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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적 ‘여행’의 발견과 현대에 이르는 계보 연구---일제시대 「여행안내서」에서 ‘한류’ 관광에 이르기 까지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한국의 근대적 ‘여행’의 발견과 현대에 이르는 계보 연구---일제시대 「여행안내서」에서 ‘한류’ 관광에 이르기 까지 | 2007 년 | 서기재(건국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617
선정년도 2007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11년 02월 21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11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2010년,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다. 다른 사건이었다면 한 세기를 지냈다는 의미에서 그 의미를 새기기 위한 행사라도 마련 할 텐데 나라를 잃은 경험은 역시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기에 가슴 속에 묻어두게 된다. 2010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의 김연아 선수는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앞서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일본을 제치고 한 단 높이 올라선 그녀를 통해 애국가가 전 세계 사람들 앞에 울려 퍼질 때, 애국심이란 것을 생각해 왔던 그렇지 않던, 한국인들은 한국을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특히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겨 애국가가 울리면 진하게 퍼지는 감동은 과거의 역사가 한국인에게 무형으로 새겨놓은 것이다.
    그 동안 한국의 근대를 이야기 할 때, ‘식민지 수탈’이라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중심으로 취급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 시기의 일본의 정치적 국가적 목표는 뚜렷했고 그 목표 하에 근대의 한국인과 일본인이 움직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개인’보다는 전체주의에 입각한 ‘국가’가 그 핵심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일종의 종교와도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근대를 살았던 한국과 일본은 믿겨지지 않아도 천황을 ‘신’으로 믿어야만 했고, 그 ‘천황’이 세운 ‘국가’를 사랑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근대 한국인들은 일본식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일본은 오랜 동안의 준비를 거친 후에 한국을 ‘일본’으로 만들고자 했다. 정치적인 선전이나 무력 등은 누구라도 거부하고 대항하지만 그렇지 않은 ‘문명’이나 ‘문화’를 앞세워 국가를 투명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지기 쉬운 그리고 오히려 받아들이고 싶은 사항으로 변한다. 병합 앞에서 한국 민족은 분개했고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지만 일본은 ‘근대 문명’이라는 간판을 앞세우고 한국을 측정하고 판단하며 근대적 잣대에 미치지 못하는 조선의 문화를 보고 때로는 무력으로 들이대기도 하고, 때로는 애정을 앞세워 달래기도하면서 일본화해 갔다. 그러나 일제가 범했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는 한국이라는 토포스를 한덩어리의 바위처럼 단일하게 생각하고 취급하여 조선에 살고 있는 한사람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을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은 <조선>은 ‘이럴 것이다’라는 가정 하에 모두를 똑같은 단위로 취급하여 제국주의 팽창의 욕망의 대상으로 삼아 버리는 데에서 근대 한국의 문화가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던 과거를 지니기도 한다.
    당시 한국인이 일본인과 같은 ‘국민’을 요구 당하면서도 실제로 ‘국민’ 취급을 받지 못했기에 언제나 겉도는 존재로서 지내야 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시대를 거친 한국인들은 이 시기를 암흑의 시대라 부르고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이 시기의 문화적 산물도 폄하하여 취급하려고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 조부모나 증조부모가 그 시기에 살아있었고 어떤 형태로든 그 시기를 버텼기 때문에 오늘날의 한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어두웠던 한국의 근대에도 이 시대를 지탱해 주는 문화적 요소들이 존재한다. 한국에 있어서의 근대는 변화와 혁신이라는 큰 명제를 앞세우며 다가왔다. 근대가 뭔지를 생각해 보기도 전에 새로운 문화와 문물이 ‘외국인’들을 통해 들어왔다. 특히 일본은 무시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이 깊숙하게 한국의 근대 문명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판단하여 한국에 필요한 것들을 설치하고 보수 개량했다. 이는 한국에 사는 대중들 스스로가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이를 반영하는 형태로서의 근대가 아니다. 그러나 근대는 문화의 주도권을 가진 자들에 의해 빠르고 점진적으로 한국 사회로 침투해 갔다. 이러한 근대의 문화적 제상을 파악하기 위해 어떤 재료가 적합할 것인가 본서는 근대를 맛보게 해주었던 것들 가운데에 ‘여행’이라는 주제를 선택하였다.
  • 영문
  • In 2010, it becomes a century when Korea was officially annexed through the Japan-Korea annexation treaty (Gyungsulgukchi) in 1910. If it were a different anniversary, it would be a big celebration of a century. But we would keep this in the heart because it will bring us a pain to recall a lost era of Korea which never likes to be remembered. Coincidently, in the Winter Olympic Games in 2010, Yuna Kim, a Korean figure skater, won a gold medal defeating against Asada Mao of Japan, another championship contender. When the Korean national anthem was played before people from around the world through her achievement, particularly defeating against Japan, most Koreans must be proud to be Korean who is either in patriotic spirit or not. This is deep emotion Koreans can share, that has been inherited in the past history.
    When we talk about modernity in Korea, it has been dealt in Japanese colonial exploitation that they will never want to recall.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rule, Koreans and Japanese had to go together in order to achieve Japanese political and national targets for the world in which they emphasized ‘the nation’ on basis of totalitarianism rather than ‘an individual’. This seemed to play a role of religion. Both Japanese and Koreans were driven to believe in the emperor as a god and love the country he had built. For the purpose of this, people in the modern period of Korea were educated in Japanese education system. Japan put its efforts to integrate Korea into Japan with a long period of preparation of this. While political propaganda and forceful power easily bring people resistance and rejection, culture and customs would do opposite way if it has a nation blurry. While the Korean were furious at the annexation and did not know what to do with this, Japan gradually assimilated Korea in the name of ‘modernization’ by forcing and persuading and at times soothing them. By doing so, one mistake Japan did is that they treated them as a single unit. As a result, a life of individuals in Chosun had been ignored. Their desire for colonization of Chosun with which they presumed how Chosun was and dealt with a mass of people as an object of expansion of Japanese imperialism, blinded them to understand the modern Korean culture correctly in the past.
    There is no doubt that at that time Korean Japanese would have floated because they were required to act as a citizen in a country of Japan but not actually treated as the one. That is why Koreans who went through the colonial period had a tendency to call it the ‘age of darkness’ and also interpret cultural products in that time to be disgraceful since they had lost their country. However, our grandparents and grand-grandparents sustained and came through those times in certain ways. Is not that precious reason in terms that a nation, Korea is still in existence There exist cultural inheritances even in the dark age which still hold us in our time. Modernity in Korea came in a form of alteration and reformation. New cultures and customs had been imported by foreigners before Koreans came to think of modernization. The modern civilization of Korea is closely related to Japanese activities that will not be ignored. Many things were installed, modified and improved. Sadly, this is not the way of modernization in which the public inspire themselves to do and reflect. On the contrary, modernity spread throughout the colony fast and progressively by the hegemony. What is proper material to show this kind of modernization at the time This book will present ‘travels’ in which modernization had been practiced at the tim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사람의 이동은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 이루어졌다. 식량을 얻기 위하여 그리고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이동은 필요했다. 즉 이동은 삶 그 자체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쉼 없이 이동하는 것이 인류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동에 대한 발상은 근대 교통수단의 발달에 의해 그 전환점을 맞이한다.
    한국의 근대 여행은 안타깝게도 한국인 스스로에 의해 한국인의 자아를 확립하는데 사용했다고 하기 보다는 타국의 언어로 타국의 사상을 덧입은 형태로 출발했고 진행되었다. 여기에 한국을 <욕망하는 자>가 존재했다. 이 욕망은 때로는 정치적인 색을 띠기도 하고 혹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가장하기도 하여 문화의 다방면에서 존재해 왔다.
    일제의 한국에 대한 욕망은 먼저 한국을 지리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새로운 욕망을 낳았고 이미 병합 이전부터 한국 관련 지지(地誌)나 지도 등이 대량으로 발간되었다. 그야말로 한국 ‘땅’에 대한 특징을 주도면밀하게 조사 분석하여 관심 있는 독자들의 시선을 이끌었다. 이러한 욕망은 이곳으로 직접 가봐야 한다는 부담감을 낳게 된다. 진실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인과 일본어를 아는 한국인 여행자가 보다 편리하게 여행 할 수 있도록 여행안내서가 발행된다.
    근대 이전의 여행이 ‘모험’이라는 단어로 대표되었다면 근대의 여행은 더 이상 ‘모험’이 지니는 위험성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여행 전의 사전 지식을 얻는 것은 여행자가 가져야할 기본적인 사항이었다. 무엇을 타고 어디로 가서 어떤 것을 볼 것인가에 대한 계획은 「여행안내서」가 가이드해주는 것이었다. 때문에 근대 여행을 위한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던 책들은 근대의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거기에는 새로운 교통수단을 통해 많은 곳을 이동하면서 자연과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이며, 그 사람들이 쓰는 언어, 음식, 그리고 주거환경도 살펴 볼 수 있다. 그곳의 문화재를 통한 역사도 알 수 있고, 그에 따른 전통문화도 볼 수 있으며, 빠르게 변화하는 현재 진행형의 삶도 볼 수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여행안내서」의 역할이다. 따라서 여행은 근대 이전에 비해 좀 더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여행안내서는 처음 제국 건설의 목표 속에서 탄생한다. 그러나 정치적인 색과 가능한 거리를 두려하며 인간의 개인적 욕망을 자극하는 데에 그 기술의 초점을 맞추어 간다. 여행자가 그곳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어떤 종류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어떤 자아를 획득할 수 있는지 등, 타지 문화의 전반적 상황을 개인적인 관심사로 끌어 올 수 있는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의 추천이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계획을 세워 떠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국가의 추진 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인 혹은 한국인의 여행에 대한 강조나 실시되는 것이 아닌 여행자 내부적인 욕구를 반영한 것이 더 자연스러운 형태로 자리 잡혀 간다. 그리고 그 여행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욕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는 국가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 되고 나의 욕망이 국가의 욕망과 겹쳐져 가는 반복 작용의 산물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요구하기 전에 내가 생각지 못한 더 새로운 사상과 문물이 다가왔고 이것을 ‘나’를 발견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순간 근대라는 굴레에 자신을 엮어갈 수 밖에 없는 현상을 낳게 된다. 본질적인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각기 다른 그러나 제조자가 같은 페르소나를 둘러쓰고 그것이 ‘나’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는 욕망의 페르소나의 제작소 이며 한국은 그리고 일본인도 그 대상물이 되었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본서는 이러한 근대를 향한 욕망--일본으로 치자면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일환, 심상지리의 확대와 그것에 대한 실천일 것이고, 한국으로 본다면 구시대의 낡은 관습이나 상활을 버리고 새로운 문물과 문화에 대한 추구에 대한 욕망--이 ‘여행’이라는 형태로 어떻게 드러났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실천의 장은 ‘근대 한국’인데 양자의 욕망이 존재하는 공간으로서의 인식에 바탕을 둔다. 또한 현대사회에 접어들어 이제 더 이상 주종 관계에서 벗어난 시점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띠는 것에 대하여도 살펴보고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지금까지 전문적으로 행해지지 못했던 일제시대 <조선관련 여행안내기>의 체계적인 자료 수집과 정리 연구 분석을 실시하므로 인문학 연구에 있어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2. 일제 시대라는 상처가 한국의 근대 문화를 바로 보는 데에 장애요소로 작용해왔는데, 본 연구를 통하여 한국의 근대문화사를 바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3. 지금까지 '근대 문화'라는 틀로 광범위하게 다뤄졌던 것을 ‘여행’과 ‘관광’이라는 전략성을 띤 주제로 1차 자료를 면밀하게 분석함으로서 발전적 연구의 기반을 닦으며, 나아가 현 관광현상을 분석, 앞으로의 발전 방향성 까지 제시할 수 있다.
    4. 여행안내서와 관련된 자료 즉, 여행 잡지, 소설, 기행, 여행에 관련된 광고, 신문이나 잡지를 통한 담론 경향 등을 동시에 파악함으로서 문화, 문학, 사회, 역사 등에 걸친 다각적인 측면의 연구의 발판이 된다.
    5. 여행안내서를 중심으로 한 다각적인 연구고찰의 성과를 대학(원) 강의를 통해 전달함으로써 기존의 역사인식의 재정립과 새로운 발전적 연구의 기들을 마련할 수 있다.
    6. 단행본 출간을 통해 보다 광범위한 독자들의 근대 한국 문화에 대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
  • 색인어
  • 근대문명 민족 문명 문화 개인 국가 천황 일제 조선 욕망 이동 투어리즘 자아 지리 독자 의지 모험 위험성 지식 근대여행 공간 경계 개인적 욕구 오리엔탈리즘 금강산 어린이교육 환상 차이 여유 대륙진출 일본관광 투어리스트 콜로니얼 디스클 확장 논리 관광조선 대중잡지 아베요시시게 일본정신 대륙 수학여행 인격수양서 기생학교 조선관광개발 문화개방 일본국유철도법 교통로건설 철도건설 조선여행기 외지체험 그랜드투어 자아확장 지도 소유 경계해체 대동여지도 곤여만국전도 일본지도제작 지적측량 경성안내기 여행안내서 조선철도여행안내 남만주철도주식회사 환상주유여행 심상지리 소유욕 민족의식 제국주의 해외여행 관광 관광산업 한류 드라마 영상매체 관광욕구 단체여행 철도회사 휴양지 박람회 일본교통공사 일본여행협회 수학여행 문명장치 문명국민 세계단체여행 신흥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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