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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기 일본인의 동아시아관-'雄飛論'의 대두와 그 원인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막말기 일본인의 동아시아관-& #39;雄飛論& #39;의 대두와 그 원인 | 2007 년 | 박훈(국민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B00022
선정년도 2007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9년 05월 20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9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아시아’나 ‘동양’이란 용어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메이지시대 이후 일본인들이 특정한 목적에 의해 이들 용어에 여러 의미를 가해 새로운 함의를 갖는 용어로 재창조되었고, 따라서 에도시대와 메이지 이후 이 용어들이 갖는 함의는 크게 다르다고 주장해왔다.
    예를 들면 야마무로 신이치(山室信一)는 근대일본의 아시아인식은 우선 세계는 5대주로 구분되고 그 가운데 하나인 아시아의 동쪽 끝에 일본이 위치하고 있다는 지식이 주어지고, 일본인은 이것을 전제로 하여 자신의 인식틀과 기준에 따라 대상을 재파악하고, 자기내면화하여 그것을 아시아인식으로 형성시켜갔다고 지적했다. 즉 지리적 정보 또는 개념으로 유럽으로부터 주어진 아시아에 대해 일본인이 메이지이후 여러 가지 사상적 영위를 기도하여 ‘아시아’의 개념이 충원, 확장되어 갔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연구들은 기본적으로 에도시대 이후 아시아나 동양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 왔지만 그것은 단순히 지리적 위치를 나타내는 ‘공허한 개념’이라고 규정하고, 근대이후 일본인들이 ‘아시아’나 ‘동양’개념을 새롭게 ‘만들어낸’ 점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물론 에도초기 이 개념이 들어왔을 때 그것은 단순한 지리적 개념으로 출발했고 근대이후 거기에 새로운 개념규정이 가해져 근대일본의 자타인식과 외교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아시아나 동양이 200여 년 동안 ‘공허한 개념’으로 계속 존재하다가 근대이후 갑자기 획기적인 개념변화가 일어났다고 보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근대이후의 획기적인 변화는 인정하더라도 그 이전에 이 용어들의 개념에 어떤 종류의 변화를 찾아낼 수는 없을까.
    필자는 에도시대와 막말기의 사료들 속에서 ‘아시아’와 ‘동양’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쓰이는가를 관찰하여 왔다. 거기서 근대이후의 획기적인 변화는 아니라 하더라도 단순히 ‘잔여개념’이나 ‘공허한 개념’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미묘한 개념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을 미리 요약하자면 첫째 지구상에서 원래는(현재는 아니라할지라도) 문화적으로 가장 우수한 지역이라는 의식(이 맥락에서는 주로 ‘아시아’라는 용어가 사용됨), 둘째 첫 번째와 연동되어 그러므로 유럽보다 우월하다는 의식, 셋째 유럽의 침입 앞에서 공동의 피해자라는 의식 등이다.
  • 영문
  • The studeis on the concepts of 'Asia' or 'Toyo' in the past have insisted that the concepts be created in Meiji era as ones which include confirmity in themshelves. They have also said that the terms of 'Asia' or 'Toyo' represented only geographical meaning, not cultural, political meaning.
    However, I found that the Japanese in the late Edo period began to give the terms some new connotations. They were as follows; first, The Asia had the most excellent civilization in the world in the first stage of mankind's history. sencond, thereby Asia may be superior to other area ,even including Europe. finally, Asia may be the common victim confronting European agression. These factors would be the meaningful basis in recreating the concept of 'Asia' or 'Toyo' in Meiji era.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아시아’나 ‘동양’이란 용어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메이지시대 이후 일본인들이 특정한 목적에 의해 이들 용어에 여러 의미를 가해 새로운 함의를 갖는 용어로 재창조되었고, 따라서 에도시대와 메이지 이후 이 용어들이 갖는 함의는 크게 다르다고 주장해왔다.
    예를 들면 야마무로 신이치(山室信一)는 근대일본의 아시아인식은 우선 세계는 5대주로 구분되고 그 가운데 하나인 아시아의 동쪽 끝에 일본이 위치하고 있다는 지식이 주어지고, 일본인은 이것을 전제로 하여 자신의 인식틀과 기준에 따라 대상을 재파악하고, 자기내면화하여 그것을 아시아인식으로 형성시켜갔다고 지적했다. 즉 지리적 정보 또는 개념으로 유럽으로부터 주어진 아시아에 대해 일본인이 메이지이후 여러 가지 사상적 영위를 기도하여 ‘아시아’의 개념이 충원, 확장되어 갔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연구들은 기본적으로 에도시대 이후 아시아나 동양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 왔지만 그것은 단순히 지리적 위치를 나타내는 ‘공허한 개념’이라고 규정하고, 근대이후 일본인들이 ‘아시아’나 ‘동양’개념을 새롭게 ‘만들어낸’ 점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물론 에도초기 이 개념이 들어왔을 때 그것은 단순한 지리적 개념으로 출발했고 근대이후 거기에 새로운 개념규정이 가해져 근대일본의 자타인식과 외교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아시아나 동양이 200여 년 동안 ‘공허한 개념’으로 계속 존재하다가 근대이후 갑자기 획기적인 개념변화가 일어났다고 보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근대이후의 획기적인 변화는 인정하더라도 그 이전에 이 용어들의 개념에 어떤 종류의 변화를 찾아낼 수는 없을까.
    필자는 에도시대와 막말기의 사료들 속에서 ‘아시아’와 ‘동양’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쓰이는가를 관찰하여 왔다. 거기서 근대이후의 획기적인 변화는 아니라 하더라도 단순히 ‘잔여개념’이나 ‘공허한 개념’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미묘한 개념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을 미리 요약하자면 첫째 지구상에서 원래는(현재는 아니라할지라도) 문화적으로 가장 우수한 지역이라는 의식(이 맥락에서는 주로 ‘아시아’라는 용어가 사용됨), 둘째 첫 번째와 연동되어 그러므로 유럽보다 우월하다는 의식, 셋째 유럽의 침입 앞에서 공동의 피해자라는 의식 등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연구결과 아시아, 동양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정합적인 개념인식이 에도후기에 형성되어 이것이 발판이 되어 메이지 이후의 '아시아''동양'인식으로 연결되었음을 밝혔다. 이것은 근대일본의 '아시아''동양'인식의 근저를 밝히는 작업에 도움을 줄 것이며 근대일본의 대 아시아인식, 정책을 해명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한다.
  • 색인어
  • 아시아, 동양, 일본인의 대외인식, 에도시대의 대외인식, 지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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