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1차 년도에서 구 유고슬라비아 모더니즘 소설의 텍스트 내부를 고찰하는 데 주력했다면, 2차 년도 연구에서는 해당 소설 텍스트들의 공통적인 플롯적 특성을 추출하기 위하여 먼저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발칸반도의 지리적, 환경적 특성과 심리적 특성을 고 ...
▲본 연구의 1차 년도에서 구 유고슬라비아 모더니즘 소설의 텍스트 내부를 고찰하는 데 주력했다면, 2차 년도 연구에서는 해당 소설 텍스트들의 공통적인 플롯적 특성을 추출하기 위하여 먼저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발칸반도의 지리적, 환경적 특성과 심리적 특성을 고찰하였고, 발칸반도의 고유한 문화적 세계상을 밝혀내는 데 집중했다. 2차 년도에서 연구의 초점이 된 이러한 소설 텍스트 외부에 대한 고찰에는 세르비아 출신 인류학자 Jovan Cvijic의 방대한 인류학적, 사회학적, 문화심성학적 저작들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졌고, Cvijic에게서 추출한 정보를 문학 텍스트 속의 정보와 메타텍스트적으로 접목시키고 이를 통해 소설 텍스트의 내용이 기존 비평의 한계를 벗어나 새롭고 풍부하게 해석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발칸 반도에서 생산된 구 유고권 모더니즘 소설이 단지 문학적 자산으로서의 가치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발칸반도의 심성사(心性史)에 대한 고증 자료로서의 위상도 가진다고 판단하여, 해당 소설 텍스트에 표현된 다양한 가치 체계를 발칸반도의 고유한 문화적 세계상의 콘텍스트에서 파악하고자 했다. 이미 소비에트 기호학자 Tatijana Civ’jan을 위시하여 언어학, 문화기호학, 인류학,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발칸반도의 독특한 문화적 원형을 추출해 내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본 연구에서는 이런 학계의 기존 연구에 부분적으로 기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정보(사실상 가설에 불과하거나 검증을 거치지 못한 것이 포함되어 있는)에 대한 예증의 범위를 유고권 지역 모더니즘 소설 전체로 확장시켰다. 먼저 인류 공통적인 문화기호학적 가치체계를 설정한 다음, 이런 가치체계 중에서 특히 어떤 요소가 발칸반도와 구 유고권 민족에게서 지배적으로 나타나는가에 주목하였고, 이렇게 추출된 유고슬라비아 문화기호학적 가치체계에서 발현되는 독특한 크로노토프를 분석하였다.
▲유고슬라비아 모더니즘 소설 텍스트는 발칸 지역의 지리적, 사회적, 민족적 상황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한편으로, 발칸 반도의 고유한 문화기호학적 사고체계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본 연구의 2차 년도에는 이런 문화기호학적 가치체계가 어떻게 정의내려질 수 있으며, 이것이 유고슬라비아 모더니즘 소설 텍스트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본 연구자는 이에 대한 새로운 분석 모델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소비에트 문화기호학자 Tatijana Civ’jan(2006)이 방대한 글을 통해 제시한 ‘발칸의 세계상(Balkanskaja Model' Mira)’ 개념을 살펴보았고, 이것을 일반기호학적인 가치체계와 접목시켜 나름의 분석소를 추출하였다.
▲발칸 크로노토프의 특징은 ‘나’와 ‘타자’, ‘중심’과 ‘주변’의 역동성과 가변성이다. 이것은 발칸 역사를 점철했던 승자와 패자, 이주물결, 다양한 종족과 종교의 명멸과도 일치한다. 문제는 ‘나’와 ‘타자’의 경계를 영속적으로 고정시키려는 전통적 도덕과, 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며 그 경계를 임시적으로 허무는 보편적 윤리적 이념이 길항한다는 점이다. 전자는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도그마로, 후자는 ‘다리(most)’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발칸의 공간에서 도그마와 상대주의는 동일한 효과를 지닌다. 왜냐하면 무수한 각각의 ‘나’가 자기 내부의 타자성을 부정하고 자신의 중심성만을 인정하려 할 경우 이것은 집단적인 증오의 불씨를 키우는 결과만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발칸 크로노토프는 ‘참칭자’와 ‘억압자’로서 전도된 ‘나’와 ‘타자’의 관계를 종종 표현하며,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내 안의 타자성을 인식하는 윤리적인 행위를 절대적으로 요청한다.
▲2차 년도 연구에서는 유고슬라비아 모더니즘 소설 텍스트의 크로노토프를 기호학적으로 분석하여 아래와 같이 일정한 수의 플롯군(群)을 추출해 낼 수 있었다. 첫째는 농촌과 도시의 분명한 공간적 대립에 기초한 비극적 결말의 플롯으로, 직선적 ‘길’의 크로노토프(→)가 그것이다. 두 번째 유형의 플롯은 천상과 지상의 수직적 대립에 기초한 유토피아적 플롯이다. 이런 플롯 유형은 시간적, 공간적 표지가 뚜렷하지 않고, 현실과는 거리를 둔 낭만적 모험을 추구하는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세 번째 유형의 플롯은 민속적 크로노토프와 관련되어 있다. 이런 플롯에서 나타나는 ‘길’의 크로노토프는 운명적인 시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순환하는 원의 형태를 그린다(○). 네 번째 유형의 플롯은 복합형의 크로노토프로서 가장 발칸적인 크로노토프이며, 이것은 보스니아의 작가들과 관련된다. 자주 등장하는 ‘다리’는 ‘길’의 크로노토프가 처음과 끝도 없이 직선상으로 무한히 뻗어있는 모습을 형상화하며(↔), 이 비유는 ‘대화’의 필연성을 지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