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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문학제도의 기원 연구 -1950년대 검열. 등단제도를 중심으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한국 현대문학제도의 기원 연구 -1950년대 검열. 등단제도를 중심으로 | 2007 년 | 이봉범(동국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499
선정년도 2007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9년 05월 05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9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1950년대에 대한 여러 분야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1950년대 한국사회의 특수성은 정치적 폐쇄성(경직성), 경제적 낙후성(대외의존성), 문화적 역동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한국현대사에서 1950년대에 대한 위상 설정도 정체/변혁, 불임/회임으로 극단화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간극의 문제를 잠시 유보해 두고 문화를 중심에 놓을 때, 정치적 폐쇄성과 경제적 낙후성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활황을 보여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1950년대 문화(학) 이해의 관건이 된다. 이와 같은 사실을 감안할 때, 1950년대 문화의 특징 나아가 문화 재편에 따른 1950년대 문화의 독특한 지형을 구명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문화의 구조적 상관성에 대한 접근이 요청된다.
    1950년대 문화재편은 문화변동의 차원에서 한국전쟁이 야기한 사회문화적 변화의 급격함과 문화접변의 차원에서 미국문화의 영향 그리고 국가의 근대화 기획에 의해 추동되었다. 특히 한국전쟁을 통해 내부 평정작업을 완수한 국가권력은 시민사회에 대한 막강한 자율성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문화 통제력을 확보하고 문화를 통한 지배체제의 안정적 재생산을 도모한다. 그 문화 통제의 중심에 검열이 존재한다. 1950년대는 문교부를 중심으로 일원화된 검열체계가 존재했으며, 그것은 통제와 아울러 문화 육성이라는 모순적인 작동을 보여준다. 유한한 자원을 국가가 선별적으로 배분하는 것을 통해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문화주체들의 권력 투쟁을 야기하면서 문화 통제력이 극대화된다. 따라서 문화영역은 정치영역과 달리 무리한 검열을 동원하지 않아도 일정 정도 통제가 가능한 대상이었다. 1950년대 검열이 겨냥했던 일차적인 목표는 사상통제였다. 반공주의와 반일주의를 기제로 엄격하게 시행된 검열로 인해 1950년대 공론 장에서 반공 이외의 담론의 철저한 봉쇄와 자유, 민주, 교양과 같은 근대적 담론의 과잉을 동시에 초래했다. 근대담론의 총량적 증대는 일반대중들의 근대적 욕망과 교차되면서 사회 전반에 새로운 문화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 ‘폐쇄적 개방’의 담론 지형이 야기한 풍선효과는 탈정치적인 대중물의 번성으로 나타난다. 검열은 공식문화와 대중문화를 극단적으로 분할하여 양립시키는 역할을 했다. 요컨대 검열은 1950년대 한국문화를 새롭게 재편시킨 핵심적인 기제였다.
    1950년대는 신문의 신춘문예와 문예지의 추천제 및 대중종합지의 현상문예가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여 상호 경합하는 가운데 등단제도가 복원되고 정착된다. 그것은 매체가 생존전략의 차원에서 문학을 전략적 동반자로 선택한 결과이다. 신춘문예는 시장원칙에 따른 신문들의 무제한적 경쟁체제가 조성되면서 문학을 매개로 한 신문과 독자의 관계를 긴밀하게 만들기 위해, 추천제는 대부분의 잡지가 표방한 대중교양의 확산과 건전한 문화건설에 대중접근성이 가장 큰 문학의 활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독서계의 규모 확장에 따른 문학 수요의 증가도 작용했다. 당대 신춘문예는 선발 종목의 잡종성, 제도 운영의 투명성, 신문의 이해관계의 반영을 보여주는 가운데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해 문인재생산의 제도적 대표성을 부여받았다. 추천제는 규범적 문학 장르로의 집중화를 통해 타 매체와의 차별성을 극대화한 가운데 운영시스템을 자주 변경해 제도적 결함을 탄력적으로 보완해가고 선자의 블록화에 따른 특정 문학경향의 배타적 규범화를 촉진시킨다. 아울러 월평을 중심으로 한 사후 관리시스템을 가동해 대중적 권위를 강화시킨다. 그 과정에서 추천제는 문학의 중앙 집중화와 문단-대학의 연계 구조를 형성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등단제도의 상례화의 효과는 문단 규모의 급격한 팽창에서 가시적으로 확인된다. 신인의 대량생산이 문학의 빈곤을 심화시키고 문단의 파쟁을 조장하는 원인으로 간주되어 그 무용론까지 대두된 바 있지만, 문학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고 한국전쟁으로 분산되고 위축되었던 문단 재건의 물질적,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했다. 물론 등단제도의 제도화가 새로운 문학의 모색과 탄생에 얼마만큼 실질적인 기여를 했는지는 의문이다. 추천제는 오히려 새로운 문학의 출현을 차단하거나 그 가능성을 억제하는 억압의 기제로도 작용했다. 이와 관련해 문단의 재편과정에 추천제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등단제도를 통해 등단한 일부 신인들이 기성문단의 침체와 억압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대의 문학을 주창했지만 신구세대간의 화해불가능성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그만큼 신인들이 맞닥뜨
  • 영문
  • Culture reorganization in 1950's was driven by two aspects. One, in the aspect of culture change, was sudden sociocultural changes caused by Korean War, the other, in the aspect of culture assimilation, included the effects of American culture and national modernization plans. Especially in the process of controling over civil society, national power which completed pacification through Korean War restricted the culture and tried to establish stable control system through it. In the center of culture control did censorship exist.
    We had unified censorship system in 1950's whose center was the Ministry of Culture and Education. The censorship system played a contradictory role of controlling and developing the culture at a time. The nation distributed limited resources selectively, which had culture control maximized, causing a struggle for power. Thus, the area of the culture could be controled in some degrees without censorship by force contrary to that of politics. In 1950's, the primary object of censorship was to restrict ideologies. Strictly conducted censorship on the basis of anti-Communism and anti-Japanese banned any discourses except anti-Communism in a place for public opinion and overflew modern discourses such as liberty, democracy, and cultivation. Meeting people's modern desires, increasing modern discourses made new cultural atmosphere in the whole society. Balloon effect caused by 'closed opening' in discourses gave birth to prosperity of the post-political popular stories. In short, censorship played the role to divide and stand together official culture and popular culture. It was censorship that made the koran culture newly reorganized in 1950's.
    In the 1950s, the platform system had been restored and fixed on a course of mutuality competition with literary contest in spring of the newspaper, the recommendation system of the literature papers and the reward literature of a general magazine at the same time. That's a result of choosing literacy as a strategic partner for the survival tactic. The common usage of platform system can be confirmed visibly in the drastic expansion of literary circles. Although the deadwood had been raised because the enormous number of products by new writers, it was regarded a cause of promoting the factional strife of literary circle sand making the poverty of literacy deepen. However, it had positive functions that improved the social position of Literature and fixed up an institutional and a physical basis for rebuilding the literary circles, which was dispersed and withered by the Korean War. Still, there is doubt about how much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platform system contributes to the search for and the birth of new literature. However, the recommendation system acted on operating not to produce new literature or to suppress the possibility to be produced. According to this statement, it had an important role. The recommendation system had been used positively in the reorganization process of literary circles. Although the new writers who took the rostrum by the platform system had advocated a new generation of literature that is free from stagnation and suppression, it had just confirmed the reconciliation undoubtedly between new and old generations. The barrier that new writers had been faced with in the existing literary circles was stubbornness. It is this spot that contrasted with behavior of the new writers in 1960s who had achieved the shift in generations and the new mainstream of literatur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1950년대 검열제도 및 등단제도의 성립과 그 작동양상을 규명함으로써 한국 현대문학제도의 기원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구체적으로 첫째, 한국전쟁의 종결과 남북분단의 고착화에 따라 문학 분야의 핵심의제로 대두되었던 문학 장의 재편이 무엇보다 국가권력과 문학주체(개인 및 조직) 사이의 길항관계에 의해 추동되었고, 둘째 그것이 국가주도의 각종 문화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문화예술 발전의 물질적, 제도적 기반이 정되는 가운데 왜곡된 형태로나마 근대적인 문학제도의 골격이 형성되는 과정이자 동시에 이를 둘러싼 국가권력과 문화엘리트간의 결탁과 갈등, 문화엘리트 내부의 균열과 마찰이 격화되는 과정이었으며, 셋째 그 문화제도 중 검열제도와 등단제도가 국가권력과 문학주체의 갈등이 첨예화되는 접점이었으며, 넷째, 이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정치적 층위로 온전히 환원되지 않는 문화적 층위들의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변화 양상과 그것이 제도적으로 조형되는 맥락을 규명하여 1950년대 한국문학의 새로운 역사상을 구성하고 이를 통해 한국현대문학의 제도적 기원을 조명하는 것이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이에 본 연구는 두 차원에 초점을 두고 수행되었다. 첫째, 1950년대 문학을 포함한 문화전반의 재편과정과 검열의 상관성을 연구하였다. 1950년대 문화재편은 문화변동의 과정에서 한국전쟁이 야기한 사회문화적 변화의 급격함과 문화접변의 차원에서 미국문화의 영향 그리고 국가의 근대화기획에 의해 추동되었다. 특히 한국전쟁을 통해 내부 평정작업을 완수한 이승만 정권은 시민사회에 대한 막강한 자율성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문화통제력을 확보하고 문화를 통한 지배체제의 안정적 재생산을 도모하는데 그 문화통제의 중심에 검열이 존재한다. 1950년대는 문교부를 중심으로 일원화된 검열체계가 존재했으며, 그것은 통제와 아울러 문화 육성이라는 모순적인 작동을 보여준다. 유한한 자원을 국가가 선별적으로 배분하는 것을 통해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문화주체들의 권력 투쟁을 야기하면서 문화 통제력이 극대화된다. 따라서 문화영역은 정치영역과 달리 무리한 검열을 동원하지 않아도 일정 정도 통제가 가능한 대상이었다. 1950년대 검열이 겨냥했던 일차적인 목표는 사상통제였다. 반공주의와 반일주의를 기제로 엄격하게 시행된 검열로 인해 1950년대 공론 장에서 반공 이외의 담론의 철저한 봉쇄와 자유, 민주, 교양과 같은 근대적 담론의 과잉을 동시에 초래했다. 근대담론의 총량적 증대는 일반대중들의 근대적 욕망과 교차되면서 사회 전반에 새로운 문화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 ‘폐쇄적 개방’의 담론 지형이 야기한 풍선효과는 탈정치적인 대중물의 번성으로 나타난다. 검열은 공식문화와 대중문화를 극단적으로 분할하여 양립시키는 역할을 했다. 요컨대 검열은 1950년대 한국문화를 새롭게 재편시킨 핵심적인 기제였다.
    둘째, 등단제도의 복원과 제도화가 1950년대 문학 장의 재편에 끼친 영향을 연구하였다. 1950년대는 신문의 신춘문예와 문예지의 추천제 및 대중종합지의 현상문예가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여 상호 경합하는 가운데 등단제도가 복원되고 정착된다. 그것은 매체가 생존전략의 차원에서 문학을 전략적 동반자로 선택한 결과이다. 당대 신춘문예는 선발 종목의 잡종성, 제도 운영의 투명성, 신문의 이해관계의 반영을 보여주는 가운데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해 문인재생산의 제도적 대표성을 부여받았다. 추천제는 규범적 문학 장르로의 집중화를 통해 타 매체와의 차별성을 극대화한 가운데 운영시스템을 자주 변경해 제도적 결함을 탄력적으로 보완해가고 선자의 블록화에 따른 특정 문학경향의 배타적 규범화를 촉진시킨다. 아울러 월평을 중심으로 한 사후 관리시스템을 가동해 대중적 권위를 강화시킨다. 그 과정에서 추천제는 문학의 중앙 집중화와 문단-대학의 연계 구조를 형성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등단제도의 상례화의 효과는 문단 규모의 급격한 팽창에서 가시적으로 확인된다. 신인의 대량생산이 문학의 빈곤을 심화시키고 문단의 파쟁을 조장하는 원인으로 간주되어 그 무용론까지 대두된 바 있지만, 문학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고 한국전쟁으로 분산되고 위축되었던 문단 재건의 물질적,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했다. 요컨대 1950년대 검열과 등단제도의 본격적인 작동은 문학 장의 재편을 밑으로부터 추동한 대표적인 문학제도였으며 그 결과는 당대뿐만 아니라 장기지속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현대문학의 원형을 주조하는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는 연구논문 두 편을 완성해 학계에 보고한 바 있다. 첫째는 <1950년대 문화 재편과 검열>로, 1950년대 문화의 재편과정에서 검열이 끼친 영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해 문화와 검열의 구조적 상관성을 밝혀냈다. 해방 후 문화(학)를 검열의 관점에서 조명한 연구는 매우 드물었다. 검열 연구가 주로 식민지시대에 집중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대 자료에 대한 광범한 접근과 실제적 물증(근거)의 발굴을 통한 객관성을 담보해야하는 검열연구의 본질 때문이기도 하다. 본 연구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전쟁 후 반공주의에 입각한 내부평정작업을 완수한 국가권력이 지배체제의 안정적 재생산을 위한 문화전략으로 검열을 통한 문화통제를 광범하게 시행했다는 점, 문교부를 중심으로 한 일원화된 검열체계가 존재한 가운데 형식적이나마 제도적 합리성을 갖추고 검열이 시행되었다는 점, 그 검열은 통제와 아울러 문화 육성이라는 적극성을 아울러 지닌 모순적인 작동으로 나타나는데, 육성과 관련해 주목할 것은 유한한 자원을 국가권력이 선별적으로 배분하는 과정을 통해 문화주체들의 권력 투쟁을 야기하면서 문화통제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치영역과 달리 문화영역은 무리한 검열을 동원하지 않아도 일정 정도 통제가 가능한 대상이었다는 점, 반공주의와 반일주의를 기제로 엄격하게 시행된 검열로 인해 1950년대 공론 장에서 반공 이외의 담론의 철저한 봉쇄와 근대적 담론의 과잉을 초래했다는 점, 그 ‘폐쇄적 개방’의 담론 지형이 야기한 풍선효과로 말미암아 탈정치적인 대중물이 번성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이다. 요컨대 검열은 1950년대 한국문화를 새롭게 재편시킨 핵심적인 기제였으며, 1950년대 대중(통속)문화의 범람 또한 거시적으로 볼 때 검열체제 안에서 허용된 일탈로 왕성한 자기번식의 결과물이다. 둘째는 <1950년대 등단제도 연구>로, 신춘문예와 추천제를 중심으로 등단제도의 복원과 정착이 문학 장의 재편에 끼친 영향을 규명하였다. 중요하게 다룬 문제로 매체(신문과 잡지)의 대중화 전략과 문학 그리고 등단제도의 복원의 상관관계, 일간신문의 신춘문예가 부활되는 맥락과 그 제도화 양상, 문예지의 추천제 경쟁구도와 그 양상 및 추천제의 시행과 가부장적 문단 체제와의 관계, 1950년대 등단제도와 문학 장의 구조 변동과의 함수관계 등을 고찰했고 등단제도의 결과를 도표화해 부록에 첨부했다. 1950년대 등단제도에 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년대 검열과 등단제도에 관한 최초의 본격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는 본 연구의 결과물은 1950년대 문학연구의 기반을 조성하는데 중요하게 기여할 것이다. 당대 문학제도에 대한 연구가 매우 취약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본 연구가 규명한 제도적 접근법, 매체론적 문학연구방법, 실증을 통해 정리된 자료 등은 후속연구자들에게 유용한 연구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아울러 풍부한 가능성과 좌절이 병존했던 1950년대 역사상 및 문학의 역사적 존재방식을 구명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특히 1950년대 매체, 제도(검열, 등단), 문화, 이데올로기, 정책, 출판 등에 대한 종합적 고찰은 인접분야, 즉 문화사, 예술사, 언론출판사와의 학제 간 교섭도 가능하리라 본다. 검열에 관한 본 연구의 성과물이 1950년대 사회문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 단행본 <아프레걸 사상계를 읽다>(2009.4) 총론으로 배치되어 인접 분야 와 연구적 소통을 이루어낸 바 있다.
    본 연구의 결과는 1950년대 문화(학)연구와 교육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이다. 검열과 등단에 관한 연구는 이미 대학원 강의와 국문학과 전공 시간에 교육 자료로 활용한 바 있다. 지금까지 텍스트주의, 미학주의 위주로 한국문학을 접근하는 것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최근 젊은 연구자들에게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해방 후 한국문학에 대한 연구를 추동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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