤리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가졌고 근대화를 정치적 계몽, 인류의 진보, 사회의 민주화와 동일시하는 규범적 견해들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점차 근대가 역사화하기 시작하면서 20세기의 역사에서 여러 균열과 차이들 및 역설들을 밝혀내는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근대-반(反)근대, 또는 근대-전(前)근대와 같은 이원론적 도식이 정치적 격동기였던 20세기와 관련하여 더 이상 학문적으로 통용될 수 없게 되었다. 근대성과 그것의 ‘타자’사이의 대립은 근대의 생활세계를 역설적으로 지각하게 만들었다. ‘급진적인 근대성의 수단을 동원하여 퇴행적 운동을 강화시키는’ 작업을 시도한 에른스트 윙거의 경우를 빗대어 학계에서 ‘파시즘적 근대주의’, ‘보수적 혁명’, ‘새로운 민족주의’, ‘파라 근대화(Paramoderne)’, ‘자생적 근대성’ 등이 제안되었다.
근대성이 20세기 전반부에 그것의 반대로 정의됐던 것과 분명하게 대립된 모습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 근대성의 타자가 근대성을 구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은 ‘신즉물주의’의 시대로 규정된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를 특징짓는 성격이 된다. 신즉물주의는 1920년대부터 흔히 ‘문화적 아메리카니즘’을 뜻하는 표어로 쓰이게 된다. 그것은 미국화, 합리화, 목적에 대한 신봉, 적나라한 사실, 기능적 노동에 대한 선호, 직업소명, 유용성 등의 함의를 갖는 시대정신의 명칭이었다. 문제는 이 신즉물주의라는 용어를 이데올로기적 경계 없이 이 시대의 징표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본 연구자는 "새로운 야만성"의 현상을 주목하였다. 지식인들 사이의 문화보수주의를 혁파하려는 자세를 가리키는 이 긍정적 의미의 새로운 ‘문화적’ 야만성의 원천은 진보, 테크놀로지, 도시문화의 선구로 여겨지는 미국이다.
이들 작가와 사상가들은 서로 이데올로기적으로 현격한 차이를 지님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삶에서 기술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점, 그로써 전통적인 휴머니즘이나 그에 바탕을 둔 경험 및 문화비판적 입장, 더 나아가 당시 또 다른 철학적 조류였던 ‘생의 철학(Lebensphilosophie)’적 입장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렇지만 역으로 고찰해보면 이 작가들이 기술과 예술과 삶 사이에 그어진 경계를 극복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했다고 해서 정치적 입장까지 공통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차이가 그들의 사상과 세계관을 결정적으로 특징짓는다고 볼 수도 있다. 윙거, 브레히트, 아도르노, 벤야민 등은 기술의 진보, 대중, 대중문화 등에서 미묘한 차이와 공통점을 보인다.
자본주의의 물화와 소외를 비판하는 유물론적 입장을 바탕에 깔고 있기에 아도르노의 문화비판적 시각은 다분히 자본주의적 발전의 첨단 국가인 미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연결되고, 그러한 시각은 우선 19세기 이래 독일 지식인 계층에 안착한 안티아메리카니즘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후기로 갈수록 자신의 미국 망명기의 경험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순적 언술들을 전개한다. 그 긍정적 평가들은 "민주주의 정신"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그럼에도 그의 사유에는 대중보다는 개인, 기술보다는 예술, 현실정치보다는 미학에서 진정한 것을 찾는 엘리트주의적, 모더니스트적 요소가 다분히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그는 벤야민과 차이를 보인다. 본 연구에서 이들 지식인들 사이에 기술의 발전, 민주화,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아메리카니즘을 축으로 이들 지식인들의 담론이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의 연구는 앞으로 문학과 예술에 연출된 아메리카에 대해 비교문학적 시각과 상호문화적 독문학의 시각에서 포괄적으로 이루어질 아메리카의 이미지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 기여하고, 나아가 오늘날 진행 중인 세계화에 대한 올바른 이미지를 정립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