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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문혁소조와 문화대혁명 -- 천뽀다(陳伯達)를 중심으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중앙문혁소조와 문화대혁명 -- 천뽀다& #40;陳伯達& #41;를 중심으로 | 2007 년 | 백승욱(중앙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B00457
선정년도 2007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9년 05월 09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9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중앙문혁소조는 주로 마오쩌뚱 주석이 주도한 각종 문헌들의 초안을 작성해 온 팀들이 중심을 이루었는데, 이는 중앙문혁소조가 마오쩌뚱 사상에 기반하여 당중앙위원회를 대체하여 문화혁명 운동을 주도할 새로운 구심점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중앙문혁소조에서 중요한 관찰점 중 하나는 소조장인 천보따와 문화혁명소조 내에서 실질적 세력을 장악하고 있는 장칭 사이의 관계였다. 천보따 자신은 자신과 장칭 사이에 대립이 심했음을 회고하고 있다.
    천보따가 류사오치와 사이에서 '최초의 의견대립'을 보이게 된 사건은 문화대혁명 초기 중앙위원회 주도로 파견된 공작조의 문제에서였다. 그러나 천보따의 공작조 비판은 주변적 입장이었고, 이 입장은 7월 마오의 베이징 복귀 이후 주도적 역할을 맡게 된다.
    문화대혁명 초기 천보따의 문화혁명관은 문화혁명의 시도를 ‘파리콤뮨 정신으로 복귀’로 해석하려는 경향에서 확인된다. 이런 파리콤뮨을 모델로 한 문화혁명의 구도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문혁 16조」라고 일컬어지는, 1966년 8월8일 발표된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정」이었다.
    문혁시기 천보따의 개입은 혈통론의 비판과 홍위병 파벌간의 대립이 무장투쟁으로 격화되지 않도록 제어하는데 집중되었다. 1966년 말부터 문화대혁명은 점차 공장으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천보따가 사인방을 구성하는 장춘치아오 등과 입장이 분명하게 갈라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런 공장내 문화대혁명을 둘러싼 입장의 차이에서부터였다. 천보따가 노동자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대응을 보였던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는데, 첫째로 생산이 중단되어서는 안된다는 점과, 둘째로 노동자들 사이에서 대립이 증폭되어서는 안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 영문
  • Cultural Revoluton Central Small Group(CRCSG) was organized by those who had undertaken the tasks of making important drafts for chiarman Mao, which meant that it would replace the Central Committee of the CCP and lead the new Culturall Revolution for the future. Within the organization, one of the important issue was the opposition between Che Boda and Jiang Qing. Chen retrospected that between them there were serious conflects.
    Chen's initial opposition to Liu Shaoqi began with his critiques against the dispach of work groups to scholls and other work units. But his critiques was regarded as minority opinion and could not get much support within the party until Mao's return to Beijing and his decision to retreat all work groups. After then Chen rose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political leader during the cultural revolution.
    In the early stage of the cultural revolution, Chen's idea on the cultural revolution focused on his emphasis on the principle of the Paris Commune, which was most outstandingly manifested by "16 articles of the Cultural Revolution"(the Decision by the CCP Central Committee on the Proletariat Cultural Revolution) promulgated on August 8, 1966.
    Chen's efforts during the Cultural Revolution gave much attention to the critiques against the theory of family lineage and the lessening of violent collides between different fractions of rebel groups. Since the end of 1966, the cultural revolution began to spread to factories. Then oppostion between Chen and Zhang Chunqiao began to diverge owing to the differnt visions on the issue of cultural revolution within factories. Chen displayed a little conservative opinion on workers' role during the cultural revolution because he worried much about the stoppage of production and about the increasing antagonism withn working class itself.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천뽀다에 초점을 맞추는 문화혁명에 대한 연구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형성된 쟁점을 당-마오쩌뚱-문화혁명소조-대중조직의 관계 속에서 재검토 해 보려는 목적을 지닌다. 문화혁명 시기 이 각각의 세력은 늘 동일한 입장을 지니고 있던 것은 아니고, 상호 연계 관계 또한 매 시기 달랐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시기를 단순한 이분법적 구도록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나면, 이러한 세력관계들의 관계, 그리고 각 세력 내의 재분화의 과정 등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할 필요성이 커진다. 천뽀다와 문혁소조는 이 모든 세력를 연결시키는 핵심 고리였다는 점에서 문화혁명 시기 연구의 중요한 검토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연구에서는 아래와 같은 문화대혁명 시기의 주요 쟁점들을 천뽀다와 중앙문혁소조의 역할을 중심을 검토해 볼 것이다. 가) 문화대혁명의 개시 4청운동에서 문화대혁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한 상이한 해석들이 병존하는 상황을 중앙문혁소조가 어떤 방식의 개입을 통해 방향을 전환시키는가, 그리고 여기서 <문혁 16조>와 “계급투쟁의 두 가지 노선”의 논의가 어떻게 개입되는가가 검토해야할 중요한 주제가 된다. 나) 문화대혁명의 확대 문화대혁명은 1966년 10~12월 사이에 급진화의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는 문화대혁명 초기에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며, 위로부터의 당의 정풍운동 형태로 시작한 초기의 문화대혁명이 대중운동으로 전환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세 가지 정도의 계기가 여기서 중요했다. 첫째, 혈통론 논쟁, 둘째, 12월 중공중앙 정치국 확대회의, 셋째, 탈권투쟁. 다) 문화대혁명의 착종성 ‘2월 반혁명 진압’을 둘러싼 과정은 여전히 문화대혁명 시기 연구에서 공백으로 남아있다. 특히 이에 대한 마오의 입장과 중앙문혁소조의 입장은 모호한데, 본 연구에서는 문화대혁명 급진화의 또 하나의 계기였던 이 시기의 상층부의 입장 분화 과정을 연구해 보려고 한다. 라) 문화대혁명의 정리 과정 이 질서의 시기에 들어서면 중앙문혁소조와 특히 그 안에서 천뽀다의 역할은 급속하게 약화된다. 반면에 구 당기구들이 복구되어 힘을 다시 얻게 된다. 이 시기에 이러한 변화의 구도를 문화대혁명에 대한 이론적 해석의 쟁점과 조직적 틀의 변화라는 쟁점을 통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학문적 기여 첫째, 문화대혁명에 대한 연구를 과거에 한정된 시기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현재에도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는 현대사적 사건으로 재해석함으로써, 현대 중국사회변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동학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중국지역 연구를 정책중심연구나 사례별 연구를 넘어서서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세력관계를 연결시키는 연구로 발전시켜, 현시기 중국사회 변화의 특성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서로 다른 사회세력들 사이의 상이한 대응 관계 속에서 문화대혁명을 연구해 봄으로써 역사의 복잡성을 좀 더 부각시키게 될 것이고, 문화혁명소조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역사적으로 중국공산당이 직면한 딜레마와 그 대응방식을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개혁개방의 시기로 이어지는 고리 또한 다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사회적 기여 첫째, 중국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변화의 동학을 이해함으로써 중국을 좀 더 분화된 대상으로 구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중국과의 교류가 늘어나고 중국인을 접촉하는 기회가 확대되고 있는데, 중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경험과 기억의 자원을 이해함으로서 이들을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좀 더 원활한 소통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중국에 대한 단순화한 이해를 좀 더 복잡한 맥락으로 확대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3) 활용방안 첫째, 연구의 결과를 중국사회론이나 중국의 산업과노동 같은 중국지역학 관련 강좌에서 중국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중국지역을 연구하려는 대학원생들과 사회운동 분야를 연구하려는 대학원생을 연구보조원으로 연구에 참여시킴으로써 이들 대학원생들의 조사경험을 풍부하게 해 줄 것이며, 이들이 학문후속세대로서 자신의 연구영역을 확대해가는데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조사 결과를 발표하여 그 결과를 사회적으로 공유하게 될 것이다.
  • 색인어
  • 중국, 문화대혁명, 중앙문혁소조, 천뽀다, 조반파, 마오쩌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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